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13
912
“웬 대규모 레이드? 장기 프로젝트는 또 뭐고?”
“나도 자세히는 몰라.”
천우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커뮤니티에서 얘기 나오더라고. 카인이 이번에 길드원들을 대규모로 신규 모집하면서 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나?”
“그래?”
“그래서 길드원 모집할 때도 지금 진행하고 있는 중요 퀘스트가 없는 사람들 우선으로 뽑았다던데?”
“중간에 이탈할 사람은 안 받겠다는 거네?”
“그렇지.”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큰 건을 진행하고 있는 거 같은데, 정확히 뭐 하는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그런 소문이 돌아.”
“흠.”
태성이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말했다.
“뭐. 한 며칠 있으면 알게 되겠지.”
“으응?”
“내가 그랬잖아. 슈트카르트 황제한테 자진 납세하러 왔었다고.”
“그랬지.”
“그때 둘이 뭔가 결말을 본 거 아닐까? 슈트카르트 황제가 카인한테 뭔가를 시킨 거 같네.”
“아.”
“카인이 세운 나라가 아직도 멀쩡한 걸 보면 모르겠냐?”
태성이 딱 잘라 말했다.
“뭔가 거래가 있었으니까 아직 멀쩡한 거야. 안 그랬으면 벌써 잿더미가 됐을걸?”
“하긴.”
천우진도 태성의 말에 동의했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니까.”
“일단 그렇다는 건….”
태성이 말했다.
“카인이 왕위를 인정받긴 했다는 거거든?”
“그렇지.”
“다음 주에 마우레키온 제국에서 반란군을 진압한 기념으로 축제가 열려. 나도 거기 초대받았고.”
“그럼….”
“카인이 왕위를 인정받았으면, 그 행사에서 슈트카르트 황제한테 책봉을 받겠지. 그럼 그때 무슨 일인지 슬쩍 알아보지 뭐.”
“그럼 되겠다.”
“사실 딱히 궁금하진 않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태성은 카인이 자신의 뒤를 이어 제2의 게이머 출신 왕이 되든 말든 딱히 별 관심이 없었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가져서 뭐 하겠는가?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아무튼.”
태성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오늘은 겜 얘기하지 말자. 피곤하다.”
“그러냐?”
“오랜만에 쇼핑이나 갈까?”
“좋지.”
“가자, 쇼핑.”
“잠깐만. 백화점에 미리 연락해두게.”
천우진은 그렇게 말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자신의 VVIP 담당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성과 천우진은 백화점 VIP 중의 VIP들이었다.
그래서 영업시간이 끝난 후 백화점 문을 걸어 잠근 채 자유로운 쇼핑이 가능했다.
때문에, 태성과 천우진은 백화점에 가기 전 자신들을 담당하는 실장들에게 미리 연락해놓곤 했다.
왜?
그래야 백화점에서도 태성과 천우진을 맞이할 준비를 할 테니까.
***
지크가 를 구원한 이후, 영웅교의 인지도는 엄청나게 급상승했다.
더군다나 영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신도들에게 매우 친화적이었다.
일단 에 열심히 기도를 올리다 보면, 어디선가 영웅교 소속의 모험가가 나타나 민원을 해결해줬다.
그러니 영웅교의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대륙 곳곳에서 영웅교 신도들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알림: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10 상승했습니다!] [알림: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10 상승했습니다!](중략)
[알림: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10 상승했습니다!]지크는 로그인하자마자, 눈앞에 신성력이 상승했단 알림창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신성력은 그랬다.
지크가 로그인해 있든 말든 1년 365일 24시간 내내 꾸준하게 상승했다.
왜?
NPC들이 신앙을 갖는 데에는, 지크의 로그인 여부가 상관없었으니까.
‘교단이 얼마나 더 커지려나?’
지크는 신성력이 이전보다 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걸 보고 영웅교의 교세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신전을 세운다거나, 체계적으로 교단을 발전시킬 여유가 없었다.
