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8
097
다음 날 아침.
제2대대의 전 병력은 때아닌 집합 명령을 받고 연병장에 모였다.
“부대에- 차렷!!”
대대장의 직속 부관이자 서열 2위인 소시미우스 소령이 목청이 찢어질 정도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군단장님을 향하여어어어어어어, 경례에에에엣!!”
“충성!!”
무려 군단장이 온 만큼, 경례 구호를 붙이는 장병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찼다.
“반갑다, 제군들. 군단장이다.”
사열대에 선 오버로크 중장이 입을 열었다.
“군단장은 너희를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게 생각하는 바이다. 군단장은….”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오버로크 중장은 스스로를 ‘군단장’이라 부르며 3인칭화 시키는, 전형적인 군대식 말투를 사용해 별 의미 없는 훈시를 늘어놓았다.
모든 고위급 장성들이 그렇듯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런 말들 말이다.
아니, 별 의미 없는 훈시를 늘어놓는 듯싶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군단장은 너희들 제2대대의 활약에 매우 감동했다. 특히 대위 카렐 데 비어만이 이끄는 악어 중대의 활약은 군단장도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악어 중대장 카렐 데 비어만! 그리고 지크 이병은 앞으로 나오도록!”
카렐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열대를 향해 나아갔다.
지크의 경우엔 달랐다.
‘소문이 저기까지 퍼졌나 보네. 난 끽해야 사단장이나 올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팔쉬룸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고 있었던 지크는 장성급 장교가 직접 와 그들을 치하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
“반갑다, 악어 중대장 카렐.”
“대위, 카아아아아아레에에에에에에엘!!”
무려 ‘쓰리 스타’와 마주하게 된 카렐이 목이 터져라 관등성명을 댔다.
“그대가 바로 그 모험가로군. 반갑네, 지크 이병.”
“이병 지, 크.”
모험가답게, 지크는 딱히 오버로크 중장 앞에서 긴장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그간 고생이 많았네. 군단장은 그대들의 활약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네. 그래서 내 직접 그대들을 치하하고 포상하기 위해 온 것이지.”
그렇게 말한 오버로크 중장의 직속 부관인 귀네스 중령이 내민 계급장을 집어 들었다.
“이에 군단장은 악어 중대장 카렐 데 비어만을 1계급 특진시키는 바일세. 악어 중대장 카렐은 앞으로 나오게.”
“예? 저 말씀이십니까?”
“그럼 악어 중대장이 자네 말고 또 있는가? 뭐 하나? 어서 나오지 않고.”
“아, 옛!!”
카렐이 허둥지둥 오버로크 중장의 앞에 섰다.
“전쟁터는 진급이 빠르기 마련이지. 더욱이, 자네와 같은 능력 있는 장교라면 말이야.”
“대위, 카아아아아아레에에에에에에엘!!”
“귀청 떨어지겠네, 이 사람아.”
“죄, 죄송합니다아아아!!”
“군기가 바짝 든 친구로군. 좋아, 이리 오게.”
“예!!”
카렐이 가까이 다가서자, 오버로크 중장이 그의 가슴팍에 달린 다이아몬드 세 개짜리 계급장을 원형(*)의 계급장으로 바꿔주었다.
“축하하네, 카렐 소령.”
“예??”
“자네는 이제부터 대위가 아닌 소령일세.”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허허. 그만한 전공들을 세워놓고도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
“하, 하지만 군단장님! 이건 너무….”
확실히, 군단장의 포상은 과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카렐은 입관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애송이 중의 애송이라서, 소령 계급장을 달기엔 아직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군단장도 안다네. 하지만 그간 자네가 겪었던 고초와 그 와중에 보여주었던 훌륭한 지휘 능력은 훈장을 받아도 손색이 없는 것일세. 그러니 걱정 말고 1계급 특진을 받아들이게.”
“군단장님….”
“앞으로도 좋은 활약 부탁함세.”
오버로크 중장이 카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지크 이병.”
“예?”
“자네 역시 특진을 시켜야겠군. 자네와 같은 전쟁 영웅이 고작 이등병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던가?”
백번 옳은 말이었다.
