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82
781
“내가 이래서 아케론 그 자식이 싫다니까.”
사부가 의 제복을 입은 기사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생체 실험 같은 끔찍한 짓거리를 도대체 얼마나 많이 저질러야 저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거야?”
아무래도 사부는 젊은 시절부터 아케론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긴. 지 육체도 생체 실험으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상한 걸로 바꾸어놓은 놈인데, 남의 육체는 오죽하겠어.”
“예? 여자가 아니었습니까?”
지크가 놀라 물었다.
왜냐하면, 지크가 아는 아케론은 조금은 중성적인 느낌이긴 해도 명백하게 여자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개뿔. 걔 원래 남자였거든?”
“……!”
“언젠가부터 요상하게 변해서 그렇지, 원래 남자였어.”
“하하… 하하하….”
“그나저나 거의 그랜드 마스터급 강화 인간을 만들어낸 걸 보면 그간 엄청나게 실험을 해댄 모양이네. 애꿎은 사람들 육체를 가지고 얼마나 장난질을 친 거야? 역겨운 자식!”
사부가 의 군복을 입은 강화 인간들을 바라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아무튼, 먼저 가.”
사부가 지크를 향해 턱을 까딱 저 앞쪽을 가리켰다.
“난 뒤따라 갈 테니까.”
“예? 혼자서 상대하시게요?”
지크는 사부를 혼자 내버려둘 수 없었다.
지금의 사부는 아직 무적의 힘을 손에 넣지 못한 시기였다.
제아무리 사부라고 한들, 지금 상태로 450레벨짜리 강화 인간 50명을 상대하는 건 무리한 싸움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사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이겨.”
사부가 딱 잘라 말했다.
“전력을 다해야겠지만, 어쨌든 내가 이겨.”
“하지만….”
“넌 있으면 방해만 돼. 먼저 가있어. 금방 뒤따라갈 테니까. 휘말려서 죽기 싫으면, 얼른 가.”
사부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슥 나서 아케론이 만들어낸 450레벨의 강화 인간들을 향해 다가섰다.
“먼저 가시죠.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인자기 역시 지크에게 미소를 지으며 먼저 갈 것을 권했다.
“그럼….”
지크는 그런 사부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와 을 깔아주었다.
비록 먼저 가지만, 강화 인간들과 싸울 사부를 위해 디버프 필드라도 남겨두고 가려는 것이다.
“이따 뵙겠습니다.”
“그래, 이따 보자.”
지크는 그렇게 사부를 남겨둔 채 보스인 불멸의 연금술사 아케론이 자리한 중심부로 나아갔다.
쾅! 콰앙!
와르르르르르!
그런 지크의 등 뒤로 엄청난 소음과 함께 강력한 충격파가 뿜어지고, 뒤이어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사부와 강화 인간들의 싸움은, 최소 사령부 건물 절반 정도는 날려버릴 게 분명했다.
[알림 : 제한 시간이 앞으로 51분 7초 남았습니다!] [알림 : 제한 시간이 앞으로 51분 6초 남았습니다!]그러는 동안에도 퀘스트의 진행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갔다.
우웅!
또한, 성 전체에 가득한 이계의 에너지도 더욱 강렬해져 갔다.
‘빨리 가야 돼.’
지크는 속도를 높였다.
물론 오즈릭 교단의 교주인 불멸의 연금술사 아케론을 이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 같은 건 없었다.
지크가 바라는 건 오직 을 방해하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아케론과 들이 융합하는 걸 저지하는 게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
이 거행되고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보스인 아케론에게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악!”
지크는 햄찌와 함께 달리던 중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질 뻔했다가 가까스로 자세를 다잡았다.
‘뭐지?’
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던 순간.
스륵, 스르륵!
지크는 돌로 이루어져 있던 바닥에서 수십 개의 팔들이 돋아나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걸 발견했다.
바닥뿐만이 아니었다.
천장과 벽에서도 돌과 같은 재질로 이루어진 팔들이 뻗어 나와 지크를 움켜쥐려 했다.
