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7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73화
정리하자.
새 시즌의 현재 1위 영상을 보고 선아현이 상당히 좋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굳었으니까.
-너 괜찮아?
-괘, 괜찮아….
이건 거의 내 말을 반복한 거나 다름없었고.
“…….”
‘속이 안 좋아서’ 같은 변명을 이후에 듣긴 했지만, 당연히 믿을 순 없다.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발레 영상 보고 상태가 나빠질 리가 있나.’
다만 그 자리에서 이유를 캐묻진 않았다. 이미 짐작 가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선아현의 이상을 눈치챈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박문대, 아까 뭐 봤어?”
“뭐?”
“아까 차에서.”
“…….”
그날 스케줄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뒤, 큰세진은 곧바로 사정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선아현 바로 뒤에 앉았지.’
아마 대화가 들렸던 모양이다.
나는 주인이 거의 안 쓰는 배세진의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번 시즌 1위 영상.”
“아, 그 참가자….”
큰세진은 이미 이번 시즌을 모니터링했는지 아는 척을 하다가, 곧 얼굴이 굳었다.
아마 나랑 비슷한 추측을 한 모양이다.
“…발레 했었댔지?”
“그래.”
이번 시즌 1위와 선아현의 백그라운드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그리고 사실 나는 이미 거의 추측을 확정한 상태다.
-서담이 발레하면서 예중 다녔대ㅜㅜ 발레리노 돌았나
-채서담 세화예중이라고? ㅅㅇㅎ하고 친분 있을 듯 거기 인원도 적던데
이미 인터넷에서 알음알음 말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둘은 같은 예중 출신이다.
그리고 선아현의 반응을 봤을 때… 이 새끼가 선아현이 가진 트라우마에 상당히 일조한 것 같다.
“아… 젠장.”
큰세진은 벌써 자체적으로 검색을 하다가 안색이 변했다.
“아니… 이 새끼 미친 거 아니야? 무슨 배짱으로 오디션에 나왔지?”
“사고방식이 좀 남다른가 보지.”
혹은… 머리가 잘 돌아가던가.
나는 깍지를 꼈다.
“아마 증거가 없을 거야.”
“증언이 있잖아.”
큰세진이 바로 논리를 세웠다.
“난 합성까지 나왔었는데, 이놈이라고 없겠어? 심지어 1윈데.”
“…….”
“여기저기서 뜰걸.”
아니다.
“그럼 지금쯤 떴어야 해.”
나는 조사한 내용을 뱉었다.
“이 새끼가 반응이 온 건 주제곡 첫 무대부터였어. 거의 센터 포지션에, 현재 1위지. 게다가 방송에서도 분량을 잘 받았고.”
“…터뜨릴 게 있었으면 벌써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
나는 스마트폰을 침대에 던졌다.
“근데 없어. 소문도 안 돌아.”
익명 사이트부터 비공개 계정까지 싹 훑었지만, 그쪽으론 루머 하나 없다.
깨끗했다.
선아현 외의 다른 적을 만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
큰세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한 뒤, 어렵게 말을 꺼냈다.
“…힘들겠네.”
“그래.”
뭘 해보려면 최소한 첫 방송 전에 했어야 했다.
지금은 이미 이 새끼에게 상당히 큰 팬덤이 붙었다. 그것도 오디션 프로그램 특유의 공격적인 팬덤이.
만약에 이 상황에서 선아현에 대한 학교 폭력이 폭로되며 이놈이 하차한다면?
이놈 팬 중 상당수의 분노가 선아현에게 쏟아지게 된다.
벌써 단어 선택이 눈에 보이는 것 같군.
-말더듬이 찐따새끼 때문에 잘나가는 내 새끼가 X됐네 진짜 딥빡ㅋㅋㅋ 이래서 피해망상 오지는 유리멘탈은 상대하지 말아야
이런 거.
그리고 의심하거나 탐탁지 않아 하는 놈들도 분명 나온다. 현 상황에서 대중이 보기엔 1군 아이돌인 선아현이 강자니까.
