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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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찌는 프로아 왕궁의 지붕 위에서 달빛을 안주 삼아 버터로 만든 맥주를 홀짝였다.
“뀨.”
햄찌가 그 커다란 눈망울로 환히 빛나는 만월(滿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남자의 삶은 힘든 거다. 뀨우.”
그때였다.
“햄찌 삼초오오온!”
“끵! 끠잉!”
베르단디가 페어리 드래곤 끵끵이와 함께 날아와 햄찌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베르단디는 라는 최상위의 비행 마법을 터득한 뒤라서, 하늘을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었다.
299레벨의 게이머들조차 비행에 특화된 마법사 클래스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하는 마법을 불과 몇 개월 만에 완벽하게 터득한 것이다.
“삼초오온!”
“뀨! 우리 조카 왔냐! 여기 앉아라!”
햄찌는 베르단디가 다가오자 언제나 그랬듯 자상한 삼촌이 되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삼촌 뭐 하세요?”
베르단디가 햄찌의 곁에 앉아 몸을 기대고는 물었다.
베르단디는 햄찌를 매우 좋아했다.
왜냐하면, 햄찌가 베르단디를 업고 왕궁을 돌아다니는 등 많이 돌봐주었기 때문이다.
또 베르단디는 햄찌의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털이 난 등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햄찌에게 업혀 있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곤 했을 정도였다.
“뀨. 삼촌 그냥 생각할 게 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조카는 몰라도 된다. 뀨.”
햄찌가 저 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은 눈망울을 빛냈다.
“우리 조카는 삼촌 같은 남자 친구 만나지 마라. 뀨우.”
“네에?”
“삼촌 나쁜 사람이다. 뀨우.”
“아니에요!”
베르단디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햄찌 삼촌은 나쁘지 않아요!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좋은 삼촌이신 걸요?”
“그렇지 않다. 뀨우.”
햄찌가 고개를 저었다.
“삼촌 옛날에 한 여자를 버렸다. 뀨우.”
“네에?”
“결혼하기 무서워 도망쳤다. 큰 잘못했다. 뀨우.”
“햄찌 삼촌이 떠나신 거예요?”
“그렇다. 뀨우. 그때 삼촌은 자유로운 삶이 좋았다. 그래서 결혼하기 싫어서 도망친 거다. 뀨. 삼촌이 그 여자에게 큰 상처 줬다. 뀨우우우.”
그렇게 말하는 햄찌의 두 귀가 지금의 감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축 쳐졌다.
“사실 미안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뀨우.”
“삼초온.”
베르단디가 햄찌의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가서 그 언니한테 사과하세요.”
“뀨우?”
“삼촌이 진심을 담아 사과하시면 그 언니도 받아주실 거예요!”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뀨우.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왜요? 그 언니가 이미 다른 아저씨랑 결혼하신 거예요?”
“그건 잘 모르겠다. 뀨우. 하지만 사과하러 가기도 두렵다.”
“용기를 내세요! 삼촌!”
“하지만….”
햄찌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과하러 갔다가 삼촌….”
바로 그때였다.
“야 이 개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저 멀리 밤하늘에서 앙칼진 외침이 울려 퍼지고.
“뀨우우?!”
햄찌의 두 귀가 바짝 솟았다.
밤하늘.
지크의 등에 탄 분홍색 햄스터가 씩씩대며 햄찌를 노려보고 있었다.
“뀨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햄찌는 그 분홍색 햄스터, 그러니까 여왕을 보자마자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순간.
“나쁜 노오오옴… 뀨우우우!!!”
여왕이 입을 크게 벌리고 햄찌를 향해 광선을 뿜어내었다.
햄찌의 과 같은 스킬을 사용해 원거리에서 브레스를 뿜어내었던 것이다.
***
“주인노오오오옴! 캬아아아악!”
햄찌는 지크가 자신이 두려워하던 약혼녀를 데려오자 분노했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도망칠 때였다.
지이이이이잉-!!!
여왕이 뿜어낸 파괴광선이 왕궁의 지붕에 작렬하며 햄찌를 뒤쫓아 오고 있었다.
호다닥!
