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95
994
“형니임….”
“그 더러운 주둥이로 날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메타트론은 바로크가 정신을 차리자 기존의 여유 있던 모습에서 한없이 싸늘하게 변했다.
바로크가 이성을 차렸으니, 이제야 아버지 이그나토의 원수를 제대로 갚을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놈은 짐승만도 못한 짓거리를 저지른 패륜아다. 너 같은 동생, 나는 둔 적이 없다.”
“혀, 형니임….”
바로크는 사태를 파악하고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메타트론을 향해 싹싹 빌었다.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뭐에 씌기라도 했는지… 그, 그렇습니다! 단탈리온의 꾐에 넘어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한평생 메타트론 알기를 X밥으로 보았던 바로크는,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이렇듯 구차한 행태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 바로크의 모습에도 메타트론은 통쾌해하지 않았다.
또한, 이제는 입장이 180도 달라졌음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메타트론은 지크를 만나 인생의 쓴맛을 아주 제대로 보았고, 그런 경험을 계기로 차츰차츰 정신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래서 지금의 메타트론은 바로크의 구걸에 동요하지 않았다.
메타트론에게 그런 천박하고 싸구려 같은 감정 따위는 예전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크의 노예가 되어 밑바닥을 아주 제대로 경험한 메타트론은, 어느덧 마계의 군주에 걸맞을 정도로 정신이 성숙해졌다.
“추하군.”
메타트론은 바로크의 행태를 딱 잘라 그렇게 정의했다.
“일을 저질렀으면 겸허하게 대가를 치를 줄도 알아야지.”
“형니임….”
“권력에 눈이 멀어 니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으면.”
메타트론이 화가 나서 말했다.
“마족답게, 야망 있는 마왕의 아들답게, 끝까지 당당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 하지만….”
“이 구질구질한 놈.”
메타트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를 뽑아 든 채로 바로크를 향해 서서히 다가섰다.
“네놈의 이런 비굴하고 역겨운 모습이 아버지의 죽음을 더더욱 욕되게 한다는 걸 모르겠느냐!”
메타트론이 바로크를 향해 버럭 일갈했다.
“……!”
바로크는 메타트론에게 일침을 맞게 되자 마치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자신보다 멍청하고 어리석으며, 늘 덜떨어진 형이었던 메타트론에게 이렇게 혼쭐이 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바로크.”
메타트론이 바로크를 향해 다가서며 말했다.
“이그나토의 아들이자 마계 제7구역의 군주이며 복수의 마왕… 나 메타트론은….”
“형님!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반역자 바로크를 처단한다.”
메타트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크를 단칼에 베어 버리려 했다.
그러자.
“이… 이이…!!!”
바로크가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렸다.
메타트론이 자신을 용서해 주지 않자, 다시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이렇게 순순히 뒈질 것 같은가? 혼자 뒈질 것 같냐는 말이다!!!”
그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웅!
바로크의 몸이 검은색에 가까운 보랏빛으로 물들며 섬광을 내뿜기 시작했다.
“……!”
“……!”
“……!”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본능적으로 예측하고, 경악했다.
자폭.
바로크는 마왕의 마력을 터뜨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황천길로 가려고 작정한 것이다.
“네놈이 끝까지!!!”
메타트론은 바로크가 최후의 발악을 하자 분노를 토해내면서, 재빨리 를 휘둘러 바로크를 베려고 했다.
바로크가 자폭하기 전에 두 동강을 내 버리려는 것이다.
‘아차!’
그 순간 메타트론은 그렇게 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를 거두었다.
이미 마왕의 마력이 폭주해서 터져 나오려는 마당이니, 바로크를 어떻게 하든 폭발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메타트론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멈칫했다.
하지만 더는 우물쭈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우우웅!
어느새 바로크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흡수!”
그때, 지크가 소리쳤다.
“흡수해! 터지게 놔두지 말고! 니가 받아들여!”
지크의 그 외침은 고승에게 찾아온 깨달음과 같았다.
‘그, 그래! 그거다!’
메타트론은 지크의 조언을 듣고 즉시 를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두 팔을 뻗어 터지기 직전인 바로크의 가슴팍에 박아 넣었다.
푸욱!
메타트론의 두 손이 바로크의 심장을 움켜쥐었고.
‘마왕의 마력. 아버지가 지니고 계시던 이 강대한 힘. 내가… 흡수한다!’
그렇게 메타트론은 바로크의 심장을 움켜쥔 채로 마왕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
지크의 생각은 옳았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웅!
메타트론은 순조롭게 마력을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역시.’
지크는 자기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지크가 메타트론에게 마력 흡수를 권유했던 이유는,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약 1년 전.
에서 최초의 블랙 드래곤 잉카서스의 드래곤 하트가 폭주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생명체들이 모조리 몰살당할 뻔했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최초의 블랙 드래곤이자 악신(惡神)이었던 잉카서스의 드래곤 하트가 폭발을 일으키면, 거기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능 에너지로 인해 전 세계가 오염되었을 터였다.
그래서 지크는 이 세계가 멸망하는 걸 막아 내기 위해서 스스로를 내던졌다.