이런저런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하도 많아서, 영웅교까지 관리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 모르겠다.’
지크는 일단 영웅교를 발전시키는 문제는 접어두기로 하고,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오늘은 마우레키온 제국에서 내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으므로, 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녀올게요.”
지크가 브륜힐트에게 인사했다.
“네, 여보. 잘 다녀오세요.”
브륜힐트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게 지크를 배웅해 주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지크는 오늘만큼은 브륜힐트에게 매우 미안했다.
왜냐하면, 오늘이 장인어른인 로엔그린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행사에 참석해야 해서 로엔그린의 생일 파티에 갈 수가 없었다.
외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보니 도저히 불참할 수가 없었다.
“아니에요.”
하지만 브륜힐트는 언제나처럼 지크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었다.
제후국인 프로아 왕국의 국왕인 지크 입장에서 마우레키온 제국의 승전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장인어른께 함께 가요.”
“알겠어요, 여보.”
“그리고.”
지크가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거 장인어른께 전해 드릴래요?”
“어머!”
브륜힐트는 지크가 내민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크가 브륜힐트에게 내민 물건은 다름 아닌 와인이었는데….
반짝반짝!
황금색 액체가 들어 있는 그 와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였다.
한 병에 황금 1톤 이상의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하는, 이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바로 그 와인 말이다.
“여, 여보! 이건 황금의 정ㅅ….”
“쉿!”
지크가 브륜힐트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사부님이 들으실지도 몰라요! 조용!”
지크는 사부의 눈과 귀가 이 세상 전체에 있다고 믿었으므로, 브륜힐트의 입을 급하게 막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께서 아시면 괜히 심기가 불편해지실 수도 있으니까, 이건 비밀로 해요.”
“아, 알겠어요. 당연히 그래야죠.”
브륜힐트는 지크의 말을 철석같이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가 혹시 삐치기라도 한다면, 지크가 매우 곤란해진다는 걸 잘 알았다.
“이 정도면 장인어른께서도 서운해하지 않으시겠죠?”
“물론이죠.”
브륜힐트가 웃으며 말했다.
“물론 당신이 직접 가서 축하해 주시는 걸 더 좋아하실 테지만, 이 정도 선물이면 전혀 서운해하지 않으실 거예요.”
는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그 희소성 때문에 어지간한 강대국의 왕이라고 해도 평생에 단 한 잔을 마시기 힘든 와인이었다.
때문에, 로엔그린이 선물에 만족하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픈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하셨어요?”
“아.”
지크가 대답했다.
“사부님한테 선물하고 난 다음에 몇 병이 추가로 발견됐나 봐요. 저도 모르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보고서를 보다가 알게 됐어요.”
“그랬군요.”
“아무튼, 장인어른 생신 축하드린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네, 여보. 고마워요. 이 귀한 걸….”
브륜힐트는 지크가 장인어른인 로엔그린을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자 눈물을 글썽였다.
“여, 여보?”
지크는 브륜힐트가 갑자기 울려고 하자 매우 당황했다.
“왜 울어요?”
“고, 고마워요… 흑….”
“……?”
“저는… 평생 결혼 같은 걸 못할 줄 알았는데, 이런 행복을… 당신같이 좋은 남편도 만나고….”
“아.”
지크는 브륜힐트가 어째서 감격이 복받쳐 올랐는지를 깨달았다.
브륜힐트는 엘프계의 추녀로서, 공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따돌림 받았던 불행한 과거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런 브륜힐트에게 지금과 같은 행복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던 것이었으니, 감정이 격해지는 건 당연했다.
비록 지크가 너무 바빠서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그것만 빼면 남부러울 것 없는 결혼생활이기도 했고.
“울지 말아요. 이리 와요.”
“여보….”
