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5
094
“하나 제거.”
그렇게 혼잣말한 지크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이어 벌어진 일은 단순한 작업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 단순한 작업의 패턴은 다음과 같았다.
1. 지크가 걷는다.
2. 니들티드의 가시가 솟아오른다.
3. 지크가 그걸 피한다.
4. 지크가 땅에 창을 꽂아 넣는다.
5. 니들티드 한 마리를 제거하고 이동한다.
지크의 패턴은 무척이나 단순해서, 정말로 니들티드를 제거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뭐 하는 거지?”
“안 죽는 게 용하긴 한데… 진짜 니들티드들을 제거하고 있는 게 맞기는 한 건가?”
“뭐야 도대체.”
실제로, NPC인 병사들은 지크가 뭘 하는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험가들은 달랐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파티 플레이 보너스 +3%]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파티 플레이 보너스 +3%]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파티 플레이 보너스 +3%]모험가들에게는 니들티드가 죽을 때마다 경험치 획득 알림창이 떠올랐기에, 지크가 진짜로 땅속에 숨은 몬스터를 제거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야, 저거. 피지컬이야?”
“피지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피하는데….”
“미리 아는 건가? 딱히 탐지 마법을 쓴 것 같지는 않은데….”
물론 모험가들이라고 해서 지크가 어떻게 니들티드들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는지 정확하게 아는 건 불가능했다.
비결은 오직 지크 본인만 알고 있었다.
***
‘이건 좀….’
처음 니들티드 밀집 지역을 맞닥뜨렸을 당시, 지크 역시도 고민을 좀 하긴 했다.
명속성 에너지를 통한 공격?
먹힐 리 없었다.
전기는 에너지 손실률이 대단히 높은 자원으로, 땅을 통과할 수 없었으니까.
이레디에이트?
흙은 방사능 에너지의 몇 안 되는 방패막이-차폐 효과-였으므로, 그것 역시도 불가능했다.
‘섣불리 들어갔다간 엉덩이 개통당하겠는데…?’
그러던 중.
‘아! 그게 있었지!’
지크는 문득 자신이 위치 선정에 매우 유리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 아이템의 이름은 이라고 했다.
위대한 오지 탐험가 ‘인자기’가 사용하던 나침반. 주변의 위협을 감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타입 : 액세서리(나침반)
•등급 : 전설
•내구도 : 3 / 5
•특수 효과 :
– 굿 포지션 : 주변의 위협을 감지해 비교적 안전한 자리를 찾게 도와줍니다.
지크가 천하제일생존대회 당시 주웠던 은, 비록 아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을 도사리고 있는 위협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아이템이었다.
‘써보자.’
지크는 위치 선정의 달인이라는 오지 탐험가 인자기의 나침반을 사용해 아쉬운 대로 탐지자 노릇을 해보기로 했다.
‘여기는 안전하고. 여기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위험하다니까… 대충 이쯤 다가가면….’
지크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쑤욱!
땅 밑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 올랐다.
‘깜짝이야!’
지크는 놀랐지만, 인자기의 나침반을 보고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니들티드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었다.
그 다음엔?
‘섬전, 제1식.’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가 전수해준 기술인 제1식을 이용, 가시가 튀어나온 땅바닥을 향해 창을 내지르면 되었다.
푸욱!
땅을 파고든 창끝으로부터 무언가 단단한 걸 파고들었다는 느낌이 전해져 온 순간.
[경험치가 올랐습니다!]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됐다!’
이에 지크는 자신의 떠올린 방법이 옳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계속해볼까?’
지크는 처음 해봤던 방법 그대로 땅속에 숨어 있는 니들티드들을 탐지하고, 공격을 오면 피하고, 땅에 창을 쑤셔 박는 일련의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86레벨 달성!]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87레벨 달성!]그에 발맞추어 지크의 경험치 역시도 쑥쑥 오르고, 레벨도 덩달아 같이 오르기 시작했다.
‘개꿀.’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대대장님.”
부관이 팔쉬룸을 향해 보고했다.
“놀랄 만한 소식입니다.”
“놀랄 만한 소식?”
팔쉬룸의 눈썹이 꿈틀댔다.
“설마 연대장님께서 시찰이라도 나오신다는 건가?”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장교가 불시에 오는 시찰이 두려운 건 대한민국 군대나 이곳 뉘르부르크 대륙 군대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
“……?”