그 광경은 정말이지 그로테스크했다.
사방팔방에서 손이 뻗어 오는 모습이란, 마치 호러 영화에서나 볼 법했던 것이다.
‘미친!’
지크는 황급히 을 뿜어내었다.
그러자 손들의 움직임이 급격히 둔해졌다.
사부의 조언대로 은 연금술에 한해서 거의 쥐약에 가까운 스킬이었던 것이다.
“햄찌야! 타!”
“뀨!”
지크는 햄찌를 태운 채 를 펼쳐 복도를 비행했다.
을 사용해 디버프를 걸긴 했지만, 손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쳐내며 나아가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도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
“빌어먹을!”
지크는 또 다시 거대한 철문과 마주했다.
그 거대한 철문은 성 입구에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을 닫은 자의 의지로 굳게 잠겨 있었다.
문제는 지크로서는 그 문을 여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
사부의 의지는 워낙에 거대해서 철문에게 명령하는 식으로 여는 게 가능했지만, 지크도 가능할지 미지수였던 것이다.
“열려라… 열려….”
지크는 수만 개의 손들이 자신을 향해 뻗어 오는 와중에도 철문을 향해 의식을 집중했다.
“주인 놈아! 빨리 열어야 한다! 뀨우!”
“기다려! 집중하고 있어! 좀 기다려!”
지크는 햄찌의 외침에 소리쳐 대답하고는 자신의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열린다. 문이 열린다. 열릴 거다. 열려라, 열려.’
지크는 눈을 감은 채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며 문이 열리는 상상을 했다.
그러던 중.
스르륵!
지크는 문득 주변 환경이 뒤바뀌었단 생각에 눈을 떴다.
그런 지크의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햄찌도, 뻗어 오던 수만 개의 손들도 없었다.
지형지물 역시 없었다.
단지 어두컴컴한 곳에 지크 홀로 자리하고 있었을 뿐….
[내면 : 의식의 영역]그런 지크의 눈앞에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어?”
지크는 현재 위치가 바뀌었단 걸 확인하고 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런데.
“뭐야.”
지크는 이 끝없이 펼쳐진 무[無]의 영역에 자기 자신과 또 다른 사람만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보스 : 불멸의 연금술사 아케론]그 사람은 다름 아닌… 오즈릭 교단의 교주인 불멸의 연금술사 아케론이었다.
***
그렇게 지크는 이란 곳에서 오즈릭 교단의 교주인 불멸의 연금술사 아케론과 마주하게 되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아케론이 지크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뭐야.”
지크는 속는 셈 치고 아케론을 향해 를 던져보았다.
쒜엑!
그러자 는 아케론을 향해 날아가다가 허깨비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지크의 손아귀에 스르륵! 하고 나타났다.
“…얼씨구.”
지크는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황당해서 콧방귀를 뀌었다.
“쓸데없는 짓보다는 대화가 더 나을 것 같군.”
아케론이 지크를 향해 말했다.
“무슨 대화?”
지크가 아케론을 향해 물었다.
“너 따위랑 할 말 같은 건 없는데?”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아케론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왜 스스로 어리석음을 자초하는가?”
“뭐가 어리석다는 거지?”
“이 세계는 타락했다.”
아케론이 딱 잘라 말했다.
“더는 뜯어 고칠 수 없을 만큼 썩어빠졌다.”
아케론은 그렇게 말하며 손짓으로 지크에게 어떠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어머니….]그 영상은 한 병사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크흐흐!]그런 뒤 그 병사는 적이 내지른 창날에 목이 꿰뚫려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병사는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로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며 죽어갔다.
“전쟁.”
아케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지크에게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발! 제발 자비를….] [닥쳐라!] [제발… 이 식량이 없으면 저희 가족은 올 겨울을 날 수가….] [영주님의 명령이다! 세금을 납부하길 거부하는 자, 오직 죽음뿐이다!] [으악!]다른 영상은 가난한 농민으로부터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탐욕.”
