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93
792
야심한 밤.
뉘르부르크 대륙의 서남부에 자리한 어느 해안가 마을에서는 한 소녀가 동상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 동상의 이름은 라고 했다.
프로아 왕국의 국왕 지크프리트가 마계의 침공을 저지한 것을 기념하며, 마우레키온 제국의 슈트카르트 황제가 세운 동상이었다.
소녀는 매일 밤 를 향해 기도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소금기 섞인 해풍이 부는 마을 광장.
소녀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을씨년스럽게 비추는 달빛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아 를 향해 기도했다.
“용사님. 부디 한 번만 저를 도와주세요. 부탁드려요.”
그때였다.
스으으!
가 희미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소녀는 두 눈을 감고 기도하던 중 앞이 환해진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떴다가 기적과도 같은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화아악!
황금색 서광이 밤하늘의 먹구름을 뚫고 내리쬐고, 뒤이어 사람의 형상을 한 누군가가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등 뒤에 상서로운 원형의 오라를 휘감고 나타난 그는 와 정말이지 똑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네가….”
하늘에서 내려온 용사가 소녀에게 물었다.
“나를 불렀니?”
“어….”
소녀는 기적이 일어났음에도 무어라 말을 잇질 못했다.
그건 놀라서가 아니었다.
기도를 했고,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용사님이 잠옷을 입고 오실 리 없어!’
기도에 응답해준 전설의 용사가 알록달록 토끼 잠옷 차림이었단 점이었다.
***
‘이게 되네?’
지크는 를 사용해 강림한 직후, 이 현상에 대해 굉장히 신기해했다.
누군가 에게 올린 기도를 듣고 를 사용해 그 사람에게 이동한다.
이건 게임 BNW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경우에 속했다.
게다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거나, 등 뒤에 후광이 서린다거나 하는 등장 임팩트 역시 굉장히 멋이 있었다.
‘출장 용사님 같은 건가?’
지크가 그 생각을 할 무렵.
[알림 :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알림 : 가 발생했습니다!]퀘스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소녀와의 대화]나에게 기도한 소녀와 대화를 나누어 보자
•타입 : 연계 에픽 퀘스트
•진행률 : 0%(0/1)
지크는 퀘스트를 따라 소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네가 나를 불렀니?”
“어….”
하지만 소녀는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날 부른 거 아냐?”
“그게….”
“으응?”
“용사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었어요.”
소녀가 살짝 울상이 되어서는 대답했다.
“그런데… 그런데… 흑….”
“으응?”
지크는 소녀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울먹이자 당황했다.
“네가 불러서 왔는데 왜 우는 거야?”
그러자 소녀가 대답했다.
“아저씨는 용사님이 아니잖아요.”
“응?”
“저는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시자 마계의 침공으로부터 대륙을 구한 용사님인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께 기도를 올렸어요.”
“그런데?”
“하지만….”
소녀가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리며 대답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께서 잠옷을 입고 나타나실 리 없는걸요. 흑흑. 흑흑흑.”
“아차!”
지크는 자신이 급하게 오느라 미처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걸 깨닫고 당혹스러워했다.
이 귀여운 토끼 잠옷은 브륜힐트, 그리고 베르단디와 함께 패밀리 룩으로 맞춤 제작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 잠깐만.”
지크는 궁색하게 말하고는 황급히 자신의 동상 뒤로 숨어 장비들을 착용했다.
‘기껏 멋있게 등장했는데 이런 굴욕을 당하다니. 으윽.’
지크는 창피함에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장비를 착용하고는, 다시 소녀 앞에 섰다.
“짜잔!”
지크가 두 팔을 활짝 편 채로 소녀에게 보란 듯 말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등장!”
“흑흑….”
“왜 울어?”
“사기꾼이잖아요! 흐에에에에에에에엥!”
소녀는 그렇게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나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니까?”
“거짓말! 흑흑!”
“진짜야!”
“간절히 기도했는데… 흑! 흑흑!”
“아냐. 나 진짜야. 자다가 급하게 오느라 옷 입는 걸 깜빡했지 뭐니.”
“저, 정말요?”
“그럼.”
지크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프로아 왕국의 국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란다.”
“전하를 뵙사옵니다.”
소녀가 지크에게 어설프게나마 평민으로써 왕족에 대한 예를 취했다.
“일어나렴.”
“네, 전하.”
“이름이 뭐니?”
“미샤라고 하옵니다.”
“그렇구나. 그래, 미샤야. 왜 나를 불렀니?”
지크가 미샤란 이름의 소녀에게 물었다.
“그건….”
그러자 미샤가 에게 기도를 올리게 된 이유를 말해주었다.
***
미샤는 이 해안가 마을에서 어부인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비록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또 그리 풍족하지 않은 삶이었지만 미샤는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샤의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그만 해적들에게 붙잡혔고, 그 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미샤는 영주에게 해적들을 소탕해줄 것을 간청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 지역 일대의 해적 세력이 워낙에 강력하고 또 기동성이 뛰어난지라, 영주도 손을 놓아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라 안팎으로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앙 정부인 왕실로서도 해적 소탕에 섣불리 해군력을 동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샤는 바다의 신 넵튠을 섬기는 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에서는 작은 어촌 마을에 사는 일개 소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부 하나를 구하겠답시고 교단의 성전사들을 출동시켜서 해적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된 미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를 향해 기도했다.
