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25
824
“안녕하십니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로브를 말쑥하게 차려 입은 늙은 신학자가 지크를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종교 설계사인 마누카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입니다.”
“일단 여기 앉으시지요, 전하.”
“예.”
“새로운 교단을 만들고자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마누카는 마치 지크를 인터뷰라도 하는 듯 메모하며 말했다.
“예, 뭐….”
지크가 머쓱한 듯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하하하….”
“예, 전하. 전하의 의도가 어떠하시던 간에, 새로운 교단을 만들 땐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가요?”
“전하께서는 혹시 종교의 3대 요소를 알고 계십니까?”
“어….”
지크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말했다.
“교조, 교리, 교단 아닌가요?”
“맞습니다.”
란 종교를 만든 창시자를.
란 경전을 통한 가르침을.
은 그 종교를 믿는 신자들을 뜻했다.
“현재 전하께서는 교조이자 교주이십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그럼 전하께서는 신도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한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그걸 들으십니까?”
“예, 듣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전하께서는 신자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럼 전하께 필요한 마지막 요소는….”
“경전이겠네요.”
“그렇습니다.”
마누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경전을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경전이란 오랜 시간 연구와 철학적 고뇌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니, 지금 당장은 다른 교단들이 가진 것처럼 제대로 된 경전을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교단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가요?”
“그건 아닙니다.”
마누카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전하께서 신도들에게 내릴 핵심적인 가르침 세 개만 생각해 두십시오. 그 세 개의 가르침을 시작으로, 신학자들이 경전을 만들어드릴 것입니다.”
“그럼 교조, 교리, 교단 세 가지 요소가 다 갖춰진 셈이네요?”
“맞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뭘 해야 하죠?”
“우선은 전하께서 만드실 종교의 정확한 정체성부터 확립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떻게요?”
“일단 전하의 인생 이야기부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제 인생 이야기요? 그게 중요한가요?”
“물론입니다. 종교의 창시자인 교조의 인생이란 교단의 매우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요소이지요. 전하께 제대로 된 교단을 만들어 드리려면,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셔야 합니다.”
“어려울 건 없죠. 그러니까 저는….”
지크는 마누카에게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물론 전부 말해준 건 아니었지만, 대충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만한 정보 정도는 제공했다.
그로부터 열 시간 뒤.
“대충 살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하하하.”
“잘 들었습니다.”
마누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 새로 만들 교단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예? 정말요?”
“예, 전하.”
“뭔데요?”
“전하께서 새로이 만드실 교단의 명칭은….”
마누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웅교입니다.”
***
마누카가 제안한 는 지크를 교조이자 교주로 하는 신흥 교단이었다.
의 주된 이념은, 강력한 무력을 지닌 영웅들이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악한 존재들을 무찌르는 것이었다.
“영웅교라니 너무 거창한 거 아닙니까? 좀 창피한데….”
“아닙니다.”
마누카가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는 마족의 침공을 저지하셨을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활약을 하신 영웅이십니다. 아무도 전하께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그런가요?”
“예, 전하.”
“알겠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전하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영웅교의 주된 가르침 세 개를 꼽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게 뭐죠?”
“첫째, 심신을 수양하여 무력을 키워라.”
“좋네요.”
“둘째, 무력을 이용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
“그것도 좋은 말씀이죠.”
“셋째, 반드시 보상을 받아라.”
“그거 굉장히 좋은 말씀이긴 한데, 너무 속물적인 거 아닙니까?”
물론 지크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 중의 괴물이었지만, 종교 단체에서 대놓고 보상을 원하는 게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보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금전적 이득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아?”
“그것은 영웅교 교단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가르침입니다. 제아무리 종교 단체라고 한들, 땅 파서 장사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당연하죠.”
“게다가 신도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경비를 생각하면, 활동 자체가 적자일 수 있습니다.”
“적자는 안 됩니다. 절대로요.”
지크가 단호히 말했다.
“예, 그래서 넣은 조항입니다.”
“좋네요.”
“경전은 이 세 개의 가르침을 토대로,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면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누카가 덧붙였다.
“이제 전하께서는 영웅교 교단의 상징물들을 정비하시고, 전하를 대신해 신도들을 이끌 성직자들을 뽑으셔야 합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일단은… 영웅교의 종교적 상징물인 영웅의 조각상부터 정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누카의 그 말이 끝나던 순간.
띠링!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창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소통은 중요해!]프레이 스톤 150개를 모아 에 심어 신도들의 민원을 정확하게 잘 들을 수 있도록 하자.
•진행 : 0/150(0%)
•보상 : 퀘스트 클리어! (1/2)
[추종자 결집!]추종자들을 데려와 의 사제로 만들어 보자.
•진행 : 0/5(0%)
•보상 : 퀘스트 클리어! (1/2)
사실상 만 클리어하면 새로운 클래스를 얻어 듀얼 클래스를 이룰 수 있단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지크는 과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미샤를 포함한 다섯 명의 추종자들은 이미 만들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프레이 스톤 150개만 모아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전하의 조각상에 박으시지요. 그럼 영웅교의 주춧돌을 놓으시는 셈입니다.”
“알겠습니다.”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프레이 스톤이 뭐죠?”
“프레이 스톤이란 인간의 바람을 주파수로 만들어 멀리 전달해주는 능력이 담긴 광물입니다.”