사부가 개조해 준 육체를 믿고 잉카서스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지크는 기적적으로 잉카서스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는 데 성공했고, 세계를 구해 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지크는 폭주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폭발은 강력한 에너지가 그릇을 깨고 터져 나오는 거야. 그릇이 깨지지 않게끔 물꼬만 틔워 줘도 폭발을 막을 수 있지. 역시, 흡수가 답이었어.’
터지기 전에 흡수하면,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지크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마왕의 마력을 흡수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큭! 크으으으으으윽!!!”
메타트론은 폭발적으로 흘러들어 오는 마왕의 마력을 통제하며 흡수하느라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이미 으로 환전한 마력을 흡수하느라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는데, 이제 또 폭발 직전인 마왕의 마력을 흡수하려니 메타트론의 육체가 버틸 수 없었다.
“전하! 크윽! 제 심장이…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결국, 메타트론은 막대한 마왕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지러지듯 비명을 내질렀다.
“뀨! 주인 놈아! 이제 어떡하냐! 메타트론도 같이 죽게 생겼다! 용량 초과다! 초과! 뀨우!”
햄찌가 지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소리쳤다.
“아오!”
지크는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릇의 용량이 부족해. 메타트론 혼자서는 다 감당할 수가 없어.’
8억 45,00만 개어치의 마력.
그리고 바로크가 지니고 있던 마왕의 마력.
두 가지의 강대한 마력을 모두 흡수하기에는, 메타트론의 심장이 버텨 내질 못했다.
“크아아악! 저, 전하! 으아악! 어서! 어서 피하십시오! 저는 더는 버틸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메타트론이 모두에게 경고했다.
더 늦어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라도 살리려는 것이다.
“다들 도망치십시오! 어서! 크아아아아아아악!”
메타트론이 그렇게 소리칠 때였다.
“시끄러, 인마.”
어느새 메타트론의 등 뒤로 돌아온 지크가 면박을 주었다.
“집중 안 해? 너 진짜 뒈지고 싶냐? 진정한 마왕이 되기 직전에?”
“예? 크윽!”
“집중하라고. 도와줄 테니까.”
“어떻게….”
“그냥 X발! 그냥 닥치고 집중이나 해!”
“아, 알겠습니다!”
메타트론은 지크가 과연 어떻게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다가, 괜히 욕만 얻어먹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그때였다.
‘허억?!’
메타트론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마력의 양이 갑자기 3분의 2수준으로 줄어든 것을 느끼고 매우 당황했다.
‘이 무슨….’
그래서 메타트론은 무심코 자신의 등 뒤를 돌아보았다.
“크윽… 크으윽!”
놀랍게도, 지크가 메타트론의 등 뒤에 손바닥을 붙인 채 마왕의 마력을 함께 흡수하고 있었다.
[포식대법]의 흡수 스킬.
•타입 : 보조(유틸리티)
•효과 : 절망 군주가 속성 에너지를 포함한 여러 형태의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절망 군주는 흡수 가능한 에너지는 흡수하여 스스로를 강화하고, 흡수 불가능한 에너지는 따로 저장하거나 흩어 버립니다.
•쿨타임 : 없음
지크가 을 활용해 마왕의 마력을 같이 흡수해 줌으로써, 메타트론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덜어 주었던 것이다.
***
‘이런 X발!’
형석이우스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쌍욕을 내뱉었다.
바로크가 마왕위 쟁탈전에서 패배하면서, 사실상 형석이우스도 망한 셈이었다.
마계 제7구역의 총사령관으로서 바로크가 주는 온갖 특혜를 누리며 호의호식하던 생활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게다가 지크의 노예인 메타트론이 새로운 마왕이 되었으니, 형석이우스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날아갈 게 분명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형석이우스는 이미 죽어 버린 바로크의 시체에서 마왕의 마력을 흡수하고 있는 지크와 메타트론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형석이우스는 어쩌면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지크와 메타트론을 방해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럼 마왕의 마력이 폭발을 일으킬 테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목숨은 끝장이었다.
아니?
제7구역의 수도라 할 수 있는 의 절반 이상이 날아갈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마왕인 메타트론이 죽는 건 확정이고. 이 자리에 있는 원로들도 모두 뒈질 테지. 그럼 남은 최상급 마족은 몇 안 돼. 그럼… 부활한 다음에 나타나 혼란을 수습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왕의 자리에 오르면 되는 거 아닌가?’
두근두근!
형석이우스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형석이우스는 게임 BNW 역사상 최초로 마왕이 되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아직까지 그 어떤 게이머도 이룩하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흐! 위기는 기회라더니!’
형석이우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로크에게 물려받은 를 움켜쥐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겠지? 으흐흐흐흐!’
지금의 지크와 메타트론은 아주 작은 충격에도 큰 데미지를 입을 수 있기에, 평타 한 대만 쳐도 집중력을 잃을 게 분명했다.
그럼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대폭발이 일어날 테니, 형석이우스의 원대한 계획에 첫 단추가 끼워지는 셈이었다.
‘좋아. 해보자.’
형석이우스가 한없이 음흉한 마음을 품고 은근슬쩍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