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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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카인은 슈트카르트 황제의 집무실을 나선 후 한참이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개 같은….”
카인은 맘 같아선 쌍욕을 내뱉고 고래고래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다.
반란군의 남은 세력을 소탕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새로운 최종 콘텐츠를 개척하는 일이라니?
이쯤 되면 엿을 먹었단 생각밖엔 들지 않을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황제 새끼. NPC 주제에 감히 게이머인 나를 엿 먹여?’
카인은 슈트 카스트 황제에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생각 같아서는 슈트 카스트 황제의 목을 뎅겅 썰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고 보자.’
카인은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이를 갈았다.
‘내 왕국이 무럭무럭 크면… 언젠가 제국을 무너뜨리고 네놈의 모가지를 뎅겅….’
바로 그때였다.
퍽!
카인은 모퉁이를 돌던 중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꺅!”
문제는 그 누군가가 작은 체구를 지닌 소녀였단 점이었다.
“아야….”
그녀는 카인과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파했다.
“눈은 뒀다가 어디에 쓰지? 똑바로 보고 다녀라.”
카인은 안 그래도 심기가 매우 불편했으므로, 엉덩방아를 찧은 소녀에게 싸늘히 내뱉었다.
입장이 입장인지라 몸가짐을 극히 조심해야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 화가 나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뭐어?”
그러자 소녀의 두 눈에 쌍심지가 돋았다.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소녀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카인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귀도 먹었나?”
카인이 되물었다.
“눈 뒀다가 어디에 쓰냐고 물었다.”
“호호호!”
그러자 소녀가 웃었다.
“너 미쳤구나?”
“뭐?”
가면 속 카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내가 미쳐?”
“응.”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헛소리 지껄일 시간 있으면, 가던 길이나 마저 가라.”
카인은 그 말을 남기고는 소녀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휘청!
소녀가 자신의 곁을 지나치는 카인의 다리를 걸었기 때문이다.
우당탕!
덕분에 카인은 걷다 말고 바닥에 볼썽사납게 엎어지고 말았다.
“깔깔깔!”
소녀가 그런 카인을 가리키며 웃었다.
“눈 뒀다가 어디다 쓰니? 깔깔깔!”
“이 망할 년이….”
카인은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뒈지고 싶어서 환장….”
그 순간.
“아이린 전하!”
“전하! 여기서 무엇 하시옵니까?”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가실 시간이옵니다!”
한 무리의 시종, 시녀들이 나타나 소녀를 에워쌌다.
“……?”
카인은 순간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 잠시 멍을 때리다가 으로 소녀를 비추어 보았다.
[아이린 폰 포스테리오레]마우레키온 제국의 선황의 딸이자 슈트카르트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이복 여동생.
슈트카르트 황제와 더불어 마지막 남은 황가(皇家)의 일원이다.
그 성질이 매우 더러우므로, 마주치기 전에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히, 히익?!’
소녀의 정체를 확인한 카인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하필 성질을 부린 상대가 슈트카르트 황제가 특별히 총애하는 이복 여동생이었을 줄이야?
길 가다 똥을 밟아도 유분수지, 이 정도면 똥통에 빠진 격이었다.
카인으로서는 아주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
“아~ 안 그래도 황제 폐하께 가려고 했어~ 근데 이 자식이랑 그만 부딪혀 버렸지 뭐야?”
아이린이 카인을 가리키며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네 이노오옴!”
그러자 나이를 지긋이 먹은 중년의 시녀가 카인을 향해 기백 있는 호통을 내질렀다.
“어딜 감히 아이린 전하와 부딪혀 놓고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것이냐! 당장 엎드리지 못할까!”
“소, 송구합니다!”
카인은 시녀의 카리스마에 눌러 황급히 몸을 낮추었다.
“유모.”
그러자 아이린이 그 중년의 시녀에게 매달리며 칭얼대듯 말했다.
유모라 불리는 걸 보니, 이 중년의 시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린을 보필해온 근본 있는 인물임이 분명했다.
