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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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야?”
“뀨우?!”
워프 마법진에 의해 강제로 이동된 지크와 햄찌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웬 각양각색의 생명체들, 그러니까 인간, 고블린, 낙타, 오크 등등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오호라.”
“취익! 저자가 바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처치해준 인간인가! 췩!”
“잉카서스 님의 심장을 품었다더니, 정말로 드래곤의 기척이 느껴지는구먼!”
“허!”
지크는 지금 상황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뭐지? 여긴 어디고 저것들은 다 뭐야?’
그때였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네.”
웬 노인이 지크에게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엥?’
지크는 노인이 자신을 아는 체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 노친네 누구야?’
분명 처음 보는 노인인데, 다시 만나 반갑다니 지크로서는 당혹스러운 게 당연했다.
“날세.”
그때,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예?”
“나라니까.”
“그러니까… 누구신데요?”
“나 드래곤 로드 게오르그일세.”
“아, 드래곤 로ㄷ… 예?!”
지크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노인이 드래곤 로드라고 했다는 걸 깨닫고 기겁했다.
“드, 드래곤 로드? 게오르그 님이십니까?!”
“그렇다네.”
게오르그가 웃으며 말했다.
“전에 우리 한번 봤지? 영겁도 앞에서 말일세.”
“아! 예!”
지크가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아오! 왜 날 소환하고 X랄이야!’
지크는 속으로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드래곤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굉장히 짜증나는 일인데 상대가 드래곤 로드라면 더더욱 까탈스러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허허!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네.”
“저, 저도 영광입니다! 위대하고도 위대하신 분이시여!”
지크가 게오르그를 향해 거의 엎드려 뻗히듯 넙죽 절했다.
“허!”
그러자 게오르그가 지크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요즘 세상에도 크나큰 절을 하는 젊은이가 있었구먼! 거 정말 예의 바른 친구로군!”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생명체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했다.
“크으!”
“예의를 아는 친구야.”
“보기 드문 젊은이일세!”
사실 지크 본인은 잘 몰랐지만, 넙죽 엎드린 채 엉덩이를 치켜든 형태의 절은 이른바 이라 했다.
은 과거 지적 생명체들이 드래곤들을 만나면 올렸던 고대의 예법으로써, 지금은 거의 잊혀져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크가 을 선보이자 게오르그와 드래곤들로서는 매우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데 여기 계신 분들은….”
지크가 게오르그에게 물었다.
“아, 소개하도록 하겠네. 여기는 각 종족의 로드들이라네. 여기 이 친구가 레드 일족의 로드, 여기 이 친구는 블루 일족의 로드고, 여기 이 친구는….”
지크는 게오르그가 여러 생명체들이 사실은 폴리모프한 드래곤 로드들이란 걸 알고 더더욱 경악했다.
‘야 이! 그냥 날 죽여!’
살다 살다 이제는 드래곤 로드들에게 둘러싸인 신세라니….
지크는 속으로 한탄하면서, 드래곤 로드들에게 일일이 예를 갖춘 뒤 게오르그를 돌아보았다.
“위대하고도 위대하신 존재께서 어찌 저를 부르셨는지….”
“키아누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네.”
“아!”
“자네가 아주 큰일을 해주었구먼. 내 드래곤 로드로서 종족을 대표해 자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일세. 자네가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드래곤들이 사냥당할 뻔했네.”
“아, 아닙니다!”
“허허! 겸손하기도 하구먼!”
게오르그는 드래곤답지 않게 연신 지크를 칭찬했다.
‘이 노친네가 왜 이러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친절한데?’
지크는 자신이 드래곤들을 구해 주었다는 걸 알았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고로 드래곤들이란 인간 알기를 벌레처럼 여겨서, 아무리 목숨을 구해 주었다고 한들 이렇듯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종족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크가 잘 모르는 게 있었다.
‘그 영감탱이한테 또 얻어맞을 순 없지. 흠흠.’
게오르그는 사실 사부가 무서웠기에, 지크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오죽 무서웠으면, 지크를 소환하기 직전 각 일족의 로드들에게도 지크를 함부로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을 지경이었다.
물론 각 일족의 로드들 역시도 지크를 적대시한다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우리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때, 게오르그가 지크를 소환한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이번 사건은 우리 드래곤들에게도 큰 위협인 바, 자네를 도와 이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네.”
게오르그가 말했다.
“현명하신 판단이시옵니다! 위대하고도 위대하신 존재시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일 뿐이라네. 껄껄! 게다가 이번 사태는… 크흠. 우리 드래곤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가 힘이 들어 보이더구먼. 흠. 흠흠흠.”
게오르그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우물쭈물 말했다.
‘어휴. 이 노친네, 드래곤 슬레이어 무서워서 이러는 거네.’
지크는 그제야 게오르그와 드래곤 로드들이 어째서 자신을 소환해냈는지 깨달았다.
지금 드래곤들은 직접 나서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함부로 나섰다가 또 다른 라도 마주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쩝. 하여간 쓸모없다니까.’
여태 세계가 멸망할 뻔한 위기가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막말로, 지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세계 어딘가에서 활약하고 있을지도 모르는-의 노고가 없었다면 드래곤들은 둥지에서 퍼질러 자던 중 최후를 맞이했을 게 뻔했다.
솔직히 말해서, 창조주가 드래곤이란 종족을 만들어낸 이유를 떠올려 보면 정말이지 답 없는 직무유기이자 근무태만인 것이다.
그런 주제에 가 목숨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이 되자 기어 나오다니, 얄밉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욕을 할 수도 없고, 이제라도 나서겠다는 걸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인데.
“워낙에 고귀하신 분들이라 하나의 생명조차 이 세계에 크나큰 손실이니, 위험을 감수하는 건 굉장한 낭비라고 생각됩니다.”
