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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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가 게이머들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드래곤이라는 최강의 지적 생명체를 사냥하려거든 어지간히 돈에 눈이 멀지 않고서는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게이머들은 다른 세계에서 강림한 존재라는 설정이었으므로, 사냥에 실패한다고 한들 죽었다 살아나면 그만이었다.
반대로, NPC들은 드래곤 사냥에 실패하는 순간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가진 모든 걸 잃게 될 수도 있었다.
작게는 친구,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일이 심각해지면 조국이 멸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겁도 없이 드래곤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할 만한 존재는 게이머들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NPC들은 뒷감당이 무서워서라도 절대 드래곤을 건드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 아뇨.
나인테일이 고개를 저었다.
– 모험가가 아니에요.
“아, 아니야? 그럼 어딘데? 마우레키온 제국은 아닐 것 같은데? 거긴 지금 내전 중이잖아?”
– 아뇨.
나인테일이 고개를 저었다.
– 드래곤 사냥꾼은 모험가도, 국가도 아니에요.
“그럼?”
– 한 개인이죠.
“개이이이이인?!”
지크는 제 귀를 의심했다.
NPC가 나 홀로 드래곤을, 그것도 한 달 사이에 세 마리나 사냥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번 전투 당시.
웜급 레드 드래곤 한 마리를 상대하기 위해 그랜드 마스터인 치천존과 베텔규스 두 명이 달라붙어 사투를 벌어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치천존과 베텔규스는 그 전투에서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또다시 병상에 드러누워 있는 상황이었다.
즉, 드래곤을 안정적으로 사냥하려거든 최소 세 명 이상의 그랜드 마스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개인이 가능하다고?”
– 가능하니까 드래곤의 사체들이 시장에 풀렸겠죠?
“그게 누군데? 그랜드 마스터야?”
지크는 치천존을 뺀 나머지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이번 사건에 개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 아뇨.
“아니라고?!”
– 드래곤 사냥꾼은 평범한 소년이에요.
“뭐?!”
– 피닉스 데 우루나스.
나인테일의 입에서 드래곤 사냥꾼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 대륙 변방의 아주 작은 왕국인 뤼비통 왕국의 귀족이에요.
“약소국의 귀족이 드래곤 사냥꾼이라고?”
– 네.
“그럼 그랜드 마스터야?”
– 아뇨.
“……?”
– 평범한 기사입니다. 그랜드 마스터는커녕, 마스터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했죠. 사실 순수 실력으로만 놓고 보자면, 프로아 왕국의 기사들 중 그를 이기지 못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뭐래는 거야.”
지크는 나인테일의 말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허접이 어떻게 드래곤을 사냥해?”
– 가능해요.
“어떻게?”
– 그는 진짜 드래곤 슬레이어니까요.
나인테일이 대답했다.
***
엄밀히 말해 라는 호칭은 드래곤을 사냥하는 데 성공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지금이야 드래곤 사냥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붙는 칭호이지만, 사실 진정한 란 타고나는 거였다.
진정한 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비로운 힘을 간직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평범-실제로도 평범한 경우가 많았다-한 이들이었다.
실제로, 역대 들 가운데서는 평생 검 한번 잡아보지 못한 일반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평생을 자신이 란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가, 드래곤과 마주치면 그 힘을 각성하곤 했다.
예컨대, 작은 소도시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던 아무개 씨가 드래곤이 습격해오자 그 힘을 각성하며 드래곤을 무찌르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태어나면서부터 드래곤 슬레이어의 힘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고?”
– 네, 전하.
“그럼 그 피닉스란 사람이 드래곤 슬레이어의 힘을 각성해서 드래곤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거고?”
– 맞아요.
“어떻게?”
지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인테일의 설명에 따르면,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대부분 각성 후에는 힘이 다해서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마치 독침을 쏜 꿀벌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피닉스란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의 힘을 각성한 뒤에도 꾸준히 드래곤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 그건 저도 몰라요. 확실한 건, 그가 적어도 드래곤 앞에서는 무적이란 거죠.
“음.”
– 어떡할까요?
“어떡하긴. 급처해야지.”
– 지금요? 하지만 손해가 너무 큰 걸요.
“그렇게 강한 드래곤 슬레이어라면 앞으로 몇 마리는 더 잡을 텐데, 그럼 시간이 지날수록 시세가 더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오르지 않을걸? 한 100년쯤 묵혀뒀다 팔 거면 몰라도.”
– 그건 그러네요.
“슈미트한테 말해서 최대한 빨리 처분하라고 해.”
– 알겠어요.
“쳇.”
지크가 입을 삐죽였다.
“하필 이럴 때 튀어나와서 남 사업을 망쳐놓네. 아오.”
– 설마… 슥삭 해버리실 건 아니죠?
나인테일이 지크에게 물었다.
“엥? 무슨 슥삭?”
– 그자를 슥삭 하셔서 드래곤 사체 가격을 안정화시키실 것 같아서요.
“야 이. 내가 무슨 살인마야. 그런 일로 사람을 죽이게.”
– 아니셨나요?
“야!”
– 헤헤.
나인테일이 푼수처럼 웃었다.
– 장난이에요.
“이게 진짜.”
– 참, 다른 중요한 보고도 있는데 지금 들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뭔데?”
– 람다 왕국에서 첩보를 보내왔어요.
“람다 왕국이라면… 무왕 레오니드 아저씨인가?”
