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0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08화
사실 그룹 활동을 하면서 심상치 않은 사생활 침해를 꽤 경험하긴 했다.
-미친 저 택시 일부러 사고 내려고 한 거 맞죠??
-저, 저기… 뒤에서, 자꾸 때리려고 하시는데….
-와~ 테스타! 저 여기 사인해주시고 사진 좀요!
-예? 죄송하지만 이곳은….
-조카분이래, 해드려 그냥.
심하게는 일부러 접촉사고 내려는 경우부터 약하게는 음악방송 대기시간에 밀고 들어오는 것까지.
뭐, 예상 못 했던 부작용도 아니라 대충 직업적 단점이려니 하고 안일하게 넘겼던 것도 사실이다.
정보화시대답게 직접 오는 사람보다는 전자기기 해킹하려 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했고.
일단 숙소에서는 괜찮았거든.
‘원룸 사태 같은 게 날 여지는 없어 보였는데.’
숙소가 워낙 보안이 괜찮은 아파트라서 말이다.
내가 대충 임시거점으로 삼았던 낡은 원룸에 무단 침입했던 수준으로는 택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배세진도 이 숙소 입주하고 난 뒤 보안 좋은 부동산 구매 충동을 더 강하게 느꼈지 않을까.
다만, 이제 그것도 한계였나 보다.
“아예 뚫고 들어왔다구요?”
“네. 어휴. 택배원을 매수해서 주차장으로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걸 또 들킨 과정이….”
“어, 어떻게 발각되었기에…….”
긴장한 김래빈에게 치프 매니저가 한숨을 쉬며 대답해 줬다.
“그게 양동 작전이었대요!”
“…?!”
“관리실 CCTV 실에 잠입해서 사각지대 따다가 걸린 애들이 다 불어서 싹 끌려갔다고…… 어휴, 나 참.”
“으헉.”
“…….”
기가 막힌다.
무슨 마피아도 아니고 직원을 매수해서 양동 작전까지 펼쳤냐.
대단히 조직적이라 그 집요함과 열정이 아까웠다. 하지만 놀랍진 않았다.
‘데이터팔이 할 때도 비슷한 건수가 몇 번 들어왔었는데.’
웬 놈한테 종일 붙어 다니면서 데이터 남겨달라는 류의 의뢰 말이다.
페이가 꽤 셌는데, 자칫하면 빨간 줄 긋기 딱 좋아서 피하긴 했다.
어쨌든, 그래서 이 꼴까지 보고 나니 더는 참을 수 없던 아파트 관리실과 주민 회의에서 권고문이 나왔다는 것이다.
“원래도 단지 앞에 자꾸 진 치고 있는 걸 쫓아내는 것도 힘들었다고, 이제 더는 힘들다고 하시니….”
“…으음.”
한마디로 ‘너희 문제니까 직접 어떻게 좀 해봐’다.
상식적인 요구라 머쓱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회사가 신경 쓰기 싫다고 그냥 무시하기엔 위험하다. 아파트 주민들이 언론에 제보해 버리는 순간 일이 커질 테니까.
[테스타 숙소 논란… 소음과 침입으로 아파트 주민 공포 호소]벌써 기사 타이틀이 짜릿하다.
‘역시 이사밖에 답이 없긴 해.’
회사에서도 이 아파트에 돈과 인력을 투입하느니 ‘숙소를 더 좋은 곳으로 옮겼다’는 식의 언론플레이가 가능한 이사를 골랐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관련 상황을 상세히 말해주는 건 단순히 설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입 닦고 ‘좋은 곳으로 옮겨주는 거예요~’ 같은 소리 하는 것보다 이렇게 겁주는 편이 협조를 구하기 편할 테니까.
앞으로 이런… 스토커 관련 대처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확실히 첫 매니저보다 유능한 놈은 맞는데….’
흠, 그래도 역시 인간성 좋은 로드 매니저를 하나 새로 넣는 편이 좋겠다.
워낙 일에 자기 몸 갈아 넣는 놈들이 많은 그룹이다. 매니저로 정 많고 빠릿빠릿한 놈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김에, 더 크고 좋은 곳으로 이사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실까요?”
