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6
095
“본부 중대와 맹호 중대는 우회해 적 본진을 친다! 튤립 중대는 전방! 악어 중대는 좌측을 맡아라!”
명령이 떨어졌다.
“악어 중대 전 병력, 좌측으로!”
“좌측으로!”
명령에 따라 최전방에서 좌측으로 자리를 옮긴 악어 중대는 덕분에 수월한 전투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
좌측에는 몰려드는 크립티드들의 수가 적었던 만큼, 전투를 수행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크 이병님.”
“예?”
“대대장님이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신 모양입니다. 덕분에 우리 중대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뭐….”
이레디에이트 스킬을 잠시 멈춘 지크가 덤벼드는 크립티드를 망치로 후려치며 대답했다.
벌컥벌컥!
떨어진 마나를 보충하기 위해 포션을 들이키면서….
“다행이긴 한데 어째 좀 찜찜하지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지크의 얼굴에는 마치 ‘수상함’이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찬가지로, 카렐이 덤벼드는 크립티드를 손쉽게 두 동강 내며 되물었다.
지난 며칠간 지크에게 두들겨 맞은 덕분에, 단시간에 꽤 강해진 카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본부 중대와 맹호 중대가 성공적으로 우회 작전을 펼치려면 최전방 화력이 확실하게 받쳐줘야지 말입니다?”
“그, 그래서요?”
“근데 제일 화력 좋은 우리 중대를 좌측으로 돌리고 튤립 중대를 최전방에 배치한 게 조금 이상하지 말입니다?”
“어?”
그제야 지크의 말뜻을 깨달은 카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긴 합니다. 왜 굳이 우리 중대를 제일 편한 좌측으로 보냈을까요?”
그때였다.
“주, 중대장니이이이이이임!!”
소대장 하나가 거의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 카렐을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랜들먼 중사님!”
“저, 저기를 보십시오!”
“예?”
“전방에… 전방에…!!”
그 말에 지크와 카렐의 고개가 동시에 전방으로 쏠렸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아….”
랜들먼 중사가 가리킨 곳을 본 지크의 입가에는 차디찬 미소가, 카렐의 표정에는 암담함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캬아아아아아악!”
“구와악, 구와아아아아악!!”
“까득, 까드득!”
전방으로부터 B등급 크립티드 무리들이 떼 지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두 시간 후.
대대장 전용 막사 앞에서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지크 이병! 당장 돌아가게! 사전에 약속 없이는 대대장님을 뵐 수가 없어!”
“에이. 그렇게 바쁘신 것 같지도 않은데, 좀 뵙게 해주시죠?”
지크와 대대장의 직속 부관인 소시미우스 대위의 실랑이가 그것이었다.
“이보게, 지크 이병. 여긴 군대일세. 엄연히 군법이 존재하는 곳이지.”
“그래서요?”
“지휘관을 만나려거든 소대장에게 먼저 보고를 하고, 그다음에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그러고 나서….”
“잠깐 뵙고 차 한잔하는 것도 안 됩니까?”
“사전에 약속이 없으면 불가능해. 당장 돌아가게.”
“이거 너무 비싸게 구시는데….”
“어허! 일개 이등병 주제에 어딜 감히….”
소시미우스 대위의 눈에 쌍심지가 돋았을 때였다.
“들여보내게.”
천막 안에서 팔쉬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게.”
소시미우스가 지크를 위해 천막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대대장님.”
지크가 팔쉬룸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팔쉬룸은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와인을 한 모금 하고 있었다.
불과 두 시간 전에 악어 중대를 버리고 퇴각한 주제에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려는 것이다.
“경례부터 하게, 지크 이병.”
팔쉬룸이 지크를 향해 말했다.
“자네가 아무리 모험가라지만, 지금은 내 휘하 장병이니 말일세.”
“아, 물론입니다. 충성!”
“충성.”
팔쉬룸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지크의 경례를 받으며 말했다.
“꽤 고분고분하군? 내게 경례를 하지 않으려 할 줄 알았는데 말야.”
“그럴 리 없지 말입니다.”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경례는 계급을 보고 하는 것이지, 사람을 보고 하는 게 아니지 말입니다?”
그 순간.
‘어쭈. 이 자식 봐라?’
팔쉬룸의 눈매가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방금은 팔쉬룸이 지크에게 한 방을 먹은 게 분명했다.