“아? 그럼 프레이 스톤은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죠?”
“워낙에 희귀한 광물이라… 녹색 군도란 곳의 특정 지역에서만 채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 녹색 군도에 들어가는 게 워낙에 어려워서….”
“별거 아니네요.”
“예?!”
“사실 녹색 군도, 제 영토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마누카는 지크에게 에 얽힌 이야기까지는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드레이크 선장이 사실 지크라는 건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있습니다. 후후후.”
“……?”
“아무튼, 구해 오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전 전하께서 프레이 스톤을 구해 오시는 동안 영웅교의 기초적인 경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지크는 마누카로부터 창설을 위한 조언을 듣고 각 교단의 지도자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사실 각 교단의 지도자들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천사들이 어떻게 다시 뉘르부르크 대륙에 강림할 수 있었는지조차 의문인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천사들의 공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게 전부였다.
“일단은….”
지크는 회의에 참석해 현재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 생각에 여기 계신 미하일 씨가 신탁에서 가리키는 별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미하일 씨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각 교단이 서로 협력해 천사들의 공격에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크가 미하일을 돌아보며 말했다.
“현재로서는 미하일 씨의 기억을 되찾는 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네요.”
지크는 미하일의 정체가 어쩌면 천사, 아니 대천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떨어진 것만 봐도 비범한데 아우리엘이 미하일 씨를 칭하길 라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타트론이 미하일 씨를 보자마자 겁에 질려서 오줌을 쌌었어. 마왕의 아들이 본능적으로 두려워할 정도라면… 대천사. 어쩌면 그 이상.’
지크는 여러 정황 증거들을 통해 미하일 씨가 대천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라고 추측했다.
그런 미하일 씨가 천사들로부터 세계를 함께 구해낼 이라면, 보호할 가치는 충분했다.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리하겠사옵니다.”
“오오! 과연 구원자다운 판단이시옵니다!”
각 교단의 지도자들은 그런 지크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천사들의 침공에 대비하는 한편 미하일 씨를 보호하고 그의 기억을 되찾아 주는 데 주력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럼, 저는 당분간 제 개인적인 용무를 보겠습니다. 특이 사항 있으면 연락주세요.”
그렇게 지크는 미하일 씨를 맡겨놓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을 채굴하기 위해 로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너 앞으로 미하일 씨 보디가드 좀 해라.”
“예?!”
메타트론은 지크가 뜻밖의 임무를 주자 당황했다.
“제, 제가 그 악마의 경호를 맡습니까?”
“야 이.”
지크가 눈을 부라렸다.
“악마는 너고.”
“그, 그건 그렇지만….”
“야, 지금 천사들이 공격해오면 미하일 씨를 보호해줄 사람이 누가 있냐? 너밖에 더 있어?”
“하지만 전 어벤져가 없인….”
“자.”
지크가 를 메타트론에게 툭 던져주었다.
“헉?!”
지크가 를 마치 동전 던져주듯 건네주자 메타트론의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듯 커졌다.
“저, 전하?”
“미하일 씨 경호해.”
“정말이십니까?!”
“니 멋대로 쓰진 말고. 필요할 때만 써. 알겠냐?”
“예!!! 전하!!! 충성충성충성!!!”
“그리고 경호 임무 맡는 동안에는 특별 수당도 따로 나가니까 열심히 하란 말야, 열심히.”
“헉!”
“그리고 돈 벌어서 엄한 데 쓰지 말고 저축이나 해라. 투자하는 족족 망하는데 뭔 얼어 죽을 투자야?”
“크, 크윽….”
“그리고 하필 투자해도 꼭 망할 땅만 사더라? 너?”
“전하! 제발! 그런 말씀만은….”
“뻘짓하지 말고 성실히 일해서 돈 벌어라.”
“아, 알겠습니다.”
“그럼 난 간다.”
그렇게 지크는 메타트론에게 와 미하일 씨를 맡긴 뒤 다시 로 향했다.
“주군!”
케이오스는 지크가 사라지자마자 득달같이 달려 와 메타트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감축드리옵니다!”
“엥?”
메타트론은 케이오스가 갑자기 자신을 축하해주자 당황했다.
“어찌 나를 축하하느냐? 케이오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사옵니까? 주군! 드디어 때가 왔사옵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를 배ㅅ….”
그 순간.
덥석!
메타트론이 황급히 케이오스의 입을 틀어막았다.
두리번두리번!
그리고 지진이 난 동공을 이리저리 굴려 혹시나 엿듣는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이런 멍청한 녀석!”
“읍! 읍읍!”
“혹시 누가 엿들으면 어쩌려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하, 하지만 주군.”
케이오스는 메타트론이 막았던 입을 풀어주자 매우 당황해서 말했다.
“어벤져를 얻으셨는데, 어찌 인간의 노예로 계속 살아가려 하시옵니까?”
“이런 멍청한 놈! 난 전하와 노예의 계약을 맺었다는 걸 잊었느냐!”
“주군!”
케이오스가 답답하다는 듯 살짝 언성을 높였다.
“그냥 이대로 마계로 가 마왕에 등극하시면 되질 않사옵니까?”
“헉?!”
메타트론은 케이오스의 말에 아차 싶었는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케이오스의 말마따나 굳이 지크에게 대항하지 않고, 이대로 마계로 귀환한 뒤 마왕의 지위에 등극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