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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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게임에서 특정 세력이 특정 던전을 소유하는, 이른바 란 현상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탐욕스러운 동물이었기에, 좋은 게 있으면 독점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 아니던가?
그래서 다른 게임들에선 강력한 세력을 지닌 길드가 특정 던전을 점거하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럴 때마다 게임 회사들은 운영자를 긴급 투입하기도 했고, 때로는 게이머들이 힘을 합쳐 던전을 점거한 길드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게임 BNW의 경우 운영자의 개입이 1도 없었기에,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게이머들끼리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이곤 했다.
그리고 역사상 에 성공한 길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던전은 공공재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에 대한 적개심과 비난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세력이 특정 던전을 점거하고 소유권을 주장했단 소문이 나면, 온 게이머들이 힘을 합치는 기현상이 벌어지곤 했다.
그런데 를 주장하는 길드가 나왔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도 아닌 대륙 10대 모험가 길드 중 하나인 이?
‘미쳤나?’
지크는 자신이 뭔 소리를 들은 건가 싶어 어이없어 하다가,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저기요! 차원의 대균열이 처형 길드 소유라뇨! 그게 말이 됩니까!”
– 말이 되던 안 되던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동쪽 차원의 대균열이 우리 길드의 소유라는 거다. 그러니까 뒈지기 싫으면 꺼져.
“어이가 없네.”
지크는 길드원의 발언에 황당해서 말을 잇질 못했다.
‘이걸 다른 길드들이 내버려 둔다고?’
지크는 지금 상황이 조금 이상했다.
보통 길드가 특정 지역을 점거하면, 게이머들은 대체로 그걸 인정해주곤 했다.
NPC들이 만들어낸 법령에 따라서, 게이머들은 영토를 가질 수가 없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던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던전은 공공재라는 인식이 강했으므로, 함부로 소유권을 주장했다간 개박살이 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왜지?’
지크는 어때서 길드가 대놓고 을 점거하고도 저렇게 뻔뻔하게 나올 수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니 답은 금방 나왔다.
그건 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었다.
은 하나의 입구를 가진 무한한 던전이었다.
즉, 입구는 하나이지만 입장하면 무한에 가까운 던전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게이머들이 입장에서는 길드가 을 점거했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굳이 을 갈 필요 없이, 다른 로 가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왜?
의 던전 개수는 무한했으니까.
이론상으로 은 인류 전체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 말은 곧 의 특성상 점거해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남은 세 곳을 모두 점거한다면 모를까.
‘실효성이 없는데 던전을 통제한다고?’
지크는 길드의 의도가 궁금했다.
왜 쓸데없이 욕을 먹어 가면서 을 통제하는 걸까?
‘냄새가 나는데….’
그때였다.
– 3초 준다. 3초 안에 안 꺼지면 그땐 피 볼 줄 알아라.
최후통첩이 날아왔다.
슥, 스윽!
그러자 매복하고 있던 길드원들 수백 명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각자의 원거리 공격 무기를 지크에게 겨누었다.
‘일단 빼자.’
물론 대학살을 벌일 수도 있겠지만, 지크는 신중하기로 했다.
길드의 꿍꿍이를 알아낸 뒤에 전면전을 벌여도 늦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야 이! 더러워서 간다! 가!”
지크는 그 말을 남기곤 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
지크는 일단 퇴각한 후 주변에 잠복해 있던 의 길드원들과 접선했다.
“전하를 뵙습니다.”
근처에 숨어 있던 의 길드원들은 지크와 접선하자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띠링!
그러자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그 칭호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거지왕]내가 바로 거지왕이다!
•타입 : 칭호
•등급 : 유니크
•효과 :
– 거지 및 부랑자들과의 친화력 +50%
프로아 왕국이 를 흡수하며 정보국에 편입시켰기에 획득한 칭호였다.
‘…거지왕이라니.’
지크는 졸지에 거지들의 왕이 되자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이 업그레이드되어 300레벨 미만의 게이머들은 지크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수고하십니다. 지금 무슨 상황인 거죠?”
지크가 부랑자 길드원들에게 물었다.
“예, 전하. 현재 동쪽 차원의 균열은 처형 길드에게 점령된 상태입니다.”
“이유가 뭡니까?”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동쪽 차원의 대균열 주변에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으음?”
“대량의 건축 자재와 중장비들이 들어간 걸로 봐서는, 동쪽 차원의 대균열 근처에서 지하자원이 발견된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역시.”
지크는 그제야 길드의 의도를 알아챘다.
게이머들에게 욕을 얻어먹어 가면서 굳이 실익도 없는 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근처에 지하자원이 발견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길드 입장에선 지하자원을 독식하고 싶은 건 당연했으므로, 을 통제한다는 핑계거리를 내세울 만했던 것이다.
“킁킁! 킁!”
지크가 코를 벌름거렸다.
“뀨! 주인 놈아아! 왜 그러냐!”
“햄찌야.”
“뀨?”
“뭔가 돈 냄새 안 나냐?”
“뀨우?!”
“돈 냄새가 나. 아주 진한 돈 냄새가.”
도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좋은 게 있을 확률이 컸다.
“뀨! 주인 놈아아! 어떡하냐!”
“어떡하긴.”
지크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듯 말했다.
“쳐부수고 뺏어야지.”
“뀨우?!”
“지들끼리만 꿀 빨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내버려 두냐? 빼앗아야지.”
게다가 지크에게는 세계 평화를 위해 을 관리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길드에서 어설프게 을 점거했다가 4대 대재앙이 빠져나오기라도 한다면, 그땐 뒷수습이 안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 지키는 것보다는 뺏는 게 재밌지. 흐흐흐.”
