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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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보물 창고가 있다고?”
지크는 칭호가 효과를 발휘하자 매우 놀랐다.
이런 시궁창 그 자체인 하수도 어딘가에 보물 창고가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칭호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띠링, 띠링!
황금색 화살표가 지크의 눈앞에 떠오른 채 특정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긴. 보물 창고가 꼭 왕궁 안에만 있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왕궁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있고, 그 끝이 이 하수도 어딘가까지 이어져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론이었다.
보물 창고라는 게 꼭꼭 숨겨져 있어야 빛을 발하는 장소이니만큼, 하수도에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건 없었다.
‘가 보자.’
지크는 즉시 황금색 화살표를 따라 이동해 보았다.
화살표는 수도의 중심부를 지나 저 안쪽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역시.’
지크는 화살표가 왕궁까지 뻗어 있는 걸 확인하고 자기 생각이 옳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일단 보물 창고부터 털자. 다들 기다릴 테지만… 작전이 시작된 이후에 털면 늦으니까.’
지크는 함께 이번 작전에 투입된 동료들을 조금 기다리게 할 생각이었다.
1분 1초가 시급한 작전도 아니라서, 그렇게 하더라도 딱히 문제 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크는 거침없이 화살표를 따라 쭉 이동했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
“후후후.”
보물 창고 앞에 도착한 지크는 미소를 지었다.
한 왕국의 보물 창고를 턴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나게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왕국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대국이라면?
그 쾌감이 얼마나 클지는 굳이 설명해 봐야 입만 아픈 거였다.
“보물~ 보무울~.”
지크는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를 휘둘러 벽을 때렸다.
콰앙!
와르르르!
그러자 보물 창고로 향하는 입구가 무너져 내리며, 비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지크는 비밀 통로를 통과해 보물 창고에 도착했다.
반짝반짝!
그런 지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보화와 아드리아노플 왕국의 왕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家寶)들이었다.
“미친….”
지크는 보물 창고에 쌓인 재화의 가치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비록 마우레키온 제국의 보물 창고-본 적도 없었기에 짐작하기도 어려웠다-만큼은 아니겠지만, 이만하면 어지간한 드래곤의 둥지도 울고 갈 정도의 규모였다.
프로아 왕국 보물 창고의 30배는 족히 넘을 것 같다고나 할까?
거의 250년 동안이나 쌓아 올린 부(富)란 가히 엄청났다.
이곳에 있는 보물들을 판다면,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고층 빌딩 서너 개쯤은 무난하게 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삼족오야.”
[까악! 까아악!]뒤이어 이 지크의 부름을 받고 나타났다.
은 이젠 제법 깃털이 다시 자라나서, 백숙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깃털들이 듬성듬성 자라난 바람에 여전히 흉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 주워 줘.”
[까아악!]은 지크의 말에 즉시 보물 창고 안을 비행하며, 쌓여 있던 재화들을 아공간 인벤토리로 옮겨 주었다.
[알림: 1,000,0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알림: 1,000,0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중략)
[알림: 1,000,0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뒤이어 지크의 눈앞에 아이템 획득을 알리는 알림창들이 수십만 개나 주르륵 떠올랐다.
“아. 달다, 달아.”
지크는 그 알림창들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그렇게 아드리아노플 왕가의 보물 창고를 모조리 털어먹은 직후.
“어라?”
지크는 보물 창고의 반대편 통로가 왕궁까지 쭉 이어져 있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상 탈출구랑 보물 창고가 같이 이어져 있나 보네.”
지크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비밀 통로를 따라 왕궁으로 침투해 보기로 했다.
어쩌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적들의 우두머리인 국왕을 처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
비밀 통로는 아드리아노플 왕궁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국왕 전용 밀실까지 다이렉트로 이어져 있었다.
‘확인해보자.’
지크는 을 통해 밀실에 누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오호라.’
지크는 아드리아노플의 국왕인 랙돌 4세가 밀실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슬쩍 밀실 문을 열고, 랙돌 4세를 훔쳐보았다.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나.]“예, 마스터.”
[차질이 없어야 할 거야.]“염려 마십시오.”
랙돌 4세는 지크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와 통신을 나누고 있었다.
[그럼, 끊는다.]“그리하시지요, 마스터.”
아쉽게도 통신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서, 지크는 뭔가 유의미한 정보를 습득하지 못했다.
‘상관없어.’
지크는 아쉬워하지 않고, 랙돌 4세의 등 뒤로 슬쩍 돌아갔다.
그런 뒤 기습적으로 랙돌 4세의 입을 막고, 목을 조르면서 방사능 미생물들을 주입했다.
“큭, 크윽!”
랙돌 4세는 자신이 누구에게, 어떻게 당하는지도 모른 채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게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인님을 뵙습니다.”
반영구적인 지크의 노예 가 된 랙돌 4세가 지크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방금 누구랑 통신했냐?”
“마스터와 했습니다.”
“마스터?”
“마스터는….”
랙돌 4세가 대답했다.
“일루미나티를 이끄는 수장입니다.”
“그래?!”
“예, 주인님이시여.”
“마스터가 누군데? 정체가 뭐야?”
“모릅니다.”
“왜 몰라?”
“마스터의 정체는 철저히 베일에 휩싸여 있습니다. 우리 조직원들은 단지 마스터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흐음.”
지크는 랙돌 4세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스터의 정체를 모르다니….
“어쩔 수 없지.”
“죄송합니다, 주인님.”
“니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냐? 됐고. 나 오늘 성직자들 구출할 예정이거든?”
“예, 주인님이시여.”
“그러니까 이따 소란이 벌어지면, 알아서 잘 행동해라. 알겠냐?”
