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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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형태로 변신한 햄찌의 외모는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추정되는 키는 188센티미터.
새하얀 백발(白髮)을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시퍼렇게 빛나는 푸른 눈은 보랏빛이 함께 감돌아 그 신비로움이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목구비.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백발 장신의 사내는, 그랭구아르조차 울고 갈 정도로 아름답고 잘생긴 얼굴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정령을 상징하는, 등 뒤의 나비 날개들까지.
‘쟤가 햄찌라고?!’
지크는 너무나도 놀라서, 두 눈을 연거푸 비볐다.
그만큼 인간형으로 변신한 햄찌의 비주얼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설마.’
햄찌가 했던 말이 지크의 뇌리를 스쳤다.
[햄찌 이제 더 이상 만인의 연인 아니다. 뀨우. 햄찌 장가가면 수많은 여성들 슬퍼할 거다. 그거 정말 못 할 짓이다. 뀨우.]지크는 정말로 놀랐다.
‘그 개소리가 진짜였어?!’
햄찌의 발언을 개소리로 여겼던 지크였다.
하지만 막상 햄찌가 변신한 모습을 보니 생각은 달라졌다.
지금 햄찌의 외모는 훤칠하면서도 잘생겼고, 또한 엄청난 퇴폐미를 자랑했다.
햄찌의 말마따나,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따라다닐 만했던 것이다.
‘근데 저게 본체인가? 아니면 그냥 변신? 뭐야? 갑자기?’
지크가 의아해하는 사이.
“어이, 벌레.”
햄찌가 적기사를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이노옴…!”
적기사 역시 햄찌의 변신에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감히 누구 앞에서….”
적기사가 햄찌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때였다.
콰직!
햄찌의 손아귀가 적기사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툭! 투둑!
그러자 적기사의 투구가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햄찌는 오직 악력만으로 적기사의 투구를 찌그러뜨리는 강함을 선보였다.
“커, 커헉!”
고통에 몸부림치는 적기사.
“주제 파악을 못 했으니 대가를 치러야겠지.”
햄찌는 변신과 함께 성격과 말투도 180도 달라져버린 듯했다.
“크, 크으윽! 이 빌어먹을…!”
적기사는 발버둥을 치면서, 데미지를 반사시켰던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웅!
햄찌가 하늘색 오라를 뿜어내자 적기사의 스킬 효과가 무효화되었다.
[무위의 오라]주변의 모든 스킬 효과를 무효화시키는 오라.
그 결과.
“크으으으윽!”
적기사는 여전히 햄찌에게 붙잡힌 채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다.
“헉?!”
지크는 햄찌가 저런 엄청난 디버프 스킬을 사용하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스킬 효과를 무효화시킨다니?
그렇단 말은, 햄찌의 저 오라 안에 있으면 평타를 뺀 스킬 사용이 불가능해진단 소리였다.
즉, 적을 깡통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뒈져라.”
그렇게 햄찌는 를 켠 채로 적기사의 투구를 계속해서 찌그러뜨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적기사의 투구 안쪽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털썩!
그렇게 적기사는 햄찌에게 붙잡혀 투구 째로 머리가 으스러져 버렸고, 끝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버러지.”
햄찌가 그런 적기사를 경멸에 찬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두 번 다신 세상에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마.”
“크, 크윽! 크아아아아아악!”
“그리고….”
햄찌가 고개를 슥 돌려 지크를 바라보았다.
“주인 놈아.”
“으응?”
지크는 햄찌가 말을 건네자 당황했다.
지금 햄찌의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마무리해라.”
햄찌가 턱 끝으로 적기사를 가리키며 지크에게 말했다.
“마, 마무리?”
“끝내.”
“어!”
지크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그, 그래! 끝내야지!”
지크는 허겁지겁 를 움켜쥐고 적기사를 향해 달려갔다.
***
‘기회다.’
지크는 즉시 과 을 켜 적기사에게 디버프를 떡칠한 후 를 휘둘렀다.
퍽! 퍽! 퍽!
스킬의 첫 3타가 작렬한 뒤.
퍼엉!
마지막 네 번째 공격이 들어가 이 터졌다.
