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98
997
[마왕의 길Ⅰ]마계 최고의 대장장이이자 마왕들의 신물을 제작해 주는 투발카인을 찾아가보자.
•타입 : 전직 연계 퀘스트
•진행률 : 0% (0/1)
‘마왕의 길이라….’
지크는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그 단어를 되뇌었다.
‘일단 해보긴 해야겠지. 어쨌든 마왕이 됐으니까.’
본의 아니게 마왕이 되었지만,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 투발카인이란 대장장이가 어디에 있는데?”
“예, 전하.”
메타트론이 대답했다.
“마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판데모니움에 가면 투발카인을 만나실 수가 있습니다.”
“마계의 수도?”
“예.”
메타트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계의 수도 판데모니움은 현재 대마왕인 바알이 다스리고 있는 곳입니다.”
“아하!”
“일단 그곳에 가셔서 신물을 제작하시죠. 그 뒤에 마계의 문을 열어서 중간계로 갈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시는 것입니다.”
“알겠어. 그렇게 해볼게.”
지크는 메타트론의 조언에 따라 판데모니움으로 가서 투발카인이라는 대장장이를 만나 보기로 했다.
“그럼 그때 형석이우스도 데려가야겠다.”
지크는 연회장 구석에 있는 형석이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석이우스 캐릭터는 게이머인 채형석이 로그아웃을 해 버려서, 몸이 희미해지고 선명해지고를 반복하며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지크에게 또 당한 것이 억울해서, 속칭 을 때려 버린 것이다.
“형석이우스를 데려가십니까?”
메타트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투발카인은 오직 마왕들의 신물이나 방어구, 장신구 등을 제작해 주는 대장장이라서 형석이우스와는 딱히 볼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형석이우스는 왜….”
“그런 게 있어.”
지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뭔가 재밌는 생각이 났거든.”
“히, 히익?!”
메타트론은 그런 지크의 미소를 보고 오싹 소름이 끼쳐서 그만 바지에 오줌을 지릴 뻔했다.
‘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
메타트론으로서는 지크의 생각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단 하나만은 확신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거라는 것.
도대체 형석이우스를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게 다루려고 저러는지….
절레절레-
생각하기를 포기한 메타트론은 그저 형석이우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그러게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건,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쯧쯧쯧.’
한때 대륙 10대 모험가 길드 중 하나를 경영하며 최고의 네임드급 게이머로 활동하던 형석이우스는 그렇게 동정의 아이콘이 되어 갔다.
***
비슷한 시각.
“뭣이?! 바로크가 실각했다고?!”
기만의 마왕 단탈리온은 급히 올라온 보고를 받고 극대노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 멀쩡하던 바로크가 왜 실각을 해!!!”
단탈리온으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식이었다.
바로크를 꼬드겨서 마왕에 등극하게 하고, 나아가 제7구역을 집어삼킬 계획을 세운 상태였건만….
“아니! 왜 바로크가 실각했단 말인가! 어째서!”
“그, 그것이….”
전령이 단탈리온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보고했다.
“뭐?! 메타트론이 새 마왕이 되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그 빌어먹을 새끼도 새로운 마왕이 되었다고?!”
“그,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단탈리온이 버럭 소리치며 자신의 옥좌 팔걸이를 내리쳤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하, 하지만….”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단탈리온은 한동안 노발대발 분노를 터트렸다.
바로크가 실각하고, 메타트론이 새로운 마왕에 등극한 것까진 백번 양보해서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크의 경우는 전혀 이야기가 달랐다.
안 그래도 지크에게 원한이 있어서, 언제고 중간계를 침공하거든 프로아 왕국부터 조져 버릴 계획을 가지고 있던 단탈리온이었다.
그런데 지크가 새로운 마왕이 되었다니, 단탈리온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언제든 밟아 버릴 수 있을 줄 알았던 벌레가 어느새 독수리로 진화해 버린 셈이었다.
“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을 두고 볼 수 없지. 여봐라.”
“예, 단탈리온 전하.”
“지금 당장 판데모니움으로 가겠다.”
“예?!”
부하는 단탈리온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계의 수도 판데모니움.
대마왕이 지배하는 도시.
마왕들은 대마왕인 바알이 불편해서라도 어지간하면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었다.
“어찌 판데모니움에 가시려는 것입니까?”
부하가 단탈리온에게 물었다.
“그걸 지금 몰라서 묻나?”
단탈리온이 싸늘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한낱 인간에 불과한 놈이 마왕이 되었는데 가만히 있으란 말이냐?”
“그, 그렇단 말씀은….”
“대마왕에게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감히 인간 주제에 마왕이 된 혼종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느냐?”
“헉?”
“대마왕을 만나 봐야겠다.”
단탈리온은 그렇게 말하고는 즉시 판데모니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딜 정통 마족도 아닌 놈이 감히 마왕이 되었단 말인가? 내 두고 볼 것 같으냐?’
단탈리온은 어떻게든 지크를 속칭 X 되게 만들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로그인한 지크는 즉시 마계 최고의 대장장이인 투발카인을 만나러 판데모니움으로 향했다.
그런데.
“전하,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왜? 나 바빠.”
“한 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왜?”
“그런 게 있습니다.”
메타트론은 지크가 판데모니움으로 가려는 걸 한사코 막아서며,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아 왜!”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잠시만.”
“왜 그러는데?”
“그런 게 있습니다.”
지크는 메타트론이 왜 이러나 싶었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기다렸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
“전하, 이제 가시지요.”
