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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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는 태성을 당장에라도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싸우면 무조건 손해라는 걸 아는 이상 어떻게든 협상을 잘해서 이번 사건을 잘 넘기는 게 자신에게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 뭐야? 나 바빠. 오늘 가슴 하는 날이라고. 한국에선 월요일이 벤치프레스 하는 날인 거 몰라?
“뭐?!”
알렉세이는 태성의 엉뚱한 발언에 인상을 와락 구겼다.
‘한국에선 요일별로 운동 부위를 나누는 문화가 있는 건가?’
러시아인인 알렉세이는 한국의 웨이트 트레이닝 문화를 알 리가 없었으므로, 태성의 말이 장난인지 진짜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렉세이는 일단 태성의 말을 믿고,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미안하군. 그런 중요한 날인 줄도 모르고. 오늘 가슴 운동이 잘되길 바라지.”
– 때, 땡큐. 큭큭큭.
“……?”
– 아무튼, 왜?
“15퍼센트 주겠다.”
– 90퍼센트.
“뭣이?!”
알렉세이는 제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반반을 넘어 90퍼센트나 달라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던가?
막말로, 통째로 내놓으란 소리와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아니! 한태성! 그건 해도 너무한 거 아냐?”
알렉세이가 버럭 언성을 높였다.
“90퍼센트라니! 그건 협상할 생각이 없다는 거잖아! 50퍼센트를 달라고 했으면 차라리 생각이라도 해볼 텐데!”
– 그걸 이제 알았어?
“……?”
– 뉴스 봤을 텐데. 기왕 하는 전쟁, 방송 경기로 하자고.
“아니!”
알렉세이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꼭 그렇게 해야만 속이 시원한가? 한태성? 꼭 니가 다 가져야 하나? 서로 싸워 봐야 피만 흘릴 텐데?”
– 누구 피가 더 많이 흐를까?
태성이 알렉세이에게 되물었다.
– 난 적게 흘릴 자신 있는데. 코피 정도? 반대로 넌… 과다출혈로 사망할 것 같은데?
“한태성…!”
알렉세이가 태성의 노골적인 압박에 으르렁거렸다.
“50퍼센트면 괜찮은 거래 아닌가? 피 흘릴 필요 없이 반반 나누면 서로 좋은 거래일 텐데?”
– 난 다 먹어야 직성이 풀려서.
“결국 한판 하자는 건가?”
–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 난 다 먹을 거라니까? 그리고….
태성이 덧붙였다.
– 차원의 대균열 관리 잘못했다간 무슨 꼴이 나는지 알기나 하냐? 폭주 못 막으면 뒷감당할 자신은 있고?
“우리 길드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알렉세이가 차가운 어조로 대꾸했다.
“이봐, 한태성. 니가 잘났단 건 인정하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 무시하는 게 아니라 경고하는 건데. 차원의 대균열이 폭주할 때 등장하는 던전들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아직 안 경험해봐서 감이 없지?
“닥쳐!”
알렉세이가 으르렁거렸다.
“마정석 광산은 내 거다! 차원의 대균열은 우리 처형 길드가 다 통제할 수 있어! 그러니까 주제넘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 얼씨구.
“엿이나 처먹어라, 한태성.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오케이. 방송 경기, 그까짓 거 하자. 어차피 싸울 거.”
그렇게 알렉세이는 태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예쓰.’
태성은 속으로 환호했다.
태성은 슬슬 자본주의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었고, 그에 따라 방송 경기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 태성과 패배자 3인방의 방송 경기 당시 중계권료 규모는 수천억 대에 달했다.
스폰서들을 잘만 잡는다면, 태성 개인이 챙길 수 있는 대전료만 족히 몇천 억은 넘었다.
과거 세계적인 복싱스타였던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매니 파퀴아오와 경기할 당시 받은 파이트머니가 2,700억 원 정도였다.
복싱이 그 정도인데, 전 세계를 휘어잡은 가상 현실 게임인 BNW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함께 싸울 동료들에게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몇십억 원을 나누어주더라도, 태성이 챙길 금액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었던 것이다.
‘대박이네, 대박이야.’