“쟤가 나한테 눈 뒀다가 어디 쓰냐고 그러던데?”
“그게 정말이옵니까?”
“귀도 먹었냐고 물어보던데? 헛소리 지껄일 시간에 가던 길이나 마저 가라고도 했어. 그리고 마지막에는 뭐랬더라….”
아이린이 악귀와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년?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냐고 그랬던가?”
그 순간.
“네 이노오오오오옴-!!!”
시녀의 입에서 그야말로 벼락과 같은 사자후가 터져 나와 카인의 귀청을 찢어발겼다.
“네놈이 그러고도 목숨을 부지할 줄 알았더냐!”
“주,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카인은 혼이 달아나버릴 정도로 놀라고, 또 겁을 먹어서 황급히 머리통을 바닥에 찍었다.
“네놈을 당장….”
시녀가 카인에게 뭔가 벌-무시무시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을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유모. 잠깐만.”
아이린이 히죽 웃으며 시녀를 말렸다.
“그냥 용서해 주자.”
“예? 하오나 전하. 이자는 감히 전하께 불경을 저지른 대역죄인이옵니다. 마땅히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몰라서 그랬던 거잖아.”
아이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번 한 번은 넘어가 주자.”
“저, 전하?”
유모는 아이린이 평소답지 않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자 깜짝 놀랐다.
‘마탑에서 수련하시는 동안 성질이 죽은 건가?’
유모는 아이린이 한 몇 년 정도 못 본 사이에 개과천선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착각에 불과했다.
“얘.”
아이린이 활짝 웃으며 납작 엎드린 카인의 앞에 다가섰다.
“예, 아이린 전하.”
“잘못했지?”
“무, 물론이옵니다!”
“그럼 핥아.”
아이린이 제 발을 카인의 코앞에 슥 들이밀더니 말했다.
“예?”
“핥으라고.”
“……!”
“귀 먹었니? 호호호!”
카인은 아이린이 자신의 신발을 핥을 것을 요구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칠 뻔했다.
게이머가 NPC의 신발을 혓바닥으로 핥을 일이 과연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최초로 NPC의 신발을 핥은 게이머로 기록될 게 틀림없었다.
‘그냥… 저질러 버려?’
카인은 갈등했다.
지금 당장 이 빌어먹을 계집애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버리고 싶었다.
문제는 그 다음.
솔직히, 카인은 슈트카르트 황제를 포함한 마우레키온 제국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게임 BNW가 처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일구어 놓은 모든 게 파괴되고, 결국엔 게임을 접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카인이 고민할 때였다.
“뭐 해? 핥으라니까?”
아이린의 목소리가 카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핥으면 용서해 줄게.”
“…….”
“3초 준다.”
카인은 그렇게 말하는 아이린을 슬쩍 올려다보았다가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오싹!
악귀 그 자체.
아이린의 표정이 너무나도 사악해 보여서, 분노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
그날 밤.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배려로 안에 있는 의상실을 이용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지크에게는 딱히 무도회용 예복이랄 것도 없었고, 가면무도회에서 쓸 가면도 없었기 때문이다.
“와우.”
지크는 의상실의 규모에 혀를 내둘렀다.
무슨 의상실이 프로아 왕궁만큼 컸다.
“여기서 옷을 어떻게 고르라고?”
의상실은 너무너무 컸고 옷의 종류 또한 족히 수백만 벌은 넘을 것 같았다.
게다가 무슨 의류 판매장도 아닌데 같은 디자인의 옷이 치수별로 갖춰져 있기까지 했다.
‘대충 아무거나 골라야겠다.’
지크는 이 거대한 의상실에서 옷을 살펴보고 있자니 만성 선택 장애란 무시무시한 질병(?)에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대충 얌전해 보이는 예복과 가면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디 보자….’
그때였다.
“…X발.”
지크는 의상실을 둘러보던 중 모퉁이를 돌아 나온 카인과 딱 마주쳤다.