햄찌는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뛰었다.
같은 시각.
띠링!
지크의 머리 위에 칭호가 떠올라 반짝였다.
햄찌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약혼녀를 데려왔으니, 가장 친한 친구의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후려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크는 양심의 가책 따위 1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헤헷.”
지크는 햄찌가 허둥지둥 도망치는 걸 보며 손가락으로 코끝을 슥 훑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요즘이야 좀 얌전해지긴 했지만, 햄찌는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자기만 남자인 척 허세를 부리거나 음담패설을 일삼는 등 임을 어필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캬아아악! 주인 놈아! 두고보자아아아아아!”
햄찌는 지크를 욕하면서도 살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남자다움?
개나 주라지!
자기를 꼭 닮은 약혼녀를 피해 도망치는 햄찌의 모습이란, 마초적인 것과는 100만 광년쯤 차이가 났다.
“헤헤헤. X돼 봐라. 헤헤헤.”
그렇게 지크는 쫓기는 햄찌를 즐겁게 감상하면서, 베르단디 곁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아바마마!”
베르단디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당황했는지, 지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소리쳤다.
“햄찌 삼촌이 위험하옵니다! 아바마마!”
“아이고, 착한 우리 딸.”
지크는 베르단디를 번쩍 안아들고는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었다.
“햄찌는 지금 혼나야 한단다.”
“네에?”
“저 언니가 화가 많이 났거든. 그래서 좀 혼이 나야 해.”
“하지만 햄찌 삼촌이 다치면 어떡하옵니까?”
“죽지 않으니까 걱정 마렴.”
“후웅.”
“우리 예쁜 딸도 햄찌 삼촌이 장가가는 거 보고 싶지 않니?”
“네에! 보고 싶사옵니다!”
“그러면 잠자코 지켜보면 된단다.”
지크가 인자한-사실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베르단디에게 말했다.
“때론 사랑해서 싸우는 경우도 있거든.”
“정말이옵니까?”
“그러엄~.”
“그럼 어마마마와 아바마마께서도 서로 싸우신 적이 있으시옵니까?”
“우린 없단다. 완벽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싸울 일이 없거든.”
“우와아아~.”
“엄마 아빠가 싸울 일은 없을 테니까, 우리 딸은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죠?”
“네! 네! 네네네!”
“귀여워~”
지크는 베르단디를 꼭 안아주었다.
***
“헥헥! 헥헥헥!”
햄찌는 여왕을 피해 달아나고, 또 달아났지만 불행히도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도망치다 보니 그만 지쳐버려서, 점점 속도가 느려졌던 것이다.
“캬아아아악!”
하지만 의 여왕은 오히려 더 빠르고 흉흉한 기세로 햄찌를 뒤쫓았다.
그 결과.
우당탕탕!
햄찌는 돌부리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뀨… 뀨우?!”
햄찌는 다급히 몸을 일으키다가 뭔가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뀨우우우우?!”
어느새 코앞까지 온 의 여왕이 몸을 거대화한 채로 햄찌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슥, 스윽!
몸을 거대화시킨 의 여왕은 말없이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불끈불끈!
그런 그녀의 근육은 마치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있어서, 패왕 브라움의 후예인 세스크마저도 울고 갈 정도의 근육질을 자랑했다.
“뀨… 뀨우?”
“오래간만이네? 뀨우?”
“오, 오래간만이다! 뀨우!”
햄찌가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뀨, 뀨우! 세월이 꽤 지났는데 여전히 예쁘….”
그 순간.
퍼억!
여왕이 햄찌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죽어라! 죽어! 이 나쁜 새끼야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악!”
“뀨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그렇게 시작된 구타.
“뀨! 내, 내가 잘못했다! 뀨우우! 아프다아아! 뀨우우우! 사, 살려줘라! 주인 놈아아! 뀨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햄찌는 여왕에게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캬아악! 죽어라! 죽엇! 캬아악! 죽어라아아아! 캬아악!”
여왕은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햄찌를 패고, 패고, 또 팼다.
으적으적!
한편, 지크는 베르단디를 브륜힐트에게 데려다주고 온 후에 팝콘을 씹으며 그 장면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어우야. 저건 진짜 아프겠네.”
