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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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전을 기념하는 개선 행사는 그렇게 슈트카르트 황제의 포상을 끝으로 그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반란군의 진압을 기념하는 축제 기간이었으므로, 만백성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대환장파티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물론 지크와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말이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예, 폐하.”
“들어가자.”
“예.”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부름에 쫄래쫄래 그 뒤를 쫓아 에 입성했다.
“얼른 오시오. 뒤처지고 있지를 않소.”
한편, 카인은 행렬의 맨 끝에서 멍을 때리다가 시종에게 핀잔을 들었다.
“…….”
카인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신비주의 게이머인 자신이 일개 NPC 핀잔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꾹 참았다.
‘이런 빌어먹을.’
솔직히 화가 나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카인의 입지는 매우 위태로웠다.
자칫 잘못했다간 언제 어느 때고 목이 날아갈지도 몰랐으므로, 몸가짐을 극히 조심해야 할 때였다.
물론 그게 아니라도, 일개 약소국의 왕 따위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시종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법이었다.
마우레키온이 괜히 세계 최강대국이겠는가?
제국의 백작 정도만 되어도 어지간한 나라의 왕조차 굽실거릴 정도로 그 권세가 막강했으니, 카인으로서는 시종의 핀잔에도 찍소리도 할 수 없었다.
으득!
카인은 저 멀리 슈트카르트 황제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가는 지크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지크를 몰아내고 슈트카르트 황제의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
에 입성한 직후.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국왕.”
“예, 폐하.”
“짐을 따라오라.”
지크는 저녁에 열린 연회에 참석하기 전 슈트카르트 황제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지크뿐만이 아니었다.
“모험가 카인.”
“예, 폐하.”
“따라오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슈트카르트 황제를 만나는 자리에는 카인 역시도 함께했다.
‘뭐지?’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어째서 카인까지 함께 불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는 카인과 어떠한 접점도 없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소개라도 시켜 주시려고 그러시나?’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같은 모험가 출신 왕끼리 인사나 나누라고 자리를 마련해준 거로 생각했다.
“카인 국왕.”
“예, 폐하.”
슈트카르트 황제의 부름에 카인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여기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국왕이다.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
“예, 폐하.”
“제국의 남작으로서 프로아 대공에게 예를 갖추라.”
프로아 왕국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정식 제후국.
지크는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면서 제국의 대공(大公)이란 작위를 지니고 있었다.
반대로, 카인은 임시로나마 제국의 남작 작위를 받은 상태였다.
즉, 지크가 카인보다 한참이나 서열이 높았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를 뵙습니다.”
카인은 슈트카르트 황제의 명령에 지크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해야만 했다.
‘이런 망할.’
같은 게이머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반갑습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하하하.”
지크는 그런 카인의 속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지크와 카인이 서로 안면을 트자 슈트카르트 황제가 입을 열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예, 폐하.”
“전에 짐이 이야기한 것, 기억하나?”
“어떤….”
“코랄 종족의 세계로 쳐들어간다는 계획 말이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 카인 국왕이 코랄인의 세계로 갈 제1차 원정대의 주역이 될 것이다.”
“아!”
지크는 그제야 슈트카르트 황제와 카인 간에 어떠한 거래가 이루어졌는지를 깨달았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제1차 원정대를 이끌고 코랄인의 행성을 침공하는 개척자의 임무를 카인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 대신 카인과 알카사스 왕국을 살려준 것이고.
‘와.’
지크는 카인을 힐끔 돌아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사람 이제 X됐네.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러나. 어휴.’
지크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카인에게 맡긴 임무의 막중함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 같으면 왕국 따위 안 세우고 말지. 어휴.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쯧쯧쯧.’
코랄인의 기술력과 전투력을 떠올려 보면, 이 임무가 얼마나 고될지 안 봐도 대충 견적이 나왔다.
왜?
코랄 침공은 게임 BNW의 새로운 최종 콘텐츠가 될 테니까.
현재의 최종 콘텐츠인 이 북쪽에 단 하나 남은 상황.
코랄인들의 세계는 을 이어 새로운 만렙 던전이 될 게 분명했다.
문제는 새로운 최종 콘텐츠가 열리면, 던전을 처음으로 개척하는 선발대가 필연적으로 개고생을 하기 마련이란 점이었다.
더 강력한 몬스터들.
더 악랄한 패턴.
그리고 낯선 환경으로 인한 전술적인 불리함.
기타 등등.
신규 던전을 개척한다는 건 숱한 죽음, 장비 파괴, 엄청난 양의 포션 소모, 그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감수해야 했다.
‘어휴. 나 같으면 억만금을 줘도 안 한다.’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카인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앞으로 카인이 겪어야 할 고통을 알았기에, 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폐, 폐하?”
카인은 지크와 슈트카르트 황제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 뭔가 잘못되었단 걸 느꼈는지 꽤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인은 단순히 반란군의 남은 세력을 소탕하는 임무를 맡게 된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인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대답했다.
“코랄 종족을 아나?”
“예, 폐하. 어렴풋이나마 얘기는 들었사옵니다만, 실제로 본 적은 없사옵니다.”
