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33
832
앞에서 한참 해전이 벌어지고 있을 무렵.
[드르렁- 드르러어어어엉-!!!]실버 드래곤 키아누스는 자신의 레어에서 몸을 웅크리고, 단잠에 푹 빠진 채 코를 골고 있었다.
그렇게 곤히 자던 중.
움찔!
뭔가를 느낀 키아누스는 부르르 떨더니,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기 시작했다.
악몽이라도 꿨기 때문일까?
키아누스는 수백 년 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다가 뒤척뒤척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가 고개를 홱 쳐들었는데, 하필 레어의 천장에 머리를 쾅! 하고 부딪히고 말았다.
[크륵!]키아누스는 그렇게 길고 길었던, 거의 400년 동안의 단잠을 깨었다.
[…기분 나쁜 아침이야.]키아누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서히 잠들어 있던 육체를 깨웠다.
수백 년 동안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기에, 온몸이 뻐근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멈추어 놓았던 생체 활동을 완벽하게 활성화시키려면 최소 한두 달 정도의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다.
잠에서 깬 인간이 제정신을 차리고 활동하는 데 적어도 5분에서 10분쯤은 걸리는 것처럼, 드래곤 역시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쿵쾅쿵쾅!
키아누스는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을 치는 자신의 심장박동 때문에, 잠자코 육체를 일깨울 수가 없었다.
심장은 뛰고, 몸은 떨리고, 게다가 어딘가 모를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리고 마치 감기에라도 걸린 것처럼, 으슬으슬 춥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키아누스는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현상에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래곤은 몸이 아프지 않는 종족이었다.
드래곤은 모든 종류의 바이러스에 면역인 데다가, 세포 재생에 의한 변이도 일어나지 않았다.
즉, 애초에 질병에 걸리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드래곤이 괜히 지상 최강의 지적 생명체라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현재 키아누스의 육체는 극도로 예민해지고 또한 한없이 나약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 알 수 없는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키아누스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기이한 현상에 혼란스러웠다.
[설마?]그러던 중.
[드래곤… 슬레이어?]키아누스는 어쩌면 지금 자신의 몸에 일어난 현상이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는 지상 최강의 지적 생명체라는 드래곤의 유일한 천적으로써,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드래곤들은 그 힘이 매우 약해진다고 했다.
얼마나 약해지느냐 하면, 드래곤에게는 너무나도 간단한 워프 마법도 사용이 불가능해질 정도였다.
비행 능력 역시 현저히 떨어져서, 음속쯤은 가볍게 돌파하던 속도가 갈매기 수준으로 추락한다고 했다.
[설마 진짜 드래곤 슬레이어가 근처에…?]그 순간.
오싹!
키아누스는 하마터면 자다가 비명횡사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만약 꿈자리가 사나워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자다가 목이 따일 뻔하지 않았던가?
[어서 도망쳐야 한다.]키아누스는 근처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마자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강제로나마 생체 활동을 일깨운 뒤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려는 것이다.
***
번쩍!
새하얀 섬광이 빗발치던 순간.
“……!”
지크는 자신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는 걸 느꼈고, 그러기가 무섭게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상태 이상!] [알림 : 에 걸렸습니다!] [알림 :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알림 : 공격 속도, 캐스팅 속도, 이동 속도가 감소합니다!]피닉스가 가진 방패인 은 화이트 드래곤의 뼈를 기반으로, 안쪽 손잡이 부분에 무려 드래곤 하트가 박혀 있었다.
덕분에 피닉스는 이 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화이트 드래곤의 브레스와 똑같이 극저온의 냉기인 를 뿜어내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넌 날 이길 수 없다. 드레이크 선장.”
피닉스는 비웃듯 말하고는 얼어붙은 지크를 향해 블랙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진 검은색 검을 휘둘렀다.
‘위험!’
지크는 에 걸린 상태에서도 초인적인 반응 속도를 발휘해 그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하지만 피닉스의 공격은 한 번이 아니었다.
쒜엑!
검이 지크의 코앞을 스친 직후.
후욱!
검으로부터 초록색 연기가 확 뿜어져 나와 지크의 얼굴을 덮쳤다.
“콜록, 콜록!”
지크가 초록색 연기를 마시고 기침을 해댔다.
“끝났군.”
피닉스는 그런 지크를 바라보며 공격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마치 더 이상의 공격은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
“야, 뭐냐 이거.”
지크가 피닉스에게 물었다.
“어우, 써.”
“넌 중독되었다, 드레이크 선장.”
“중도오옥? 내가?”
지크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중독 같은 소리 하네. 풉.”
지크는 본의 아니게 의 육체를 얻어서, 모든 종류의 독에 면역이었다.
“넌 방사능에 중독되었다, 드레이크 선장. 그러니 죽기 싫으면 해적들과 함께 여길 떠나 치료를 받아라.”
“아~ 방사능?”
“아직 사태 파악이 잘 안 되는 모양인ㄷ….”
그때였다.
“이런 거?”
지크가 손에서 초록색 안개를 뿜어내 피닉스를 향해 보여주었다.
“……!”
피닉스는 그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사능 에너지는 오직 블랙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드레이크 선장이 방사능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입 그만 털고 하던 거나 계속하자.”
지크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지크가 굳이 피닉스와 말을 섞어준 건 이 풀릴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지, 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오. 내가 살다 살다 드래곤을 다 지켜 주네.’
