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02
901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예, 폐하.”
“그대의 뒤를 이어 새로운 모험가 출신 왕이 탄생한 모양이로군.”
슈트카르트 황제의 어조는 어딘가 미묘했다.
‘아.’
지크는 그런 슈트카르트 황제의 속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긴. 마음에 안 드시겠지.’
이 세계에서 게이머를 왕으로 책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슈트카르트 황제뿐이었다.
즉, 슈트카르트 황제의 사전 허락도 없이 국가를 건국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카인이 곱게 보일 리 없는 것이다.
“오직 폐하의 뜻에 좌지우지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예, 폐하.”
“과연 그 카인이란 자가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군.”
척하면 척.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말뜻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허락도 없이 왕위에 오른 건 괘씸한데, 해명할 기회 한 번쯤은 주겠다는 거네. 대신 마음에 안 들면… 지도상에서 지워 버리겠지.’
만약 카인이 아주 사소한 실수라도 해서 슈트카르트 황제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알카사스 왕국은 개국부터 멸망까지 최단기간을 기록한 나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게 뻔했다.
물론 이 세계에 기네스북 같은 건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카인이란 자를 만나보러 가겠다.”
“예, 폐하. 살펴 가십시오.”
“다음 주에 보자.”
슈트카르트 황제는 그 말을 남기고 카인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카인이 뭔 소리를 할까?’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와 카인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혹여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를 이용해 대화를 엿듣다 걸리면, 슈트카르트 황제로부터 얻은 신뢰가 한 방에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 일 아니니까. 신경 꺼야지.’
지크는 카인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프로아 왕국으로 통하는 워프 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지크가 을 떠난 후.
“존엄하신 황제 폐하를 뵙사옵니다.”
카인은 슈트카르트 황제가 어전에 들어서자마자 몸을 납작 엎드려 절을 올렸다.
늘 가면이나 투구를 눌러 써 스스로의 얼굴을 감추고 있던 카인은,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얼굴을 드러낸 상태였다.
왜?
상대가 슈트카르트 황제였으니까.
감히 투구나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간, 어전에 들어오기는커녕 이곳 에 입장하기도 전에 불경죄로 처형당했을 테니까.
물론 슈트카르트 황제는 카인이란 게이머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가 얼굴을 드러냈다고 해서 흥미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대가 모험가 카인인가.”
슈트카르트 황제가 물었다.
“예, 폐하.”
“무슨 일로 짐을 알현하길 청하였는가.”
“예.”
카인이 고개를 한 번 조아리고는 입을 열었다.
“소인을 벌하여 달라고 청하기 위해 이렇게 발걸음을 하였사옵니다.”
“벌을 달라?”
“예, 폐하.”
“굳이 벌을 받기 위해 짐을 찾아온 이유가 있을 텐데?”
“예, 폐하. 소인은 제국이 내전에 휩싸인 사이 대륙 남부 지방에서 대전쟁을 겪었사옵니다.”
“계속해 보도록.”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백성이 고통받고, 장병들이 희생되는 걸 보았사옵니다. 그래서 소인은….”
카인은 자신이 어째서 국가를 건국하고, 또 스스로 왕위에 올랐는지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그 이유와 경위를 설명했다.
대륙 남부에서 벌어진 세계 대전 때문에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고, 그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카인의 주장이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다.
카인은 매우 솔직하게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자신의 속내를 고해바쳤다.
“사실 소인에게는 오래전부터 왕위에 오르고픈 야망은 있었사옵니다. 그러던 차에 세상의 혼란도 수습하고, 소인의 야망도 이룰 겸 나라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른 것이옵니다.”
“솔직하군.”
슈트카르트 황제는 카인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자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짐의 허락 없이 나라를 건국하고, 왕위에까지 올랐으니 벌을 받으러 왔다는 것이로군.”
“예, 폐하.”
“그럼 짐이 어떻게 벌을 주길 원하는가?”
슈트카르트 황제가 물었다.
“이제 갓 건국한 나라를 지도상에서 지워주길 바라고 찾아온 것은 아닐 텐데?”
“통촉하셔 주시옵소서.”
카인은 슈트카르트 황제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납작 엎드려 자비를 구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런 무서운 형벌을 원하지는 않사옵니다.”
“그럼 뭘 원하나?”
“소인과 알카사스 왕국은 앞으로….”
카인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폐하의 충성스러운 개가 되겠사옵니다.”
“충성스러운 개라….”
“폐하의 뜻이라면 뭐든 하겠사옵니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라도 따르겠단 의미인가?”
“그러하옵니다.”
카인이 고개를 재차 조아렸다.
“폐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사옵니다.”
“마음에 든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괘씸하긴 하나, 솔직해서 좋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때마침 네게 맡길 만한 일이 생긴 참인데, 시기가 좋다.”
“말씀만 하여 주시옵소서.”
“내전은 아직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다. 내전이 완벽하게 끝났다고 말하려거든 반란군에 가담했던 반동분자들을 말끔하게 박멸한 뒤여야겠지.”
“그러하옵니다.”
“네게 반란군의 남은 세력을 처단하는 임무를 맡기겠다.”
“맡겨만 주시옵소서.”
카인은 기꺼이 슈트카르트 황제의 명령을 받들기로 했다.
‘이건 기회다.’
카인은 슈트카르트 황제의 제안이 매우 고마웠다.
이번 기회에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용서도 받고, 또 커다란 공을 세워 점수도 딸 생각이었다.
