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21
920
“예?”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상사태라뇨?”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지크는 기사의 보고를 받고 슈트카르트 황제를 돌아보았다.
“폐하.”
“무슨 일인가?”
“본국에서 급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잠시 자리를 떠도 괜찮겠습니까?”
“물ㄹ….”
그때였다.
“폐하.”
마우레키온 제국의 신하 하나가 슈트카르트 황제의 곁에 접근해 무어라 속삭였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예, 폐하.”
“어서 가보도록.”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지크는 그렇게 말한 후 기사에게 보고를 들으려 했다.
하지만 슈트카르트 황제의 말뜻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 오늘 밤엔 돌아오기 힘들 테니, 어서 가봐라.”
“……?”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것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지만, 우선은 자리를 떠나 기사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전하, 비상사태입니다.”
“무슨 일이죠?”
“다크 엘프 왕국 니플헤임이 엘론델을 급습했습니다.”
“……!”
“현재 엘론델의 수도가 함락당했단 보고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가죠.”
지크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비상사태였다.
엘론델이 함락 당했다?
그렇다는 말은, 생일잔치에 참석했던 로엔그린과 브륜힐트와 베르단디가 위험에 처했단 이야기였다.
생사를 알 수가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죽거나 생포될 수도 있었다.
‘크레도스. 이 망할 자식. 넌 뒈졌어. 내 가족들 털끝 하나라도 다치면, 가만히 안 둘 거야.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린다.’
워프 게이트로 달려가는 지크의 질주는 그 여느 때보다 빨랐다.
한편, 슈트카르트 황제는 정보국으로부터 올라온 보고를 듣고 제국의 군대를 출전시킬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의 처가에 문제가 생긴 것 같군.”
“폐하.”
나이델베르크 공작이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건의했다.
“불멸의 무적함대를 보내주심이 어떻겠사옵니까?”
“나 역시 그럴 생각이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짐의 매제의 처갓집에 난리가 났는데,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일 테지.”
“예, 폐하.”
“불멸의 무적함대를….”
그때였다.
“폐하.”
정보국 요원이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급히 보고드릴 사안이 있사옵니다.”
“무엇인가?”
“북부에서 코랄인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고 하옵니다.”
“뭐라?”
슈트카르트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갓 반란을 진압하고 승전을 기념하고 있는데, 코랄인이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니?
“그들이 말했던 제2차 원정대의 침공인 것인가?”
“그런 것 같사옵니다.”
“제국군을 움직여라. 단, 축제는 멈추지 마라. 동요하는 기색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예, 폐하.”
“그리고….”
슈트카르트 황제가 덧붙였다.
“불멸의 무적함대를 급파하라.”
그건 슈트카르트 황제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크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코랄인의 제2차 원정대가 침공해온 이상 병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슈트카르트 황제가 마냥 지크를 외면한 건 아니었다.
“아이린.”
슈트카르트 황제가 자신의 이복 여동생을 돌아보았다.
“네, 폐하.”
“지금 당장 제8군단을 이끌고 엘프 왕국 엘론델로 가서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국왕을 지원해라.”
“황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아이린은 군말 없이 슈트카르트 황제의 명령을 받들었다.
생에 처음으로 자신을 설레게 만든 남자를 도와주는 일인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착하구나, 아이린.”
슈트카르트 황제는 그런 아이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수련을 끝마치자마자 임무에 투입되는 것인데, 불평 한마디 없구나.”
“별말씀을요.”
“일단 가라. 상황이 아주 급해 보이는구나.”
“예, 폐하.”
아이린은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예를 올리고는 즉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한시도….”
슈트카르트 황제는 지크와 아이린을 모두 떠나보낸 후 혼잣말했다.
“바람 잘 날이 없구나.”
슈트카르트 황제는 문득 밀려드는 피로감에 얼굴을 감쌌다.
***
한편, 엘프 왕국 엘론델의 수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모조리 죽여라!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오늘이 엘론델 최후의 날이 되어야 한다!”
크레도스는 바로크와의 계약으로 인해 그야말로 엄청난 무력을 뽐내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크레도스뿐만이 아니었다.