“똑바로 해라. 주인 놈아.”
“어어?”
“공격이 시원찮다.”
“아, 알겠어!”
지크는 햄찌의 명령(?)에 곧장 스킬을 재장전 했다.
그런 뒤 가진 모든 디버프 스킬들을 적기사에게 걸고 를 휘둘렀다.
퍼엉!
그렇게 작렬한 스킬.
[전쟁의 적기사 : 광기의 마르스]•생명력 : □□□□□□□□□□
적기사는 스킬의 폭딜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제아무리 449레벨이라지만 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이상 살아남길 바라서는 안 되었다.
애초에 은 449레벨이 아니라 그랜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맞는 순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스킬.
제아무리 적기사라도 아직 충분히 강해지지 못한 상태에서 을 맞고 생존하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큭큭.”
적기사의 투구 밑에서 비릿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를… 쓰러뜨린다고 해서… 이 세상에 분쟁이 사라질 것 같은가….”
“뭐?”
“소용… 없는 일이다… 난 단지 분쟁의 화신일 뿐… 너희 지적 생명체들은… 영원히 싸울 것이다… 너희가 멸종하는 그날까지도… 서로 싸우기를 멈추지 않을….”
그 순간.
퍼억!
햄찌의 발이 적기사의 머리통을 찍었다.
퍼억!
그러자 적기사의 머리통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버러지가 입이 길군.”
햄찌가 냉소를 지으며 적기사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어, 어멋! 쿨가이!’
지크가 그런 햄찌의 낯선 모습에 감탄할 때였다.
띠링!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를 처치하셨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축하드립니다!] [알림 : 레벨 업!] [알림 : 310레벨 달성!]과연 4대 대재앙답게, 적기사는 죽어가면서 지크에게 막대한 경험치를 선물해주고 떠났다.
‘개이득.’
지크가 레벨 업을 한 뒤에 미소를 지을 때였다.
스으으!
햄찌가 다시 환한 빛에 휩싸이더니, 인간형에서 다시 햄스터의 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야, 햄찌야.”
지크는 햄찌가 본래 모습-이게 본래 모습인지 아닌지는 물어봐야 알겠지만-으로 돌아오자 넌지시 말을 건넸다.
하지만 햄찌는 지크의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뀨우. 햄찌 졸리다. 뀨우우우….”
햄찌는 그 말을 남기고 스르륵 눈을 감더니 픽 하고 쓰러져 버렸다.
아무래도 변신하는 과정에서 힘의 소모가 매우 컸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크는 깜짝 변신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햄찌를 안아들었다.
“…너 도대체 뭐냐.”
지크는 자신의 품 안에 안긴 채 곤히 잠들어 있는 햄찌를 바라보며 혼란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뀨우.”
그때, 모찌가 햄찌에게 말했다.
“그게 이 자식 본래 모습이다. 뀨우.”
“엥?!”
지크가 화들짝 놀랐다.
“지, 진짜?”
“뀨! 그렇다! 우리 정령들, 정령계에서는 그런 모습이다!”
“아?”
“하지만 인간계에선 본체 유지하기 힘들다! 엄청난 에너지 필요하다! 뀨우!”
“아하!”
“이제 한동안은 변신하지 못할 거다! 뀨우!”
“이해했어.”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그 말이 진심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허풍일 줄 알았는데.”
“뀨우?”
“얘가 그러더라고. 자기 만인의 연인이라고. 자기가 너랑 결혼하면 많은 여성들이 슬퍼할 거라던데?”
“캬아아아악!”
지크의 고자질 아닌 고자질에 모찌가 털을 곤두세우며 으르렁거렸다.
“캬아악! 저 자식 소문난 바람둥이다! 캬악! 아주 그냥 잘라버려야 한다! 캬아악!”
모찌는 그렇게 소리치더니 자신의 주머니-햄찌와 똑같은-에서 커다란 가위를 꺼냈다.
“싹둑 잘라버린다! 캬아악!”
“히, 히익?!”
“그 자식 이리 내놔라! 지금 잘라버릴 거다! 캬아아악!”
“자, 잠깐만!”
