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03
902
“예, 전하.”
크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의 이름이 삼족오가 맞습니다. 근데 어떻게 아십니까?”
크반트는 지크가 삼족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에 꽤 놀란 모양이었다.
“아.”
지크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제가 삼족오라는 새와는 친분이 없는데, 얘랑은 있거든요.”
지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을 불러내었다.
[까아아아악!]그러자 늘 지크를 대신해 땅에 떨어진 아이템을 주워 주던 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지크의 왼쪽 팔뚝 위에 살포시 자리를 잡았다.
“헉!!!”
크반트는 지크를 대신해 아이템을 주워 주던 검은 물체가 사실 삼족오-환영이었지만-였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전에 살짝 본 적이 있긴 했는데, 워낙에 빨라서 사실 삼족오인지도 몰랐다.
“그, 그것이 삼족오였습니까?”
“환영 같은 거죠.”
지크가 말했다.
“진짜 삼족오는 아니고요. 그렇지?”
지크가 에게 물었다.
[까악! 까아악!]그러자 이 지크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지저귀었다.
“허….”
크반트가 놀랍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진짜 삼족오는 아니라지만… 그 환영인 게 어딥니까? 이런 영물의 환영이라면 그 능력도 엄청날 것입니다.”
“그래요?”
지크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는 이 단순히 템줍을 해주는 일종의 펫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렇게까지 대단한 영물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전하.”
크반트가 지크에게 말했다.
“사실 진짜 삼족오를 찾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렇겠죠.”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퀘스트의 재료에 있는 불사조조차 찾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상위 개체라는 삼족오를 무슨 수로 찾아낸단 말인가?
“하지만….”
크반트가 말했다.
“우리에겐 전능석이 있습니다.”
“예?”
“만약 이 삼족오의 환영에서 깃털을 좀 뽑아낼 수 있다면….”
크반트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전능석을 이용해 삼족오의 깃털을 더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요.”
“……!”
“쉽지는 않겠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이 로브를 더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오!”
지크는 크반트의 말을 듣고 감탄했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어쩌면 를 상대할 때 매우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라면 어쩌면 의 눈을 완벽하게 속이거나, 혹은 그의 고유 능력을 무효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하.”
크반트가 지크에게 말했다.
“비록 환영이긴 하지만… 삼족오의 깃털을 뽑을 수 있겠습니까?”
“깃털을요?”
“예.”
“환영인데 뽑힐까요?”
“아무리 환영이라지만, 마냥 신기루인 건 아닙니다.”
크반트가 영문도 모른 채 눈을 끔뻑이는 을 바라보며 말했다.
“실체가 있는 환영입니다. 아마도 뽑힐 겁니다.”
“얼마나요?”
“전능석으로 복제한다고 해도 시료가 좀 많이 필요하니… 한 마리 분량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히익?!”
지크가 화들짝 놀랐다.
“한 마리 분량을 다요?”
“아무래도 재료를 분석하다 보면 중간에 최소한의 시료는 필요합니다.”
“그건 좀 어려울 거 같은데…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않을까요?”
지크가 의 눈치를 힐끔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허허. 그건 그렇지요.”
크반트도 강제적으로 의 깃털을 뽑을 생각은 없었다.
상도덕이 있지, 털을 모조리 뽑는 일인데 당사자의 동의는 필수가 아니겠는가?
“전하.”
크반트가 지크에게 말했다.
“삼족오의 환영에게 물어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그럴까요?”
그와 동시에 지크와 크반트의 시선이 에게로 쏠렸다.
[까악?!]은 지크와 크반트가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당황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
‘부탁은 해봐야지.’
지크는 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으므로 에게 말이라도 꺼내 보기로 했다.
“어 그게….”
지크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너….”
[까악?]“깃털… 뽑아도 될까?”
[까, 까악?]은 지크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순간 당황해서 땀을 삐질 흘렸다.
“이게 진짜 중요한 일이거든. 이 세상을 지키는 일이 될 수도 있어.”
[…….]“그래서 그런데 어떻게… 깃털 좀 기부해줄 수 없을까?”
[…….]“부탁할게. 내가 이렇게 빈다.”
지크는 아예 앞에 넙죽 엎드려서 연신 절까지 해댔다.
진짜 삼족오를 찾아 이 세계를 수소문하는 것보다 이렇게 엎드려 비는 게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사자의 털을 뽑겠다는 건데 엎드려 절해도 한참 모자랄 판국이었다.
사람 같았으면 머리털을 뽑아달란 격이었으니, 매우 무리한 부탁인 것이다.
“어차피 털은 다시 자라잖아.”
[…….]“우릴 위해서가 아냐. 너도 나랑 같이 다녀서 알잖아. 내가 이 세계를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거.”
[…….]“꼭 좀 부탁할게. 무리한 부탁이란 거 알아. 하지만 어쩌겠냐. 니가 좀 희생해 주면 여러 사람 살릴 수 있는 일인데. 그리고 깃털은 뽑아도 다시 자라잖아.”
그런 지크의 간절한 부탁이 통했기 때문일까?
[…까악.]이 마지못해 허락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정말?!”
지크가 물었다.
[까악! 까아아악!]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저귀었다.
“고마워!”
[깍! 까악!]“니 희생 잊지 않을게!”
[깍! 까악!]“그럼 뽑는다?”
[까악!]“고마워!”
지크는 이 털을 뽑는 걸 허락해주자 그의 날갯죽지를 움켜쥐었다.
“크반트 님. 뽑으세요.”
“아, 알겠습니다!”
크반트가 지크의 말에 서둘러 의 털을 뽑기 시작했다.
혹시나 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었기에, 서둘러 작업을 마치려는 것이다.