“크흐흐!”
“뒈져라! 엘프들이여!”
“우리 다크 엘프들의 시대가 왔노라!”
다크 엘프 왕국인 니플헤임의 군대 역시 미쳐 날뛰며 엘론델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무차별적으로 도륙 내었다.
엘론델의 군대는 그런 니플헤임 군대의 기습 공격에 맞서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왜?
그들의 적은 크레도스가 이끄는 니플헤임의 군대만이 아니었다.
최상급 마족이자 마왕의 아들인 바로크는 왕족의 고유 권능으로 자신의 권속들을 중간계로 소환해내는 게 가능했다.
“나와라! 나의 권속들이여! 나의 군대여! 저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바로크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마계 제7구역에 소속된 1개 사단 규모의 병력이 나타나 엘론델의 군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라. 마계 제7군단의 전사들이여. 적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총사령관인 형석이우스는 자신의 능력인 광역 버프를 이용해 아군들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증폭시켜 주었다.
‘쩝. 아쉽군. 고작 1개 사단이라니. 군단 전체가 강림했다면 좋았을 것을.’
계약에 의해 소환된 바로크는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한계로 인해 바로크는 1개 사단밖에 소환해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일단은 만족하기로 했다.
1개 사단만 가지고도 엘론델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여라!”
“엘프들의 영혼을 빼앗아라!”
“마계 제7구역 만세!”
“만세!”
무려 450년 만에 중간계에 강림한 마족 전사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며 엘론델의 기사들과 장병들을 쓸어버렸다.
“크하하하! 좋구나! 좋아! 다 죽여라! 모조리 죽이란 말이다!”
환영의 형태를 한 바로크는 크레도스의 곁을 맴돌며 죽은 엘프들의 영혼을 수확했다.
우웅!
그럴 때마다 바로크의 마력이 쭉쭉 올라갔고, 힘은 더더욱 강해졌다.
“크으으! 이 힘… 흐흐흐!”
바로크는 실시간으로 강해지는 자신에게 완전히 도취하였다.
‘흐흐흐! 이대로라면 네놈의 육체도 이제 곧 나의 것이 될 것이다! 크흐흐흐!’
바로크는 자신의 곁에서 미친 듯 도(刀)를 휘두르는 크레도스를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크레도스는 바로크로부터 받은 힘으로 인해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마치 마약과도 같은 힘이었다.
바로크로부터 전해 받는 힘이 더욱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크레도스는 육체의 통제권을 점점 잃어갈 터였다.
그렇게 되면?
‘흐흐! 강림이다!’
바로크가 크레도스의 육체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면, 마계에 있는 본체의 힘을 더 많이 끌어다 쓰는 게 가능해진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크레도스의 육체라면, 바로크의 힘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언젠가는 마계에 있는 본신 자체가 온전히 중간계로 넘어올 수도 있을 터였다.
한편, 크레도스는 로엔그린 일가(一家)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로엔그린! 로엔그린과 그 딸년을 찾아라! 손녀도 찾아야 한다!”
지금의 크레도스에게는 엘프 왕국 엘론델을 멸망시키는 것도 멸망시키는 것이지만, 개인적인 복수가 더 중요했다.
***
같은 시각.
“헉! 헉헉!”
로엔그린은 베르단디를 안아 든 브륜힐트, 그리고 근위기사단과 함께 을 내달리고 있었다.
“잡아라!”
“로엔그린을 찾아야 한다!”
숲 곳곳에서 로엔그린 일행을 뒤쫓는 다크 엘프 전사들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딸아!”
로엔그린은 한창 달리던 중 브륜힐트를 붙들고 말했다.
“어서 가거라! 어서!”
“아, 아바마마!”
“함께 도망쳤다간 우리 둘 다 잡히고 말 것이야! 너라도 어서 몸을 피해야 한다!”
“그럴 순 없어요! 제가 어떻게 아바마마의 곁을….”
“딸을 생각해야지!”
“……!”
