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80
979
“야. 한태성.”
천우진이 지크에게 물었다.
“으응?”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너… 뭐 하냐?”
“보면 모르냐?”
지크가 패를 섞으며 대꾸했다.
“하드스톤 할 준비하지?”
“너 정신이 있냐?”
천우진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지금 차원의 대균열이 폭주해서 여섯 시간 안에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됐고.”
지크가 천우진의 말을 잘랐다.
“이거나 입어라.”
지크가 무심하게 를 천우진에게 내던졌다.
“이, 이게 뭔데?”
“보면 몰라? 죽음을 피하는 망토지.”
“으음….”
“우리가 저길 굳이 기어들어 가야 해?”
지크가 천우진에게 물었다.
“뭐?”
“언제까지 막기만 할래? 그냥 기어 나오라고 해. 기어 나오면, 그때 처리하면 되니까.”
“아?”
“저 안은 쟤 나와바리인데, 우리가 개고생까지 해 가면서 클리어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막판에 청기사가 나타나면 그거만큼 골치 아픈 일이 어디 있냐?”
지크의 말은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천우진은 그 어떤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던전 안에 들어가서 폭주하는 을 잠재우는 건 결국엔 미봉책밖에 안 되었다.
를 처치하지 않는다면, 이 사태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겠는가?
“그냥 기다려. 호랑이굴로 들어갈 필요 없잖아. 어차피 호랑이랑 싸울 거면, 굴에서 나오기를 기다려야지.”
“뭔 말인지 알겠다.”
천우진이 지크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시간 남았다며? 그동안 시간이나 때우자고. 앉아.”
“그래.”
천우진은 지크의 권유에 따라 게임이 세팅된 테이블에 앉았다.
“베오울프 님도 여기 와서 앉으세요.”
“아, 예.”
베오울프 역시 지크의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뀨! 주인 놈아! 이리 줘라! 햄찌가 패 돌린다!”
“그래.”
지크는 햄찌에게 패를 맡긴 후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를 꺼내 마셨다.
그런데.
‘어?’
지크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베오울프의 허리춤에, 하얀색 토끼발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걸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어째 저 토끼발의 모양이….
‘회귀의 토끼발?!’
크반트가 보여준 고대 문헌 속 세계 등급 아이템인 과 모양이 너무나도 흡사했다.
“잠깐.”
지크는 베오울프의 허리춤에 매달린 장신구가 그 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무리 봐도 똑같은데?’
뒤이어 지크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일루미나티의 마스터는 한국인 게이머. 회귀의 토끼발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야. 그런데… 여기서 베오울프가 회귀의 토끼발이랑 똑같이 생긴 장신구를 허리춤에 달고 있다? 이건….’
그때였다.
“뀨! 주인 놈아!”
햄찌의 목소리가 지크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뭐하냐! 패 확인 안 하냐! 뀨우!”
“아.”
지크는 햄찌의 말에 패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임.
‘만약 베오울프가 일루미나티의 마스터가 맞다면….’
지크는 좀처럼 게임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천우진의 옆에서 수호자들을 도와 오즈릭 교단을 제거했던 것이었을까?’
왠지 아귀가 다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베오울프는 게이머들 가운데서도 매우 특출한 편이었다.
지크가 200레벨을 갓 통과할 시점에 이미 마스터를 찍었고, 이제는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까지 오른 강자였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을까?
히든 클래스 인 지크조차도 마스터를 찍는 데 2년이란 시간이 걸렸는데?
‘베오울프도 히든 클래스야.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돼. 그리고 저 정도가 되면 주머니 안에 든 송곳처럼 존재감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의외로 유명세를 타지도 않고… 그동안 어디서 레벨을 올렸는지도 알려지지 않았어.’
의심은 확신이 되어 갔다.
‘일단 조용히 하고 있자.’
지크는 자신이 베오울프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는 걸 철저히 숨기기로 했다.
왜?
만약 베오울프가 진짜 일루미나티의 마스터라면, 이를 역이용해서 뒤통수를 칠 수 있을 테니까.
‘니가 만약 마스터라면… 크게 실수한 거야. 내 앞에서 얼쩡거리질 말았어야지. 내가 회귀의 토끼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을 거다.’
지크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며, 베오울프를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통수를 맞은 건 한 번이면 족해.’
오즈릭 교단의 교주였던 불멸의 연금술사 아케론이 의 내부 깊숙이 침투해 있지 않았던가?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그 이상은 절대로 사절이었다.
***
에서 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내내 지크는 싱숭생숭했다.
베오울프가 일루미나티의 마스터라는 게 강하게 의심되는 만큼 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훔치고 싶다.’
지크는 베오울프의 허리춤에 매달린 토끼발, 그러니까 을 할 수만 있다면 슬쩍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이미 귀속된 아이템을 무슨 수로 훔친단 말인가?
게다가 베오울프를 기습적으로 죽인다고 한들 랜덤 드랍 아이템으로 이 떨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베오울프가 가진 값비싼 아이템이 한두 개도 아닌데 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꿀꺽!
그래서 지크는 을 코앞에 둔 채로 군침을 삼켜야만 했다.
“뀨! 주인 놈아! 좋은 패라도 들고 있냐!”
햄찌는 그런 지크를 오해했다.
하지만 지크는 햄찌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만약 베오울프가 회귀의 토끼발을 사용하면…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지크는 이 사용되어 빽섭이 일어났을 때를 가정해 보았다.
‘빽섭이 일어나면… 모든 게 그때로 되돌아간다는 말인데… 그럼 난 모든 걸 잃어….’
