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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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야.”
벨라트릭스 선장은 절망했다.
남은 해적선은 고작해야 다섯 척.
그마저도 한 척이 조금 전에 침몰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 척은 두 동강이 나 기울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벨라트릭스 선장 본인이 탄 대장선 역시도 네 발의 포탄을 맞아 서서히 물이 차오르는 중이었다.
그러나 항복을 뜻하는 백기를 내걸었음에도 조슈아 선장이 이끄는 함대는 여전히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포탄을 더 써 버리겠다는 듯 더욱 많은 포탄을 퍼부어 대었다.
“이렇게….”
벨라트릭스 선장은 자신의 운명이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찌어찌 도망쳤지만, 조슈아 선장의 집요한 추적에 결국에는 전멸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더 몰아붙여라! 대장선을 빼고 나머지는 모조리 침몰시켜!”
조슈아 선장은 기세를 몰아 벨라트릭스 선장의 함대를 모조리 바다에 수장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항복?
지금 조슈아 선장에게 백기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그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이만큼 상대방을 몰아붙였으면, 포위한 뒤 제압하는 게 옳았다.
어차피 다 이긴 전쟁.
적들의 남은 해적선이라도 나포해서 자신의 전력으로 써먹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니겠는가?
사실 전쟁이란 적으로부터 뭔가를 빼앗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이렇듯 모든 걸 파괴하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었다.
이런 식이라면, 전쟁이 끝난 후 조슈아 선장이 해적왕에 등극하더라도 의 전체적인 전력이 크게 약화되는 결과만을 낳을 게 뻔했다.
해적왕 같지 않은 해적왕.
명색이 해적왕임에도, 그 세력이 해적 영주에 불과한 반쪽짜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슈아 선장은 개의치 않았다.
조슈아 선장은 당장 의 전력이 약화되더라도, 오직 자신만이 거대 세력을 움켜쥔 해적왕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세력이야 해적왕에 오른 뒤 차차 키워나가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당장은 를 완벽하게 장악해 군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쏴라! 쏴! 모조리 수장시켜라!”
조슈아 선장이 그렇게 소리칠 무렵이었다.
쏴아아아아!
열두 척의 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조슈아 선장의 함대 진영 안으로 파고들었다.
“가자!”
“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은 아예 에 탄 채로 점프해서 조슈아 선장 소유의 해적선들에 올라탔다.
그런 뒤 갑판 위에 올라가자마자 해적들을 무차별적으로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런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의 전투력이란 해적들을 완벽하게 압도했다.
애초에 무장부터가 달랐다.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은 비머리언 공방의 무기와 아우토니카 공방의 방어구를 착용해 완전 무장한 상태인지라, 주먹구구식으로 무장한 해적들은 장비에서부터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조슈아 선장의 함대에 속한 해적선들의 갑판 위에서는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치며 학살극이 벌어졌다.
“으악!”
“으아아악!”
해적들은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의 손에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며, 혼란에 빠졌다.
“드레이크! 이 X발놈아!”
조슈아 선장은 지크가 바로크에 이어 자신까지 뒤통수친 줄 알고 쌍욕을 내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크 선장을 납치해간 이 이번에는 자신을 공격해오고 있었으니 통수에 통수를 거듭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
라이언베르트와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의 참전은 당장에라도 끝날 것만 같은 해전에 마치 인공호흡을 한 것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덕분에 벨라트릭스 선장은 함대 전멸의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고, 겨우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할 진영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드레이크… 너 무슨 생각인 거야?”
벨라트릭스 선장은 이 또 다시 자신을 도와주자 혼란스러워했다.
사실 지크는 섬 밑에 있는 동굴에서 해적왕의 유산을 찾고 있었을 뿐, 벨라트릭스 선장을 도와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라이언베르트와 노르드족의 참전은 벨라트릭스 선장의 입장에선 극심한 가뭄에 내린 단비와도 같았다.
‘지금이 기회야!’
벨라트릭스 선장은 아직 전투가 가능한 세 척의 해적선으로나마 반격을 꾀하고자 했다.
조슈아 선장의 함대가 혼란에 빠진 지금이 거의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전 함대! 일제 사격!”
그러자 남은 세 척의 해적선이 일제히 같은 목표물을 겨냥하고 함포를 발사했다.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뒤이어 포탄 세례가 터져 나와 조슈아 선장의 해적선 한 척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전 사수! 재장전!”
“재장전!”
“다시 일제 사격! 셋! 둘! 하나! Fire!”
“Fire!”
벨라트릭스 선장은 함대를 지휘해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이 난입하지 않은 적선만을 노렸다.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뒤이어 세 척의 해적선이 또다시 일제 사격을 실시해 적선 한 척을 추가로 침몰시켰다.
“강인한 전사들이여! 다른 배로 옮겨 타라!”
라이언베르트 역시 벨라트릭스 선장의 의도를 귀신같이 읽어내고는,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을 지휘해 다른 배로 옮겨 탔다.
벨라트릭스 선장이 맘 편히 포탄을 퍼부을 수 있게끔, 자리를 비워준 것이다.
뒤이어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이 떠난 해적선에 벨라트릭스 선장의 일제 사격이 퍼부어졌다.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가히 환상적인 전술적 케미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렇게 해적왕의 유산이 묻혀 있는 무인도 앞바다에서는 기묘한 해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르는 아수라장.
의 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사실상 최후의 전투는 그렇듯 해적왕의 무덤이 자리한 무인도 앞바다에서 펼쳐졌다.
***
조슈아 선장이 라고 지크를 향해 쌍욕을 내뱉을 무렵.
후비적!
지크는 해적왕의 무덤을 지키는 가디언인 카리브나와의 전투 중 귀가 너무 간지러워서, 무심코 귀를 후벼 팠다.