아직 코랄인의 존재는 이번 마우레키온 제국의 내전에 참가했던 몇몇 게이머들 사이에만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카인도 풍문으로나마 코랄인들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그들이 짐이 말했던 반란군의 잔존 세력이다.”
“…….”
“넌 앞으로 그 코랄인의 세계로 원정 가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이런 X발!’
카인은 순간 쌍욕이 튀어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야만 했다.
카인 역시도 슈트카르트 황제가 자신에게 뭘 시키려는지, 앞으로 얼마만큼의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 할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는 제1차 원정군의 지휘관으로서, 모험가들과 너의 군대를 이끌고 코랄 세계를 침공하게 될 것이다.”
“……!”
“코랄 침공의 선봉장이 되어 전진 기지를 구축하고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짐이 너에게 맡기는 임무다.”
카인은 그제야 슈트카르트 황제가 자신에게 똥을 던졌단 사실을 깨닫고 그만 멘붕이 와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네가 거점을 확보하면, 여기 이 지크프리트 국왕이 원정군 전체를 지휘하게 될 것이고.”
슈트카르트 황제가 덧붙이자 카인은 그만 죽고 싶어졌다.
‘내가 힘들게 신규 던전을 개척하면 저 망할 자식이 기어 와서 이래라저래라한다는 거잖아? 이게 말이 돼?’
카인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티를 내지는 못했다.
티를 냈다간 당장에 목이 날아가고 알카사스 왕국이 잿더미가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카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슈트카르트 황제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게 전부였다.
“임무… 반드시 완수하겠나이다.”
“좋군.”
슈트카르트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카인에게 말했다.
“인제 그만 물러가도록 하라.”
“예, 폐하.”
그렇게 카인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퀘스트를 받은 뒤 슈트카르트 황제의 집무실에서 쫓겨나야 했다.
딱 거기까지.
카인으로서는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거지 같은 내용의, 심지어 딱히 이렇다 할 보상도 없는 퀘스트를 강제로 부여받는 게 전부였다.
***
카인이 쫓겨난 후.
“용맹한 군주로군. 아니 그런가?”
슈트카르트 황제가 웃으면서 지크에게 물었다.
‘노, 놀리는 거 같은데?’
지크는 그런 슈트카르트 황제의 미소가 짓궂다고 생각했다.
이건 다분히 의도적인 거였다.
괘씸죄라고나 할까?
자진 납세를 하러 왔으니 용서해 주기는 하되, 감당하기 힘든 퀘스트를 줘서 카인에게 고통을 주겠단 의도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대에게 맡기기는 너무 고된 임무였다. 굳이 이거 말고도 그대는 이 세계를 지켜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나?”
“망극하옵니다.”
“그대는 그대의 싸움을 해라. 짐은 코랄인들의 침공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켜 내겠다.”
다 각자의 싸움이 있는 법.
지크는 천계의 침공을 저지하고, 슈트카르트는 코랄인의 침공을 저지한다.
훌륭한 역할 분담이었다.
“아, 그리고.”
“예, 폐하.”
“오늘이 그대의 장인어른이신 로엔그린 전하의 생신이라고 하던데?”
“헉?”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로엔그린의 생일까지 알고 있단 사실에 놀랐다.
또한, 슈트카르트 황제가 로엔그린을 높여 부르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지크는 잘 몰랐지만, 인간 군주 중 최강자인 슈트카르트 황제는 엘프들의 왕인 로엔그린을 존중하고 있었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다. 짐 때문에 장인어른의 생신을 축하드리지도 못하는 사위가 되었구나.”
“괜찮습니다.”
“아니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짐이 그대에게 여러모로 미안한 날이다. 더불어 로엔그린 전하께도 짐이 송구하게 되었구나.”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어째서 라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 행사 때문에 로엔그린의 생일잔치가 참석하지 못한 것 하나만 미안해하면 될 일인데, 굳이 여러모로 미안하다고 할 이유가 있을까?
‘또 뭐가 있나?’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자신에게 추가로 미안할 일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짐이 로엔그린 전하께 선물을 보냈다.”
“예?!”
“부디 로엔그린 전하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군.”
슈트카르트 황제는 지크의 장인어른까지 챙기는 세심한 배려를 보였다.
‘뭐, 뭐지?!’
지크는 순간 일이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본능이었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잘해줘서 좋기는 한데, 어째 좀 찜찜했다.
특히 저 미소.
‘왜 저렇게 웃어?!’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전에는 보여주지 않던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았다.
오싹!
그러자 등 뒤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뭐, 뭔가 있긴 있는데… 뭐지? 뭘까?’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 흉계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걸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늘 말을 아꼈고, 필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마치 카인에게 했던 그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지크가 그 흉계가 무엇인지 알게 될 무렵이면 이미 코앞에 닥쳐온 뒤일 게 분명했다.
“참.”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에게 넌지시 말했다.
“오늘 밤 연회에 가면무도회가 있을 예정이다. 알고 있나?”
“예? 처, 처음 듣습니다만.”
“가면은 준비해 두도록. 가면무도회이니 가면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겠나.”
“예, 폐하.”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도대체 뭔 꿍꿍이야?’
속으로는 막연한 불안감을 품은 채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