“니들티드 밀집 지역으로 보냈던 악어 중대가….”
“악어 중대가?”
“무사 귀환했답니다.”
“무사 귀환?”
팔쉬룸은 정말로 놀랐다.
“아니, 악어 중대에는 탐지자가 한 명도 없을 텐데? 어떻게 무사 귀환을 해? 설마 내 명령을 씹고 그냥 돌아온 건….”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럼 뭔가? 어?”
“단 한 명의 사망자를 뺀 중대원 전원이 무사 귀환했습니다. 그것도 200마리가 넘는 니들티드의 시체를 가지고….”
“얼씨구.”
팔쉬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탐지자도 없는 놈들이 니들티드 밀집 지역에서 어떻게 무사 귀환을 했다는 건가? 그것도 200마리나 되는 시체를 가지고.”
“그, 그것이… 이번에 새로 전입한 지크 이등병이 또다시 대활약을….”
“으음.”
“그냥 감으로 땅에 숨은 니들티드들을 창으로 찔러 죽였답니다.”
“허. 지크 이병이라. 예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놈인 모양이로군. 악어 중대를 또다시 살려낼 줄이야. 좋군. 이보게, 부관.”
“예, 대대장님.”
“상급 부대에 보고서 작성해서 올리게.”
“지난번처럼 말입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않겠는가?”
악어 중대의 전공은 ‘삭제’하고, 대대의 전공만을 부각시키는 것.
전공을 오직 대대장인 자신의 앞으로만 돌리기 위한 처분이었다.
“앞으로 위험한 작전이란 작전은 모두 다 악어 중대에게 몰아주게.”
“예? 하, 하지만 병사들의 피로가….”
“말했을 텐데?”
팔쉬룸이 서늘한 말투로 부관의 말을 잘랐다.
“그깟 소모품들은 언제든지 보충된다고?”
“…….”
“중요한 건 지크 이병일세. 지크 이병은 모험가이지 않은가? 모험가들은 그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양잿물이라도 들이키는 존재지. 그도 잦은 출동을 반길 거야. 그러니 부담 없이 악어 중대를 굴리게. 알겠는가?”
“예, 대대장님.”
부관으로서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
같은 시각.
“아, 누가 내 얘기라도 하는 건가?”
지크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혼잣말했다.
“왜 이렇게 귀가 가렵지??”
이상한 일이었다.
가상 현실이니만큼, 게이머는 좀처럼 간지럼이나 두통 같은 걸 느끼지 않기 마련이었으니까.
물론 아예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BNW는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게임이었기에, 이따금씩 군화를 신은 발목이 간지럽다거나 갑옷 안에 땀이 차는 등 생리적인 현상들이 구현되어 있기는 했으니까.
“전하.”
카렐이 그런 지크를 향해 말했다.
“저는 불안합니다.”
“뭐가 불안한데?”
“팔쉬룸 중령은… 지독한 인간입니다.”
“음?”
“그는 유능한 군인이지만, 좋은 상관은 아닙니다. 대대장의 진급 욕심은 아마 동급 지휘관들 중에서 최고일 겁니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부대 전체를 크립티드 군단 한복판으로 몰아넣고도 남을 인간이니까요.”
“아하?”
카렐의 말을 들은 지크가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부류였어? 대대장이?”
“예, 전하.”
카렐이 씁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쯤 대대장은 전하를 이용할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을 겁니다. 전하의 능력을 보았으니 전하를 이용해서 자신의 전공을 드높이려 할 겁니다. 우리 중대의 출동 횟수가 늘어나리라는 것은 당연한….”
“풉.”
지크가 웃었다.
“누가 누굴 이용해?”
“예? 그야 대대장이 전하를….”
“그거야 지 생각이고.”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이용해 먹어 보라고 해.”
“전하….”
“한번 두고 보지 뭐.”
어차피 성장을 이룩할 겸 카렐을 가르칠 겸 당분간은 이곳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에 머물 생각이었으므로, 지크는 대대장인 팔쉬룸이 앞으로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이용? 해봐. 대신 대가는 치러야 할 거야.’
그런 지크의 가슴속에는 팔쉬룸을 향한 서슬 퍼런 날이 서 있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퀭~
체스판을 앞에 둔 지크와 카렐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겹겹이 내려앉아 있었다.
사실 지크와 카렐은 체스를 두는 게 아니었다.