태성은 을 점거한 알렉세이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태성에게는 이번 전쟁이 일석오조의 효과였다.
방송 경기 대전료도 챙기고.
A등급 마정석 광산도 꿀꺽하고.
적들이 떨군 랜덤 드랍 아이템도 챙기고.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져서 몸값도 높이고.
게다가 을 관리함으로써 게임 속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대의명분까지.
두 마리가 아닌 무려 다섯 마리 토끼를 잡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 그럼 스폰서 잡고 일 추진해보자. 전쟁터에서 봅시다.
태성은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한태성 이 빌어먹을 새끼. 니가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나도 다 방법이 있어.”
알렉세이는 저 멀리 한국에 있을 태성을 향해 쌍욕을 퍼붓고는, 캡슐로 향했다.
***
태성은 확실히 비즈니스적인 감각이 있었다.
태성의 강도 높은 도발과 선전 포고는 전 세계 BNW 팬들을 사로잡았고,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일까?
태성이 이끄는 과 에게는 어마어마한 스폰서들이 붙었다.
슈퍼카의 대명사격인 자동차 회사, 최고급 명품 부티크, 하이엔드급 시계 제작 회사, 글로벌 대기업 등의 내로라하는 스폰서들이 이번 방송 경기에 붙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경기를 주관할 게임 방송사가 중계권을 엄청난 값에 사들이면서, 판은 더 커져갔다.
경기 도중 단 10초의 광고를 띄우는 데 100억 원의 광고료가 책정되었는데, 더 놀라운 건 광고권이 눈 깜짝할 사이에 팔려나갔단 점이었다.
이렇게 판이 계속해서 커지자 태성이 이번 전쟁 콘텐츠로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게임 방송국에서 지급하는 대전료, 승리 수당, 개인 스폰서 후원금, 그리고 시청자들의 후원금을 합치면 적어도 5,000억 원 이상은 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슈] 올해의 첫 빅매치! 한태성! 길드를 처형한다! [V스포츠/일반] 경기 전 분석… 과연 승자는? [칼럼] 한태성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일까?“이슈 좋고.”
태성은 뉴스 기사들을 보고 이슈몰이가 충분히 되었다는 걸 확인한 뒤 게임에 접속했다.
이만하면 판은 깔린 셈이었으니 길드와의 전쟁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방심은 없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에도 전력을 다한다고 했다.
그건 지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드는 대륙 10대 길드 중 하나로써, 개개인의 전투력이 가히 발군이었다.
게다가 대륙 10대 길드 중에서도 상위권이라고 평가받는 만큼, 저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크는 전원을 소집하고, 용태풍이 이끄는 길드까지 끌어들여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근방.
“사ㅇ… 아니 조카.”
용태풍이 지도를 바라보며 전략을 짜던 지크에게 물었다.
“예, 삼촌.”
“요즘 무슨 일 있어?”
“예? 무슨 일이라뇨?”
지크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딱히 별일은 없는데요?”
“그래?”
“네.”
“난 우리 조카가 요즘 돈독이 바짝 올라 보여서, 어디 큰돈 들어갈 일이 있나 했지.”
“아.”
지크는 그제야 용태풍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간 지크는 어지간해서는 일을 이렇듯 크게 만들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판을 키워서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러니 지켜보는 입장에선 얘가 왜 이러나 싶을 수도 있긴 했다.
“여동생이 이번에 서울대 의대 합격했거든요.”
“오? 그런 경사가 있었어?”
“네.”
“근데 여동생 학비치곤 너무 과한데?”
“학비라뇨. 나중에 병원 차려주려고 그러죠.”
“벼, 병원?!”
“대학병원처럼 큰 병원 차려주려면 제가 돈 많이 벌어야죠. 후후후.”
“…그건 지금도 충분히 차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용태풍은 어이가 없었지만, 지크에게는 또 다른 생각이 있었다.
지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의 대주주가 되어 게임 BNW를 개인 소장하는 거였다.
그러려면 한두 푼으로는 부족했다.
연일 최고 주가를 갱신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대주주가 되려면, 아무리 지크라도 악착같이 돈을 끌어모아야 했다.