“하긴. 고작 이등병이라니. 말도 안 되지.”
“대대장이 얼마나 포상을 안 줬으면 저런 전쟁 영웅이 아직도 이등병이야?”
“한 3계급 특진하려나?”
오죽 옳은 말이었으면, 부대 전체가 오버로크 중장의 말에 깊이 공감했을 지경이었다.
“지크 이병. 본 군단장은 자네를….”
“……?”
“아예 장교로 임명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장교 말씀이십니까?”
이번에는 지크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이곳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는 게이머인 모험가들이 NPC들의 지휘를 받는 시스템으로, 모험가는 어지간하면 장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대는 지휘관이 아닌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전투원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지휘관이라고 해서 항상 뒷짐만 지고 있어야 하는 법은 없지. 진정한 야전 지휘관이라면 전투 중에도 장병들을 잘 지휘할 수 있어야 하니 말일세.”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이 뭡니까?”
“자네를 독립 대대의 대대장으로 임명할까 하는데.”
“……!”
“어떤가?”
그 순간.
[알림 : 오버로크 중장이 당신에게 제안을 해왔습니다!]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 Yes : 예, 독립 대대의 대대장이 되겠습니다!
◎ No : 아닙니다. 제게는 맞지 않는 자리입니다.
선택권이 주어졌다.
‘어떻게 하지?’
지크는 고민했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레벨 업을 위해서는 당분간 이곳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에 머물러야만 했기 때문이다.
‘일개 병사보다는 지휘관이 낫겠지. 자유도도 더 높고. 일일이 명령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버로크 중장을 향해 말했다.
“예, 하겠습니다.”
“오! 내 제안을 받아들이다니! 좋네, 자네를 독립 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하도록 하겠네. 자, 받게나.”
지크가 제안을 수락하자, 오버로크 중장이 그의 가슴팍에 매달린 이등병 계급장을 떼어버리고 중령(**)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알림 : 축하드립니다!] [알림 : 당신은 전공을 인정받아 이등병에서 중령으로 진급하였습니다!] [알림 :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그러자 칭호의 옵션이 지크의 눈앞에 떠올랐다.
[또 하나의 전설 : 777]당신은 일개 병사에서 장교가 된 777번째 모험가입니다!
•타입 : 칭호 (업적)
•등급 : 전설
•추가 능력치 :
– 통솔력 +500
– 명성 +500
– 퀘스트 클리어 시 모든 능력치 +2%
그리 좋은 능력치가 붙은 건 아니었지만, 나름 의미 있는 칭호였다.
BNW를 플레이하는 유저의 수가 총 3억 명.
그중 777번째로 장교가 된 플레이어라면, 나름 상위권에 해당하는 성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네. 부대 구성에 관한 사항은 차근차근 논의해 보도록 하세나.”
“감사합니다.”
“축하하네, 지크 중령.”
“중령 지, 크!”
지크가 오버로크 중장을 향해 경례를 올려붙였다.
짝짝짝짝짝!!
대대의 전 장병들이 지크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자, 그럼 슬슬 군사 재판을 시작해 보도록 하지. 헌병대는 죄인을 끌고 오도록!”
오버로크 중장이 헌병대의 기사들과 장병들을 향해 명령했다.
“헉?”
“저, 저건!”
“뭐야, 저기 왜 있어?”
끌려 나온 죄인을 본 대대의 장병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냐하면….
“대대장이 죄수복을 입고 있다!”
누군가의 외침 그대로, 죄수복을 입은 대대장-이었던-이 꽁꽁 묶인 채 끌려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군단장 입장에서도 처벌할 수밖에 없었겠지.’
지크는 죄수복을 입은 팔쉬룸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지크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팔쉬룸은 도가 지나쳤다.
유능한 군인이라면 때때로 병력을 갈아 넣으면서까지 승리를 일굴 줄 알아야 하겠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매번 징집병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또 그들이 일군 전공을 독차지하는 게 반복되다 보면 윗선에서도 곱게 봐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팔쉬룸을 내버려 두었다간 장병들에게 충성심을 기대할 수가 없을 테니까.