“오호라! 그렇게 생각하는가?”
게오르그는 지크가 은근슬쩍 드래곤들을 띄워 주면서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적당히 돌려 말해주자 매우 좋아했다.
“껄껄! 자네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정말로 고맙구먼!”
“위대하신 분들의 뜻이 무엇입니까? 제가 받들겠습니다.”
지크는 드래곤들의 가려운 부분을 아주 정밀하게 타격해서 긁어주는 기염을 토했다.
띠링!
그러자 기존에 가지고 있던 칭호가 업그레이드되었다.
[알림 : 칭호가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업그레이드된 칭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부의 神]아부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타입: 칭호
•등급 : 레전더리
•효과 :
– 자신보다 강한 NPC에게 아부할 시 상대방이 넘어올 확률 +500%
드래곤들을 하도 상대하다 보니 이제는 아부의 경지마저 높아지고 말았던 것이다.
“일단… 우리 드래곤들이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
“부탁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알아서 처치해 드리겠습니다.”
“어, 어찌 내 마음을 알았는가?”
“위대하고 위대하신 분의 뜻을 감히 헤아릴 순 없겠사오나,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은 그것뿐이라고 생각됩니다.”
“허! 이런 예의 바르고 올곧은 청년을 보았는가!”
게오르그는 지크의 청산유수와 같은 아부에 완전히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건 다른 드래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 중에 저런 젊은이가 있었을 줄이야!”
“정말이지 믿음직스럽구먼!”
그뿐만이 아니었다.
“흠! 아무래도 저 친구는 탈인간 레벨인 것 같구려.”
“하긴. 잉카서스의 심장을 흡수한 인간이라. 그거 사실상 드래곤이나 마찬가지 아니오?”
“옳소!”
“같은 심장을 지녔는데 몸뚱이가 다른들 뭐 어떻소?”
이쯤 되자 각 일족의 로드들은 지크를 반쯤 드래곤으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띠링!
그러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드래곤의 보디가드]드래곤 슬레이어들로부터 드래곤들을 보호해주자!
•타입 : 반복 퀘스트
•진행률 : 해당 없음
•보상 : 드래곤 슬레이어 1명을 처치할 때마다 황금 +10t
‘황금 10톤?! 그것도 반복 퀘스트라고?!’
현실에서도 황금이 10톤이면 그 가격이 6,000억이 넘었다.
그건 게임 속 세상인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제아무리 게임 속 세상의 황금일지라도 현금으로 환산한다면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다.
최근 골드 시세가 떨어지긴 했지만, 게임 속 황금 10톤이면 현실에서 최소 천 억 단위 정도는 우습게 거머쥐는 게 가능했다.
‘대, 대박! 거기다 반복 퀘스트야!’
지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퀘스트를 수락했다.
[알림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그런 뒤 게오르그에게 냉큼 말했다.
“제가 위대하신 분들의 불편함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오오! 고맙네! 정말 고맙네! 껄껄껄!”
게오르그는 지크가 퀘스트를 흔쾌히 수락하자 매우 기뻐했다.
사실은 지크가 더 기뻤지만 말이다.
“알겠네. 우리들은 자네만 믿겠네.”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지크는 자신의 고객(?)이 된 드래곤들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꺾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흠흠. 그건 그렇고.”
게오르그가 화제를 돌렸다.
“그 신탁에 등장한다는 별은 어디 있는가?”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우리가 그의 기억을 되찾아 주도록 하겠네. 그가 이번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잡고 있을 테니 말일세.”
“현명하신 판단이시옵니다.”
지크는 게오르그의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그의 위치를 말하게. 내 직접 소환할 테니.”
“예, 위대하고도 위대하신 존재시여.”
“위대하고도 위대하신 존재는 무슨. 그냥 편하게 어르신이라고 부르게나.”
“하오나….”
“어허! 자네는 사실상 드래곤이나 마찬가지인데 계속 그리 딱딱하게 부를 텐가? 그냥 어르신이라고 하게! 어르신!”
“아,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렇게 지크는 명예 드래곤(?)이 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었다.
***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여, 여기는 어딥니까…?”
드래곤 로드들의 소환 마법에 의해 갑작스럽게 불려오게 된 미하일은 영문을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내 지크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바라던 바입니다.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하일은 기억을 되찾는 걸 도와주겠다는 드래곤 로드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전에 문제가 있었다.
“어허! 이놈은 마족이 아니던가!”
“마족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드래곤 로드들은 미하일의 호위 임무를 맡았던 메타트론과 케이오스를 한눈에 알아보고 적대감을 드러내었다.
“아닙니다. 어르신들. 이 녀석들은 제 부하들입니다. 마족의 계약으로 제 노예가 된 녀석들이니 불쾌하시더라도 좀 참아 주시지요. 부탁드립니다.”
덕분에 지크는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다.
“허! 자네 말이라면 믿어야지! 우리는 동족이 아닌가? 하하하하!”
“마왕의 아들을 노예로 삼다니! 과연 자네도 범상치는 않구먼! 역시 드래곤이야! 드래곤!”
메타트론과 케이오스는 드래곤 로드들이 지크를 동족으로 대우해주는 걸 보고는 경악했다.
“주, 주군.”
케이오스가 메타트론을 향해 속삭였다.
“아무래도 자유를 되찾으시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
“다, 닥쳐라 케이오스!”
메타트론은 케이오스가 암울한 소리를 해대자 버럭 화를 내었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주르륵!
지크가 이제는 명예 드래곤으로까지 인정받는 지경이었으니, 어쩌면 노예 생활이 수백 년을 넘어 수천 년 단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작해 보도록 하겠소.”
드래곤들은 메타트론과 케이오스에게는 신경 끈 채, 미하일의 기억을 되찾는 마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