지크는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모찌를 피해 달아나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햄찌의 소중한 그것(?)이 잘리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적기사가 죽자 대륙 남부는 다시 평화를 되찾는 듯했다.
–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네. 내 전쟁을 치렀던 국가들에게 먼저 사과했다네. 하. 일평생 저지른 실수 중에 최악이로구먼.
레오니드는 적기사에게 휘둘러 전쟁을 일으켰던 걸 반성하고, 즉시 뒤처리에 나섰다.
“형님 정도면 양반이시죠.”
지크는 레오니드를 위로했다.
“누구라도 휘둘렸을 겁니다.”
–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일단 뒷수습부터 하시죠.”
– 알겠네.
레오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내 다시 한번 자네에게 고맙단 말을 전하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세계대전이 계속되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걸세.
“별말씀을요.”
– 아무튼, 정말 고맙네. 조만간 내 자네에게 크게 빚을 갚도록 하겠네.
“언제든 환영입니다. 기대하도록 하죠. 후후후.”
지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굳이 사례를 하겠다는데 왜 말리겠는가?
지크의 사전에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한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지크는 레오니드와의 통신을 마친 뒤 정보국에 들렀다.
적기사가 죽었으니 뉘르부르크 대륙 남부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고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6개국 중 3개국이 전쟁을 멈추고 휴전 의사를 밝혔어요. 하지만 나머지 13개국은 계속해서 전쟁을 이어나갈 모양이에요.”
“뭐?!”
지크는 나인테일의 보고를 받고 이게 뭔 소린가 싶어 깜짝 놀랐다.
“적기사가 죽었잖아? 근데 전쟁을 이어나간다고?”
“네, 전하.”
나인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적기사가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것 같네요.”
“그게 뭔 소리야?”
“사실 대륙 남부의 국가들은 오랫동안 사이가 별로 안 좋았어요. 게다가 이런저런 정치적 대립도 잦았고요.”
“그래서?”
“사실 마땅한 명분도 없고, 오래도록 전쟁이 벌어지지 않아 서로의 전력에 대해 확신이 없던 상태였어요. 그런데….”
“적기사가 전쟁이 벌어질 계기를 만들어 준 건가?”
“정답이에요.”
나인테일이 지크의 말에 긍정의 표시를 했다.
“막상 전쟁이 벌어지고 보니 서로 해볼 만하다는 판단들을 내린 것 같아요.”
“그래서 적기사가 사라졌는데도 전쟁을 안 멈추는 거고?”
“네.”
“이 미친놈들이….”
“물론 적기사가 활동할 때처럼 막무가내로 싸우진 않아요. 이제는 각자의 이익에 따라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싸우는 거죠.”
“어휴.”
지크가 답이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소용… 없는 일이다… 난 단지 분쟁의 화신일 뿐… 너희 지적 생명체들은… 영원히 싸울 것이다… 너희가 멸종하는 그날까지도… 서로 싸우기를 멈추지 않을….]그런 지크의 뇌리에 적기사가 죽어가면서 남겼던 말이 스쳤다.
“…틀린 말은 아니지.”
지크는 적기사의 말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적기사가 사라졌음에도 세계 대전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치밀하게 전개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결국, 지적 생명체들 간의 분쟁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후우.”
지크는 밀려드는 현타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정보국을 나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기사를 처치한 게 아무 의미 없는 건 아니었다.
만약 적기사가 계속해서 활동했다면, 대륙 남부뿐 아니라 전체가 전쟁에 휩싸였을 테니까.
이만 하면 지크로서는 할 일은 다한 셈이었던 것이다.
“적당히 싸우다가 휴전이나 해라.”
지크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보국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전하!”
나인테일이 다급히 뛰어와 지크를 불러 세웠다.
“으응?”
“급한 보고예요.”
“뭔데? 또 큰일이라도 벌어졌나?”
“글쎄요. 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전하께서 관심이 있어 하실 만한 첩보가 들어왔어요.”
“무슨 일인데?”
“남부에서….”
나인테일이 지크에게 방금 올라온 따끈따끈한 보고를 전했다.
“모험가들이 나라를 건국했다고 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