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94
793
“끼요오옷!”
지크는 정말로 기뻤다.
망망대해.
수없이 많은 섬들과 바다로 이루어진 이 드넓은 필드에서 해적들을 찾아낸다는 건 그야말로 노가다였다.
하지만 해적들이 이렇듯 제 발로 나타나 주었으니, 지크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지크의 입장에서는 해적들이 를 해준 셈이었던 것이다.
“후후후. 이 귀여운 자식들.”
지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해적선들이 접근해오고 있는 부둣가로 향했다.
“이보시오!”
그때, 한 어부가 지크를 붙잡았다.
“보아하니 외지인 같은데 지금 뭐 하는 거요?”
“예?”
“어서 도망치시오! 해적들이 오고 있단 말이오!”
“괜찮습니다.”
지크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고 몸을 피하세요.”
“아니!”
어부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해적들이 오고 있다고 하질 않소! 어서 도망쳐야 하오!”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해적들을 찾아가려던 참이었거든요.”
“뭐요?”
그때였다.
“뭐? 해적들을 찾아가?”
“네놈이구나!”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못 보던 놈이 마을을 돌아다닌다 했더니, 네놈이 해적들이 보낸 첩자였구나!”
“이노옴! 하늘이 무섭지도 않으냐!”
어민들은 지크가 해적들이 보낸 첩자인 줄 알고 분노했다.
생각해 보면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곳 은 워낙에 시골 깡촌이라 외지인의 출입이 정말이지 드문 곳이었다.
아니?
사람들은 모험가를 본 적조차 없었다.
그저 모험가란 존재들이 강림해 이 세계를 여행한다는 것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정도로 세상사에 무지했던 것이다.
그런 어민들로서는 외지인인 지크가 어쩌면 해적들이 보낸 첩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안 그래도 해적들을 찾아가려던 참이었다는 지크의 발언도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고.
“여, 여러분? 진정하세요. 저는 해적들의 첩자가 아니라 해적들을 소탕하러 온….”
지크는 아차 싶어서 어민들을 진정시키려 해보았지만, 해명은 먹히지 않았다.
이미 어민들은 가지고 있던 작살이나 그물 같은 걸 움켜쥐고 지크를 둘러싼 상태였던 것이다.
“죽어라! 이 악랄한 놈!”
그때, 한 어민 하나가 작살을 움켜쥐고 지크를 향해 휘둘렀다.
‘에라이.’
지크는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느껴지는 작살을 슬쩍 피한 다음 재빨리 부둣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싸울 가치도 없었다.
상대는 어촌 마을의 어민들.
괜히 제압하겠답시고 때려눕혀 봤자, 자칫 힘 조절을 잘못하면 최소한 중상이나 심하면 죽일 수도 있었다.
이럴 땐 잽싸게 자리를 피해 내 할 일이나 하는 게 최고였다.
“잡아라!”
“게 서라!”
어민들은 지크를 뒤쫓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지크가 어느새 부둣가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지크의 빠른 속도에 화들짝 놀라는 한편, 뒤쫓기를 포기해 버렸다.
해적선들이 몰려오고 있는 판국에 지크를 계속 쫓아갔다가는 해적들에게 붙잡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어민들은 해적들의 첩자(?)인 지크를 포기하고 다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편, 지크는 어민들을 피해 도망친 뒤 부둣가에 걸터앉아 잠자코 해적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
지크는 해적선들이 뱃머리를 가로로 돌리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상륙 전 을 향해 포탄 세례를 퍼부으려는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해적선들에 탑재되어 있던 함포들이 서서히 방열 중인 게 어렴풋이 보였다.
“에이. 그건 아니다.”
지크는 잠자코 해적들을 기다리려다가 포격이 시작된 걸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게 불러들이네. 아닌가. 이렇게 왔으니까 저 정도는 내가 가줘야 예의인 것 같기도 하고. 쳇. 햄찌나 데려올걸.”
지크는 급하게 오느라 미처 햄찌를 데리고 오지 못한 걸 후회하며 를 활짝 펼쳤다.
그러고는 함포를 방열 중인 해적선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의 해적선 세 척은 작은 어촌 마을인 을 향한 포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포격으로 초토화시키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뒷산에 포탄을 몇 발 갈겨 줌으로써 어민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선원들을 상륙시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뱃머리를 돌리며 함포를 방열하던 중.
쿠웅!
세 척의 해적선 중 대장선 역할을 하던 배의 갑판 위에 사람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
“……!”
“……!”
해적들은 웬 청년이 갑판 위에 떨어진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는 해적들의 필수템인 휘어진 검과 권총을 움켜쥐고 지크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촤라락!
지크는 에서 뽑아낸 얼음 수리검들을 해적들의 머리통에 박아주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그렇게 수십여 명의 해적들이 머리에 얼음 수리검이 박힌 채 갑판 위를 나뒹굴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쓰러진 해적들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얼음 수리검이 두개골을 관통해 뇌 깊숙한 곳까지 박혔기에, 그대로 즉사해버린 것이다.
“여기 대장이 누구냐.”
지크가 를 움켜쥔 채 해적들에게 물었다.
“모, 모험가!”
“저런 강자가 어째서 이런 곳에….”
해적들은 지크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라는 걸 알아보고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 움직이지 못했다.
“아. 대장 누구냐고.”
지크는 해적들이 대답하지 않자 짜증이 난다는 듯 로 갑판을 내리쳤다.
쾅!