“너는 홀몸이 아니다! 너의 곁엔 베르단디가 있질 않느냐! 베르단디를 지켜야 한다!”
“아, 아바마마….”
그때였다.
“할바마마아아아아아!”
베르단디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로엔그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할바마마! 같이 가셔야 하옵니다! 할바마마아아!”
“어이구, 우리 예쁜 강아지.”
로엔그린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베르단디를 꼭 안아주었다.
“아주 무섭니? 걱정 말아라. 이 할아비는 우리 예쁜 손녀를 안전하게 지켜줄 거란다.”
“할바마마! 위험하옵니다! 같이 가셔야 하옵니다!”
“껄껄!”
그러자 로엔그린이 웃으며 말했다.
“위험하기는! 이 할아비는 절대 약하지 않단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렴.”
“할바마마….”
“저 나쁜 놈들을 쳐부수고 뒤따라 갈 터이니,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알겠느냐?”
“하지만….”
“이리 오렴.”
로엔그린은 베르단디를 다시 한번 꼬옥 안아주었다.
“할아비는 금방 따라갈 터이니, 엄마 손 꼭 잡고 먼저 가렴. 알겠니?”
“할바마마….”
“어서.”
로엔그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베르단디를 안아서 브륜힐트에게 넘겨주었다.
“금방 뒤따라가마.”
“아바마마….”
브륜힐트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로엔그린이 말을 부드럽게, 또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곤 했지만, 상황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서 가라!”
로엔그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근위기사단을 이끌고 오히려 적들이 뒤쫓아 오는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바마마! 곧 아바마마를 구하러 가겠사옵니다!’
브륜힐트를 멀어지는 로엔그린과 근위기사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베르단디를 안고 뛰기 시작했다.
지금은 베르단디를 안전한 장소로 데려다 놓는 것이 최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
다급히 프로아 왕국으로 귀환한 지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총사령관 오스칼과 햄찌였다.
“전하를 뵙습니다!”
워프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스칼이 지크가 나타나 다급히 소리치며 달려왔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지크가 다짜고짜 오스칼에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상황이 너무 급해서 무어라 잡담을 나눌 겨를이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예, 전하. 엘론델로 통하는 워프 게이트가 모두 파괴된 상황입니다.”
“……!”
“일단 강철 함대와 국군 1개 군단이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고 출동 대기 중입니다.”
“지금 당장 출동하세요.”
“하오나 전하….”
오스칼이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재 우리 군이 엘론델로 이동할 방법이 없사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지크가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와 억양으로 오스칼에게 물었다.
현재 처가가 쑥대밭이 되어 가고 있고, 아내와 딸과 장인어른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군대가 이동할 방법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것이….”
오스칼이 대답했다.
“현재 엘론델로 통하는 경로에 워프를 방해하는 방해 전파가 촘촘히 깔려 있사옵니다. 데시마토 공작께서 마법사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사오나, 도무지 군을 워프시킬 방법이 없다고 하옵니다. 심지어 치천존 어르신의 조언까지 받아 주파수를 바꿔 보았으나, 잘 안 되는 모양이옵니다.”
“이유가 뭡니까?”
“현재 엘론델로 향하는 경로에 세이콘 왕국이 있사옵니다.”
세이콘 왕국이라면 나름 알아주는 강대국으로써, 프로아 왕국과 국경을 접하는 곳이었다.
“현재 세이콘 왕국에서 워프 마법의 모든 주파수를 통제하고 있사옵니다.”
“풀어달라고 해봤습니까?”
“예, 전하.”
오스칼이 대답했다.
“엘론델로 가는 주파수를 열어달라고 부탁하였사오나, 거절한다는 답변만을 들었을 뿐이옵니다.”
“이유가 뭡니까?”
“본국의 국토의 절반을 내어주면 주파수를 열어주겠단 답변이 돌아왔사옵니다.”
그 순간.
“이 새끼들이.”
지크의 입에서 험악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길막.
지금 세이콘 왕국은 프로아 왕국의 급한 사정을 알고 일부러 훼방을 놓아 막대한 이득을 챙기려는 게 분명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