“슬슬 템도 다시 맞춰야 하고요.”
지크가 말했다.
로 각성한 지크에게 있어, 이전에 용설화가 만들어준 는 원래의 효과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자체가 필드형 스킬에 적용되게끔 설계되어 있어서, 디버프가 오오라로 바뀐 다음부터는 더 이상 히드라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는 별로 특이할 게 없는 고레벨 기본 방어구라고 해도 좋았다.
“그래?”
“예, 삼촌.”
“그나저나 우리 태성이….”
용태풍은 그러려니 하고는, 슬쩍 운을 떼었다.
“요즘 만나는….”
그때였다.
“비키시오!”
“여기서 뭣들 하는 것인가! 해산하라!”
“모두 물러서라!”
갑자기 기사단과 군대가 나타나 주둔 중이던 과 길드를 향해 소리쳤다.
***
“뭐야?”
지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팔롬 왕국?’
지크는 갑옷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그들이 왕국 소속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지크가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기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전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아.”
그러자 기사단장이 지크를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셨군요. 팔롬 왕국의 기사 악시온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악시온이라 밝힌 기사는 299레벨의 강자였다.
물론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크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어쭈.’
지크는 악시온이 자신에게 예를 갖추지 않고 간단히 소개하는 걸 보고 눈썹을 치켜떴다.
왕국이 자발라 왕국 이상의 강대국이라 평가 받는 나라긴 했지만, 지크는 엄연히 신흥 강국 프로아의 국왕이었다.
마땅히 왕족에 대한 예를 갖춰야 함이 옳은 것이다.
‘무시한다 이건가.’
지크는 악시온이 강대국의 기사로서 신흥국의 국왕을 무시한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굳이 문제 삼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여긴 어쩐 일이시죠?”
“예, 전하.”
그러자 악시온이 대답했다.
“이곳은 우리 팔롬 왕국의 영토로써, 전하께서 모험가들을 이끌고 여기 주둔하시는 것은 불법이옵니다.”
“……?”
“그러니 모험가들을 이끌고 물러가 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지크는 어이가 없었다.
은 딱히 특정 국가의 영토라고 볼 수 없었다.
물론 왕국과의 거리가 상당히 가깝긴 했지만 말이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악시온이 그것도 못 알아들었냐는 듯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곳은 본국의 영토입니다. 그리고 안쪽에 주둔 중인 처형 길드원들은 본국을 대신해 동쪽 차원의 대균열을 관리하는 자들입니다.”
“아.”
지크는 그제야 악시온의 말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로써는 과 길드를 모두 상대하기가 버거우니, 강대국인 왕국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보나마나 마정석 광산에서 나오는 수익 50퍼센트 정도를 나누는 거래를 했을 테고.
“그러니까 팔롬 왕국이랑 처형 길드가 붙어먹었다 이거네요?”
“말씀이 심하십니다.”
악시온이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붙어먹었다니요. 본국이 프로아 왕국 같은 시정잡배인 줄 아십니까? 말씀 가려 가면서….”
그 순간.
퍼억!
가 악시온의 주둥이를 찍었다.
“커헉!”
그러자 악시온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런 악시온의 입은 완전히 짓이겨져서, 끔찍하게 함몰되어 있었다.
“……!”
“……!”
“……!”
그 광경을 지켜보던 게이머들은 지크의 돌발 행동에 너무나도 놀라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강대국인 왕국의 기사를 저렇듯 박살 내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크의 돌발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입.”
지크가 로 쓰러져 있던 악시온의 입을 내리찍으며 말했다.
“그놈의 입이 문제지, 응?”
“커허헉! 그르륵!”
“입이 문제야, 입이. 이놈의 입.”
지크는 악시온의 입이 뭉개지다 못해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날 때까지 를 멈추지 않았다.
“마, 막아라!”
“뭐 하는 짓인가!”
그러자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지크를 향해 덤벼들었다.
“야, 승구야.”
지크가 승구를 돌아보며 말했다.
“예, 형님.”
“다 죽여 버려.”
“예!”
그와 동시에 승구가 소환해낸 아이언 골렘들이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해 포탄 세례를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