은 깃털이 뽑히는 고통-환영이 고통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에 발버둥을 치며 괴로워했다.
“미, 미안해. 조금만 더 버텨! 힘내! 힘!”
지크는 마나와 신성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면서 을 꽉 붙잡았다.
이 고통에 겨워 발버둥을 치면, 크반트가 털을 뽑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산 채로 털이 뽑히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10분 뒤.
“끄, 끝났습니다!”
크반트가 의 깃털 한 뭉치를 들고 물러섰다.
“수고하셨습니다.”
지크는 크반트에게 고생했단 말을 전하고는 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이 불쌍하고 숭고한 새(?)에게 다시 한번 고맙고도 미안하다고, 또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려 했다.
“너도 고생했어. 정말 미ㅇ….”
그런데.
“풉!”
지크는 사과하다 말고 갑자기 빵 터져서 제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이, 이거 완전 백숙이잖아?! 큭큭큭큭!’
막상 털을 다 뽑고 보니 이 마치 뚝배기 안에 들어 있는 새하얀 백숙 같았기 때문이다.
“미, 미안해. 큭큭. 정말. 읍. 읍읍. 고생…했어. 큭큭큭.”
지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백숙이 되어버린 에게 연신 사과했다.
[까악! 까아아악!]은 구슬프게 지저귀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또르르!
그러자 의 눈가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도 백숙이 되어버린 스스로의 모습에 깊은 자괴감과 슬픔을 느낀 모양이었다.
“드, 들어가서 쉬어.”
[까아악….]그렇게 은 백숙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쟤, 이제 안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지크는 그런 걱정을 하며 크반트를 돌아보았다.
“깃털은 어때요?”
“흐음.”
크반트가 지크의 물음에 의 깃털 뭉치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비록 진짜 삼족오의 깃털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영적 에너지로 이루어진 엑토플라즘이라는 물질인데… 전능석으로 잘만 가공하면 진짜 삼족오의 깃털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오!”
“한번 해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지크는 크반트에게 의 깃털로 를 대량 생산할 방법까지 의뢰해놓은 후 공방을 나섰다.
***
지크는 크반트의 공방을 나선 후 브륜힐트, 그리고 베르단디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런 뒤 베르단디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이 귀여운 딸이 단잠을 잘 수 있도록 잠자리를 지켜주었다.
“그래서 토끼는….”
지크는 동화책을 읽어주던 중 입을 닫았다.
새근새근!
어느 틈엔가 베르단디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잘 자.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똑똑한 우리 딸.”
지크는 잠든 베르단디의 이마에 뽀뽀를 쪽 해주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지크는 베르단디의 침실을 떠나 브륜힐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브륜힐트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깨우긴 좀 그렇고.’
최근 브륜힐트는 베르단디의 육아로 인해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꽤 고단했다.
‘미안해요.’
지크는 육아를 도맡다시피 하는 브륜힐트에게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을 느꼈다.
지크가 24시간 붙어서 도와줘도 모자랄 판국일 텐데….
하지만 지크는 특별한 게이머였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잠깐씩이라도 시간이 날 때면 브륜힐트와 베르단디에게 최선을 다하곤 했다.
최소한의 남편, 아빠 노릇을 하려는 것이다.
‘푹 자게 두자.’
지크는 곤히 잠들어 있는 브륜힐트에게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는 워프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내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벌이기까지 약 일주일이 남았으므로, 그동안 퀘스트를 진행해볼 생각이었다.
[아아! 위대한 생명이여!]죽음의 화신 청기사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생명의 화신 테라를 소환하자.
•타입 : 에픽 퀘스트
•진행률 : 0%(0/3)
– 불사조
– 가이아의 성배
– 넵튠의 피
‘넵튠이라면 바다의 신이니까. 그를 모시는 해양교의 교단으로 가보자.’
언제 이 폭주해 가 강림할지도 모르는 만큼, 시간이 있을 때마다 퀘스트를 진행해 놓으려는 것이다.
‘근데 넵튠의 피면 신의 피라는 건데. 그걸 구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지크의 뇌리에 의문이 스칠 무렵이었다.
“뀨우우우우우우!”
저 멀리서 햄찌가 지크를 향해 부리나케 달려오며 소리쳤다.
“어? 햄찌네?”
지크는 오래간만에 햄찌를 보자 반가웠다.
햄찌가 변신의 후유증 때문에 쉬는 동안 어딘가 허전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야! 햄찌야! 몸은 좀 괜찮냐!”
지크가 달려오는 햄찌를 향해 소리쳤다.
“뀨우! 주인 놈아! 뛰어라! 뛰어!”
“으응?”
“빨리 뛰어라! 그리고 햄찌 좀 데리고 가라!”
그렇게 소리치는 햄찌의 모습은 예전과는 달랐다.
햄찌는 못 본 사이에 살이 엄청나게 쪄 있어서, 누가 보면 돼지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뒤뚱뒤뚱!
그래서 나름 뛰어온다고 뛰는데, 차라리 굴러오는 게 훨씬 빠를 것 같아 보였다.
“쟤, 왜 저렇게….”
그때였다.
“캬아아아아아악! 어딜 도망가냐! 캬아아아악!”
저 멀리 모찌가 손에 망치를 든 채로 햄찌를 뒤쫓아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주, 주인 놈아! 햄찌 좀 데려가라! 뀨우! 제발 좀 데려가라!”
햄찌가 지크를 향해 애원했다.
“설마.”
지크가 황당하단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했다.
“사육이라도… 당한 건가?”
살이 뒤룩뒤룩 찐 햄찌가 이렇듯 헐레벌떡 달려오며 데려가 달란 걸 보면, 그런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