얼마나 간지러웠냐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조차 귀를 후빌 수밖에 없을 지경이었다.
‘누가 내 욕하나?’
지크는 누군가 자신을 욕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서 지크를 욕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두 명이겠는가?
만약 누가 자신을 욕하면 귀가 간지럽단 속설이 사실이라면, 지크는 1년 365일 내내 귀가 간지러워야 정상이었다.
문제는 귀가 가려운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는 것.
띠링!
지크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 위에 칭호의 임팩트가 떠오르자 더더욱 당황했다.
‘나 지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크는 억울했다.
이제 막 카리브나와의 전투에 돌입한 상태였기에, 딱히 누군가를 속이거나 뒤통수치는 게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호의 임팩트가 떠올랐다?
지크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공간에서 뒤통수를 치는, 적어도 뒤통수에서만큼은 사부보다 드높은 경지를 이룩한 것이다.
정작 본인은 몰랐지만.
‘아! 몰라!’
그러나 지크에게는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한 의문을 풀 시간이란 게 주어지지 않았다.
[해적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들이여! 징벌을 맞이하라!]카리브나는 그렇게 소리친 후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마치 원형 부메랑처럼 지크를 향해 날아왔다.
원판 형태의 몬스터인 카리브나의 회전 공격이란 정말이지 위협적이었다.
‘저건 맞으면 죽어!’
지크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재빨리 을 펼쳐 강력한 슬로우를 거는 한편 들과 들을 불러내어 카리브나를 속박했다.
그러나….
번쩍!
카리브나는 무려 효과를 발동해 슬로우 효과에 저항하면서 들과 들을 오히려 뭉개버렸다.
그런 뒤 지크를 향해 다시 날아오기 시작했다.
“미친!”
지크는 황급히 몸을 날려 카리브나의 회전 공격을 피했다.
콰앙!
그러자 카리브나가 동굴 벽면에 부딪히며 1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상처를 넘기고는, 마치 용수철처럼 튕겨 나와 다시 지크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튕기는 부메랑처럼 말이다.
쾅! 콰앙! 쾅!
그렇게 카리브나는 지크의 마저 무력화시키며, 미친 듯 날뛰었다.
“야 이!”
덕분에 지크는 카리브나의 회전 몸통 박치기를 피하기 위해 동굴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지속딜이 너무 세. 슬로우도 안 먹히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바위 타입의 몬스터인 카리브나에게 의 방사능 에너지가 먹힐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디버프로 약화시키고 순간 폭딜로 잡자.’
지크는 적의 자력 버프 스킬을 해제하는 을 펼쳐 카리브나의 슈퍼아머 효과를 풀어버렸다.
그러자 들이 냉기 브레스를 내뿜고, 뒤이어 들이 카리브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속박했다.
[어딜 감히!]카리브나는 지크의 반격에 회전 몸통 박치기로 대응하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우웅!
지크가 잽싸게 을 사용해 카리브나의 스킬 발동을 방해했던 것이다.
‘지금!’
지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카리브나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를 펼쳐 카리브나의 방어력과 항마력을 깎은 직후 를 곡괭이의 형태로 바꾸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BNW에서 암석 타입의 몬스터들은 곡괭이와 같은 형태의 무기에 극히 취약했기 때문이다.
‘찍는다.’
지크는 곡괭이의 형태를 한 를 카리브나의 이마를 향해 내리쳤다.
콕!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콕! 콕! 콕! 콕! 콕! 콕! 콕! 콕! 콕! 콕! 콕! 콕! 콕! 콕… 콕!!!
스킬이 발동되어 카리브나의 이마를 집요하게 찍고, 찍고, 또 찍었다.
그런 지크의 선택은 옳았다.
‘딜 보소?’
곡괭이 형태의 무기가 암석 타입의 몬스터에게 주는 120퍼센트의 추가 데미지.
그리고 의 디버프 효과.
이 두 가지가 합쳐지니, 한 방 한 방이 가히 핵폭탄급 데미지를 자랑했던 것이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카리브나는 그런 지크의 곡괭이질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러대며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봐줄 지크가 아니었다.
‘깊이!’
지크는 스킬이 끝난 직후 를 있는 힘껏 휘둘러 카리브나의 이마를 찍었다.
푸욱!
그러자 가 카리브나의 이마에 약 40센티미터 정도 깊이로 박혔다.
그리고….
‘마무리.’
지크는 를 박아 넣은 채로 스킬을 펼쳤다.
즉, 스킬을 카리브나의 내부에서 터뜨린 것이다.
[……!]카리브나는 순간 자신의 몸 안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퍼엉!
카리브나가 산산조각나며 터져 나갔다.
제아무리 단단함을 자랑하던 카리브나라지만 몸 안에서 터진 스킬을 버텨내는 건 불가능했다.
와르르르르!
후드드득!
그렇게 카리브나는 수만 조각의 돌멩이가 되어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지크는….
“악!”
카리브나가 폭발하면서 튕겨져 나온 돌멩이에 이마를 정통으로 얻어맞고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욱신욱신!
덕분에 지크의 이마에는 커다란 혹 하나가 툭! 불거지게 되었다.
“뀨! 주인 놈아아! 괜찮냐!”
“안 괜찮아! 이거 X나 아파!”
“뀨! 가만히 있어 봐라!”
햄찌는 재빨리 지크에게 다가와 연고를 발라주고, 주머니를 뒤적여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아, 아파! 살살해! 살살!”
“뀨우! 주인 놈아아! 가만히 있어라!”
“아! 아아!”
지크가 한창 엄살을 부리고 있을 때였다.
우웅!
산산조각 난 카리브나의 잔해 속에서 푸른색 구슬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