지크는 오래간만에 마음껏 약탈할 생각에 즐거워했다.
지키는 싸움보다 빼앗는 싸움이 더 즐겁고, 마음도 편한 법 아니겠는가?
게다가 지크가 생각하기에, 이번 건은 굉장한 이득이 예상되었다.
“아앗, 돈… 너무 좋아. 하앍!!!”
“뀨! 그렇다! 주인 놈아 쳐들어간다! 뺏는다! 여자는 모두 죽이고 남자는 겁탈한다!”
“야 이! 뭐라는 거야!”
지크는 햄찌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자 버럭 성질을 내고는,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뀨우? 주인 놈아아! 어디 가냐! 뀨우!”
“건수 따내러.”
“뀨우?”
“이따 보자.”
지크는 그 말을 남기고 로그아웃을 진행했다.
***
태성은 로그아웃하자마자 평소 알고 지내던 V스포츠 전문 기자에게 연락해 시간을 내어달라고 부탁했다.
“앗! 한태성 선수! 지금 어디십니까!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현재 V스포츠 관련 최대 매체인 의 기자는 태성의 연락을 받자마자 약속되어 있던 인터뷰마저 취소하고, 곧장 태성의 집 근처로 달려왔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 태성은 팬들에게는 팬서비스가 아주 후했지만,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는 잘 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성은 지난 번 용설화의 열애설이 난 이후 기자들을 극혐해서, 어지간하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V스포츠 전문 기자들 사이에서 태성은 꽤 인터뷰하기 힘든 사람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런 태성이 먼저 연락을 해오더니 인터뷰를 자처했다?
뭔가 이유가 있을 법했다.
‘이건 특종이다!’
기자는 내일 자신이 쓴 인터뷰 기사가 아침 모든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내걸리는 상상을 하며, 태성에게로 달려갔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반갑습니다! 태성 선수!”
“아, 예.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죠?”
태성은 기자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인터뷰를 자처하신 이유가 뭡니까? 한태성 선수.”
“아, 그게요….”
태성은 그 후 두 시간 동안 기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속보!] (단독 인터뷰) 프로게이머 한태성 길드와 전쟁 콘텐츠 제안!인터뷰 내용이 각 포털 사이트와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태성은 또 한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인터뷰 내용은 간단했다.
태성은 공공재인 던전을 길드가 점거하고 통제하는 것에 반대하며, 이의 해결을 위해 전쟁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화는 없을 것이며, 무조건 전쟁을 치를 예정이니 기왕 싸울 거 방송 경기를 하자는 제안도 함께였다.
즉, 쉽게 말해 어차피 싸우게 될 테니 이걸 콘텐츠 삼아서 시청자들에게도 볼거리를 제공하고 돈이나 벌자는 내용인 것이다.
그 결과.
[V스포츠/일반] 프로게이머 한태성 “처형 길드, 나랑 전쟁 한번 합시다.” [칼럼] 10대 길드 도장 깨기… 한태성 이번에도 성공하나? [속보] 선전 포고! 프로게이머 한태성, 처형 길드 상대로 전쟁 콘텐츠 제안 (종합 2보)태성의 인터뷰 내용은 수없이 많은 아류 기사들을 생산해내며, 게임 BNW 팬덤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태성이 대놓고 한판 붙자며 언론 플레이를 시전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길드의 마스터인 알렉세이는 뉴스 기사를 보고 분노했다.
“한태성 이 새끼가….”
알렉세이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에 인근에 자리한 지하자원을 독식하고 싶었는데, 태성이 이렇듯 대놓고 싸움을 걸어오니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그렇다고 대화가 통할 것 같지도 않았다.
태성이 일방적으로 선전 포고를 해대며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통에, 이젠 물러서는 게 불가능해져 버렸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화를 좀 해봐야 하나?’
알렉세이는 고민했다.
태성과 싸워서 좋은 게 없었다.
태성의 세력은 컸다.
은 조직적으로 활동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레벨 게이머들이 다수 소속되어 있는 강력한 세력이었다.
게다가 은 10대 길드 중 하나인 길드와 동맹 관계였다.
즉, 태성과 싸우려거든 과 길드를 동시에 상대해야만 했던 것이다.
‘싸우면 손해다.’
알렉세이는 그런 생각으로, 태성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한태성? 나 알렉세이야. 굳이 소개는 안 해도 되겠지?”
알렉세이는 태성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한국인인 태성과 러시아인인 알렉세이가 말이 통할 리 없었으므로 양측은 당연히 통역사를 고용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 용건이 뭔데?
“단도직입적이군.”
–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
– 할 말 있으면 빨리 말해. 나 바빠. 곧 운동 갈 시간이야.
알렉세이는 태성의 독촉에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진정하고 꽤 매력적인 제안을 건넸다.
“한태성. 사실 우리 길드가 점거하고 있는 동쪽 차원의 대균열에는 A등급 마정석 광산이 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던전을 통제할….”
– 그래서 몇 프로 준다고.
“…….”
– 빨리 말해.
“어… 10프로면….”
– 수고.
그와 동시에 전화가 끊었다.
“한태성 이 개 같은 새끼가!”
뒤이어 알렉세이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태성은 귀신같이 돈 냄새를 맡고 언론 플레이를 펼쳐 알렉세이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10퍼센트를 떼어주겠단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릴 줄이야?
“이 X발 새끼! 개새끼! X 같은 새끼!”
알렉세이는 할 수만 있다면, 태성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만 싶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