“짐이 조만간 칙서를 보내면, 반란군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서 전진 기지를 건설하고 거점을 마련하라. 할 수 있겠나?”
“예, 폐하.”
카인이 넙죽 대답했다.
“좋군.”
슈트카르트 황제가 웃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카인은 가 정확히 어디인 줄도 모른 채 그저 기회를 잡았다고만 생각했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말한 가 사실은 코랄인의 세계인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아, 그리고.”
슈트카르트 황제가 덧붙였다.
“거,점 확보가 완료되면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를 보낼 예정이니 참고하도록.”
“예?”
“그가 너희 모두를 이끌 총사령관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런 X발!’
카인은 속으로 쌍욕을 내뱉었다.
카인과 알카사스 왕국이 먼저 피땀 흘려 공을 세워봤자, 나중에 지크가 날름 가로챌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카인은 일단 슈트카르트 황제의 명령을 충실히 따를 생각이었다.
왜?
여기서 싫은 티를 냈다가는 카인 본인의 목숨은 물론이요, 이제 막 건국한 알카사스 왕국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도상에서 사라질 테니까.
***
프로아 왕국으로 복귀한 지크는 미켈레를 만나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전하.”
미켈레는 지크의 대활약에 감동한 표정이었다.
“전하의 활약으로 본국의 국익이 더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
“안 그래도 무역 흑자가 700퍼센트 이상 증가했습니다.”
“뭐?!”
지크는 미켈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프로아 왕국을 떠난 지크가 마우레키온 제국의 내전에 참전하기 직전.
미켈레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의도를 읽어냈었고, 지크와 상의해 제국군의 승리를 가정한 무역 활동을 벌였다.
때문에, 흑자는 이미 보장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흑자라는 게 무려 700퍼센트나 증가할 줄이야….
“전하.”
“응?”
“이번 무역 활동으로 5년 치 예산이 확보되었습니다.”
“뭐?!”
“어디까지나 올해 기준이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그렇습니다. 현상 유지만 한다면 앞으로 5년 동안은 세금을 걷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헐….”
지크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였는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신흥 강국이라지만 프로아의 1년 예산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5년 치라니?
제국 코인을 타도 제대로 탄 셈이었다.
반대로, 반란군 코인을 탔던 국가들과 개인 투자자들은 그 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막심할 터였다.
단체로 대륙의 젖줄이라는 피아로 강의 수온을 몸소 체크해야 할 판국이었다.
“전하. 이 정도 흑자라면 국토의 100퍼센트를 도시화하는 게 가능합니다.”
“와우.”
“각종 기술 개발. 그리고 군사력 강화를 위한 무기 개발 사업 역시 추진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래?”
“예, 전하.”
“당장 추진해. 슈미트 경이랑 상의해서 예산 집행하고.”
“알겠습니다.”
“수고해.”
지크는 그렇게 말한 후 발걸음을 돌려 크반트의 공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크반트에게 코랄인의 무기를 보여주고 분석도 맡기고, 지난번에 채굴한 전능석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크반트는 언제나처럼 지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마침 전능석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어떤가요?”
“전능석을 이용해 전하의 새로운 방어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오오!”
지크는 크반트의 말을 듣고 매우 좋아했다.
안 그래도 용설화가 만들어 주었던 를 갈아치워야 할 타이밍이었기에, 새로운 방어구가 절실했다.
물론 지금까지 만으로 잘 버텨온 게 사실이었지만, 언제 더 강한 적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판국에 스펙 업을 게을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전하께 어울리는 방어구 세트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지크는 크반트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코랄인들의 무기를 꺼내놓았다.
“음!”
크반트는 코랄인의 무기인 광검들을 보자마자 지크가 어떠한 설명을 해주기도 전에 눈을 빛냈다.
“이 세상의 무기들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랄인이라는 외계 종족들이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광검이라고 하더군요.”
“금속의 재질부터 마감… 그리고 구조까지. 이런 무기는 처음 봅니다.”
코랄인의 무기인 광검은 전설의 대장장이 반열에 오른 크반트조차 낯설어할 정도로 개념 자체가 다른 무기인 모양이었다.
“분석해주실 수 있죠?”
“물론입니다.”
크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장이로서 이런 물건을 보니 흥미가 돋습니다. 허허허.”
“그럼 이건요?”
지크가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를 꺼내 크반트에게 보여주었다.
“그, 그건!”
크반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비록 코랄인의 무기인 광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에 대해서는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맙소사! 이것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가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로브가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지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조르제토를 포획하는 과정에서 슬쩍 했죠. 하하하.”
간 큰 지크는 황가의 보물인 를 슬쩍했다.
“이건… 전설의 영물인 검은 불사조의 깃털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 보물입니다.”
“검은 불사조요? 보통 불사조는 빨간색 아닙니까?”
흔히들 떠올리는 불사조의 이미지는 불붙은 깃털을 가진 맹금류를 떠올리기 마련이 아니던가?
“물론 그렇지만… 불사조보다 더 상위의 개체가 있습니다. 전설 속의 신수 중에서도 최상급의… 생명체라기보다는 차라리 우주의 법칙이 형상화한 존재라고 보는 게 옳겠지요.”
“네?”
“이 망토는….”
크반트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발이 세 개 달린 까마귀의 깃털로 만든 것입니다.”
“발이 세 개 달린 까마귀라면….”
지크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 삼족오 말씀하시는 건가요?”
지크가 아는 한, 발이 세 개 달린 까마귀라면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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