꾸벅, 꾸벅!
그들은 졸고 있었다.
“으악, 뜨거워어어어어어!!”
심지어, 그만 졸음을 이기지 못한 카렐은 마시려던 홍차를 자신의 허벅지에 쏟아 버리기까지 했다.
“아, 깜짝이야.”
“앗, 뜨거워! 으악!”
“야. 잠 좀 자자. 좀 조용히 해줄래?”
지크가 졸린 눈을 비비며 카렐을 타박했다.
“죄, 죄송합니… 으음….”
지크에게 사과를 하던 카렐의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기 시작했다.
뜨거운 홍차에 의한 화상의 통증보다 밀려드는 졸음이 더욱 강력했던 탓이었다.
“으으. 진짜 죽겠네.”
잠에서 깬 지크가 안면을 감쌌다.
“원 없이 자 보는 게 소원이 될 줄이야….”
지크가 그렇게 중얼거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대기, 또 대기.
하루 24시간 중 언제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몰랐기에, 지크는 맘 편히 로그아웃하고 잠들 수가 없었다.
왜?
그가 없으면 악어 중대가 전멸할 테니까.
사실상 원맨팀이 되어버린 악어 중대가 팔쉬룸의 무리한 명령을 완수하고, 대승을 거두고, 또 살아남는 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크는 지난 며칠간 하루 두세 시간밖에는 잠들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팔쉬룸이 언제 명령을 내릴 줄 모르고, 또 게임 이용 경고 시간인 열네 시간 연속 접속을 피하기 위해 잠을 조절해야 했으니 한 시간씩 끊어서 로그아웃을 해야만 했다.
지독한 강행군.
게임에 미친 작자들조차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팔쉬룸이 지크를 작정하고 이용해 먹을 것이란 카렐의 말이 과연 현실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전하… 저 이러다가 진짜 죽는 거 아닙니까….”
겨우 잠에서 깬 카렐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죽겠습니다… 너무 졸립니다….”
“나도 죽겠다….”
그러던 중.
“출동 명령입니다!”
대대 본부의 전령이 천막을 열어젖혔다.
“아.”
지크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도저히 못 참겠네. 굴려도 정도껏 굴려야지, 이참에 그냥 확 죽여버리고….”
“지크 이병님!”
분노한 지크를 카렐이 다급히 뜯어말렸다.
“벌써 단독 작전만 아홉 번째인데….”
“아닙니다.”
전령이 고개를 저었다.
“뭐가 아니라는 거야?”
“악어 중대의 단독 작전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대대급 작전입니다.”
지크의 물음에 전령이 대답했다.
“그래? 흐음.”
지크는 단독 작전이 아니라는 말에 겨우 분노를 억누를 수 있었다.
“좋아. 출동하자. 다녀와서 좀 자든가 해야지.”
“가시죠, 지크 이병님.”
카렐이 지크를 따라나섰다.
***
그렇게 개시된 대대급 작전.
내용은 비교적 소규모의 C등급 크립티드 군락을 토벌하는 것이었다.
처음 전투는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좌측 전방 3킬로미터 부근에서 B등급 크립티드 부대가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B등급 크립티드 부대? 빌어먹을. 어쩔 수 없군. 퇴각한다.”
전투가 한창일 무렵, 정찰을 나갔던 정찰병의 보고에 팔쉬룸은 퇴각을 결정했다.
문제는 팔쉬룸이 이 사실을 대대 전체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
“예, 대대장님. 지금 바로 퇴각 명령을….”
“그게 무슨 소리인가?”
팔쉬룸이 부관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서 퇴각 명령을 내리라고? 그럼 다 같이 도망쳐야 할 텐데, 퇴로는 누가 맡지? 다 같이 죽자는 건가?”
“하, 하지만….”
“퇴각 명령은 없다. 아군에게는 전술적 우회처럼 보이게 한 뒤, 본부 중대부터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걸 우선으로 한다.”
“…….”
“튤립 중대는 전방으로, 맹호 중대는 본부 중대와 함께 적 본진으로 우회하는 액션을 취한다. 그리고 악어 중대는….”
팔쉬룸의 시선이 저 멀리 이레디에이트를 전개, 크립티드들을 녹여내고 있는 지크에게로 머물렀다.
“좌측을 맡는다.”
대대장 팔쉬룸.
그리고 지크.
두 사람 사이, 갈등의 도화선에 불붙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