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68
967
다음 날.
태성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어나서 운동 후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게임에 접속했다.
[프로아 왕국 : 왕립 병원]눈을 떠 보니 병원 안이었다.
레벨을 체크해 보니 373인 걸 보면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으.”
지크는 로그인하자마자 느껴지는 뻐근함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했다.
캐릭터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생명력 : ■■□□□□□□□□
•마나 : ■■□□□□□□□□
•스태미나 : ■■□□□□□□□□
•신성력 : ■■□□□□□□□□
하루가 지났음에도, 별로 회복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전투의 후유증이 너무 심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지크의 눈앞에는 에 걸려 있단 알림창이 떠오른 상태였다.
[알림: 탈진 해제까지 앞으로 35시간 59분 59초!] [알림: 35시간 59분 58초!] [알림: 35시간 59분 57초!]지크는 지금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이해했다.
‘하긴. 멀쩡하면 그게 더는한 거지.’
라파엘과 싸우다 에서 회복하고, 또 싸우다 복부에 창까지 꿰뚫렸으니 안 죽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욱신욱신!
아직도 라파엘의 창에 꿰뚫렸던 복부에서 통증이 밀려들고 있었다.
또, 이 스치고 지나갔던 옆구리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기도 했다.
‘그나저나 미카엘 씨랑 메타트론은 어떻게 됐지? 만신창이던데.’
지크는 함께 라파엘과 싸웠던 전직 대천사장과 마왕의 아들을 떠올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욱신!
지크는 순간 마나홀이 자리한 곳, 그러니까 가슴 정중앙인 심장 부위에서 밀려드는 통증에 주저앉고 말았다.
두근두근!
뒤이어 심장이 미친 듯 두방망이질을 치며, 심박수가 급격히 올라갔다.
“크, 크윽… 갑자기 왜….”
지크가 쓰러져 신음하는 사이.
스으으!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여 있던 꽃병.
거기에 꽂혀있던 꽃들이 급격히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으으!
지크로부터 초록색 방사능 에너지가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며, 병실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어?!’
지크는 방사능 에너지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뿜어져 나가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스킬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방사능 에너지가 저절로 뿜어져 나왔다?
똑똑!
그때였다.
“전하. 기침하셨사옵니까.”
왕립 병원의 간호사가 노크하며, 병실에 들어서려 했다.
“문 열지 마세요!!!”
지크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 문 여시면 안 됩니다!”
“저, 전하?”
“지금부터 제 병실 반경 100미터 안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지크는 혹시나 간호사가 방사능 에너지에 중독되어 죽을까 봐 거의 고함을 치듯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평범한 NPC가 스킬의 방사능 에너지에 노출되면, 피폭을 당하자마자 즉사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 알겠사옵니다!”
간호사는 지크의 호통에 놀라 호다닥! 병실로부터 도망쳤다.
‘이 무슨….’
지크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던 중.
[지금이야 괜찮지만, 엄청나게 큰 충격이 가해지거나 자네의 육체가 약해졌을 때 드래곤 하트에서 에너지가 흘러나올 수 있네.] [만약 그렇게 되면 자네의 육체가 드래곤 하트의 에너지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네.]지크의 뇌리에 드래곤 로드 게오르그가 해주었던 조언이 스치고 지나갔다.
엄청나게 큰 충격이 가해졌다?
이 스쳐 지나가고, 라파엘의 창에 복부가 꿰뚫렸다면 충분히 큰 충격이 가해졌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방사능 에너지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건 게오르그의 경고가 현실이 되었단 말밖엔 되지 않았다.
“크으윽…!”
지크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서 흘러나가는 방사능 에너지를 막아 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스으으!
하지만 방사능 에너지는 점점 더 많이, 그리고 더욱 짙은 농도로 뿜어져 병실 안을 온통 초록색 에너지로 가득 채웠을 뿐이었다.
***
한편, 치천존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으며 베텔규스와 체스를 두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왕립 병원의 병원장이자 지크의 주치의가 황급히 병실로 뛰어 들어와 소리쳤다.
“어르신!”
“음? 무슨 일인가?”
치천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무슨 큰 사고라도 난 겐가?”
“국왕 전하가 위중하신 것 같습니다!”
“엥? 그 녀석이?”
“예, 어르신.”
“그럼 그냥 죽으라고 하면 되지 않은가?”
“예?”
“모험가는 불사의 존재라 죽다 살아나면 그만인데, 위중하다고 큰일 날 것까지야 있겠나? 뭘 그런 걸 가지고 호들갑이냐는 말일세.”
치천존의 말은 옳았다.
NPC 입장에서는 게이머들의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되살아날 텐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그게 아닙니다!”
“엥?”
“전하로부터 방사능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서 국왕 전용 병실 주변에 반경 100미터가 죽음의 영역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그런 일이 있었어?”
치천존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지금 바로 감세!”
“예, 어르신.”
“그리고 네 녀석은.”
치천존이 고개를 홱! 돌려 베텔규스를 노려보았다.
“내 다 기억하고 있으니 괜한 장난질은 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야.”
“거, 형님! 제가 언제 장난질을 치고 그랬다는 겁니까!”
베텔규스가 발끈해 소리쳤다.
“네놈이 내가 화장실을 가거나 한눈을 팔면, 체스 말을 옮겨 놓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았느냐?”
“히, 히익?!”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 건드리지 마라.”
“예에….”
“못된 손모가지 같으니.”
치천존은 베텔규스에게 쏘아붙이고는, 곧장 사건이 벌어진 지역으로 향했다.
스으으!
도착해 보니 지크가 머물러 있는 병실의 반경 100미터가 온통 초록색 연기로 가득했다.