지크는 그런 브륜힐트의 속내를 이해하고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
지크는 브륜힐트와 사랑에 가득 찬 교감을 나눈 후 곧장 마우레키온 제국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도착한 마우레키온 제국.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제국의 기사단이 2열 종대로 워프 게이트 앞에 서 있다가, 지크가 도착하자 일제히 자세를 다잡았다.
빠라빠라 밤~ 빠라빠라 밤~ 빠라빠라 빰~ 빰~ 빠밤~ 빰빠~ 빰~ 빰빠바~ 빰빰~ 빰빰빰빰~ 빰빰~ 빰빰빰빰~ 빰빰빰빰~ 빰~ 빰~ 빰~ 빰빠밤~!
군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하고.
“부대~ 차렷~!!!”
기사단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께 경례!”
“충! 성!”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단은 을 다시 찾은 지크에게 매우 극진한 예우를 보여주었다.
‘저, 전에 왔을 때랑은 대우가 너무 다르잖아?!’
지크는 대제국 마우레키온이 자신에게 이러한 의전 행사를 열어주자 매우 놀랐다.
하지만 이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지크는 반란군의 수괴인 조르제토를 생포함으로써 그야말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었다.
그 때문에 제국이 이러한 대접을 해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전하.”
기사단장이 지크에게 다가와 말했다.
“지금부터는 저희 제5 근위기사단이 모시겠사옵니다.”
“아, 예.”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렇게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 제5 근위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에 입성하게 되었다.
한편, 지크와 거의 동시에 에 도착한 카인의 경우 대접이 180도 달랐다.
지크의 경우 무려 근위기사단-물론 제5 근위기사단이긴 했지만-의 사열에 군악대까지 동원된, 매우 극진한 예우였다.
하지만 카인은 달랐다.
“날 따라오시오.”
카인을 인솔한 건 기사가 아닌 에서 일하는 일개 시종이었다.
그것도 달랑 하나.
나름 일국의 왕이라는 자가 방문했음에도, 그 대접이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지크와 카인은 의전에 있어서 하늘과 땅 만큼의 빈부 격차(?)가 났다.
“…….”
카인은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움직이는 지크의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 하시오? 얼른 따라오시오.”
“…알겠습니다.”
카인은 시종의 재촉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
지크와 카인이 비슷한 시간에 에 도착했던, 바로 그때.
슥, 스윽!
마우레키온 제국의 시종장은 오늘 밤 만찬에 쓰일 식기-접시 하나에 작은 시골 마을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값비싼-를 손수 닦고 있었다.
시종장은 슈트카르트 황제의 최측근 중 하나.
때문에, 시종장은 적어도 슈트카르트 황제가 쓸 식기와 다기들은 부하들을 시키지 않고 직접 반짝반짝 광이 나게 닦곤 했다.
그러던 중.
“시, 시종장님! 큰일 났습니다! 비상사태입니다! 비상사태!”
시종장은 부하의 다급한 보고를 받았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
대제국 마우레키온의 시종장답게, 그는 매우 근엄하고 절도 있는 몸가짐을 가진 중년 남성이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걸맞은 진중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우레키온 제국의 시종장쯤 되면 어지간한 왕국의 왕보다 그 권력과 권위가 더 높기 때문이다.
“시종장님! 정말로 큰일이 났습니다!”
“어허.”
시종장이 부하 시종에게 주의를 시키었다.
“존엄하신 황제 폐하를 모시는 자가 어찌 그리도 경거망동한단 말이냐? 잊었느냐? 너는 대제국 마우레키온의 시종이거늘. 도대체 어인 일인데 그리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그, 그것이!”
부하 시종이 거의 숨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힘겹게 보고를 이어갔다.
“아, 아이린 전하께서 입궁하셨다고 합니다!”
그 순간.
쨍그랑!
시종장은 닦고 있던 접시를 그만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이린 폰 포스테리오레.
슈트카르트 황제의 이복 여동생.
그 세계 최고의 개망나니가 돌아왔단 소식에 그만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