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74
773
‘이게 가능해?’
지크는 솔직히 과거의 아문센 씨를 만났단 사실에 매우 놀랐다.
제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시간 여행이 가능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곳 가 여러 시간대가 뒤섞인 곳이라서 가능할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게임인 이상 물리적으로 미래의 사람을 만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아문센 씨가 9년 전에 여길 탐험했다고 치자. 인자기의 나무지팡이가 있으니까 무사히 나가는 건 가능하니까. 그럼… 인자기의 나무지팡이를 가지고 있다가 어떤 이유에서 잃어버렸고, 그게 채형석에 손에 들어간 거다. 그 뒤에 내가 채형석을 죽여서 먹은 거고. 그럼 말이 돼.’
9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추리였다.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아문센 씨를 향해 말했다.
“아문센 씨.”
“말씀하시오.”
“죄송한데….”
지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미래에서 온 사람입니다.”
“음?”
“미래에서 수즈달 제국 유적지를 탐사하다가 아문센 씨를 만난 거고요.”
“허….”
아문센이 지크의 말을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괜히 수즈달 제국 유적지 안에 있는 게 아니구려.”
“예?”
“어쩜 이리도 사람이 자연스럽게 미쳤단 말인가… 쯧쯧쯧.”
아문센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다른 NPC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가엾은 청년 같으니….”
아문센의 탐험대원들 역시 지크가 미쳤다고 생각했는지, 너도나도 동정의 제스처를 취했다.
“저 진짜 미래에서 온 사람이거든요?”
지크가 아문센에게 말했다.
“제가 9년 후에 아문센 씨랑 만나서 남부 대정글도 탐험하고 후원도 해줄 겁니다.”
“허허허.”
“안 믿어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동행하시죠.”
“그럽시다. 내 그대를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소. 그런데 집을 기억하긴 하오?”
“…….”
“나가면 어디 용한 치료사라도 찾아가서 약이라도 지어 드시오. 정신병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오. 약물로 충분히 치료할 수가 있으니 말이오.”
아문센은 그렇게 말하고는 로 땅을 짚어가면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크는 그런 아문센의 뒤를 잠자코 따랐다.
[인자기의 나무지팡이]인자기가 사용하던 나무지팡이.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타입 : 잡동사니(지팡이)
•등급 : 유니크
•내구도 : 9/10
•효과 :
– 어느 필드에서든 확실하게 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인자기의 천리안 세트
– 인자기의 나침반
– 인자기의 길잡이
– 인자기의 나무지팡이
지금 상황에서는 보다 가 더 나았다.
은 맵핵 효과를 제공하지만,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문센 씨.”
“음?”
“이제 어딜 가세요?”
“이 안을 둘러볼 생각이오.”
“아?”
“기왕 탐험을 시작했으니 쭉 둘러보긴 해야 할 것이 아니겠소.”
“그렇군요.”
“잠자코 따라오시오. 우릴 놓치면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못할 테니.”
“알겠습니다.”
어차피 지크는 이 맵 데이터를 모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겸사겸사 아문센 씨를 뒤따랐다.
***
지크는 과거의 아문센 씨와 함께 를 탐사하게 되었다.
아문센 씨 일행은 때문인지 를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가 제시하는 길을 따라서 뒤틀린 시공의 틈 사이사이를 지나갔기에 다른 로 이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뭔가를 하면 미래가 바뀌나?’
지크는 고민했다.
이곳이 과거인지, 혹은 과거의 아문센 씨만 만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과거를 바꾸면 미래 역시 뒤바뀐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지크는 뭔가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자칫 과거를 건드렸다가 나비 효과로 인해 현재가 뒤바뀌어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뀨. 주인 놈아. 뭘 그렇게 고민하냐!”
햄찌가 지크에게 물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지크가 햄찌에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해 주었다.
“뀨우! 주인 놈 바보다! 뀨!”
“으응?”
“우리가 여기서 아문센 씨를 만났으면 아문센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릴 알고 있어야 정상 아니냐!”
“어?!”
지크는 햄찌의 말을 듣고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과거 에서 아문센 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지크를 알아보지 못하지 않았던가?
“뀨우! 이건 진짜 시간 여행이 아니다! 뀨우! 여긴 우리 차원이 아니다! 단지 평행 세계의 다른 차원일 뿐인 거다! 뀨우!”
“그, 그런가?”
“그렇다! 뀨! 그러니까 뭘 해도 바뀌지 않을 거다! 뀨우!”
“하긴.”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어차피 이곳은 현실이 아닌 게임 속 세상이었기에, 지크는 굳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해 버렸다.
어쩌면 이곳 가 시간 여행을 컨셉으로 만들어진 필드일 수도 있었기에, 딱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조심 움직이자.”
“알겠다! 뀨우!”
그렇게 지크는 햄찌와 함께 아문센 탐험대를 뒤따라 계속해서 이 맵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끔 움직였다.
***
지크가 아문센 탐험대를 만나 맵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을 무렵.
“크윽!”
도제 베텔규스는 온몸이 걸레짝이 된 채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 말도 안 되는….”
베텔규스는 자신의 도(刀)를 지팡이 삼아 겨우 버텼다.
베텔규스는 를 헤매던 중 청년을 만났다.
그리고 다짜고짜 싸우게 되었고, 결국엔 패배했다.
