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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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는 오늘부터 1일이라는 아이린의 대답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뭐, 뭐가 1일이란 겁니까?”
“당신이랑 나랑 오늘부터 1일….”
아이린은 지크의 물음에 무심코 대답했다가 입을 꽉 다물었다.
“그, 그게 아니라!”
“……?”
“오늘부터! 어? 내 임무 시작이란 거야! 내 말은!”
아이린이 살짝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황제 폐하께서! 오늘부터! 임무를 시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1일인 거야! 그래서!”
“아.”
지크는 아이린의 말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제국으로 복귀하시자마자 파견 근무를 하시다니. 고단하시겠습니다.”
“벼, 별거 아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잠시 휴가라도 다녀오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여….”
“나, 난 괜찮아.”
아이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프로아 왕국에서 쉬지 뭐.”
“…….”
“뭘 해도 제국보다는 편할 것 같거든. 사실 제국 분위기가 좀 숨이 막히기도 하고.”
“하하… 하하하….”
“그러니까 가자.”
아이린이 지크에게 말했다.
“난 파견 온 군대의 총사령관이니까 왕궁에 머물러도 되지?”
“그, 그건….”
지크는 아이린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린이 프로아 왕궁에 머문다?
‘히, 히익?!’
그건 지크의 입장에서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평소 아이린의 평판이 어떤지를 생각해 보면, 참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린이 프로아 왕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왕궁 사람들에게 갑질을 일삼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끈지끈!
지크는 불현듯 몰려오는 두통에 고통스러워했다.
‘으! 으으으!’
아이린을 프로아 왕궁에 데려갔다간 무슨 꼴이 벌어질지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뭐 해? 안내해 줘.”
“지, 진짜 바로 가십니까?”
“응.”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잖아. 오늘부터 1일이라고.”
“하하하….”
지크는 왠지 아이린의 말이 굉장히 중의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린은 슈트카르트 황제가 프로아 왕국에 파견한 제8군단의 군단장이었고, 파견군의 총사령관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프로아 왕궁으로 모시는 게 정상이었다.
아이린은 프로아 왕국과 마우레키온 제국의 외교적 관계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으므로,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가자.”
“…예.”
결국, 지크는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아이린을 프로아 왕궁으로 데려가게 되었다.
***
지크는 프로아 왕궁에 도착한 직후 브륜힐트와 베르단디가 있는 침실로 향했다.
탈진해 쓰러진 브륜힐트를 직접 돌보고, 베르단디도 직접 달래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내 방은 어디야?”
아이린이 지크에게 물었다.
“예, 전하.”
지크는 시종장을 불러내어 아이린에게 소개해 주었다.
“여기 시종장이 전하를 모실 것입니다. 시종장님?”
“예, 전하.”
“아이린 폰 포스테리오레 전하이십니다.”
“예…?”
“일체의 불편함도 느끼시지 못하도록, 극진히 모시세요.”
그 순간.
‘사표… 쓸까?’
시종장은 자신이 모시게 된 상대가 그 유명한 아이린 폰 포스테리오레란 사실에 품속에 있던 사표를 지크에게 내던질 뻔했다.
사실 프로아 왕국의 시종장쯤 되면 사회적으로도 엄청나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현실로 따지면 대기업 대표이사급 연봉 정도는 받았다.
권력 또한 꽤 셌다.
왕족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신분이니만큼, 영향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복지 수준 또한 엄청나서, 프로아 왕국 내 어지간한 시설들은 대부분 무료로 이용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아이린 폰 포스테리오레란 이름은 그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휴.’
지크는 시종장의 얼굴에 내적 갈등에 따른 표정 변화가 떠오르자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아이린이 그간 얼마나 악명을 떨쳤으면 충직한 시종장마저도 저러나 싶었다.
“아이린 전하.”
지크는 그런 시종장을 위해 아이린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건 시종장뿐만이 아닌 모든 왕실 식구들을 위해서였다.
지크는 자기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이쪽으로.”
“으응?”
“그게 말입니다….”
지크가 아이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쿵쾅쿵쾅!
그러자 아이린의 심장이 또다시 두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지크의 속삭임이 귓가를 간지럽히고, 숨결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하.”
“으, 으응?”
“제가 드래곤들과 친분이 있는 거 아시죠?”
“그, 그렇지. 알지.”
아이린도 에서 지크가 드래곤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보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명예 드래곤이라며?”
“예, 전하.”
“근데 그게 뭐?”
“사실 말입니다….”
지크가 아이린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희 왕궁에는 드래곤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뭐?!”
아이린은 깜짝 놀랐다.
이 코딱지만 한 약소국의 왕궁-아이린의 입장에서 보면-에 드래곤들이 서식한다는 건 좀처럼 믿기 힘든 말이었다.
하지만 안 믿을 수도 없는 게, 지크는 명예 드래곤인 데다가 드래곤 로드와의 친분이 매우 두터웠다.
프로아 왕궁에 드래곤이 여러 마리 서식한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그, 그게 정말이야?”
“예, 전하.”
“맙소사….”
“그러니까 자칫 드래곤들에게 밉보이시면 곤란해지실 수 있습니다.”
“응. 알겠어. 조심할게.”
제아무리 천하의 개망나니라도 드래곤들 앞에서는 겸손해지기 마련이었다.
중간계 최강의 지적 생명체인 드래곤들에게는 마우레키온 제국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테니까.
“참. 치천존 어르신께서도 여기 계십니다.”