지크는 신나게 두들겨 맞는 햄찌를 한동안 쭉 감상했다.
그러던 중.
“어어? 저, 저건 좀.”
지크는 여왕이 햄찌에게 를 시전하려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란 상대를 거꾸로 들어 가랑이 사이에 끼운 후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기술로, 매우 위험했다.
상대방의 머리통을 박살내는 건 물론이고, 자칫 잘못했다간 목이 꺾어서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안 되겠다.’
지크는 이러다간 햄찌가 죽겠다 싶어서 황급히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여왕을 뜯어말렸다.
“저기 이건 좀 심한 것 같은데요?”
“캬아악! 비켜라!”
“아니.”
지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가 저지른 죄가 얼만데 이대로 죽여 버리시겠다고요?”
“뀨우?!”
“두고두고 패셔야죠. 하하하.”
“흐음.”
여왕은 지크의 말에 기절해버린 햄찌를 한 번 노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뀨! 그렇다! 죽이면 분이 안 풀린다! 뀨우!”
“헤헤. 역시 그렇습죠? 헤헤헤.”
지크가 두 손의 지문이 없어질 기세로 슥삭슥삭 비비며 고개를 조아렸다.
“어떻게… 시장하실 텐데 제가 최고급 견과류라도 대접해 드립니까?”
“뀨우? 그게 정말이냐!”
“암요. 그렇고말고요.”
“알겠다! 뀨우! 최고급 견과류 줘라!”
“이쪽으로 오시죠. 헤헤헤.”
그렇게 지크는 기절한 햄찌를 질질 끌면서 여왕을 연회장으로 안내했다.
***
지크는 여왕에게 견과류를 대접하면서, 과거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실 햄찌는 정령왕의 아들로서, 정령계의 로열 블러드였다.
또한, 여성 정령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던 훈남이라고 했다.
‘이걸 믿으라고?’
물론 지크는 그 말을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햄찌는 정령왕의 아들로서 수없이 많은 사건 사고를 저지른 문제아에다 많은 여성 정령들과 어울렸던 바람둥이였다.
물론 지크의 입장에서는 역시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나도 정령왕의 딸이다. 뀨. 그래서 그 자식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던 거다. 뀨.”
여왕이 말했다.
“그런데 도망간 겁니까?”
“그렇다. 뀨.”
지크의 물음에 여왕이 대답했다.
“그 자식. 뀨우. 결혼식 전날에 자유를 찾아 떠난단 쪽지를 남기고 중간계로 도망쳤다.”
“아하!”
“모찌는 그렇게 약혼남한테 버려진 대정령 됐다. 뀨우.”
“예? 모찌요?”
“내 이름이 모찌다. 뀨우.”
“하하. 하하하.”
햄찌와 매우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럼 이 둘이 결혼하면 찌찌커플이라고 부르면 되나?’
지크는 속으로 별 해괴한 말장난을 지껄이면서, 모찌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절 도와주시는 겁니까?”
“당연히 도와준다. 뀨.”
모찌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찌 대정령이다. 약속 지킨다. 뀨우.”
“훌륭하십니다. 하하하.”
지크는 모찌가 를 물리치는 걸 도와준다고 말하자 히죽 웃으며 계속 비위를 맞춰주었다.
혹시나 모찌가 마음을 바꾸기라도 하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햄찌야. 이게 다 니 덕분이다. 너 하나 희생해서 수억 명을 구하는 거야. 흐흐흐.’
지크는 아직 기절해 있는 햄찌를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햄찌의 희생이 없었다면 를 상대할 방법을 찾지 못했을 거였다.
즉, 이번 사건을 해결한다면 햄찌는 수억 명의 목숨을 구한 위대한 영웅이 되는 셈인 것이다.
물론 햄찌 본인이야 매우 불행하겠지만 말이다.
‘됐어. 이걸로 전쟁의 적기사를 잡고. 죽음의 청기사를 상대할 방법만 찾으면 돼.’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오늘은 이쯤에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와 싸우려면 미리 컨디션 조절을 해놓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