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07
906
지크가 이끄는 이 하수구를 빠져나와 를 휘젓기 시작할 무렵.
“형제여! 도시 서쪽에서 이교도들이 나타났다!”
안다리엘은 타락 천사들로부터 길드원들의 활동 소식을 보고 받았다.
“이런 괘씸한 놈들 같으니.”
안다리엘은 분노했다.
조금 전 동쪽 항구를 공격해대던 이교도들이 갑자기 도망쳤단 보고를 받았는데, 이제는 정반대 편에서 나타났다?
답은 뻔했다.
“감히 버러지 같은 이교도들 주제에 우릴 가지고 논다는 것인가!”
안다리엘은 적들의 의도를 알아차리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안다리엘의 기준에서 중간계의 지적 생명체들은 모조리 죽여 없애야할 해충이었다.
그런데 그 해충들에게 어그로가 끌려서 이리 뛰고 저리 뛴 셈이었으니, 안다리엘로서는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모두 처단하라 형제자매들이여.”
당연하게도, 안다리엘은 서쪽에 출몰했다는 이교도들을 처단할 것을 명령했다.
“알겠다! 형제여!”
“가자! 이교도들을 처단하자!”
그렇게 천사들이 일제히 서쪽으로 이동한 직후.
“형제여!”
또 다른 천사가 안다리엘을 향해 날아와 보고했다.
“도시 북쪽에서 이교도들의 움직임이 관찰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교도들의 무리가 도시 남쪽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도시 한복판에 이교도들의 무리가 나타나 우리 형제자매들을 공격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이교도들이 출몰했단 보고가 올라왔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우리에게 대항하는가!”
안다리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천사들에게 명령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모두 죽여라! 도시 전체 샅샅이 뒤져서 이교도들을 박멸하라! 단 하나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천사들은 안다리엘의 명령을 받고 곳곳으로 흩어져 이교도 사냥에 나섰다.
한편, 승구가 이끄는 1,500명의 길드원들은 의 북쪽으로 이동해 또다시 타락 천사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지크가 해양교 대사제와 성직자들을 구출해 남쪽으로 빠져나갈 계획이었으므로, 승구는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반대 방향인 북쪽을 공격함으로써 어그로를 끌었다.
덕분에 지크 일행은 비교적 편안하게 해양교 신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길드원들이 마린 시티 곳곳에서 난동을 피운 다음 도망쳐준 덕분에 타락 천사들의 감시를 손쉽게 피해 갈 수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크는 매우 영리했다.
“다들 이쪽으로.”
지크는 골목을 따라 걷는 대신에, 건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콰직!
지크는 반대편 블록으로 넘어가기 위해 가까이에 있던 저택의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우지끈!
그러자 문고리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문이 쉽게 열렸다.
“갑시다.”
지크가 동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와.”
용설화는 그런 지크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대놓고 골목을 따라 이동하는 대신 건물에 숨었다가 바로 반대편 건물로 이동하는 지크의 전술적 움직임에 대해 놀라워했다.
이렇게 하면 타락 천사들의 공중 정찰을 피할 수 있으므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크는 을 통해 일대 지역을 스캔함으로써 타락 천사들이 지키고 있는 골목을 교묘하게 피해 나갔다.
즉, 타락 천사들이 득실대는 를 가로지르며 이동하면서도 적과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물론 승구가 이끄는 1,500명의 길드원, 그리고 200명씩 그룹을 이루어 흩어진 길드원들이 어그로를 끌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저택으로 들어간 지크 일행이 뒷문을 향해 이동할 무렵이었다.
“이야압!”
웬 소녀가 프라이팬을 들고 지크를 공격해왔다.
지크는 을 통해 저택에 누가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허접한 공격에 당하지 않았다.
몰랐어도 평범한 NPC의 평타에 스칠 일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진정하세요.”
지크가 소녀의 손목을 잡아챈 후 말했다.
“저흰 모험가들입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 정말인가요?”
“은밀히 이동하느라 이 저택을 통과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밖은 위험하니까 꼭꼭 숨어 계세요. 그럼, 저희는 갑니다.”
그렇게 지크 일행은 소녀를 뒤로하고 뒷문을 통해 저택을 빠져나와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
지크는 바다의 신 넵튠을 모시는 신전을 그대로 지나쳤다.
신전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타락 천사들이 대사제와 성직자들을 찾아내려고 수색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수고들 해라.’
지크는 반쯤 부서져서 불타고 있는 신전을 힐끔 보고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해양교 대사제와 성직자들은 신전에 숨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신전으로부터 약 5킬로미터 떨어진 다 쓰러져 가는 저택 지하에 숨어 있었다.
신전 지하에 그 저택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
“잠깐 대기할게요.”
지크는 순찰하던 타락 천사들이 지나갈 때까지 으슥한 골목길에 숨어 잠시 기다렸다.
그런데.
위잉~ 위이잉~.
그런 지크의 주변으로 파리 떼가 꼬이기 시작했다.
“…….”
지크는 파리 떼가 귀신같이 자신을 쫓아와 주변을 맴돌자 황당해서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몸에 온갖 오물과 더러운 오폐수를 흠뻑 뒤집어쓴 상황인지라 파리들이 꼬이는 게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왜일까?
위잉~ 위이잉~.
파리 떼들은 다른 동료들은 내버려 두고, 유독 지크의 주변만을 맴돌았다.
“뀨! 주인 놈아! 주인 놈한테 파리 꼬인다! 뀨우!”
“다, 닥쳐!”
“주인 놈 이제 파리 떼와 한 몸이다! 뀨우! 영원히 함께할 거다!”
