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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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진정 성직자라면 마땅히 나와야 할 것이다! 무고한 시민들을 방패막이 삼아 숨지 말란 말이다!”
안다리엘의 심리전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너희는 비록 거짓 신을 모셨지만, 성직자의 의무는 다해 온 줄로 안다! 그런 너희가 죄 없는 시민들의 죽음을 외면할 셈인가! 구차하게 목숨을 건지기 위해 거룩하고 숭고한 정신을 외면할 셈이냔 말이다!”
안다리엘은 매우 영악한 발언으로 해양교 성직자들의 정곡을 찔렀다.
그들이 최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몹시 아픈 부분만 콕콕 후벼 팠다.
“말려들면 안 됩니다.”
지크는 함께 있는 해양교 성직자들에게 당부하고 당부를 거듭했다.
“귀담아듣지 마세요. 저거 다 거짓말입니다. 가면 개죽음만 당할 겁니다.”
지크의 말은 사실이었다.
안다리엘이 이끄는 타락 천사들은 굳이 해양교의 성직자들이 아니라도 이미 중앙 광장에서 대학살극을 벌이던 중이었다.
무고한 시민들을 화형에 처하는 바람에 도시 전체에 탄내가 가득하고, 치솟아 오른 검은 연기가 밤하늘의 달마저 가릴 지경이었다.
“가면 여러분도 죽고, 시민들도 어차피 다 죽습니다. 뻔히 보이는 수작에 넘어가지 마세요.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지크는 거기까지 말하면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왜?
솔직히 지크도 화가 많이 났으니까.
‘빌어먹을 자식들. 진짜 개역겹네.’
맘 같아선 타락 천사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꾹 참는 중이었다.
지금은 해양교 성직자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오직 탈출만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크가 해양교 성직자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정 듣기 힘드신 분들은 아예 귀를 막으셔도 좋습니다.”
지크는 그렇게 말한 후 문가에 기댄 채 으로 바깥 상황을 끊임없이 감시했다.
장소를 잘 잡았기 때문일까?
다행스럽게도, 타락 천사들은 지크 일행이 숨어 있는 술집을 수색하러 오지 않았다.
타락 천사들은 사람이 남아 있을 법한 주택 위주로 수색했기에, 술집에는 딱히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차, 차라리 죽여 줘! 제발! 그, 그냥 죽여… 으아아아아아악!”
의 중앙 광장으로부터 끊임없이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고기 타는 냄새가 전체에 진동했을 정도였다.
“비겁한 자들이여! 거짓 신을 받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땅히 보살펴야 할 어린양들을 방패막이 삼아 구차하게 목숨을 건지려는가!”
안다리엘은 의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태워 죽이며 계속해서 선전해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다리엘은 타락 천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도시 곳곳에 처형장을 만들었다.
그런 뒤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처형하기 시작했다.
숨어 있는 성직자들이 보고 들을 수 있게끔, 처형 퍼포먼스 쇼를 벌이는 것이다.
‘나름 천사란 놈들이 마족들보다 악랄하네.’
지크는 타락 천사들의 행태에 아주 기가 질려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면 마족들도 한 수 배워 갈 정도로, 악랄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니들은 역겨워서라도 언젠간 다 조져주고 만다.’
지크는 이를 부득 갈며 당장에라도 튀어 나가고 싶은 걸 애써 참았다.
때론 모두를 구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분노를 다스리면서 약 한 시간쯤 버텼을 무렵이었다.
펑! 퍼엉!
주변에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지크는 을 통해 의 현황을 살펴보던 중 다수의 병력이 집결하고 있는 걸 보았다.
그건 뉘르부르크 대륙 남쪽의 강대국 중 하나인 의 군대였다.
가 의 영토였으니, 군대가 출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는 것.
신성력을 가지지 못한 병력으로 이루어진, 그냥 평범한 군대가 타락 천사들을 상대로 싸워 보았자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엔 다 개죽음을 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게 지크와 해양교의 성직자 일행에게는 기회였다.
의 군대가 를 탈환하기 위해 타락 천사들과 전투를 벌이는 사이 도시를 빠져나가면 되었다.
‘싸우다 안 되면 알아서 후퇴들 하겠지.’
지크는 그런 생각으로 버텼다.
그리고 그런 지크의 생각은 꽤 잘 들어맞았다.
의 군대가 공격을 해오자 타락 천사들이 처형 퍼포먼스를 멈추고 전투 현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죠!”
지크는 그 즉시 술집을 나서 해양교 성직자들을 데리고 하수구로 향했다.
그로부터 약 30분 후.
풍덩! 풍덩!
지크 일행은 하수구를 통해 하수도로 내려가는 데 성공했다.
위잉~ 위이잉~.
그러자 또다시 파리 떼가 나타나 지크의 주변을 맴돌았다.
“…아오.”
지크는 분통을 터뜨렸지만, 일단 꾹 참고 하수도를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만 가면 됩니다. 다들 힘내세요.”
그렇게 하수도를 통해 를 빠져나가던 중.
‘벌써 후퇴하네.’
지크는 의 군대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걸 보았다.
지크의 예상대로였다.
의 군대는 짧은 순간 매우 큰 병력 손실을 보고 후퇴하는 게 분명했다.
‘빨리 탈출하자.’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길 무렵이었다.
“거,짓 신을 받드는 성직자들이여! 너희를 도와줄 군대는 꽁무니를 빼고 도망쳤다!”
또다시 안다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다시 이 도시의 시민들을 처형하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까지 어린아이들은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앞으로 1분이 지날 때마다 어린아이들만을 처형하겠다!”