‘불운한 학창 시절에 대한 화풀이’ 같은 걸로 말이다.
-솔직히 채서담이 진짜 학폭했으면 선아현이랑 똑같은 오디션에 나왔겠음?
-다른 애들은 다 채서담 미담뿐인데 혼자 갑자기 학폭 주장; 쎄한 건 나뿐이냐
-다 떠나서 자기 팬 개 많아서 채서담 인생 X될 걸 아니까 저러는 게 그렇네 증거도 없고… 음
그리고 실제로 이런 대인관계에서의 논란은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몹시 까다롭고, 정황 하나에 여론이 흔들린다.
나는 결국 달갑지 않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지금 터뜨리면 선아현도 무조건 손해야.”
“…….”
큰세진은 뭐라 말을 하려고 입을 열다가, 그냥 다물었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냥 두면 아현이가 많이 힘들어할 것 같지?”
“…….”
“너 그거 걱정하는 거잖아, 박문대.”
맞는 말이다.
이대로 가다 간 누군가가 한 번쯤은 선아현에게 스케줄 도중 물어볼 것 같다.
‘두 분 혹시 친분이 있냐’고.
‘…안 좋아.’
정말 안 좋다. 그 새끼가 잘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선아현이 그걸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견딜 수 있냐의 문제다.
음악 방송에서, 예능에서, 연말 프로그램에서 인사하고 말을 붙이고 하하호호 웃으며 활동할 수 있을까.
활동 적신호나 다름없었다.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어렵군.”
그때였다.
달칵.
“…너희 뭐 해?”
“아.”
배세진이 짐을 싸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오다가, 방 안 분위기를 보고 주춤했다.
“아뇨. 잠깐 논의할 게 있어서.”
“예예. 별거 아니에요, 형님~”
“…그렇다면야.”
배세진은 의심스러운 눈이었지만 다른 말 없이 그냥 책과 이불만 바꿔서 스스슥 방을 나갔다.
“음.”
직접 알아차린 건 어쩔 수 없다만, 본인이 말하기 전에 다른 놈들에게 떠드는 건 선아현 멘탈만 더 부수는 짓이다.
큰세진은 손을 털고 일어났다.
“문대문대, 이건 좀 더 생각해 보자.”
“그래.”
우리는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다지 비밀이고 뭐고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얼마 안 가서 다 눈치챘거든.
“얘들아, 혹시 이번 관련해서… 아현이가 따로 너희에겐 뭐라도 말한 적 있을까?”
“예?”
“TV 보는데 너무 떠는 것 같아서.”
새 시즌을 T1에서 자신들이 투자하는 온갖 방송에 광고했기 때문이다.
류청우를 시작으로, 막내 둘은 침체된 선아현의 옆에서 동공을 떨며 앉아있다 기겁했다.
“형 표정 너무 나빠요! 아픈 것 같아요!”
“이건 분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셨던 당시의 고통이 자극적인 이번 시즌을 보며 되살아나신…. 그렇지! 방통위에 이번 시즌을 신고할까요?”
“그거 아니니까 진정해라.”?
“그래 바보야! 방송 아니고 사람이야!”
“사람?”
“Yes!”
마지막으로 배세진이.
“너희 지난번에 이야기하던 거, 맞지? 그 사람! 발레 했다는데 설마 선아현….”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 그래.”
그렇게 선아현 제외 6인은 똑같은 추론에 도달해 이 사태 해결법을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아현이 개인 화보 스케줄로 외출한 날, 거실에 모여 토론을 시작했다.
“…….”
“일단, 무기명으로 신고를… 아니, 안 되겠구나. 지금은 상대와 같이 지내는 게 아니니까.”
말 꺼낸 류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놈들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따라 끄덕였다.
하지만 다른 의견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놈이 없잖아.’
학교 폭력과는 연이 없던 놈들이 대부분이라 뭐 답이 안 나온다.
그나마 덜 사교적인 배세진도 본인이 학급을 따돌리는 삶을 산 것 같더라고.
“으음, 그럼 우선 소문부터 퍼뜨릴까요?”
