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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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사하세요.”
오스칼이 딱 잘라 말했다.
“예? 다시 조사합니까?”
“우리 군에 탈영병은 여태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장병들에게 돌아갈 승리 수당이 보장된 상황입니다. 이런 시국에 한두 명도 아니고 2개 분대가 단체로 탈영을 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카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어떠한 전투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각하. 처음엔 전투 중 자발라 왕국군의 게릴라들에게 붙잡혀 실종됐다고 판단했지만, 어떠한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전투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없답니다. 그래서 탈영이란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시킨 모양입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재조사가 필요합니다.”
오스칼은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카렐 부사령관.”
“예, 각하.”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라진 분대원들을 찾으라고 명하십시오. 그들이 죽었다면, 시체라도 찾아오십시오. 그리고 이유 또한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전하의 군대에 의문사 따위는 없습니다.”
오스칼이 단호히 말했다.
“만약 장병들의 실종에 대해 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간다면, 어떤 부모가 믿고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겠습니까? 누가 자원입대하려고 하겠습니까?”
“각하….”
“이건 중대한 사안입니다. 하급 지휘관에게 맡길 게 아닙니다. 카렐 부사령관.”
“예.”
“카렐 부사령관이 직접 헌병대를 지휘해서 수사해 주십시오. 카렐 부사령관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각하!”
카렐은 큰 소리로 소리쳐 대답하며 오스칼을 존경스럽단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반드시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파헤쳐 주시길 바랍니다, 카렐 부사령관.”
“예! 각하!”
오스칼은 역시 오스칼이라고, 카렐은 생각했다.
오스칼이 괜히 란 칭호를 가졌겠는가?
오스칼은 뉘르부르크 대륙의 수없이 많은 기사들 가운데서도 기사도 정신에 관해서는 그 어떤 흠결도 없다고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선배 기사로서.
그리고 상관으로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존경할 만한 인물이 바로 오스칼인 것이다.
“제가 책임지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겠습니다.”
“믿습니다.”
“예!”
카렐은 오스칼로부터 명령을 받은 후 즉시 발걸음을 옮겨 이번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
카렐은 오스칼로부터 명령을 받은 즉시 헌병대를 소집한 뒤 이번 사건의 재수사를 위한 특수 수사팀을 편성했다.
“지금부터 사건의 전면적인 재수사에 들어간다. 총사령관 각하의 명령이니, 다들 한 치의 부족함도 없이 완벽한 임무 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예! 부사령관님!”
“헌병 수사대는 즉시 사건을 재수사하고, 나머지 헌병대원들은 실종된 장병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을 중심으로 수색에 들어간다.”
“예!”
카렐은 헌병들에게 명령을 내린 후 자신 역시도 페이오그 시내로 나가 나름대로의 수색을 진행했다.
단순히 명령만을 내리는 게 아니라, 지휘관으로서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다.
‘사라진 장병들을 반드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
카렐은 굳게 마음을 먹고 페이오그 시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
카렐은 페이오그 시내를 둘러보던 중 서쪽 광장에서 무너진 석상을 발견했다.
그 석상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는데, 단순히 폭격을 맞아 그렇게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석상의 머리가 깔끔하게 잘려 나간 채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두 눈이 무언가에 파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석상의 코는 잘려 있었고, 입은 뭉개져 있었으며, 머리 역시도 처참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더욱 충격적인 건 석상 주변에 온갖 오물이 가득해서, 근처에만 다가가도 악취가 진동할 지경이었다.
누가 봐도 석상을 고의로 망가뜨리고, 또 오물을 끼얹은 게 분명했다.
게다가 석상의 몸통에는 온갖 낙서가 가득했다.
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죽어라.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네 어미 아비는 비참하게 죽을 것이고, 처자식은 끔찍한 병에 걸려 죽을 것이다.
영원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죽어서도 네놈을 원망하고 저주하리라.
석상의 몸통 부분에는 온갖 저주와 욕설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문제는 그 석상이 다름 아닌 지크를 형상화한 였단 점이었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지크가 마족들의 침공을 저지한 것을 기념해 에 가입된 모든 국가들의 수도와 도시 곳곳에 지크의 조각상을 세워주었다.
이 조각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에서 설치한 것이었기에, 자발라 왕국에 지크의 조각상이 있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카렐은 가 어째서 이렇듯 처참하게 훼손되었는지를 깨달았다.
민심(民心).
지크가 자발라 왕국을 멸망시켰으니 페이오그의 시민들이 를 훼손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카렐은 자발라 왕국의 백성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가 훼손된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카렐은 병사들을 불러내어 를 회수하게끔 했다.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된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발라 왕국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석상을 모욕하는 건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카렐은 의 잔해들을 국기(國旗)에 잘 싸서 프로아 왕국으로 보냈다.
그런 뒤 에 공문을 보내 자발라 왕국에 설치되어 있는 들을 회수해 프로아 왕국에 보내게끔 조치했다.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해 지크에게 올리고, 계속해서 수사를 이어나갔다.
***
승전 퍼레이드.
그리고 보고 싶은 가족과의 만남.
지크는 오래간만에 브륜힐트, 그리고 베르단디와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자발라 왕국의 수도 페이오그 어딘가에 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는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무슨 일이 터진 건 아니었으므로, 지크는 마음 편히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지크는 브륜힐트와 함께 둘만의 시간도 가졌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지크는 브륜힐트와 낙엽이 지는 정원에서 차와 다과를 즐겼다.
하지만 게이머 한태성이 너무나도 피곤하단 게 문제였다.