팔쉬룸의 횡포가 계속되다 보면 장병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상관을 살해하고 탈영병이 되는 등의 사건 사고가 터지기 마련인 것이다.
거짓 보고서 역시 윗선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불쾌했을 테고.
이게 다 팔쉬룸의 지나친 출세욕이 부른 자충수였다.
“죄인 팔쉬룸은 들어라.”
하얀색 가발을 쓴 법무장교가 팔쉬룸을 향해 선고를 내렸다.
“너는 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으로서 휘하 장병들에 대한 관리 소홀과 가혹 행위에 가까운….”
법무장교가 팔쉬룸의 죄목을 낱낱이 읊기 시작했다.
“이에 군사 법정은 죄인 팔쉬룸에게 군법 제6조 19항, 23항. 7조 5항, 6항. 11조 2항에 근거하여 형을 집행토록 한다. 죄인 팔쉬룸은 현 시간부로 제2대대의 대대장에서 보직 해임하며, 향후 10년간 진급 누락에 처한다. 또한….”
아무래도 사형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간 부렸던 횡포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1년 간 중령에서 이등병으로의 강등과 백의종군을 명령한다. 불복 시 교수형에 처한다.”
차라리 사형이 나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아, 안 돼!!”
팔쉬룸이 비명을 질렀다.
“유후!!!”
“휘이이이이이익!!”
“신병 받아라!!”
“어이 신참!! 우리 부대로 와라!!”
“하하하하하하하!!”
반대로 장병들은 환호했다.
팔쉬룸이 백의종군이라니?
그것도 이등병으로, 1년씩이나?
굳이 악어 중대 소속이 아니라도 평소 대대장에게 불만이 많았던 장병들로서는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판결이었다.
“아, 안 됩니다!! 법무장교님!! 제발!! 그 형벌만은…!!”
“안 돼. 안 바꿔 줘. 빨리 돌아가.”
팔쉬룸이 애걸복걸해 보았지만, 법무장교는 단호박 그 자체였다.
“그간 네놈의 악독한 지휘에 억울하게 죽어간 장병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내린 형벌이다.”
“제발….”
“싫거든 교수형을 택하라.”
“…….”
“선택은 너의 몫이다, 팔쉬룸.”
사실상의 사형 선고였다.
장교, 그것도 중령으로 복무하던 자가 말단 이등병으로 군 생활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참기 힘든 일일 테니까.
“차라리 교도소에 가겠습니다! 교도소라도 좋으니 제발….”
“백의종군하든지, 교수형을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
“법무장교님…!!”
“판결은 이걸로 끝이다. 죄인 팔쉬룸에게 24시간 동안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탕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재판이 끝났다.
“내, 내가 이등병이라니… 이등병으로 백의종군이라니….”
망연자실한 팔쉬룸이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지만, 누구도 그를 동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소대로 와라!”
“여기 오면 잘해줄게!”
“비누 잘 줍냐?”
“아주 개같이 갈궈주마!”
장병들이 팔쉬룸을 향해 열렬한 러브콜을 보냈다.
***
이틀 후.
지크는 모험가 위주로 편성된 독립 대대의 대대장이 되어 자신의 개인용 막사를 지급받았고, 카렐은 그런 지크의 직속 부관으로 영전했다.
[알림 : 분발하세요! 곧 100레벨입니다!] [알림 : 100레벨에 도달하게 되면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다!]지크는 어느새 100레벨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1레벨 올려서 100 찍고. 새 스킬 배우고. 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아예 여기서 150까지 쭉 올리고….’
지크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카렐과 함께 막사를 나섰다.
옆 대대의 대대장과 전략 회의 겸 점심 식사가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옆 대대 대대장과의 자리가 끝난 후.
“어?”
부대로 복귀하던 지크는 옆 대대의 병영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오호.”
지크가 낯익은 얼굴을 한 이등병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카렐.”
“예?”
“쟤 어째 낯이 좀 익지 않냐?”
“어? 저거 팔쉬룸 아닙니까?”
알고 보니, 옆 대대의 병영에서 마주친 이등병은 이틀 전 중령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당한 팔쉬룸이었다.
결국, 팔쉬룸은 교수형 대신에 백의종군을 선택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