“가요! 좋아요!”
“잠시만요. 음, 확실히 숙소 바꾸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볼래?”
류청우의 말에 차유진을 비롯해 몇몇이 금방 손을 올렸다.
큰세진은 손을 드는 대신, 마치 들 것처럼 흔들며 씩 웃었다.
“아, 이사 당연히 좋죠~ 근데 어디로 가는데요?”
“아직 후보지 확인 중이긴 한데요, 확실한 건 여기보단 보안 좋고 입지 좋은 곳으로 가야죠!”
“그쵸~ 아, 샵 가까운 곳으로 가는 거죠? 저는 찬성이요!”
청담동에 있는 샵이 가까울 만큼 서울 중심부가 아니면 반대란 뜻이다.
“하하, 알겠습니다! 아, 그럼 직접 후보지 좀 보실래요? 보내드릴게요!”
“네!”
곧, 메신저의 회사 업무방에 파일이 떴다. 나는 곧바로 파일을 클릭에 후보군을 훑었다.
‘괜찮네.’
물론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 위치랑 네임드만 보면 모두 썩 괜찮았다.
‘이미 유명인들이 입주해 있는 곳도 많….’
잠깐. 여기가 왜 나와.
그 순간, 치프 매니저가 하필 그 ‘여기’를 집었다.
“사실 저희는 SV빌리지를 좀 강력히 밀고 싶은데요, 테스타 이름값이 있잖아요! 그 정도는 들어가 줘도 될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전달 중입니다!”
안 된다.
“…방송국에 더 가까운 곳은 어떨까요. 엔드레펠리스나….”
“아, 거기도 또 의미 있게 살펴보는 중이죠!”
치프 매니저는 능숙하게 방향을 틀었다. 옆에서 선아현이 물었다.
“무, 문대는 차에 오래 타는 게 많이 싫어…?”
“…그런 편이지.”
“그, 그렇구나!”
아니다.
나는 ‘SV빌리지’에 누구 숙소가 있는지 알고 있을 뿐이다.
‘VTIC 숙소잖아.’
물론 연차가 차서 다들 알음알음 독립하며 유명무실해졌다고는 하지만, 괜히 이웃사촌 명분을 줄 필요는 없지 않나.
‘뭐, 그 새끼 하는 걸 봐선 주택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만.’
개가 정원에서 뒹구는 사진은 왜 보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대로 그냥 살았으면 좋겠군.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 피해 가자는 거다.
“그럼 여러분 의견은 꼭 제가 잘 정리해서 전달 드리겠습니다!”
“넵!”
회의는 깔끔하게 끝났고, 아마 이사는 이번 활동이 끝날 때 즈음해서 빠르게 진행될 것 같았다.
‘별문제는 없겠어.’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 소식이 다른 곳으로 셌다는 게 문제였다.
* * *
-섬별 이사 간대ㅠ E펠로
-X발놈들 갑자기 비싸게구네
└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 사생활 침해 고통 호소하면 되는 부분?
-ㅋㅋㅋㅋ아 너무 톱스타라서 숙소 밖에서 빠순이 기다리는 것도 못 참으시겠다잖아ㅠㅠ
-개짜증나 ㅅㅂㅅㅂ겨우 경비 뚫었는데
‘정신을 못 차리네.’
트윈 홈마는 대충 살펴보던 캡쳐를 껐다.
이세진과 박문대의 트윈 홈을 운영하는 이 직장인은 막간을 이용해서 SNS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이 글을 발견한 것이다.
[테스타 정병사생들 개징그러워]그들의 비공개 계정을 누군가 캡처해 올렸다.
‘굳이 이런 걸 왜 물 위로 끌고 오냐’, ‘적힌 내용도 테스타 사생활 침해다’ 등 신나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글을 안 내리는 걸 보니 속셈이 뻔했다.
‘활동기에 초 치고 싶나 보네.’
직장인은 뻔한 용의선상-VTIC의 팬, 원커브의 팬 등을 떠올리다가 그만두었다.