마족들의 침공을 저지해낸 용사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면, 어쩌면 기도를 듣고 해적들을 소탕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그랬구나.”
지크가 미샤의 사연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띠링!
그러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알림 :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알림 :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뒤이어 연계 퀘스트가 이어졌다.
[출장! 용사님!]해적들을 소탕하고 미샤의 아버지를 구출하자.
•타입 : 연계 에픽 퀘스트
•보상 :
– 신성력 +300
해적을 소탕하는 것치곤 보상이 작았다.
고작 300의 신성력이라면, 들이는 수고에 비해 가성비가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
‘에픽 퀘스트야. 깨다 보면 뭔가 나와.’
지크는 다년간 게임 BNW를 플레이하면서 연계 퀘스트의 끝은 언제나 달콤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또한, 신성력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번 퀘스트를 필수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나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으면.’
지크는 미샤에게 연민을 느꼈다.
또한, 매일 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를 향해 기도한 것 역시도 매우 기특했다.
때문에, 지크는 흔쾌히 미샤를 도와주기로 했다.
“좋아.”
지크가 미샤를 향해 웃었다.
“내가 도와줄게.”
“저, 정말이셔요?”
“물론이지.”
“흑….”
미샤는 지크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그간의 설움과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글썽였다.
“고맙사옵니다… 전하… 흑흑흑! 정말 고맙사옵니다….”
“이제 괜찮아.”
지크가 미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달래주었다.
“내가 도와줄 테니까, 이젠 웃으렴. 곧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네에!”
“시간이 늦었으니까 일단 너희 집으로 가자.”
“이쪽이옵니다.”
그렇게 지크는 어촌 마을의 소녀 미샤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
다음 날 아침.
지크는 아침 일찍 로그인했다.
[뉘르부르크 대륙 서남부 : 따개비 마을]지크는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알림창을 치워버린 후 주변을 돌아보았다.
미샤의 집은 매우 허름했다.
거의 오두막과 다름없었고, 천장에 말린 생선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침대 역시 굉장히 낡았으며, 벼룩이라도 사는 건지 몸이 살짝 간질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어나셨사옵니까?”
미샤는 지크가 나타나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수프와 빵을 가져다주었다.
말린 생선을 넣어 끓인 그 수프는 비린내도 심했고, 딱히 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 영양가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건빵처럼 딱딱해 보이는 빵에는 푸릇푸릇한 곰팡이까지 피어 있는 것 같았다.
“드릴 게 이것밖에 없사옵니다….”
미샤 역시 그것을 아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지크에게 쟁반을 내밀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걸. 고마워.”
지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빵을 수프에 적혀 허겁지겁 먹어치운 뒤 남은 국물을 후루룩! 하고 마셨다.
“잘 먹었다.”
“괜찮으셔요?”
“당연하지. 사람 먹고 사는 게 똑같지 뭐.”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럼 슬슬 너희 아버지를 찾으러 가볼게.”
“소녀가 부둣가까지 모셔다드리겠사옵니다.”
“아냐. 걱정 마.”
지크가 웃으며 말했다.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넌 여기서 기다리렴.”
“네, 전하.”
“그럼 이따 보자.”
“몸 조심히 잘 다녀오셔요.”
지크는 미샤와 헤어진 후 을 통과해 부둣가로 향했다.
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이 지역 일대에 해적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다들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워낙에 시골 깡촌이라 해적들이 직접적으로 쳐들어오는 일은 없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바다를 해적들이 장악하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생업인 고기잡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자칫 바다로 나갔다가 해적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노예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왕이랑 영주는 뭐 하고 자빠져 있는 거야?’
지크는 문득 궁금해졌다.
뭐 하는 작자들이기에 백성들의 삶이 이렇듯 개판이 되었음에도 손 놓고 방관한단 말인가?
나름 성군(?)의 길을 걷고 있는 지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쯧쯧.’
지크는 혀를 차며 을 걸었다.
그렇게 약 10분쯤 걸었을 무렵.
지크는 나룻배나 다름없는 작은 나무 어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부둣가를 발견했다.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해적들의 소굴을 찾지? 바다가 넓어서 인자기의 천리안도 안 먹힐 텐데.’
지크가 그런 걱정을 하며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우르르르!
부둣가에 있던 것으로 보이는 어민들이 지크가 있는 방향을 향해 무섭도록 질주해오기 시작했다.
“어어?”
지크는 어민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당황했다.
‘설마 날 공격해오는 건가?’
지크는 어민들이 낯선 이방인을 때려잡으려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해적이다! 해적!”
“어서 대피해! 어서!”
어민들이 달리는 이유는 해적들 때문인 모양이었다.
“해적?”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어민들을 무시하며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약 10킬로미터 전방.
해적 깃발을 내건 해적선들이 의 부둣가를 향해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야호!”
그러자 지크의 입에서 기쁨의 비명이 터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