아케론은 그렇게 말하며 지크에게 세계의 어두운 단면들이 담긴 영상들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보았는가? 이 세계의 지적 생명체들은 신의 실패작에 불과하다.”
“실패작?”
“이 세계의 지적 생명체들은 끝없는 탐욕, 맹목적인 적개심, 광기, 질투, 증오로 이루어진 존재들일 뿐이다.”
“사람 사는 거, 어딜 가나 다 똑같거든?”
지크는 아케론의 말에 진부함을 느꼈다.
아케론의 사상은 흔해 빠진 악당의 망상에 불과했다.
단, 아케론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기에 불가능한 망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럴 거면 아예 전 차원을 쏘다니면서 순회공연이라도 하지 그래?”
“끝끝내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내가 너 같은 미친놈의 광기를 어떻게 이해하냐?”
지크가 아케론을 향해 빈정거렸다.
“아니, 아니지.”
지크가 씰룩 웃으며 말했다.
“넌 세계를 정화하고 싶은 게 아냐.”
“……?”
“넌 단지 신이 되고 싶을 뿐이지.”
“뭐라?”
아케론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것 봐라?’
지크는 언제나 무표정이던 아케론의 얼굴에 언뜻 다른 감정이 떠오르는 걸 놓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지크가 아케론에게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 그냥 신이 되고 싶은 거 아냐?”
“신이라….”
“니가 가진 능력이 전지전능한 것처럼 느껴지니까, 그냥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서 신이 되고 싶은 거 아니냐고.”
“대꾸할 가치도 없군.”
“아니야.”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넌 그냥 망상에 빠져서 신이 되고 싶은 거지, 썩어빠진 세상을 정화하려는 게 아냐. 그건 핑계 같은 거지. 역겨운 정신 승리 같은 거.”
“그 입… 다물어라.”
“싫다면?”
“다물게 해주마.”
아케론이 손짓하자 어둠 속에서 시커먼 손들이 뻗어와 지크의 몸을 움켜잡았다.
꽈악!
그 손들은 지크의 온몸을 움켜쥔 채 강하게 짓눌렀다.
“왜 찔려?”
지크는 수백 개의 손들에 붙잡힌 상태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맞잖아? 차라리 좀 솔직해져 봐라. 그냥 신이 되고 싶다고, 내가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싶다고 왜 말을 못 해?”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게 사실이겠지. 수백 년 동안 교주 노릇한답시고 설치더니, 이제 자기 자신까지 속아 넘어간 모양이지?”
지크가 능글능글하게 아케론을 조롱했다.
‘맞아. 이 새끼, 그냥 신이 되고 싶은 또라이에 불과해.’
지크는 아케론이 미치광이에 불과하단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꿈틀꿈틀!
왜냐하면, 지크는 아케론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끝없는 탐욕.”
지크가 말했다.
“그게 너잖아? 신이 되고 싶단 욕망에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일삼은 미치광이.”
“감히….”
아케론이 부르르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감히 나에게 탐욕스럽다고 말하는 건가? 새로운 세계의 창조주가 될 나에게?”
그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평소 아케론이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마치 로봇과 같은 사람이었던 걸 떠올려 보면 굉장히 낯설었다.
“창조주는 개뿔이.”
지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떤 창조주가 너 같은….”
그 순간.
화르르르르르!
시퍼런 불길이 치솟아 올라 지크를 휘감았다.
“징벌을… 내리겠다.”
아케론은 그렇게 말하며 지크를 휘감은 불길에 자신의 힘을 더했다.
“새로운 세계의 신으로서. 끝끝내 어리석고 오만방자한 네놈을 정화의 불길로….”
아케론은 지크를 불태워 죽이려다가,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왜냐하면, 지크가 불길에 휩싸인 상태에서도 히죽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케론은 지크가 전혀 불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곳은 아케론이 만들어낸 의식의 영역.
이곳에서 아케론이 가지는 힘이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현실이 아닌 의식 속이었기에, 창조주나 다름없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크는 창조주와 같은 아케론의 힘을 거스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