“물론이옵니다.”
“그리고 중앙 광장에 성직자들 다 모아둬. 처형하지 말고. 고문도 적당히 해. 우리가 데리고 도망쳐야 하니까.”
“주인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최대한의 협조를 제공하겠습니다.”
“좋아.”
지크는 랙돌 4세의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이거 개꿀이잖아?’
스킬은 정말이지 활용도가 높았다.
이런 식으로 를 적진 한복판에 깊숙이 침투시켜서 첩자 노릇을 시키게 될 줄이야….
“앞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소 하던 대로 해. 알겠지?”
“예, 주인님이시여.”
“특이 사항 있으면 프로아 왕국 정보국에 보고하고.”
“염려 마소서.”
“그럼, 난 간다.”
“살펴 가시옵소서.”
그렇게 지크는 일루미나티의 고위급 간부인 랙돌 4세를 자신의 충실한 노예로 만든 뒤 다시금 비밀 통로를 통해 하수도로 되돌아갔다.
***
하수도를 빠져나온 지크는 아드리아노플 왕국의 수도에 자리한 어느 빈민가에서 게이머들과 접선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분홍색 쫄쫄이를 입은 채 온갖 오물을 뒤집어쓴 지크가 거리를 대놓고 활보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지크는 빈민가의 어느 으슥한 뒷골목에서 햄찌와 접선했다.
“뀨! 주인 놈아!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뀨우!”
“그럴 일이 있었어, 인마.”
지크는 씩 웃으며 대답하고는, 햄찌에게 작전 내용을 전달했다.
“중앙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조리돌림이 있을 거야. 방어 병력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까, 순식간에 난입해서 인질들 구출한 다음 이 방향으로 뛰면 돼.”
지크가 지도를 가리키며 햄찌에게 설명해주었다.
“뀨우?! 그게 되냐? 방어 병력이 얼마 없다는 건 무슨 말이냐!”
“그게 그러니까….”
지크가 햄찌에게 랙돌 4세를 노예로 만들었단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알겠지? 알아서 병력도 좀 빼고, 우리가 탈출하기 쉽게 판을 깔아 줄 거야.”
“뀨우우우! 주인 놈 천재다! 천재! 뀨우!”
“뭘 이 정도를 가지고. 아무튼, 그렇게 전파해. 작전 시간은… 앞으로 한 시간 후.”
“뀨! 알겠다!”
“그럼, 이따 보자.”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하수구 밑으로 내려갔다.
미리 이동해서 프로아 왕국으로 통하는 워프 게이트를 열 생각이었던 것이다.
***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네놈들은 거짓된 신을 모시고 있었노라! 회개하라!”
“그럴 수 없다!”
“가짜 신들을 믿는 것 또한 죄라는 걸 모르는가!”
아드리아노플 왕국의 수도 정중앙에 자리한 광장에서는 각 교단의 성직자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가 한창이었다.
성직자들은 중앙 광장에 꽁꽁 묶인 채 천사들로부터 신앙을 부정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랙돌 4세의 명령으로 인해 오늘은 큰 고문이나 끔찍한 처형이 없어서, 성직자들로서는 견디기가 수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천사들이 100퍼센트 랙돌 4세의 명령을 듣는 건 아니었다.
“이런 어리석은 놈 같으니! 네놈들의 신앙심 따위는 거짓 신에 대한 부질없는 믿음에 불과한 것을 왜 모르는가! 네놈들은 살 가치가 없다! 그냥 모두 죽어라!”
성질 급한 천사 하나가 자신의 창을 움켜쥐고 성직자 하나를 찔러 죽이려 할 때였다.
퍼억!
가 날아와 그 천사의 머리통을 쳐부순 뒤 지크에게 되돌아갔다.
“……!”
“……!”
“……!”
광장에서 성직자들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일삼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분홍색 쫄쫄이를 입은 지크에게로 쏠렸다.
“전 병력.”
지크가 돌아온 를 잡아채며 말했다.
“공격.”
그와 동시에 골목골목에서 의 길드원 겸 의 성기사들인 게이머들이 튀어나와 중앙 광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지크가 아드리아노플 왕국의 수도를 습격해서 성직자들을 구출해 간 직후.
“…….”
“…….”
“…….”
대륙 모처에 자리한 일루미나티의 본부 회의실에는 지독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지크가 일루미나티의 계획을 번번이 수포로 만들어 놓은 덕분에, 최근 조직 내 분위기는 무척이나 어수선했다.
때문에, 회의에 참석한 최고위급 간부들은 그저 침묵을 지키며 장막 뒤의 마스터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로, 최고위급 간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가면을 쓰고 후드가 달린 로브까지 입고 있었기에 서로의 정체를 알아보는 건 불가능했다.
가면에 적용된 음성 변조 마법으로 인해 목소리조차 제대로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이렇듯 일루미나티는 최고위급 간부들끼리도 서로의 정체를 철저히 감추고 활동하는 점조직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가….”
그때, 장막 뒤에서 쇳소리 섞인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드리아노플에 잡혀 있던 이단자들을 탈출시켰다라….”
일루미나티의 간부들은 그런 마스터의 발언에 침묵을 지켰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 문책이라도 당한다면, 꽤 곤란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
마스터의 입에서 분노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매번 이렇게 조직의 일이 방해를 받으니… 차질이 끝도 없이 빚어지는군.”
마스터는 그렇게 말하더니 한 5분 정도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아웃브레이크 프로토콜을 가동토록 한다.”
그 말이 떨어지던 순간.
부르르!
회의에 참석했던 고위급 간부들 전원이 전율에 몸을 떨었다.
조직 내에서 말하는 이 어떠한 의미인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