설전의 첫 격돌은 지크의 판정승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 문제 삼지 않도록 하겠네. 그래, 날 찾아온 이유가 뭔가. 설마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따지러 온 것은 아니겠지? 그럴 생각이거들랑 곱게 돌아가는 게….”
“어?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크가 씩 웃으며 팔쉬룸을 향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그야….”
팔쉬룸은 무심결에 지크의 질문에 대답할 뻔했다.
‘내가 너희 중대를 던져 놓고 도망쳤으니까’라고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를 보았나?’
팔쉬룸은 지크의 유도 신문이 불쾌했다.
“뭐 찔리시는 거라도 있으신 겁니까?”
“없네. 전투 중 내렸던 모든 명령은 전술적 판단에 의거한 것, 설령 실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아, 그러시지 말입니까?”
“왜, 불만 있나?”
“없슴다.”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악어 중대의 장병 49명이 전사한 게 어디 대대장님의 잘못이겠습니까? 다 작전상 순조로운 후퇴를 위해서지 말입니다.”
그랬다.
두 시간 전 벌어졌던 전투에서 악어 중대는 총원 89명 중 NPC인 장병들이 49명이 죽고, 모험가들은 21명이나 죽는 타격을 입었다.
지크가 이레디에이트 스킬과 만천화우 스킬, 심지어 비장의 무기인 디버프 필드들까지 전개했음에도 B등급 크립티드 무리로부터 중대 전체가 무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 이유 때문에 온 건가? 이거 실망이로군.”
팔쉬룸이 냉소를 지었다.
“자네는 모험가일 텐데? 악어 중대가 구르면 구를수록 자네는 더더욱 강해질 수 있지 않은가. 자네들이 가진 그 고대의 룬 문자가 자네를 성장시킬 테니.”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슴다.”
지크 역시 냉소를 지었다.
“설마 죽은 장병들이 신경 쓰여서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정말 우습군.”
“뭐가 우스우심까?”
“웃기지 않나? 이계에서 온 불사의 존재가 우리 세계의 장병들이 전사한 걸 가지고 동요한다는 게.”
그 순간.
‘넌 내가 죽인다.’
지크는 팔쉬룸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
게임 BNW 속 NPC들은 인간들과 똑같이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게이머인 지크조차 NPC들을 함부로 여기지 않았는데 같은 NPC인 팔쉬룸은 아니었다.
장병들을 장기판의 말보다도 못하게 생각하는 냉혹한 자.
자신의 안전한 퇴각을 위해서라면 한 개 중대 정도는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는 보신주의자.
팔쉬룸은 군대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지휘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크 이병.”
팔쉬룸이 같잖다는 듯한 표정으로 지크에게 말했다.
“자네는 자네 할 일을 하게. 나는 내 할 일을 할 테니. 나는 전투에서 이기고, 자네는 성장을 이룩하는 것이지. 그럼 서로가 윈윈일 테지. 안 그런가?”
“예, 뭐.”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 보겠네.”
지크와 팔쉬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죽인다.’
‘네놈은 날 어쩔 수 없지. 후후. 이런 나약한 놈 같으니. 고작 소모품들의 죽음에 발끈하다니. 네놈도 크게 되기는 글렀군.’
각자 가슴속에 품은 생각이 달랐음은 물론이었다.
***
“어, 어떻게 됐습니까?”
카렐이 막사로 돌아온 지크를 향해 물었다.
“뭘 어떻게 돼. 그냥 확인해본 거지.”
“뭘 확인하셨는지….”
“팔쉬룸을 죽일지 말지.”
“그, 그래서 결과는….”
“죽이려고.”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안 됩니다.”
“왜 안 돼?”
“만약 전하께서 팔쉬룸을 죽이신다면 왕국으로부터 쫓기는 몸이 되실 겁니다. 결국엔 프로아와 저희 맥캘란 왕국 간에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내 손으로 죽인다고 안 했다.”
“예? 그럼 어떻게 팔쉬룸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존버라고 들어 봤냐?”
“조, 존버요?”
“그냥 ‘X나 버틴다’를 줄여서 존버라고 해.”
“으음?”
“지금은 존버가 필요한 때야. 그냥 존나 버티다 보면, 팔쉬룸은 알아서 말라 죽을 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두고 보면 알게 돼.”