쩌어억!
그러자 갑판이 산산조각 나면서, 배가 두 동강이 나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의 공격력이 너무 강했던 탓에, 해적선을 아예 부숴버린 것이다.
“아차!”
지크는 아차 싶어서 화들짝 놀랐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치, 침몰이다! 침몰!”
“으아아악!”
해적들은 해적선이 파괴되자 비명을 지르며 구명조끼를 챙기거나 작은 구명정을 챙기는 등 자기 살기에 바빴다.
“…갈아타야겠네.”
지크는 자신이 침몰시켜 버린 해적선을 떠나 다른 해적선으로 옮겨 탔다.
그러고는 그 해적선을 순식간에 장악한 뒤 선장으로 보이는 자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니가 해적선장이냐?”
지크가 만신창이가 된 배불뚝이 해적에게 물었다.
“나, 난 선장이 아니오.”
“그럼 누가 선장인데?”
“이 배의 선장은 내가 맞지만, 해적단의 우두머리는 내가 아니올시다.”
알고 보니 은 여러 척의 해적선을 보유한 꽤 규모 있는 도적떼들인 모양이었다.
“그래?”
“그, 그렇소.”
“해적단의 우두머리는 어디 있는데?”
“그야 당연히 본거지에 있소이다.”
“안내해.”
“그럴 순 없….”
그때, 지크가 남은 한 척의 해적선을 향해 스킬을 때려 박았다.
콰앙!
바다 위에서 펼쳐진 스킬은 해적선을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배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세 척의 해적선 중에서 두 척을 눈 깜짝할 사이에 침몰시켜 버린 것이다.
“내 당장 안내하겠소이다. 나만 믿으시오.”
선장은 그 광경을 보고는 황급히 태세 전환을 시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코앞에서 해적선과 선원들이 통째로 수장되는 걸 보고 나니, 해적단의 우두머리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졌던 것이다.
“그래? 안내해.”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갑판 위에 설치되어 있던 해먹에 몸을 뉘였다.
“도착하면 깨우고.”
그러고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했기에, 잠시나마 눈을 좀 붙이려는 것이다.
“…….”
“…….”
“…….”
해적들은 그런 지크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어쩌진 못했다.
지크가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인 이상 조무래기 해적들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합니까?”
해적 하나가 선장에게 물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안 죽으려면 본거지로 데려가야지.”
“하지만 두목님이 알면….”
“이런 멍청한 자식!”
“……!”
“두목이라고 저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아하!”
“이제 우리 해적단은 끝이다. 그러니까 다른 해적단으로 이적할 준비나 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의 해적선은 지크를 태우고 본거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
지크는 해먹에 누워 곤히 잠들었다가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으아아아악!”
“아아!”
눈을 떠보니 해적들이 갑판 위에서 우왕좌왕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아, 왜들 이래.”
지크는 해적들이 왜 이러나 싶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헉?”
그러고는 화들짝 놀랐다.
대략 20여 척.
어지간한 국가의 해군력에 버금가는 함대가 지크가 탄 해적선을 향해 접근해오고 있었다.
‘해군인가?’
지크는 그 함대가 특정 국가에 소속된 함대로써, 해적 소탕을 위해 출동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크의 생각은 틀린 거였다.
펄럭펄럭!
함대의 대장선에 내걸린 깃발이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 고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즉 해적들의 표식이었기 때문이다.
“뭔 해적들 주제에 함대를 끌고 다녀!!!”
지크는 해적단이 20여 척이 넘는 함대를 구성했단 사실에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해적?
결국엔 바다를 무대로 노략질이나 일삼는 도적떼일 뿐이었다.
심심하면 살인·강간·방화·폭력·도박 등을 일삼는 범죄자 집단 말이다.
때문에, 제아무리 잘나가는 해적단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소형 군함 한두 척을 가지고 다니는 게 정상이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상식적으로 도적떼 따위가 한 국가의 해군력에 맞먹는 세력을 가지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여기서 범고래 해적단을 만나다니!”
선장은 분통을 터뜨리며 황급히 하얀색 깃발을 내걸었다.
의 해적선이라고 해봐야 소형 범선에 다섯 개의 함포를 탑재했을 뿐이었다.
반대로 저 멀리 다가오는 은 작은 국가의 해군력에 맞먹는 규모였다.
때문에, 싸움은 말도 안 됐다.
게다가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기에 일단 백기를 내걸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걸로 갈아타야겠네.”
지크는 이 가까이 오면 그때를 노려 을 장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크의 입장에서는 이든 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미샤의 아버지를 찾아 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기에, 어떤 배를 타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려던 지크의 생각은 이내 곧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펑! 퍼엉!
백기를 내걸었음에도 의 함포가 불을 뿜으며 포탄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던 것이다.
“야 이! 항복이라고! 항복!”
지크는 난데없는 포격에 악다구니를 내질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은 백기 따위 깔끔하게 무시한 채, 의 해적선을 향해 무자비하게 포탄을 퍼부어댔다.
항복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없이 바다 밑으로 수장시켜 버리려는 것이다.
“아오!”
지크는 분통을 한 번 터뜨린 후 를 활짝 펼쳤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지크가 먼저 저쪽으로 날아가 해적단을 장악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들이 매너란 게 없네.’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막 날아오려던 때.
퍼엉!
갑자기 의 해적선 한 척이 폭발했다.
“엥?”
지크는 그 광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뜬금없이 의 해적선이 스스로 폭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