“조용히 해라?”
지크는 햄찌가 자신을 놀려대자 눈을 한번 부라리며 주의를 시키었다.
생각 같아선 당장에라도 햄찌의 귀를 잡아당기고 한바탕 투덕거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적진 한복판이라 참았다.
“가죠.”
지크는 순찰 중이던 타락 천사들이 저 멀리 사라지자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저택.
지크는 문을 따고 들어가서, 지하 비밀 벙커에 숨어 있던 해양교 대사제와 성직자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오! 신이시여!”
“넵튠 신께서 굽어살피시는가!”
“아아! 희망은 있었도다!”
해양교 대사제와 성직자들은 지크 일행이 자신들을 구출하러 와주자 넵튠 신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정작 그들이 섬기는 신인 넵튠은 침묵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전하, 이리 와주시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넵튠 신의 가호가 전하의 곁에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해양교의 대사제인 네레우스가 지크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크가 네레우스의 손을 맞잡아주며 말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허허.”
네레우스가 허탈한 듯 웃었다.
“그저 죽지 못해 살아 있는 것이지요.”
“아닙니다.”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교단의 재건을 위해선 반드시 사셔야 합니다.”
“허허허….”
“안에 인원이 얼마나 있습니까?”
“150명 정도 됩니다.”
네레우스가 대답했다.
“좀 많긴 하지만. 아예 못 빠져나갈 인원은 아니네요.”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시죠. 머지않아서 동이 틀 겁니다. 그 전에 도시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예, 전하.”
“아, 그리고.”
지크가 네레우스에게 물어보았다.
“성물은….”
“여기 있습니다.”
네레우스가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삼지창 하나를 꺼내 지크에게 보여주었다.
[해신의 트라이던트]해양교의 성물(聖物)로, 바다의 신 넵튠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성스러운 삼지창.
•타입 : 주무기(삼지창)
•등급 : 신화
•내구도 : 473/500
•공격력 : ?
•주문력 : ?
•효과 : ?
•특이 사항 : 삼지창 중앙에 박힌 붉은 구슬 안에 바다의 신 넵튠의 피가 들어 있다고 한다.
바다의 신 넵튠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이 삼지창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저게 넵튠의 피인가?’
지크는 를 살펴보던 중 삼지창 정중앙에 박힌 커다란 루비를 눈여겨보았다.
루비 안에 붉은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성물… 제게 넘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크가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입니다.”
네레우스 대사제는 스스럼없이 지크에게 성물을 넘겨주었다.
그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NPC들은 사망하면 아공간 인벤토리도 같이 소멸해서, 가지고 있던 아이템을 모조리 드랍하곤 했다.
즉, 죽으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지키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지크의 경우 게이머였으므로, 죽어도 를 잃을 확률은 매우 낮았다.
게다가 지크는 이미 신분과 신용이 보증된 인물이었으므로, 교단의 성물인 를 믿고 맡길 수가 있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지크는 네레우스 대사제로부터 를 넘겨받은 직후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가시죠.”
“예, 전하.”
그렇게 지크는 해양교 대사제인 네레우스를 포함해 약 150여 명의 성직자를 데리고 탈출 작전에 나서게 되었다.
***
한편, 안다리엘은 도시 곳곳에서 날뛰는 이교도들의 움직임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라는 걸 간파했다.
보고를 받다 보니 이교도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비합리적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안다리엘은 분노하면서도 이교도들의 의도를 알아내려 애썼다.
답은 금방 나왔다.
“거,짓 신을 믿는 자들을 구출할 생각이로군.”
그것 외엔 딱히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도시 곳곳에서 날뛰는 이교도들의 움직임 자체가 딱히 실효성이 없는 데다가, 딱히 이렇다 할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쥐새끼답게 도망치겠다는 건가?”
안다리엘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한편, 지크는 해양교의 성직자들을 이끌고 하수도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교도들은 들어라!”
안다리엘의 목소리가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네놈들이 거짓 신을 받드는 자들을 데리고 이 도시를 탈출하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소용없다! 누구도 이 도시를 탈출하지 못할 것이다! 천상의 분노를 피할 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안다리엘은 그렇게 소리치더니,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거,짓 신을 받드는 자들이여! 들어라! 지금부터 너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겠다! 현재 너희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소리쳐 알려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 목숨을 구하라!”
“잘 생각하라! 누구도 이 도시를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다!”
“누구든 상관없다! 아무나 현재 위치를 알린다면 목숨을 살려줌은 물론 큰 상을 내리겠다!”
탈출하는 이들 중에서 배신자가 나오게끔 하는 게 안다리엘의 의도였다.
“믿지 마세요.”
지크가 일행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그저 우리 위치를 알아내기 위한 거짓부렁….”
바로 그때였다.
호다닥!
해양교의 성기사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나가 골목을 빠져나가더니, 근처를 순찰하던 타락 천사들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지크가 미쳐 말리거나 막을 틈도 없는, 빛의 속도로 한 배신이었다.
“여기입니다! 여기! 거짓 신을 받드는 자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 순간.
“야 이!”
지크는 그 성기사의 발 빠른 태세전환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배신할 거면 최소한의 고민은 좀 하고 배신을 해라! 아오!”
지크로서도 안다리엘이 회유책을 쓰자마자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배신자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사들이시여! 저는 회개한 자입니다! 제가 이교도들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성기사는 지크 일행이 숨어 있는 골목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러자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여기다!”
“형제자매들이여! 여기 이교도들의 무리가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타락 천사들이 일제히 지크 일행이 있는 지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