“도리어 그쪽 팬들이 결집할 것 같은데. 혹시라도 나중에 정식 고발글이 나와도 반박할 수 있게 꼬투리 주는 거 아닌가.”
“와~ 설득력 있네.”
큰세진은 원망하는 것처럼 말하더니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배세진이 그 사이에서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SNS 기록 같은 건 없어?”
“아, 그 사람의 개인적인 SNS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런 놈들은 꼭 관심받고 싶어서 SNS에 떠들어대니까.”
괜찮은 접근이었다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SNS를 전부 밀었던데요.”
“저, 전부?”
“예.”
계정 하나 안 남기고 전부 닫았다. 그것도 반년 전에.
‘ 새 시즌 오디션 공고 뜨자마자 싹 정리한 거야.’
최소한의 지능은 있는 놈이다.
“그럼… 우리가 이 상태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네. 단서도 없고.”
“그렇죠.”
살짝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 차유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현 형 의견 들어요!”
“…아현이한테?”
“예! 하고 싶은 일 있는지 물어봐요. 자기 생각이 제일 중요해요!”
“으음.”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피하긴 했으나, 사실 그게 정설이었다.
이미 다른 멤버들이 다 눈치챈 시점에서 굳이 말하지 않는 것도 유별난 짓이다.
‘그리고 뭐든 하려면 당장 하는 게 맞다.’
시간 끌수록 이 새끼가 유명해지니까.
이 와중에도 새 시즌이 논란과 화제성을 등에 업고 쑥쑥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인재풀은 예상대로 전 시즌들보다 좋지 못했으나, 버릴 패와 살릴 패를 잘 구분해 써먹으면서 서사를 잘 엮었더라고.
‘류서린.’
그 작가가 능력은 확실히 있는 모양이다. 를 거치면서 더 센스가 좋아졌다.
프로그램의 인기만큼은 전 시즌인 ‘미리내’ 때보다도 좋았다.
‘뭘 하긴 해야겠는데.’
그것도 빨리해야 했다. 다음 순위발표식까지 진행되면 걷잡을 수 없다.
‘…결국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방법뿐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살짝 물어볼게요. 룸메이트니까.”
“음, 그래.”
“그리고 문대만 있으면 아현이가 무서울 수도 있으니까, 저도 가 있을게요~”
“…….”
뭐?
그러나 놀랍게도 큰세진의 말은 아무런 반발 없이 통과되었다. 이놈들 사이에서 내 이미지가 어떤지 궁금해지는군.
어쨌든 나는 그날 밤. 촬영 마치고 돌아온 선아현이 자러 들어오자마자 행동을 개시했다.
“어, 어? 세진이?”
“응~ 아현아 와서 앉아봐!”
선아현은 의아한 얼굴이었으나, 의심 없이 다가와서 본인 침대에 앉았다.
“화보는 잘 찍었어?”
“으응. 괜찮았던 것 같아…!”
그리고 분위기를 누그러트리기 위한 서론을 지나, 마침내 본론이 시작되었다.
“아현아. 혹시 지금 1위랑 아는 사이야?”
“……티, 티가 나?”
“조금.”
사실 대놓고 났다만 적당히 완화해서 말해줬다.
굳은 선아현은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가, 같은 중학교였어.”
나는 직구를 던졌다.
“너 다쳤을 때 좋아했다는 게 그놈이지.”
“…!”
선아현은 침을 삼키더니, 인정했다.
“마, 맞아.”
역시.
“그런데… 모르겠어.”
뭐?
“어, 어쩌면… 내가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워, 원래 살다 보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내, 내가 그런 걸 잘 못 견뎌서….”
“잠깐만.”
나는 놈의 말을 끊었다.
“싫으면 상종을 안 하면 되는 거지, 괴롭히는 놈이 이상한 게 아닌가.”
“괴, 괴롭힌 건지도… 모, 모르겠어. 때리거나, 그런 건 아니라….”
“어떤 식이었는데.”
“우, 웃으면서 대해주는데… 진심이 아닌 것 같고, 자, 자주 이상한 일도 있고….”