지크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드래곤이 지크를 지켜 주었으면 지켜 줘야지, 마스터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한 지크가 드래곤을 지킨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앞에서 드래곤은 한낱 거대 도마뱀일 뿐인데.
만약 실버 드래곤이 죽으면 가 붕괴할 테니, 지크로서는 피닉스를 저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단….’
지크는 빠르게 비행하며 피닉스의 빈틈을 노렸다.
그런 지크의 목표는 피닉스를 땅에 메다꽂는 거였다.
왜?
그래야 디버프를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은 서로의 비행 능력을 이용해 공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
공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디버프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싸움을 지상전으로 끌고 가는 게 관건이었다.
“결국 피를 보겠다는 건가, 드레이크 선장?”
피닉스는 지크가 방사능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단 것에 매우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지는 않았다.
우웅!
에 진입한 이후 로서의 힘이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었기에, 지금의 피닉스는 엄청난 자신감에 차 있는 상태였다.
‘나는 무적이다.’
피닉스는 실제로 그런 생각으로, 오히려 먼저 덤벼들었다.
쾅! 콰앙!
뒤이어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크윽!”
밀리는 건 지크였다.
의 힘을 개방한 피닉스의 강함이란, 지크를 완전히 압도할 수준이었던 것이다.
“말했을 텐데.”
피닉스가 지크와 무기를 맞댄 채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드레이크 선장.”
“크윽!”
“이제라도 순순히….”
바로 그때였다.
콰직!
지크가 를 놓아버리고는 두 손으로 피닉스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비행 능력을 이용해 가장 가까운 육지, 그러니까 에서 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섬을 향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
콰아앙!
피닉스는 지크의 논개 전술(?)에 걸려 작은 운동장만 한 크기의 섬에 추락하고 말았다.
“커헉!”
수백 미터 높이에서 추락한 만큼 그 충격이 컸는지, 피닉스는 백사장에 처박힌 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지크 역시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추락 직전.
지크는 피닉스만 땅에 처박아 버리고 곧바로 다시 날아오르려 했지만, 가속도가 너무 많이 붙어서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땅과 너무 먼 거리에서 내던지면 피닉스가 다시 날아오를 것 같았기에, 무리하다가 같이 추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추락 직전 몸을 튼 덕분에 피닉스보다는 상태가 좀 나았다는 거였다.
“으으윽!”
지크는 온 뼈가 부러진 것 같은 고통을 이 악물고 참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스킬로 를 불러들여 움켜쥔 후 이제 막 몸을 일으키려는 피닉스를 향해 다가갔다.
“크윽!”
피닉스 역시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빠르게.’
지크는 서서히 속도를 높여 피닉스와의 거리를 좁히는 한편 와 을 전개했다.
우웅!
그러자 강력한 디버프 필드와 함께 와 와 들이 피닉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뒤이어 기다란 랜스 형태를 한 가 피닉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피닉스가 가진 방패가 근접전에서 워낙 사기템이었기에, 간격을 유지한 채 공략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크의 전술은 피닉스를 눈 깜짝할 사이에 궁지로 몰아넣었다.
“크윽! 으윽! 윽!”
피닉스는 지크의 공격에 계속해서 데미지를 입을 뿐, 반격은 꿈도 꾸지 못했다.
‘비, 빌어먹을! 내 힘이…!’
피닉스는 자신이 약해졌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넘치던 힘.
무적의 자신감을 선사하던 의 힘이 지크의 디버프에 의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실력.
‘도, 도대체 공격이 어떻게… 크윽!’
피닉스는 지크의 맹공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피닉스의 순수한 실력이란 삼류 무인에 불과했기에, 지크 같은 고수의 움직임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했다.
인간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스펙은 높은데 실력은 진짜 개허접이네. 쯧쯧. 이 따위 실력을 가진 주제에 그렇게 까부는 게 가능하구나. 어휴.’
지크는 피닉스의 형편없는 실력에 혀를 차는 중에도 결코 방심하지 않고 그야말로 빈틈없는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러던 중.
콰앙!
가 피닉스의 머리통을 내리치던 순간.
번쩍!
극저온의 냉기가 피닉스를 덮쳤다.
‘얼리고.’
지크는 를 사용하자마자 에서 10,000개의 표창을 뽑아내었다.
쏴아아아아!
스킬이 펼쳐지며 얼음 수리검들이 얼어붙은 피닉스를 향해 쏟아졌다.
지크는 상대가 이니만큼, 실력이 형편없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력을 다해 고급 스킬들을 아낌없이 때려 박았다.
자칫 피닉스가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다시 잡기가 힘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로 대결투.’
지크는 10,000개의 얼음 수리검들이 피닉스를 찢어발기는 와중에도 로 땅바닥을 내리찍었다.
스킬을 사용해 끝장을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화아아아아악-!!!
피닉스로부터 뿜어진 강렬한 열기가 지크를 밀쳐낸 덕분에 스킬이 캔슬되었다.
‘뭐야!’
지크는 뒤로 밀려나자마자 재빨리 자세를 다잡고 피닉스를 다시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이글이글!
피닉스는 어느새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채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륵, 화르륵!
피닉스를 감싼 불길의 형상은 매우 특이했다.
두 개의 머리.
커다란 날개.
불길은 누가 봐도 머리가 두 개 달린 맹금류의 현상을 하고 있었다.
가루다(Garuḍa).
드래곤을 잡아먹는다고 전해지는 신화 속의 신수(神獸)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