그것도 처참하게….
“후. 여기라면 강자가 있을 줄 알았는데.”
청년이 만신창이가 된 베텔규스를 바라보며 입을 삐죽였다.
“끽해야 그랜드 마스터라니. 그것도 이제 막 그랜드 마스터가 된 초보잖아? 쳇.”
청년은 그런 베텔규스를 라 부르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시오?”
베텔규스는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베텔규스는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이후 사부를 빼면 이 세상에 적수가 몇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곳 에서 만난 청년은 베텔규스를 너무나도 가볍게 요리해 버렸다.
사부처럼 압도적으로 강한 건 아니었지만, 엄청난 강자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왜?
그랜드 마스터인 베텔규스를 불과 5분 만에 때려눕혔으니까.
“내가 누구냐고?”
청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날 몰라?”
“실례지만 누구시오. 나는 그대와 같은 강자를 본 적이 없소. 그대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두 번째로 강하오.”
“두 번째? 그럼 첫 번째가 누군데?”
청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르시엘라고? 아니면 바즈라?”
“그게 누구요?”
“엥?”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보다 강한 놈들을 만났으면 무르시엘라고나 바즈라 아냐?”
“미안하지만 아니오. 그리고 난 무르시엘라고나 바즈라란 사람을 모르오.”
“엥?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너 도대체 뭐냐? 아는 게 있긴 해?”
“…….”
“그래, 뭐 모를 수도 있지. 그럼 니가 만난 가장 강한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그런 분이 계시오. 무적의 힘을 손에 넣은 분이.”
베텔규스가 사부를 떠올리며 말했다.
“무적의 힘이라. 아직 그런 사람이 있단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청년은 베텔규스의 말에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날 그 사람이랑 만나게 해줄 수 있어?”
“그분을 만나고 싶소?”
“당연하지.”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적의 힘이라니. 그런 사람이 진짜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만나보고 한번 싸워봐야지. 지든 이기든 배울 게 있을 거 아냐.”
“만나게 해주는 건 어렵지 않소.”
베텔규스는 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품었다.
‘흐흐. 네놈도 곧 나처럼 머슴이 될 것이다.’
베텔규스는 제아무리 자신을 만신창이로 만든 청년이라 할지라도, 사부에게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을 거라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 그럼 나 좀 소개시켜 줘.”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여길 나갈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소이다.”
“아, 그건 걱정 마.”
“음?”
“저기 내 친구가 길을 찾아줄 거야.”
청년이 자신과 함께 를 돌아다니던 다른 청년을 가리켰다.
그 청년은 맹인이라도 되는지 안대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는데, 오른손엔 나무로 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저 친구가 길을 찾아줄 수 있소?”
“당연하지.”
“어떻게 그게 가능하오?”
“두고 보면 알아.”
청년이 씩 웃으며 말했다.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띠링!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맵 데이터 수집이 완료되었습니다!]지크는 이 맵 데이터 수집을 끝마쳤다는 알림창이 떠오르자 스킬을 써 를 스캔해 보았다.
[수즈달 제국 유적지]시간의 광장.
여러 시간대가 교차하는 다중 차원 필드이다.
이곳에서 과거의 인물을 만나거나 과거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방식으로도 과거를 바꾸어 현재를 변화시킬 순 없습니다.
“역시.”
지크는 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고는 햄찌의 말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는 단지 과거의 데이터가 평행 세계로써 존재하는 필드일 뿐, 결코 게임의 현재 시간과 연계된 진짜 과거는 아니었던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이루어진 게임이니까 가능한 거겠지.’
지크는 게이머로서 이곳 의 컨셉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보자.’
지크는 을 통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를 맵핵처럼 들여다보았다.
은 지크로 하여금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면 어느 시간대의 로 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표기해 주었다.
또한, 각 시간대마다 밖으로 나가는 좌표 역시도 제공해 주었다.
즉, 이제는 더 이상 길을 헤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좋아. 지금이 9년 전이니까. 현재의 수즈달 제국 유적지로 가보자.’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문센 씨를 돌아보았다.
“아문센 씨?”
“왜 그러시오?”
“전 이만 가볼게요.”
“음? 어딜 간단 말이오?”
“제 갈 길 가는 겁니다. 후후.”
지크는 그 말을 남기곤 아문센을 뒤로한 채 햄찌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지크는 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무사히 현재 시간대의 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
지크는 현재 시간대의 에 도착하자마자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도제 베텔규스와 만나게 되었다.
“어르신!”
지크가 서둘러 베텔규스를 향해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도련님!”
베텔규스가 지크를 발견하자마자 반갑단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그, 그게….”
베텔규스가 눈짓으로 자신의 옆에 있는 두 청년들을 가리켰다.
“이분들은 누구시죠?”
지크가 베텔규스와 함께 있는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굉장히 잘생겼지만 약간 짓궂어 보이는 인상을 가진 흑발의 청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맹인인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아, 내 소개하지.”
베텔규스가 짓궂은 인상의 청년을 먼저 소개했다.
“이쪽은 지크프리트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군요.”
“아?”
“그리고 이쪽은….”
베텔규스가 안대로 눈을 가린 맹인 청년을 지크에게 소개해 주었다.
“인자기란 친구입니다.”
그 순간.
“이, 인자기요?!”
지크는 제 귀를 의심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