그런다고 망할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테스타의 이번 활동은 산뜻하게 순항 중이었다.
팬들의 유입은 많았으나, 이후 ‘그들만의 세상’으로 서서히 고착화되어가던 대중성의 약화가 리얼리티 덕에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불안해서 난리인 거겠지?’
게다가 트윈 홈마의 픽인 둘은 특히 새로운 이미지 추가에 성공하며 승승장구 중이었다.
음악방송마다 모노클 종류를 바꿔 착용 중인 이세진은 물론이고, 박문대 은발 또한 대단히 호평이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펜촉을 핥더니 직캠에선 내 심장을 핥아 문대는 사람 심장을 먹어
-은발 문대 절대 박제해 1000년 묵은 엘리트 요괴 바이브 포기 못 해 (주먹 쥔 이모티콘)
-그래 이럴 줄 알았어 흑댕 금댕 대통합의 시대가 왔다
└은발은 티벳 아닐지
개인 SNS도 아니고 위튜브 직캠에 달린 주접까지 눈에 뵈는 게 없이 폭주 중이었다.
‘역시 박문대 같이 잡길 잘했네.’
이 정도면 시즌그리팅 만들어 팔면 활동 비용도 충당이 가능하겠다. 트윈 홈마는 만족스럽게 자신의 SNS에 접속했다.
사생이 뭐 어떻단 말인가? 저러다가 또 새 떡밥 뜨면 다 쓸려갈 이슈다.
막말로, 어차피 자신이 잡은 놈들은 사생에게 낚일 놈들도 아니라 추가 논란도 없을 것이었다.
‘일단 이세진은 확실하지.’
트윈 홈마가 다년간의 이 바닥 짬으로 확신하는데, 아이돌 이세진은 절대 스토커에게 측은지심 가질 놈이 아니었다.
맺고 끊는 것에 능숙하고 공사 구분을 잘하는 놈이 분명한, 야망 있는 놈이다.
‘박문대? 이쪽도 절대 아니지.’
여기야 왜 스토커 짓이나 하면서 사는지 의아해할 놈이었다.
은근히 자기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약한 것 같긴 하지만, 자기 이미지 기가 막히게 만드는 걸 봐선 머리 좋은 것 같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직장인은 깔끔하게 평을 마치고, 제로 칼로리 탄산음료를 꿀꺽꿀꺽 삼키며 보정을 계속했다.
그리고 지난 콘서트에서 풀지 않았던 둘의 투샷을 SNS에 업로드하던 순간이었다.
“뭐야?”
-퍼베님 이거 보셨어요?ㅠㅠ
안면도 없던 익명 계정이 쏜 인터넷 게시판 링크가 심상치 않았다.
[테스타 찍덕 쳐내는 솜씨]트윈 홈마는 당장 내용을 확인했다.
글에는 웬 덩치 큰 인간이 테스타에 붙어 카메라를 들이대자, 멤버가 팔꿈치와 팔등을 이용해 쳐내는 장면이 GIF 파일로 첨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멤버는… 류청우였다!
“…??”
이놈도 이럴 놈이 아닌데?
운동선수 출신이라 시비에 안 휘말리는데 통달한 타입일 줄 알았는데, 장면만 봐서는 거의 사람을 때리는 것 같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베스트 댓글도 비슷한 내용으로 난리였다.
-헐 류청우 저런 성격이었어?
-솔직히 저런 새끼들은 맞아도 쌈ㅋㅋㅋ 근데 류청우 좀 깨긴 하네
-대체 청우가 뭘 잘못했어 이게 천플이나 달릴 일이야? 무섭다 진짜
-개멋있는데? 역시 사람은 운동을 해야 됨
반대와 추천이 어지럽게 오가며 온갖 말이 왔다 갔다 했다.
“이상한데?”
일단 자신이 고른 두 놈이 아니라는 것에 ‘그러면 그렇지’ 싶으면서도, 트윈 홈마는 꺼림칙함을 버릴 수 없었다.
류청우가 바보도 아니고, 뻔히 카메라 있는 데에서 경호와 매니저 두고 저럴 이유가 있냔 말이다.
