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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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깊숙한 곳에 자리한 죽음의 고향은 말 그대로 죽음의 ‘고향’다운 곳이었다.
‘오.’
지크는 죽음의 고향의 인테리어를 보고 정말로 감탄했다.
흑요석.
죽음의 고향은 바닥, 천장, 그리고 벽까지 시커먼 광택을 발하는 흑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포인트가 되는 지점에는 에메랄드와 황금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죽음을 숭배하는 신전과도 같이 느껴지는 인테리어였다.
‘저것들 다 하나에 얼마일까.’
지크는 곳곳에 진열된 아티팩트들을 바라보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
죽음의 고향에서 제조하는 아티팩트들은 모험가들 중에서도 상위 0.0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들….
그 값이 천문학적이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암살자 계열 랭커들이 여기 물건을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르르르!!
갑자기 한 무리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뭐야?’
지크는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그대가 헤르베르트 님의 명패를 가지고 온 모험가요?”
“그대가 정녕 헤르베르트 님의 명패를 가져왔단 말이오?”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을 찾은 건가?”
“어찌 그 물건을 자네와 같은 모험가가 가지고 있단 말인가?”
20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지크를 향해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아, 왜들 이래?’
지크는 당황했지만, 이들이 이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광기의 대장장이 헤르베르트.
그는 죽음의 고향에서 배출한 역사상 최고이자 최악의 대장장이였고, 지금껏 그 누구도 그의 경지를 뛰어넘었다고 전해지는 이가 없었다.
때문에, 헤르베르트는 비머리언 공방의 대장장이라면 누구나가 존경해 마지않는 신(神)이었다.
그런데 헤르베르트의 사후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야 웬 모험가가 그의 명패를 가지고 왔으니 비머리언 공방이 발칵 뒤집힌 건 무리가 아니었다.
“다들 좀 조용히 하게!”
그러던 중, 딱 봐도 가장 연장자처럼 보이는 드워프가 나서서 대장장이들을 제지했다.
“미안하네, 젊은이. 나는 비머리언 공방의 책임자인 크반트라고 하네.”
“책임자라고 하심은….”
“내가 당대 비머리언 공방의 총수이자 죽음의 고향의 수석 대장장이일세.”
“아!”
크반트란 이름을 가진 드워프의 정체를 안 지크가 탄성을 자아냈다.
3대 공방의 총수이자 죽음의 고향의 수석 대장장이라 함은, 그가 곧 마스터급 이상의 대장장이이자 대륙 어딜 가나 인정받는 당대의 네임드란 뜻이었기 때문이다.
[크반트]•존재 구분 : 네임드 NPC
•종족 : 드워프
•레벨 : 310
•직업 : 대장장이
•클래스 : 죽음 조각사
•칭호 : 위대한 장인
실제로, 통찰의 룬을 통해 본 크반트의 정보 역시 지크가 아는 것과 같았다.
“크반트 님이셨군요. 저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반? 프로아? 그대가 프로아틴 지방의 왕족이란 말이오?”
“왕입니다.”
“으음. 왕이라니. 그게 정말이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허허….”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지크가 크반트와 함께 온 대장장이들을 가리켰다.
“우리 비머리언 공방의 장로들과 죽음의 고향 소속의 대장장이들이오. 그대가 헤르베르트 님의 명패를 가져왔단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라오.”
“그렇군요.”
“그래, 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프로아의 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헤르베르트 님의 명패를 가지고 있는 것이오? 설마 헤르베르트 님의….”
“그게….”
지크가 메긴기요르드 아이템의 권능을 이용, 헤르베르트 유작의 일부인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어쩌다 보니….”
그때.
“히, 히익?!”
“저, 저것은!!”
“신의 지팡이…!”
“전설로만 전해져 오던…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인가…!!”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개개인이 실력 좋은 대장장이들이니만큼, 그들은 굳이 지크의 설명이 없이도 신의 지팡이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맞힐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그대가!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을 찾았단 말이오!”
크반트 역시 거의 자지러지듯 놀라 지크에게 물었다.
“예, 뭐….”
“정말이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만….”
“오오! 죽음의 신이시여! 우리 비머리언 공방을 굽어살피시나이까!!”
지크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크반트는 헤르베르트의 유작을 정말로 찾은 것인 양 설레발을 쳤다.
사실은 미완에 그친 막대기일 뿐인데….
“오오! 저 세공 기술은 역시!”
“도대체 어떠한 금속을 사용했는지 감조차 잡히지를 않는군!”
“황홀해!”
“하아… 하아…!”
장로들과 죽음의 고향 소속의 대장장이들 역시도 신의 지팡이가 진정한 헤르베르트의 유작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크가 초를 치기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며 입을 열었다.
“그건 헤르베르트의… 아니,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이 아닙니다.”
“아, 아니라?!”
크반트가 또다시 놀라 물었다.
“그럴 리가! 저 세공 기술! 정체 모를 금속으로 이루어진 재질! 느껴지는 이 알 수 없는 기운까지! 이 지팡이는 누가 뭐래도 헤르베르트 님의….”
“맞습니다만, 완성품이 아닙니다.”
“……!”
“그러니까….”
지크가 신의 지팡이에 얽힌 이야기-약간의 각색을 거친-를 크반트를 비롯한 비머리언 공방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지크의 이야기가 끝난 후.
“그랬구먼, 그랬어. 헤르베르트 님께서는 유작을 미처 완성하시지 못한 게로군. 쩝.”
크반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허허. 천명이 세계급 아티팩트를 허락지 않은 것인가.”
“이렇게 아쉬울 수가….”
“천추의 한이로다!”
탄식에 탄식이 이어졌다.
“그럼,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뿐이란 이야기가 되겠군.”
크반트가 말했다.