“어?”
지크는 그런 카인이 반갑기도 하고, 또 측은하기도 해서 말을 걸어보았다.
“카인 님 안녕하세요!”
그래도 같은 게이머랍시고 먼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카인의 대답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꺼져.”
“예?”
“걸리적거리지 말고 꺼지라고.”
“……?”
“…X발 진짜.”
카인은 그렇게 자조 섞인 쌍욕을 내뱉더니 지크를 지나쳐 F등급의 구역으로 향했다.
의상실의 모든 옷을 입을 수 있는 지크와는 다르게, 카인에게 허락된 예복들은 이곳에서 가장 원단의 질과 디자인이 떨어지는 것들뿐이었다.
“…뭐지.”
지크는 카인의 반응이 어이가 없어서 화조차 내지 못하고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작인 카인이 대공인 지크에게 꺼지라며 반말을 찍찍 해댄 것 자체가 하극상인지라, 문제를 삼으려면 얼마든지 꼬투리를 잡아 벌을 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크가 굳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카인의 머리 위에 떠 오른 칭호 임팩트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저, 저게 뭐지?’
지크는 으로 카인의 머리 위에 뜬 아이콘-신발과 혓바닥 모양을 한-을 비추어 보았다.
[굴욕의 모험가 : First lick]게이머 최초로 NPC의 신발을 핥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
NPC 신발을 핥은 내 인생이 레전드다!
•타입 : 칭호
•등급 : 레전더리
•참고 : 이 칭호는 명예롭지 못합니다!
‘엥?!’
지크가 이게 뭔가 싶어서 인상을 와락 구길 때였다.
할짝할짝!
카인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던 혓바닥 아이콘이 신발 아이콘을 핥기 시작했다.
‘서, 설마… 진짜 NPC의 신발을 핥은 건가!?’
지크는 카인의 머리 위에 떠 오른 칭호를 보고도 그 사실을 좀처럼 믿지 못했다.
지크의 상식으로는 게이머가 NPC의 신발을 핥는 장면이 쉽사리 떠올려지지 않았다.
***
‘아. 뭐 입지.’
처음 지크는 아무거나 적당한 거로 골라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옷을 고르다 보니 적당한 걸 골라 입기는커녕, 선택 장애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이거 어떻지? 아. 입어보니까 별로네. 오? 저것도 괜찮은데?’
지크는 어느새 의상실에서 여러 가지 예복들을 입었다 벗었다 아주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의상실이 워낙에 넓어서, 단순히 옷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의상실 곳곳에 탈의실과 시종들이 대기하고 있어서 옷을 갈아입을 때의 번거로움이 상당히 줄어들었단 점이었다.
하지만 옷을 고르기 시작한 지 거의 두 시간이 되도록 지크는 이거다 싶은 예복을 찾아내지 못했다.
‘아. 그냥 아까 그거 입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의상실을 훑어보던 중.
띠랑!
지크의 머리 위에 칭호가 떠 올랐다.
‘어?!’
지크는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오른 칭호의 아이콘을 보고 눈을 번쩍 떴다.
반짝반짝!
지크의 머리 위에 떠 오른 칭호 아이콘은 반쯤 열린 상자 안에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콘을 가진 칭호는 다름 아닌….
[보물 사냥꾼]보물 창고를 많이 턴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
•타입 : 칭호
•등급 : 유니크
•효과 : 우연히 보물 창고를 발견할 확률 +50%
‘뭐, 뭐지?!’
지크는 갑작스럽게 칭호가 떠오르자 매우 당황했다.
이곳은 의상실.
도저히 보물 창고가 있을 법한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때, 지크의 눈앞에 띠링! 하고 초록색 화살표가 떠올랐다.
‘어?’
지크는 칭호가 뭔가를 감지했다는 걸 깨닫고,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가 보았다.
어쩌면 이 의상실에서 뭔가 엄청난 보물을 발견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