“이런!”
치천존은 황급히 고위급 방어막 마법을 펼쳐 방사능 에너지가 더 퍼지는 걸 차단했다.
계속 내버려 두었다가는 왕궁 전체가 방사능 에너지에 오염되어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게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왕궁을 아예 옮겨야 할 수도 있었다.
“허허. 이 무슨 일인가.”
치천존은 방사능 오염을 정화하는 주문까지 펼치면서, 사태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치천존으로서도 저 초록색 안개를 뚫고 들어갈 자신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지금 뿜어져 나오는 방사능 에너지는 평소에 지크가 사용하는 것보다 농도가 훨씬 더 진해서, 그랜드 마스터인 치천존조차도 즉사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보게.”
“예, 어르신.”
치천존이 지크의 주치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네. 사람 불러야겠구먼.”
“예?”
“가서 어르신을 모셔오게.”
결국, 치천존은 초록색 안개 지대로 들어가기를 포기했다.
치천존은 살 만큼 산 화석이라 삶에 딱히 미련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듯 허무하게 비명횡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서 어르신을 모셔오게. 어르신이 아니면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가 없을 것 같네.”
“아, 예.”
주치의는 치천존의 말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약 10분 후.
“뭔 일이기에 그리도 호들갑인 게냐?”
사부가 거짓말처럼 치천존 앞에 나타났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오냐.”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좌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이….”
치천존이 조심스레 말했다.
“보시다시피 이 모양 이 꼴인지라….”
“쯧쯧.”
사부가 치천존을 보면서 가볍게 혀를 찼다.
“명색이 그랜드 마스터라는 놈이 고작 저따위 미세 먼지 때문에 본좌를 불러?”
“…….”
“하여간 허접하구나, 허접해.”
사부의 핀잔을 받은 치천존은 매우 억울했다.
‘아니! 그랜드 마스터고 나발이고! 저 정도 방사능 에너지면 스치기만 해도 골로 간단 말입니다! 예?!’
그렇지만 싫은 티는 조금도 내비칠 수가 없었다.
“쯧쯧. 수련 좀 더 하도록 해라.”
“예, 어르신….”
“요즘 것들은 허약하기가 이를 데 없다니까? 쯧쯧쯧.”
사부는 그렇게 또 혀를 차더니, 한 점 망설임도 없이 방사능 에너지가 가득한 초록색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그랜드 마스터인 치천존조차도 두려워하는 방사능 에너지?
본인 말마따나, 사부에게는 고작 미세 먼지 수준에 불과했다.
***
“크, 크윽… 제어… 제어해야 해… 으으윽!”
지크는 터져 나오는 방사능 에너지를 억지로 붙잡고 있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런 멍청하고 한심한 녀석 같으니.”
그때, 사부가 나타나 지크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크윽… 사부… 님을… 뵙습니다… 크으윽….”
지크는 방사능 에너지를 제어하느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와중에도 사부에게 절을 하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사부는 지크를 딱히 혼내지는 않았다.
“과분한 것을 품고 있으니 그런 일을 당하는 게야.”
“예… 사부님….”
“바르게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도록 해라. 본좌가 도와줄 것이다.”
“예에….”
지크는 사부의 지시에 따라 바른 자세로 앉았다.
그러자 사부가 지크의 등 뒤에 양손을 붙이고는 어떠한 힘을 건네주었다.
우웅!
그로부터 5분쯤 지나자 지크로부터 뿜어지던 방사능 에너지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털썩!
지크는 사태가 진정되자마자 완전히 탈진해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생명력 : ■□□□□□□□□□
•마나 : ■□□□□□□□□□
•스태미나 : ■□□□□□□□□□
•신성력 : ■□□□□□□□□□
방사능 에너지를 제어하다 보니 또다시 탈진한 것이다.
“제자야.”
사부가 그런 지크에게 말했다.
“예, 사부님….”
“아무래도 네 녀석이 품고 있는 잉카서스의 심장이 안정성을 잃은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크가 사부에게 물었다.
“당분간은 방법이 없다.”
사부가 딱 잘라 말했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어 육체의 재구성을 이룬다면 그 심장의 폭주를 진정시키고, 나아가 천천히 흡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
“하지만 마스터의 육체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니라.”
결국, 지크의 다음 목표인 그랜드 마스터를 찍어야 이 사태가 진정될 거란 얘기였다.
물론 지금 지크의 레벨이 373이었고, 449레벨까지는 무리 없이 도달하리라 예상되었기에 아예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단지 을 얼마나 빠르게 깨냐에 달려 있었을 뿐….
“일단은 본좌가 진정은 시켜 놓았느니라. 그러나 또다시 큰 충격을 받으면 이런 사태가 반복될 것이다.”
“예, 사부님.”
“그리고 평소에도 제어하기가 어려울 터이니, 당분간은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여라. 자칫 무심결에 곁에 있던 놈들을 죽여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지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방사능 에너지를 내뿜는 인간 원자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띠링!
지크는 새 칭호를 획득했다.
[알림: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칭호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방사능 기피인간]방사능을 내뿜는 기피 인간에게 주어지는 칭호.
•타입 : 칭호
•등급 : 유니크
•효과 : 주변 사람들이 슬슬 피할 확률 +500%
그간 좀 잠잠하나 싶었는데, 여지없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칭호를 획득한 것이다.
‘아. 근데 앞으로 어떡하지.’
지크는 솔직히 죽고 싶었다.
이제는 방사능 에너지를 내뿜는 기피 인간이 되었으니, 주변 사람들과 동떨어져 홀로 외롭게 지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