‘각도의 마법일 것 같은데.’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상황을 찍은 다른 카메라와 증언이 우수수 쏟아졌다.
-저 새끼 보안 뚫고 와서 거의 애들 몸에 카메라 던지는 수준이었어 류청우가 안 저랬으면 위험할 뻔
-보니까 때린 것도 아님 다른 각도 캠 보면 붙은 새끼가 자기 발 꼬여서 넘어진 거야 날조 그만해 (캡처)
-애초에 이런 당연한 방어로 왜 말 나오는지도 모르겠어 청우 국대 시절까지 끌고 와서 궁예질 하는 거 보니까 속이 타서 미칠 것 같아
평소 그리 공격적이지 않던 류청우의 개인 팬들이 튀어나와서 울분을 토하는 게 트윈 홈마도 이해가 갔다.
난데없이 뺨 맞은 상황이니까.
그리고 슬그머니 상황에 의구심이 들었다.
‘누가 작업 쳤나?’
정답이었다.
쏠쏠한 일당을 받고 고용된 데이터 팔이의 질주와 열심히 논란을 재생성하려 애쓴 단체 메시지방이 존재했다.
그리고 데이터팔이에게 일당을 준 건… 테스타의 숙소 아파트 보안을 뚫었던 그들이었다.
테스타가 보안 철저한 곳으로 이사 간다는 것에 눈이 돌아가 버린 것이다.
당연하지만, 테스타의 회사에서도 해당 이야기가 안 나올 순 없었다.
* * *
“너 제정신이야? 정신 못 차려?”
“죄송합니다.”
지금 깨지고 있는 건 테스타 멤버… 는 당연히 아니고, 첫 매니저다.
“아니, 네가 혼자 피하면 어쩔 건데? 너 월급 왜 받냐고 새끼야.”
카메라로 한 대 칠 것처럼 달려들던 새끼를 쓱 피해서 몸을 물렸다고 온갖 폭언을 듣고 있다.
‘혼자 내빼서 좀 빈정 상할 일일 순 있다만… 저럴 일은 아니지.’
매니저가 무술의 달인도 아니고, 일개 직장인인데 몸을 날려 살신성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건 퍼포먼스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철저히 보안에 신경 쓰겠습니다!”
첫 매니저한테 비난의 화살을 싹 돌려서 혹시 소속 아티스트가 미진한 보안에 빡쳤을 때를 대비한 것이지.
‘짬이 보이는군.’
사실 평소 보안 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고, 단지 특수상황일 뿐이지만 일단 달래려 드는 게 능숙했다.
당장 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멤버들도 몇 나왔으니까.
“괘, 괜찮아요.”
“매니저 형님을 문책하지 않으셔도 괜찮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휴, 감사합니다!”
치프 매니저가 한껏 안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청우님도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해명됐고, 애초에 멋지다는 반응도 많았거든요.”
“…….”
류청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놈은 전직 국가대표에 워낙 이미지가 온화했기 때문에 이번에 타격이 좀 있었을 것이다.
원래 고깝게 보던 새끼들도 괜히 지금 충격받은 척 설치기 쉬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음, 알겠습니다.”
다만 매니저가 뒷말을 안 붙이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런 건 회사가 알아서 해야 하는데, 아티스트 분이 나서면 오히려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자책처럼 들리는 말 사이에는 ‘괜히 왜 그랬냐’는 묘한 뉘앙스가 살짝 들어가 있었다.
‘본인이야말로 쓸데없이 왜 저러는 거지.’
끼어들어서 대꾸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류청우가 먼저 대답했다.
평소답지 않게, 날이 선 어조로.
“…그러니까, 누가 맞게 그냥 둬야 했다, 그런 말씀인가요?”
“…!”
“아뇨, 그게 아니라… 피하는 걸로도 충분했다, 이런 뜻입니다! 보는 눈이 많다 보니까…….”
“…….”
류청우는 꽤 오래 대답이 없다가, 딱 한 마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피곤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류청우는 그날 스케줄 내내, 공식석상 외에는 말이 없었다.
‘망할.’
누가 봐도 뚜렷한 번아웃 증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