지크가 냉혹한 미소를 지었다.
“팔쉬룸은 말라 죽게 될 테니까.”
지크는 과거에도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 복무(사냥)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지크가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의 생태계와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단 말이었다.
“장담한다. 길어야 2주? 그 안에 팔쉬룸은 입장이 곤란해지게 될 거야.”
지크가 호언장담했다.
그 ‘예언’은 경험에서부터 우러나온 ‘확신’이었다.
***
그날 이후.
“또 출동이라고?”
“그냥 죽이지?”
“대대장, 이 개 같은 새끼!”
출동이 거듭되었다.
팔쉬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악어 중대를 철저히 ‘이용’해 자신의 전공을 드높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지크를 이용한 것이었다.
팔쉬룸에게 중대원들, 혹은 중대장 카렐 따위는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팔쉬룸은 그저 지크가 속한 부대를 끊임없이 전투에 내보냄으로써 승리를 ‘수확’했을 뿐이다.
덕분에 대대장으로서 팔쉬룸의 커리어는 화려하다 못해 눈부실 정도로 혁혁해졌다.
물론 악어 중대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크는 군소리 없이 주어진 명령을 묵묵히 수행했다.
“악어 중대에게 출동 명령을 내리도록.”
팔쉬룸 역시 이에 질세라 근면, 성실하게 출동 명령을 내림으로써 악어 중대에게 임무를 몰아주었다.
지크를 이용해 탐욕스레 자신의 전공을 쌓아 나가는 팔쉬룸.
그리고 입 다물고 전투에만 집중하는 지크.
그것은 창과 방패의 싸움과도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무렵.
“1소대는 좌측을 더 받쳐 줘! 3소대는 계속 버틴다! 2소대는 지크 이병이 마나를 보충하는 동안 최전방을 마크한다!”
어느새 카렐은 능숙하게 중대를 지휘, 전투를 이끌어 나가는 지휘관으로 거듭나 있었고.
지크는 어느새 100레벨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다. 셋에 찌른다. 하나, 둘, 셋. 찔러!”
“찔러!”
악어 중대의 장병들은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몰려드는 크립티드 무리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지크 님한테 누가 마나 좀 채워줘요!”
“탱커 앞으로!”
“광역 마법 갑니다!”
부대 소속의 모험가들 역시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크립티드 무리들을 상대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악어 중대 전체가 성장했다는 증거였다.
끊임없이 사지에 내던져졌지만, 꾸역꾸역 살아남음으로써 어느새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병 맛! 며느리! 악어 중대로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중사 셉! 첸! 코! 악어 중대로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병장 블! 랑! 팡! 악어 중대로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각각 맛며느리, 셉첸코, 블랑팡이란 ID를 사용하는 이들의 전입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모험가들이 악어 중대로 앞다투어 전입하기 시작했다.
물딜?
OK!
마딜?
그것 역시 OK!
심지어 그 구하기 힘들다는 힐러와 버퍼들 역시도 다른 부대에서 악어 중대로 전입을 해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카렐은 이 믿지 못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하, 이거 실화 맞습니까? 설마 꿈인 겁니까? 모험가들이 우리 중대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 그거.”
지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당연하잖아.”
“다, 당연합니까?”
“모험가들은 부대를 ‘선택’할 수 있지.”
“그거야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모험가들이 어떤 부대를 선택하겠냐?”
“그야… 강한 부대… 잘 싸우는 부대로 모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부대로 오는 거다.”
“이,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럼? C구역에서 우리 중대만큼 자주 나가서 잘 싸우는 부대가 있을까?”
“그야 당연히 없… 아…!”
카렐이 그제야 지크의 말뜻을 알아듣고 탄성을 자아냈다.
“모험가들의 목적은 한 마리라도 더 많은 몬스터를 쉽고 빠르게 잡는 거야. 그래야 이 초월의 룬을 통해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테니까. 자, 그럼 이곳 C구역에서 어느 부대에 모험가들이 몰릴까? 답은 정해져 있는 거야.”
“그렇군요.”
“자, 그럼 이제 대대장이 어떻게 나올까? 우리 중대 모험가 숫자가 예비 인원까지 200이 넘어. 이 정도면 모험가 숫자만 대대급 규모 아냐? 후후!”
지크가 씩-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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