악랄함의 끝.
이쯤 되면 타락하기 전에도 이미 악마였을지도 모를 수준이었다.
“전하.”
그때, 네레우스 대사제가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예?!”
지크는 네레우스 대사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가지 않으시겠다고요?”
“예, 전하.”
“저거 다 거짓말이라니까요?”
“압니다.”
네레우스 대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간다고 해도, 천사들은 마린 시티의 시민들을 모조리 처형하겠지요.”
“그걸 아시면서 저길 가겠다고요?”
“전하.”
네레우스 대사제가 무척이나 침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성직자입니다.”
“그야 알지만….”
“마땅히 보살펴야 할 마린 시티의 시민들이 죽어 가는데 저만 도망칠 순 없습니다.”
“같이 죽는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적어도 제 양심만은 지킬 수 있겠지요.”
“…….”
“이런 죄책감을 품고 신앙생활을 계속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
“어차피 교단의 성물은 전하께 맡겼으니, 이 비루한 늙은이 하나 없다 하여 해양교의 재건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네레우스 대사제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순교(殉敎).
지금 네레우스 사제는 성직자의 존엄성을 지키고, 또 신자들을 끝까지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를 다하려 하고 있었다.
물론 지크는 그런 네레우스 대사제를 100퍼센트 이해할 수 없었다.
한평생 신앙생활에 몸 바친 성직자의 심정을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저도 가겠습니다!”
“대사제님! 저 역시 가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성직자들 역시 네레우스 대사제를 뒤따라 중앙 광장으로 가겠다 말했다.
“댁들은 안 돼!”
지크가 빽! 하고 소리쳤다.
네레우스 대사제의 순교야 다른 해양교 지부에서도 의미 있게 받아들일 테고, 신도들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성직자들은 해양교의 고위급 인사들이었으므로, 여기서 죽으면 곤란했다.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해양교 성직자들과 신도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지도부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하.”
네레우스가 지크를 돌아보았다.
“부디 다른 성직자들을 무사히 탈출시켜 주십시오.”
“예, 대사제님.”
지크는 네레우스를 말리지 않았다.
개인의 선택이었고, 한 교단의 최고 지도자의 신념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른 분들은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망극하옵니다.”
그렇게 네레우스 대사제는 지크에게 교단의 성직자들을 맡기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너희는 마린 시티를 탈출해서 본 교단을 재건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성직자들은 그런 네레우스 대사제의 말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답했다.
“예! 대사제님! 반드시 교단을 재건하겠습니다! 흑흑!”
“대사제님! 아아!”
네레우스 대사제는 그런 성직자들을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왜들 우느냐? 명예롭고 숭고한 죽음이니라. 혹시나 넵튠 신께서 이 늙은이를 어여삐 여기시어 기적을 일으켜 주실지 누가 알겠느냐? 그러니 눈물을 닦아라. 너희만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네레우스 대사제는 그 말을 남기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안다리엘은 중앙 광장에서 끊임없이 심리전을 펼치며 처형 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해양교 대사제가 제 발로 찾아왔단 보고를 받았다.
비단 네레우스 대사제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다른 고위급 성직자들 역시 네레우스 대사제와 같은 생각으로 순교를 선택했다.
“오호라.”
안다리엘은 네레우스 대사제와 해양교 성직자들이 제 발로 찾아오자 히죽 웃었다.
입꼬리가 거의 귀밑까지 찢어진 안다리엘의 미소는 마치 악귀를 연상시킬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하기야 죄 없는 시민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불태워 죽인 마당에 악귀랑 뭐가 다르겠냐마는….
“형제자매들이여. 거짓 신을 받들던 자들이다. 모두 의자에 앉혀라.”
안다리엘은 네레우스 대사제와 성직자들을 그냥 죽일 생각이 없었다.
끔찍한 고문을 가해서 그들의 신을 부정하게 만들고, 평생의 신앙생활 역시 무의미한 헛짓거리에 불과했다는 걸 실토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고문.
“으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차라리 우릴 죽여라! 크으으으으윽!”
“죽여! 날 죽여어어! 죽이란… 크아아아아아악!”
네레우스 대사제와 성직자들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결코 넵튠 신을 부정하지 않았고, 신앙생활의 헛됨 역시도 인정하지 않았다.
순교하기로 마음먹은 성직자들의 마음가짐이란 육체적 고문으로는 쉽게 깨부술 수 없는, 그야말로 강철 같은 의지였기 때문이다.
“버티겠다는 건가?”
안다리엘은 네레우스 대사제와 성직자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눈을 시퍼렇게 부릅떴다.
“언제까지 버틸지 두고 보도록 하마.”
안다리엘은 네레우스 대사제와 성직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고문을 할 것을 지시했다.
한편, 지크는 네레우스 대사제를 떠나보낸 후 에서 거의 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진짜 마음에 안 드네.’
를 떠나는 지크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저 빌어먹을 타락 천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고 돌아가자니 욕구불만이 아주 극에 달했다.
지금은 작전상 후퇴할 수밖에 없는 때라는 걸 알면서도 못내 찜찜했다.
마치 물 없이 고구마를 세 개쯤 먹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마음에 안 드는 꼴을 봤으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대로 그냥 가면 한 며칠은 빡칠 거 같은….’
바로 그때였다.
우웅!
지크의 아공간 인벤토리가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해양교의 성물인 가 저절로 빠져나오더니 지크의 손에 쥐어졌다.
‘뭐, 뭐지?’
지크가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에 당황할 때였다.
[…눈을 뜨라 부르는 소리 있을 것이니.]지크의 귓가에 알 수 없는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