“…여보!”
지크는 브륜힐트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크는 거의 찻잔에 코를 박을 뻔할 정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졸았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지만.
“많이 피곤하시군요.”
“제가요?”
지크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브륜힐트에게 물었다.
“아닌데요? 저 안 피곤해요.”
“거짓말.”
“으응?”
“방금까지 꾸벅꾸벅 조셨잖아요.”
“그, 그랬어요?”
지크는 민망함에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게이머 한태성은 최근 게임에 너무 집중한 탓에 수면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지난 2주 동안 강제 접속 종료를 피하기 위한 시간을 빼면 풀 접속을 하느라 피로가 쌓일 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요.”
지크는 진심으로 브륜힐트에게 미안했다.
“좀 피곤했나 봐요. 근데 이제 괜찮아요. 깼어요.”
“아뇨.”
브륜힐트가 고개를 젓더니 지크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지크를 안아주며 속삭였다.
“피곤하신 거 알아요.”
“아, 아니에요!”
“쉬다 오세요.”
“하지만….”
“전 늘 여기 있는걸요.”
“여보….”
“다른 세계에서 강림한다는 게 피곤한 일이라는 거 알아요. 지난 몇 주 동안 많이 바쁘셨잖아요. 푹 쉬다 오세요, 여보.”
“여보….”
“괜찮으니까 쉬다 오세요.”
“고, 고마워요….”
“당연한 일인걸요. 사랑해요.”
브륜힐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크의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해주고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지크가 편히 로그아웃할 수 있게끔 배려해준 것이다.
뭉클!
지크는 그런 브륜힐트의 사랑과 배려에 가슴이 찡해져서 한동안 아무런 말도 못하다가, 불현듯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브륜힐트를 쫓아가 뒤에서 끌어안았다.
“어, 어머! 여보!”
“잠깐만 이리 와 봐요.”
지크는 그렇게 말한 후 브륜힐트를 안아 들고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침실을 향해 내달렸다.
그로부터 몇 분 뒤.
우르릉! 콰앙!!!
덩기덕! 쿠웅! 더러러러러!!!
덩기덕 쿵덕쿵!!!
쿵짝 쿵짝 쿵짜라 쿵짝!!!
쿵쿵따리 쿵쿵따!
쿵쿵따리 쿵쿵따!
쿵쿵따리 쿵쿵따!
쿵쿵따리 쿵쿵따! 쿵쿵쿵쿵!!!
왕궁에 정열의 천둥번개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태성은 거의 하루 동안 죽은 듯이 잠을 자다가 모처럼 만에 휴가를 가기로 했다.
그래서 천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니가 웬일이냐?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천우진은 태성이 게임을 하고 있지 않고 연락을 해온 게 못내 놀라운 눈치였다.
“왜? 하면 안 되냐?”
– 안 될 건 없지. 근데 너 거의 풀접이잖아? 웬일인가 싶어서 그러지.
“나도 사람인데 좀 쉬어야지.”
– 그건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인데….”
– ……?
“나 비행기 좀 빌려줘.”
– 뭐?!
천우진은 태성이 다른 것도 아니라 비행기를 빌려 달라고 하자 화들짝 놀랐다.
– 비행기를 빌려 달라고?
“응.”
– 야 이.
천우진이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너 돈도 많으면서 왜 남의 걸 빌려달라고 그러냐? 야, 그냥 이참에 한 대 뽑아라. 비즈니스 전용기는 얼마 안 비싸.
남들이 들으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대화였지만, 천우진과 태성에게는 아니었다.
천우진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태성 역시 1년에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억만장자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세금 문제로 인해 법인을 설립하기까지 한 기업인이기도 했다.
즉, 태성도 중고 전용기 한 대 정도는 충분히 소유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태성은 전용기를 구매할 생각이 1도 없었다.
“1년에 여행 몇 번이나 간다고 수백억을 들여서 전용기를 사냐? 돈지랄이야, 그거.”
– 흠. 그건 그렇지.
“나 그리고 돈 없다.”
– 뭐? 돈이 없다고? 너 뭐 도박하냐? 니가 돈이 왜 없어?
“아, 시끄럽고. 빌려줄 거야 말 거야. 안 빌려주면 나 그냥 비행기 표 끊게.”
– 어디 가게?
“어머니 모시고 여동생이랑 휴가 가려고.”
태성은 워낙에 바빠 가족들을 잘 챙기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던 참이었다.
물론 금전적으로는 무한에 가까운 지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성은 돈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으므로, 이번 기회에 효도도 할 겸 여동생도 챙기려 한 것이다.
– 아, 그런 거면 빌려주지.
“진짜지?”
– 언제 갈 건데?
“오늘 저녁? 아니면 내일 아침에 출발.”
– 말해놓을 테니까 타고 가라.
“고맙다.”
– 고마우면 밥 사든가.
“다녀와서 살게.”
– 진짜지?
“당연하지.”
– 너 미리 예약해 놓는다? 비싼 데로?
“야! 걱정 마! 내가 쏠 테니까!”
– 알겠어. 너 딱 기다려. 내가 몇백만 원어치는 먹을 거니까.
“몇천만 원어치 먹어도 돼. 먹다 죽을 거면.”
– 큭큭!
“아무튼, 고맙다.”
– 됐어, 인마. 그깟 비행기 한 번 빌려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잘 다녀와라. 끊는다. 나 지금 좀 바빠. 게임하러 가야 돼.
“그래.”
태성은 천우진과의 전화를 끊은 뒤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