“뭐?!”
아이린은 드래곤에 대해 얘기할 때보다 더 놀랐다.
“사조님께서?”
사실 아이린의 사부는 치천존의 제자였다.
위대한 아크 메이지이자 사부의 사부인 치천존까지도 프로아 왕궁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크는 아이린에게 사부, 불카누스, 도제 베텔규스 등 주의할 인물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세상에…!’
아이린은 지크의 이야기를 듣고 프로아 왕국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곳이란 걸 깨달았다.
비록 국력의 전체 규모는 약했지만, 온갖 괴물들이 득실대는 곳이 바로 프로아 왕국이었다.
“…그러니까 전하 개인의 신상을 위해서라도 주의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크가 그렇게 아이린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면서도 아이린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끔, 적당한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저는 전하께서 다치시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럼 제 마음이 불편할 것 같으니까요.”
“저, 정말…?”
아이린은 지크의 말뜻을 단단히 오해했다.
사실 지크는 라고 말한 것이었지만, 아이린은 라고 알아들었다.
“아, 알겠어. 그럼 얌전히 있을게.”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고마울 것까진 없고. 벼, 별로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까.”
아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린 전하께는 너무나도 누추한 곳이지만,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고, 고마워….”
“시종장?”
지크가 시종장을 돌아보았다.
“예, 전하.”
“아이린 전하를 모시세요.”
지크는 그렇게 명령하면서 시종장에게 눈짓으로 이야기했다.
‘이만하면 됐죠?’
‘마, 망극하옵니다.’
시종장 역시 그런 지크의 눈빛을 읽어낸 것인지, 내던지려던 사표를 다시 품속에 갈무리하고 차분히 명령을 따랐다.
지크가 이렇게까지 아이린에게 겁을 주어 놓았으니, 일단은 임무를 수행해볼 만했다.
“그럼, 푹 쉬시지요.”
“으응.”
그렇게 아이린은 대륙 최고의 개망나니란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다소곳한 자세로 시종장을 뒤따랐다.
‘혹시 사고 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아이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크의 표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
같은 시각.
메타트론은 한때 대천사장이었던 미카엘, 심복인 케이오스, 그리고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와 함께 대륙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었다.
여행은 편했다.
여관이 있으면 여관에서 묵고, 호텔이 있으면 호텔에서 묵었다.
하지만 오늘은 근처에 민가나 도시가 없었다.
그래서 숲속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운 뒤 밤을 보내기로 했다.
화륵, 화르륵!
메타트론은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 앞에 앉아 마시멜로를 구우며 앉아 있었다.
메타트론은 이렇듯 불침번을 설 때면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주군.”
자다 깬 케이오스가 텐트에서 나와 메타트론에게 말을 건넸다.
“아, 케이오스.”
메타트론이 케이오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왜 좀 더 자지 않고 벌써 일어났느냐?”
“어차피 한 시간 후에 주군과 교대해야 하지 아닙니까? 그래서 그냥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렇군.”
“그나저나 주군.”
케이오스가 메타트론에게 말했다.
“오늘따라 왜 그리 얼굴이 어두우십니까?”
“음?”
메타트론은 케이오스의 말에 살짝 놀랐다.
“내 얼굴이 안 좋은가?”
“그렇습니다, 주군.”
“하하….”
메타트론이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케이오스 네 눈은 속이지 못하겠구나.”
“예?”
“오늘따라 아버님 생각이 좀 나더구나.”
“주군….”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
그렇게 말하는 메타트론의 목소리에는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타트론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이그나토에게 매일같이 혼쭐이 나는 삶을 살아왔다.
이그나토는 첫째 아들인 메타트론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래서 늘 메타트론을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메타트론은 늘 허둥대며 실수를 연발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이그나토의 불호령이 떨어졌단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그 결과.
[네놈 같은 머저리는 나의 뒤를 이어 마왕이 될 수 없다! 오늘부로 왕세자 자리를 박탈하겠다!]메타트론은 동생 바로크에게 왕세자 자리를 빼앗겼고, 그 길로 몰락해 버렸다.
이후 메타트론은 마계 제7구역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왕자 대접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여 살아가야만 했다.
“주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왕 전하께선 아직 정정하실 것입니다.”
케이오스가 메타트론을 다독여 주었다.
“어쩌면 주군을 보고 싶어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건 잘 모르겠구나.”
메타트론은 케이오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너도 잘 알지 않으냐. 아버지께서는 날 좋아하지 않으신다.”
“아닙니다.”
케이오스가 고개를 저었다.
“단지 주군께 거셨던 기대가 너무 크셔서 그러셨을 뿐입니다. 마왕 전하께서는 그 누구보다 주군을 아끼십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구나.”
메타트론이 씁쓸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듣자 하니 바로크 녀석이 사고를 쳐서 심기가 불편하실 텐데. 몸도 안 좋으신 분이 역정을 내시다 쓰러지지는 않으셨을지….”
메타트론은 프로아 왕국의 전령으로부터 바로크가 일으킨 사건에 대해 뒤늦게 전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인 이그나토가 못내 걱정되었다.
“바로크 그 녀석이 아버님을 잘 모셔야 할 터인데….”
메타트론은 마족답지 않게 나름 효심이 깊었다.
물론 그런 점이 마족으로서는 감점 요인이었지만 말이다.
“그럼 잠시 마계에 다녀오시는 게 어떠십니까?”
케이오스가 메타트론에게 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