– 맞아요.
“뭔데?”
– 그러니까 지금 해군 연합이….
나인테일이 지크에게 현재 이 를 침공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올렸다.
***
보고를 들은 직후.
‘도대체 여기 위치를 어떻게 아는 거지? 나처럼 메이저 해적단으로 위장한 첩자라도 침투시킨 건가?’
지크는 어떻게 이 의 위치를 알아내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을 로 안내하겠단 제보자의 신상 정보는 극비 사항이라서, 오직 클로드 원수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알았어. 내가 클로드 원수랑 이야기해 볼게.”
– 네, 전하.
지크는 즉시 클로드 원수에게 통신을 걸었다.
– 오래간만이로군, 드레이크 선장. 그간 잘 지냈나? 해적왕에 등극한 것을 축하하네.
클로드 원수는 곧 를 침공할 예정이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거 완전 능구렁이네.’
지크는 클로드 원수의 연기력에 혀를 내두르면서, 입을 열었다.
“총사령관님께서는 잘 지내십니까?”
– 나야 잘 지내지. 자네 덕분에 바다에 평화가 찾아온 것 같으이.
“제가 보낸 공문은 받으셨죠?”
– 물론일세.
“그 공문에 대한 해군 연합의 입장은 어떻죠?”
– 갑론을박일세.
“아?”
– 내 최대한 평화적으로, 녹색 군도가 번듯이 해상 왕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긴 하다네. 그러니 좀 기다려 주게나.
“흠.”
– 조금만 기다려주게. 내 자네가 좋은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터이니.
지크는 란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는 걸 가까스로 억눌렀다.
만약 여기서 성질대로 했다간, 람다 왕국이 의 군사 기밀을 노출했단 명목으로 입장이 매우 곤란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총사령관님.”
– 말해보게.
“저는 진심으로 녹색 군도가 준법정신에 입각한 해상 왕국으로 거듭나길 원합니다.”
– 자네의 뜻을 존중하네.
“부디 해군 연합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물론일세. 강경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내 그들을 잘 설득해 보겠네.
“그럼 저야 감사하죠.”
– 더 할 말 있나?
“아뇨.”
– 그럼 난 가보겠네. 지금 좀 바빠서. 주말 잘 보내게.
클로드 원수는 지크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한번 보여준 뒤 통신을 끊었다.
“…후.”
지크는 그런 클로드 원수의 뻔뻔스러움에 치가 떨려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론 클로드 원수의 입장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를 내줄 순 없는 노릇.
‘웃는 얼굴로 내 통수를 치겠다 이거지?’
지크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와 사이의 감정의 골은 너무나도 깊어서, 원만하게 해결하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싸워야지.’
답은 전쟁뿐.
무력 대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
지금은 그것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
지크는 클로드 원수와의 통신을 마친 후 곧장 벨라트릭스 선장을 찾았다.
그리고 선언했다.
“지금부터 녹색 군도 전체, 전투 준비 태세에 돌입합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녹색 군도의 위치가 노출됐어요.”
“그, 그게 정말인가요?!”
벨라트릭스 선장이 놀라 물었다.
의 위치는 메이저 해적이 아닌 이상 알아내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지난 수백 년 동안 의 대대적인 공세를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위치가 노출되었다니, 이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메이저 해적 중에서 스파이가 있는 건가요?”
“글쎄요.”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해군 연합의 함대가 쳐들어올 거란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 싸운다면… 우린 이길 수 없어요.”
벨라트릭스 선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의 전력은 크게 약화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죠.”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앉아서 당할 순 없으니까.”
“그건 그렇죠.”
“걱정 마요.”
지크가 웃으며 말했다.
“이길 테니까. 그리고 당신 입장에선 더 잘된 거 아닌가요?”
“어째서죠?”
“적어도 며칠 동안은 서류와 안녕이라서?”
“그건 마음에 드네요.”
벨라트릭스 선장이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적과 싸우다 죽는 게 낫다 싶었거든요.”
“그럼 됐죠, 뭐. 일단 준비합시다. 모르고 당할 순 없으니까.”
“네, 전하.”
그렇게 는 의 침공에 맞설 준비에 나섰다.
***
3일 후.
의 함대가 해군 기지를 떠나서 를 향해 출동했다.
함대의 규모는 엄청났다.
총 250척으로 구성된 의 함대는, 단순히 무리지어 항해하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했다.
그 넓은 바다를 꽉 채운 것만 같은 압도적인 위용!
수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총출동을 해본 적 없던 의 함대는 마치 바다 전체를 지배해버린 것 같았다.
한편, 클로드 원수는 의 대장선 역할을 하는 군함인 에 탑승한 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는 대장선답지 않게 함대의 제일 선두에서 항해하고 있었다.
그건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함대 전체를 지휘하는 대장선은 선봉에 서지 않는 법.
다른 군함으로부터 호위를 받아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항해만큼은 가 선두에 설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오직 만이 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에 탑승한 사람이 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이 항로가 맞나?”
클로드 원수가 곁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로브를 깊게 눌러쓴 자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느껴지는 모양이군.”
“예.”
“알겠네.”
클로드 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자네만 믿지.”
클로드 원수는 로브를 눌러쓴 이 제보자를 100퍼센트 신뢰한다는 듯, 여유롭게 테이블에 앉아 시가를 입에 물었다.
그렇게 가 이끄는 의 함대는 그들의 영원한 적진인 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