“이 물건이 제게 귀속된 이상 저밖엔 만들 수 없긴 하겠지요.”
“크흠! 그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일 테지. 그대의 평생을 다 바쳐도 모자랄 만큼….”
“예.”
“게다가 그대는 그대가 가야 할 길이 있으니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을 완성하는 일에 집중하기 힘들 테고?”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말아주시오. 비머리언 공방의 총수로서 부탁이오.”
“기회가 닿는 선에서는 노력해볼 생각입니다.”
“그거면 됐소. 하. 정말 아쉽구먼. 재료가 그리도 구하기 힘들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니. 그래,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이야 그렇다 치고. 그대의 방문 목적은 무엇이오?”
“아티팩트가 필요합니다.”
“어떤?”
“무기와 방어구 한 세트가 필요합니다.”
“용도는?”
“그린 드래곤을 상대할 생각입니다.”
“그, 그린 드래곤?”
“예. 아직 1,000살도 채 되지 않은 개체라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갓 성체가 된 그린 드래곤이라면 인간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상대가 가능하긴 하지. 그런 어린 드래곤을 발견하기도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고….”
“대 드래곤 전용 무기와 방어구인데, 주문 제작이 가능하겠습니까?”
“당연한 것을! 그대는 우리 비머리언 공방을 뭐로 보는 것이오! 그까짓 것쯤은 문제도 아니오! 하지만 지금의 그대는 우리 공방의 아티팩트에 담긴 힘을 다 사용할 수가 없을 텐데?”
크반트의 말은, 현재 지크의 레벨이 낮아 아티팩트들의 레벨 제한에 걸릴 것이라는 걸 지적하는 것이었다.
렙제.
아무리 초고성능의 하이엔드 아티팩트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레벨은 갖춰줘야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제 수준에서 최고의 성능을 뽑아낼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어려운 주문이로군. 그대의 현재 수준에 맞춘 아티팩트라. 게다가 대 그린 드래곤 전용 기능들이 추가되어야 할 테지?”
“예.”
“가능이야 하지만, 제작하는 데 드는 시간이….”
“3일.”
“……!”
“그 안에 완성되어야 합니다.”
“3일? 그건 너무 짧소! 그건 공방의 수준을 떠나 아티팩트를 제련하는 데 드는 최소한의 시간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흠. 그러시다면 아우토니카 공방이나 메르세데스 공방에 찾아가 봐야겠군요. 그쪽들이라면 가능할지도….”
지크가 은근슬쩍 다른 3대 공방을 언급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무슨 소리!!”
크반트가 버럭 소리쳤다.
“우리 비머리언이 못하면 그 무능한 놈들도 못 하오!! 특히, 메르세데스 같은 샌님들이 어찌 3일 안에 대 그린 드래곤 전용 세트를 제작할 수가 있겠소!!”
“에이.”
지크가 피식 웃었다.
“누가 뭐래도 3대 공방의 최고봉은 메르세데스 아니었습니까?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도 열에 아홉은 메르세데스 공방이 최고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세간의 평가가….”
“과대평가요!! 허명일 뿐이오!! 아티팩트의 진정한 본질은 살상력에 있거늘!!”
“요즘은 메르세데스 공방의 아티팩트도 한 살상력 한다던데… 어쨌든, 알겠습니다. 저는 그럼 메르세데스 공방으로….”
“멈추시오!!”
크반트가 지크를 뜯어말렸다.
“어딜 가는 게요!! 그대는 우리 비머리언 공방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거늘!!”
“하지만 3일 안에….”
“해주겠소, 해주겠단 말이오!! 그러니 그 샌님들의 공방에는 가지 마시오!!”
다른 대장장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들어줄 테니 그 따위 쓰레기 같은 놈들이랑은 어울리지 마시오!!”
“사용하던 무기가 갑자기 터져 버릴 일 있소?”
“3일 안에 만들어 드리리다!”
지크의 도발은 보기 좋게 먹혀들어 갔다.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지만, 비머리언 공방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비머리언은 메르세데스의 뒤를 이어 2등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언제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열폭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헤르베르트의 미완성 유작을 들고 온 이가 메르세데스 공방으로 가 아티팩트의 주문 제작을 맡긴다는 건, 비머리언 공방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치욕이 될 것이기도 했다.
“3일. 그 안에 반드시 만들어 드리리다.”
크반트가 지크에게 약속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하지만 내구성은 바라지 마시오.”
“일회용이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린 드래곤 사냥에만 성공한다면, 그까짓 아티팩트들 좀 부서지면 어떠랴.
또 맞추면 그만이었다.
“좋소. 정확히 3일 뒤. 이 시간. 다시 오시오. 우리 공방의 저력을 보여드리리다.”
“한번 믿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가격은….”
“이번만큼은 공짜요, 공짜!!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을 찾아온 이에게 이까짓 것쯤 못 해줄까! 우리 비머리언 공방은 할인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해주는 메르세데스 구두쇠 놈들과 다르오!! 통이 크단 말이오!!”
“감사히 받겠습니다.”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그로부터 3일 후 아침.
“좀 늦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스칼 경. 부디 피해를 최소화해 주시기를.”
“예, 전하. 맡겨만 주시옵소서.”
그런 오스칼의 표정은 맡겨만 달라는 말과는 달리 조금은 경직되어 있었다.
드래곤.
아무리 드래곤 중에서도 제일 호구 같은 개체라지만, 상대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두려운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형님. 맡겨만 주십쇼. 제가 오지게 한번 버텨 보겠습니다.”
그런 승구의 허리와 가슴, 팔에는 푸른색 마나 포션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마나가 고갈되어 전투를 못 하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완성됐을까.’
지크는 부디 죽음의 고향에서 대 그린 드래곤 전용 아티팩트 세트가 완성되었기를 바라며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