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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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엘프 왕국 엘론델에서는 성대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로엔그린의 745번째 생일을 맞아 벌어진 축제는 그 여느 때보다 성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론델은 지난 테라모그 사건 이후 니플헤임과의 크고 작은 교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덕분에 의 전체 면적의 약 70퍼센트를 장악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니플헤임은 전력의 약화로 인해 몇 개월 전부터 더는 도발해오지 않았고 에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 상태였다.
게다가 이번 생일잔치에는 로엔그린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브륜힐트와 손녀 베르단디가 참석했으므로, 축제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껄껄껄! 내 사위 하나는 아주 잘 두었지! 아니 그런가?”
“예! 전하!”
“아주 훌륭한 사위야! 자네들도 이런 사위를 얻어야 해! 껄껄껄껄!”
로엔그린은 지크가 선물로 보낸 에 기분이 좋아져서, 사위 자랑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슈트카르트 황제가 엄청난 액수의 금은보화와 귀중품들을 보낸 터라, 로엔그린의 기분은 더더욱 좋아져 있었다.
사실 슈트카르트 황제의 선물은 일종의 합의금(?) 성격을 가진 위로금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엘론델의 모든 엘프가 먹고 마시고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그래… 마음껏 즐겨 두어라. 로엔그린….”
크레도스는 자신의 블랙 와이번에 탄 채로 저 멀리 보이는 엘론델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네 이놈 로엔그린.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으니, 네놈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게 될 것이다. 내 딸의 복수… 나아가 우리 다크 엘프들의 원한이 네놈을 벌하리라.”
크레도스는 그렇게 으르렁거린 후 블랙 와이번의 머리를 돌려 니플헤임 쪽으로 날아갔다.
마족 소환 의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
다시 마계 제7구역.
“그럼….”
형석이우스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그 크레도스라는 다크 엘프들의 왕과 계약하신다면….”
“네 원수인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의 처가를 박살 내는 것이다.”
“……!”
“그리고 네 원수의 장인인 로엔그린의 목도 따겠지.”
바로크가 웃으며 말했다.
“어디 그뿐이겠나? 크레도스라는 다크 엘프의 왕은 네 원수인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의 손에 딸을 잃었다. 그러니 크레도스의 최종적인 목표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전하!”
바로크의 말을 들은 형석이우스가 넙죽 엎드려 소리쳤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앞장서서 전하의 계약을 이행하겠습니다!”
형석이우스의 소원은 지크에게 복수하는 것.
때마침 바로크가 지크의 또 다른 원수인 크레도스와 계약을 하게 되었으니, 형석이우스로서는 매우 잘된 일이었다.
“물론이다, 형석이우스.”
바로크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내 군대를 이끄는 총사령관이 아니더냐? 마땅히 내 선봉장이 되어 계약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예! 전하!”
“게다가 나 역시도 그 빌어먹을 자식에게 복수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겠느냐?”
바로크는 형석이우스와 마찬가지로 지크에게 혼쭐이 난 적이 있어서, 안 그래도 이를 갈고 있던 참이었다.
“예! 전하! 마땅히 복수에 성공하실 것입니다!”
“물론이다! 형석이우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자식에게 어벤저를 되찾아야 한다!”
바로크는 지크가 가진 를 빼앗아 마왕에 등극할 생각이기도 했으므로, 이번 계약은 매우 중요했다.
크레도스와의 계약을 통해 마력을 올리고.
나아가 지크에게 복수하고.
결국에는 를 손에 넣어 마왕에 등극한다.
일석삼조.
바로크의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를 잡는 격인 것이다.
“그럼 계약은 언제 하십니까?”
몸이 달아오른 형석이우스가 바로크에게 물었다.
“아직 소환 마법진의 에너지가 좀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꾸준히 시도는 하고 있으니 조만간 크레도스가 날 소환해낼….”
그 순간.
스으으!
바로크의 발밑에 마법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그러자 형석이우스와 바로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마법진은 계약자가 마족을 불러낼 때 떠오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크레도스가 나를 소환해내는 마법진을 완성하였구나!”
바로크가 환한 빛에 휩싸인 채 소리쳤다.
“감축드립니다! 전하!”
“형석이우스! 기다리고 있어라! 내 금방 너를 부를 것이다!”
“예! 전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형석이우스가 눈을 빛냈다.
‘한태성. 흐흐. 기다려라. 네놈의 처갓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주마.’
형석이우스는 지크의 집안을 짓밟을 생각에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는 기분이었다.
***
‘아오. 진짜 바지에 지리겠네.’
멘탈이 나가버린 지크는 오금이 저려서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슥, 스윽!
지크는 화장실로 향하던 중 그랭구아르가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걸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또! 적는다! 또!”
“헉?!”
그랭구아르는 집필에 집중하던 중 지크가 을 홱! 하고 낚아채자 당황했다.
“저, 전하!”
“이 인간이 진짜.”
지크가 그랭구아르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걸 쓰겠다고? 엉? 또 뭐라고 썼어! 뭐라고 썼냐고!”
지크는 그랭구아르에게 빽!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을 읽어보았다.
왕과 아이린 황녀의 춤사위는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오늘 밤 가면무도회의 주인공은 왕과 아이린 황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중략)
이토록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있을까?
(중략)
하나 왕께서는 장인어른의 생일잔치에도 참석하지 아니하시고 가문 무도회에 참석하시어 낯선 여인과 음주가무를 즐기셨다.
이렇듯 왕비와 공주를 뒤로하고 아이린 황녀와 정(情)을 통하신 왕의 행실이란 참으로 부도덕하고 지조가 없다고 평가ㅎ….
“야 이 미친놈아!”
지크는 그랭구아르가 에 적어놓은 내용을 보고 그만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랭구아르에게 날아차기를 날렸다.