메타트론이 지크를 안내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마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빠라바라 밤~ 빠라바라 밤~ 빠라바라 빰~ 빰빠밤~ 빰빠밤~ 빰빠바암~ 빰빰~ 빰빰빰빰~ 빰빰~ 빰빰빰빰~ 빰빰빰빰빰빰~ 빰~ 빰빠밤~!
알고 보니, 메타트론은 지크가 마계의 수도인 판데모니움에 간다는 말에 일종의 의전 행사를 준비했다.
“부대 차렷!”
“차렷!”
“열중 쉬엇!”
“쉬엇!”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마왕 전하께 경례!”
“충! 성!”
게다가 메타트론은 지크를 위해 친위대를 준비해 놓기까지 했다.
“뭐야? 이게?”
지크가 메타트론에게 물었다.
“굳이 이래야 돼? 번거롭게?”
“전하.”
메타트론이 웃으며 말했다.
“전하께서는 이제 좋든 싫든 당당한 마왕이십니다.”
“그거야 그렇지. 내가 원하던 건 아니었지만.”
“그런 전하께서 마계의 수도인 판데모니움에 행차하시는데, 초라하게 가셔야 되겠습니까? 가오가 있으신데 말입니다.”
“가, 가오?”
“예, 전하.”
메타트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가시면 가오 상하십니다.”
“아니.”
지크는 어이가 없었다.
“니가 가오를 어떻게 알아?”
가오는 일본어에서 파생된 한국의 비속어로써, NPC가 입에 담을 만한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헤헤. 대한민국 출신 모험가들이 말하는 걸 주워들었습니다.”
“…….”
“아무튼, 이제 마왕이시니 최소한의 품위는 유지하셔야지요.”
“그래 뭐. 기껏 신경 써 줬으니까 굳이 거절하진 않을게. 고마워.”
결국 지크는 메타트론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하긴. 요즘 좀 가오가 안 살긴 했지.’
최근 지크는 흘러나오는 방사능 에너지 덕분에 분홍색 쫄쫄이를 입고 다니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다.
때문에 이제는 폼을 좀 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왕이 되면서 육체가 강화된 덕분인지, 그 후로는 더는 방사능 에너지가 흘러나오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전하. 전하께서는 저희 제7구역의 한 식구이십니다. 저의 주군이시기도 하지요. 이 정도는 당연히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메타트론이 지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지크는 그런 메타트론을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
그 찐따 같고 모지리 같기만 했던 메타트론이, 이제는 어엿한 마왕이 되어 은혜를 갚기 시작하다니.
역시나 세상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참. 형석이우스는?”
“저기 있습니다.”
메타트론이 친위대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친위대원들이 커다란 관짝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그 안에 형석이우스를 담아 놓았다.
본래는 게이머가 로그아웃하면 캐릭터가 사라진다.
하지만 형석이우스의 경우엔 그 영혼이 주인인 메타트론에게 귀속되어 있어서, 로그아웃해도 캐릭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형석이우스는 영원히 지크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캐릭터를 삭제하고 게임을 접지 않는 한….
“좋네.”
지크는 형석이우스까지 확실히 챙겼단 말에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나 간다. 가자, 햄찌야.”
“뀨! 가자! 주인 놈아!”
그렇게 지크는 마계의 수도인 판데모니움으로 향하게 되었다.
***
지크가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판데모니움으로 향할 무렵.
“대마왕 폐하! 마왕 단탈리온이 폐하를 뵙기를 청하옵니다!”
마계의 지배자인 바알은 갑작스러운 단탈리온의 방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단탈리온이?”
“예, 폐하.”
“그 족제비 같은 녀석이 무슨 일로 짐을 찾는단 말인가. 끌끌.”
바알은 단탈리온의 방문이 즐거웠는지, 미소를 지었다.
오랜 시간 무료한 나날만을 보내고 있던 바알에게, 단탈리온의 방문은 왠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을 주었던 것이다.
“들라 하라.”
“예, 폐하.”
이윽고 단탈리온이 어전으로 들어서 바알에게 예를 갖추고 인사를 올렸다.
“마왕 단탈리온이 대마왕 바알 폐하를 뵙습니다.”
“그래, 오래간만이다. 단탈리온.”
단탈리온은 온화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대마왕 바알의 모습에 바짝 긴장했다.
후들후들!
사실 단탈리온은 이미 어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잔뜩 쫄아서,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늙은이 같으니….’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대마왕인 바알은 마계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로 기록될 정도였다.
한낱 최하급 마족에서 무려 대마왕의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였으니, 그 과정에서 얼마나 잔혹하고 끔찍한 살육의 역사가 있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바알을 대하는 단탈리온의 태도는 매우 신중했다.
지금 바알이 그저 다 죽어 가는 노인의 형상을 취한 채 허허실실 웃고는 있지만, 그 본질은 전무후무한 대악마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래, 단탈리온. 어째서 짐을 찾았는가?”
바알이 단탈리온에게 물었다.
“예, 폐하. 제가 폐하를 찾은 이유는….”
단탈리온은 바알에게 인간 출신인 지크가 새로운 마왕이 되었단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어?”
“예, 폐하.”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너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지라 이렇듯 폐하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음?”
“아니.”
단탈리온은 살짝 격앙된 억양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마족도 아니고, 한낱 인간 주제에 감히 마왕이 되었는데 어찌 그냥 두고 보겠습니까? 폐하께서는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 따위가 마왕이 되어 우리 마계의 명예를 더럽히는 게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그런 단탈리온의 말에 대마왕 바알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어놓았다.
“그게 뭐 어때서?”
“예…?”
단탈리온이 제 귀를 의심하며 대마왕 바알에게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마왕이 하나 더 늘었으면 우리 마계의 전력이 강화된 셈인데,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끌끌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