고민하는 지크의 머릿속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그렇지만 마냥 고민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어느덧 여섯 시간이 지나 이 완전한 폭주를 일으켰던 것이다.
“온다.”
지크는 하던 생각을 접고 을 즐기던 테이블 역시 바로 정리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
마치 블랙홀처럼 소용돌이치는 .
번쩍!
뒤이어 검은색에 가까운 섬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주변에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그리고….
저벅저벅!
이 있던 곳으로부터 말쑥한 수트를 차려입은 해골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죽음의 청기사 : 크로노스]죽음의 화신.
다른 4대 재앙들과는 다르게 우주적 개념인 죽음이 이 세계에서 형태를 갖춘 것이므로, 그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존재 구분 : NPC
•종족 : 분류 불가
•레벨 : 해당 없음
•클래스 : 해당 없음
•특이 사항 :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상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평범한 사람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즉사를 면할 수가 없다.
드디어 4대 재앙 중 보스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가 등장한 것이다.
***
‘일단 이거부터 해결하고 보자.’
지크는 일루미나티와 베오울프와 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눈앞에 닥친 우주적 존재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스으으!
인 크로노스에게서는 짙은 죽음의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크반트가 제작한 덕분에 죽음의 고유 능력으로부터 면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리석군.”
그때, 크로노스가 입을 열었다.
“죽음에 대항하는 자들이라니…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죽음의 화신인 크로노스의 입장에서는 지크 일행이 아주 가소롭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어이.”
그때, 지크가 일행을 대표해 입을 열었다.
“곱게 천계의 감옥에 갇혀 있을 것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기어 나오셨을까?”
“갇혀 있었다?”
크로노스가 웃었다.
물론 해골에게 표정이 있을 리 없었지만, 느껴지는 뉘앙스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내가 갇혀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진심으로?”
“아니야?”
“난 단지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크로노스가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이 세계의 창조주를 죽이기 위해서.”
“그게 뭔 소리지?”
지크가 깜짝 놀랐다.
“신 중의 신인 창조주를 어떻게 죽여?”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어리석은 자여.”
“……?”
“이 세계를 만든 창조주는 죽음의 화신인 나를 없애지 못했다. 그는 어설픈 창조주였다. 다른 세계를 창조한 존재들보다 한참 모자란 놈이었지. 보통… 다른 창조주들은 세계를 창조해 낼 때 죽음의 화신인 나와 같은 존재들부터 제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지크는 크로노스의 발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 이 우주에는 다양한 창조주가 존재한다.
2. 이 세계를 창조해 낸 창조주는 죽음의 화신을 제거하지 못했을 정도로 미숙한 편이다.
‘그래서 죽음의 화신 같은 게 돌아다니는 건가?’
지크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그에게는 세상을 창조할 역량은 있었지만, 안정적으로 마무리할 역량은 없었다.”
“아….”
“잡담은 여기까지 하지.”
크로노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거대한 낫을 소환해 내었다.
“비켜라.”
뒤이어 크로노스가 그 거대한 낫을 휘둘렀다.
지크 일행은 를 착용한 상태라서 크로노스의 고유 능력인 이 통하지 않으니, 물리력을 이용한 전투로 승부하려는 것이다.
“……!”
“……!”
“……!”
지크 일행은 크로노스의 기습에 화들짝 놀랐다.
쒝! 쒜엑!
크로노스가 휘두르는 낫의 기세가 무시무시해서,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스치면 죽는 게 맞았다.
“어딜!”
한 고레벨 게이머가 날아드는 낫을 막아내기 위해 방패를 들었다.
그 게이머는 공격력은 그저 그랬지만, 특유의 단단함으로 유명한 탱커였다.
그런데.
서걱!
낫이 스치는 순간.
털썩!
탱커는 두 동강이 나서 허물어졌다.
크로노스가 대충 휘두른 것 같은 낫질에, 들고 있던 방패와 함께 갈라져 버린 것이다.
‘미친!’
지크는 탱커 계열 클래스를 가진 299레벨의 게이머가 고작 평타 한 방에 두 동강으로 쪼개지는 걸 보고 경악했다.
[죽음의 수확용 낫]죽음의 화신 크로노스의 무기.
그 무엇이든 상관없이 100퍼센트 확률로 베고 생명을 거두어 가는 죽음의 낫이다.
•존재 구분 : 주 무기(낫)
•등급 : 신화
•공격력 : 해당 없음
•주문력 : 해당 없음
•효과 :
– 절삭 확률 100% (누구도 예외 없음, 방어력 무시)
– 이 낫에 베이면 즉사합니다.
“저건 개사기잖아!!!”
지크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절규가 터져 나왔다.
무기가 너무 사기였다.
그랜드 마스터인 도제 베텔규스의 스킬 이나 은 엄청난 절삭력을 자랑하지만, 그렇다고 개사기까지는 아니었다.
100퍼센트 확률로 두 동강을 내려거든, 상대방보다 시전자의 레벨이 더 높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로노스의 은 그 무엇이든 두 동강을 낼 수 있을 뿐더러, 베이면 상대방을 무조건 죽여 버리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심지어 과 같은 스킬도 아니고 그냥 무기에 붙은 기본 효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냐고!’
이쯤 되면 더러워서 상대하기 싫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당해 줄 수는 없는 노릇.
우웅!
지크는 즉시 스킬을 켜서 크로노스에게 슬로우 디버프를 걸었다.
아군이 저 무시무시한 사기템인 에 몰살당하기 전에 슬로우라도 걸어 두려는 것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