“컥!”
그랭구아르는 지크의 날아 차기를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얻어맞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이 인간이 누굴 죽이려고 아주.”
지크는 쓰러진 그랭구아르의 뒷덜미를 움켜쥔 채 질질 끌고 갔다.
“저, 전하! 크윽! 사관의 임무는 군주조차 침범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옵니다! 참된 군주는 무릇 사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
“폭군한텐 그딴 거 없으니까 닥치세요.”
“저, 전하!”
“따라와.”
그렇게 지크는 그랭구아르를 질질 끌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좋은 말로 할 때 지웁시다.”
“그럴 순 없습니다.”
“지우라고.”
“소신의 목을 치소서.”
그러나 그랭구아르는 지크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
지크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그랭구아르에게 말했다.
“그러시겠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뭐, 그럽시다.”
지크가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말했다.
“대신 한 6개월쯤 유배 가세요.”
“예…?”
“대신 유배 기간 내내 감봉에, 저작권료 역시 몰수입니다.”
“헉!”
그랭구아르가 지크의 협박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감봉에 저작권료 몰수를 당한다?
그건 사실상의 사형이었다.
왜냐하면, 그랭구아르는 이번에 구입한 초호화 저택과 개인 비행선의 할부금을 내야 해서 매달 들어가는 고정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만약 지크가 그랭구아르의 돈줄을 틀어막는다면?
그랭구아르의 저택과 비행선에는 빨간딱지가 붙을 테고, 신용 불량자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게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연체 이자로 인해 더 많은 빚을 지게 될 게 분명했다.
“저, 전하! 제발 그것만은….”
“지워.”
지크가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그랭구아르에게 명령했다.
“빚쟁이 되기 싫으면.”
“하, 하오나….”
“아니.”
지크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누군 좋아서 지금 저 천하의 개망나니랑 놀아난답니까? 예? 이게 다 슈트카르트 황제의….”
지크가 자신의 심정과 처지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아!”
그랭구아르는 그제야 지크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알아들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전하, 소신이 그만 실수한 것 같사옵니다.”
“그렇죠?”
“예, 전하.”
“이 부분은 지우든지 순화하시든지 어떻게 잘 좀 합시다. 예? 제 입장도 들어 보셔야죠.”
“그러하옵니다.”
그랭구아르는 지크의 설명을 듣고 그 곤란한 처지를 이해했기에, 기존의 기록을 수정하기로 했다.
“한데,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랭구아르가 지크에게 물었다.
“어쩌긴 뭘 어째요.”
지크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거,절해야죠.”
“예?! 하, 하오나….”
“정치적으로는 당연히 수락하는 게 맞는데, 전 그럴 생각 없습니다. 불이익을 받더라도,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미운털이 박히더라도 제 생각은 변하지 않아요.”
“전하….”
“물론 슈트카르트 황제가 극대노해서 프로아 왕국에 쳐들어오겠다고 하면… 그땐 저 자신을 희생하는 수밖에는 없겠죠. 나는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니까. 저 하나 희생해서 우리 백성들이 평화롭게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면 말이죠.”
제아무리 근무 태만이 주특기인 지크였지만, 그래도 일국의 왕으로서 최소한의 책임 의식은 있었다.
“전하….”
그랭구아르는 지크의 말을 듣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좋아. 넘어왔어.’
지크는 그런 그랭구아르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풉. 희생은 무슨. 내 인생, 내 가족 하나 마음대로 못 하고 휘둘리는 인간이 어떻게 왕국을 통치할 수 있겠어? 결국, 강해지면 그만이야. 슈트카르트 황제가 그 어떤 압박도 넣을 수 없도록 강해져 버리면 돼. 그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거절해 버리면 되지. 흐흐흐!’
사실 지크는 이번에 마우레키온 제국의 저력을 확인하고 한껏 자극을 받은 상태였다.
세계 최강대국의 면모를 보고 주눅이 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강함과 프로아 왕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의지를 더더욱 불태웠다.
그래서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단 1도 끌려다니지 않을 생각이었다.
슈트카르트 황제의 마음이 제아무리 선의라고는 해도, 싫은 건 싫었다.
‘결국, 나 스스로 강해지는 게 답이야. 사부님 말씀이 옳아. 강하면 모든 게 자연스럽게 해결돼.’
지크는 만고불변의 진리와 같은 사부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
설마, 그런 지크의 속을 간파했기 때문일까?
슈트카르트 황제는 연회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지크에게 그 어떤 압박이 될 만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마치 지크가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으으. 이 노련한 인간 같으니.’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정치력이 만렙에 가깝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지크가 거절할 구실을 원천 봉쇄하려고 정략결혼이란 말 자체를 일절 꺼내지 않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린.”
“예, 폐하.”
“이제 마법 수련도 끝났으니 황가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제 몫을 해야 할 것이다.”
“네, 폐하.”
“이에 짐은 너를 프로아 왕국에 파견할 육군 제8군단의 군단장이자 마우레키온-프로아 연합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할 생각이다.”
아이린을 지크의 옆에 토템처럼 박아놓겠단 의도였다.
“성극이 망극하옵니다.”
그러자 아이린은 슈트카르트 황제의 명령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생에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한 남자의 근처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매가 둘 다 능구렁이야?!’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아이린 황녀 남매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에 그만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먼저 말을 꺼내자니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 같았고, 좀 뜬금없는 구석도 있었다.
‘아오. 당했다.’
덕분에 지크는 자신이 하려고 했던 말, 그러니까 아이린과 정략결혼 하지 않겠단 말을 꺼내 볼 수조차 없었다.
‘아. 빨리 집에 가고 싶….’
그때였다.
“전하.”
프로아 왕국 소속의 기사가 호다닥! 지크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비상사태입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