“……예시를 들자면?”
“슈, 슈즈가 없어져서, 곤란했는데…. 며칠 후에, 빌려줘서 고마웠다고 돌려줬어…. 그, 그런데 난 빌려준 기억이 없었는데, 웃으면서 말하니까.”
“그래.”
“내, 내가 기술을 실패하면 웃었는데, 들어보니까 그냥 대화하다가 웃은 거고, 내가 민감했던 것 같기도 하고….”
오.
진짜 세상에는 별 새끼가 다 있군.
‘선아현만 찍어놓고 괴롭혔네.’
이렇게까지 교묘하게 다른 놈을 싫어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일반적인 또라이 새끼들처럼 때리고 얼차려를 준 게 잡긴 편했을 것이다.
옆에서 오묘한 얼굴로 조용히 듣던 큰세진이 슬쩍 물었다.
“아현~ 혹시 네가 수석이고 그 사람이 차석이었어?”
“으응? 꼬, 꼭 그랬던 건 아니지만… 몇 번은?”
“으음. 그 사람이 수석한 적도 있지?”
“아, 아마도?”
큰세진은 씩 웃었다.
“오케이~ 아이고, 너 괴롭힌 거 맞아. 아현아. 뭐 그런 거 걱정하고 그래~ 그놈이 잘못했네! 너 부러워서 그런 거네!”
“으응, 무, 문대도 그렇게, 말해줬었어.”
선아현은 제법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 상담 선생님도, 혹시 괴롭힘이, 아니더라도 내가 상처받은 건 이상한 게 아니라고 해주셔서….”
거참 상담료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군.
“지,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 그냥. 이렇게 볼 줄은 몰라서 좀 놀라서 그랬던 것 같아…!”
“그랬구나!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선아현은 말하면서 점점 스스로 다짐을 하며 회복을 하는지, 안색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남은 둘은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아, 그럼 난 자러 가볼게~ 아현이 그런 못된 놈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으응!”
“나 물 좀.”
나는 방으로 나가는 놈을 따라 나왔다.
탁.
큰세진은 거실에 나오자, 툭 던지듯 말했다.
“이거 증거 없을 거야.”
“…….”
“좀 민망한데… 내가 누굴 미치게 싫어했다면 저랬을 것 같거든? 다른 애들한테는 잘해줬을 거야. 무조건이야.”
“일단 들어가서 자라. 생각해 볼테니까.”
“…그래. 너도 얼른 자.”
나는 큰세진의 어깨를 치고, 거실에 앉았다.
“음.”
감정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 보자.
채서담.
상당히 잔꾀를 잘 부리는 놈이다. 대인관계에 능숙하고 또래 조종할 줄 아는 새끼.
동시에 선아현을 대상으로 찍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 건….
‘굉장히 경쟁적이고, 성공에 대한 욕심이 있고… 열등감이 강한 스타일.’
그렇다면 분명 자아가 비대하고 자존심이 강하다는 건데.
그런 인간이라면 이런 상황이라면.
‘SNS는 애진작에 싹 밀고, 동창생 증언도 없다.’
자신이 미래에 방해가 될만한 후환을 전부 없앴다는 자만심도 있을 것이다.
노릴 만한 점은 여기서 생긴다.
‘자만하면 보통 실수가 나오지.’
“…….”
지금이 밤 11시. 보통은 늦은 시간인데, 활동기인 아이돌들은 보통 깨어있는 시간이지.
나는 전화를 한 통 걸었다.
신호음은 짧게 가다가, 바로 걸렸다.
“안녕하세요.”
-예? 어, 문대 씨?
바로 미리내의 매니저 직통 번호다.
그리고 내가 통화하려는 상대는… 미리내의 1위 출신.
이름이 뭐더라.
“괜찮으시면 옆에 음… 정율기 씨 좀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네??
나는 경악하는 매니저에게 ‘이것이 절대 쓸데없는 친목 다지기 전화가 아니며 업무용이다’를 간신히 납득시킨 뒤, 본인과 통화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
“혹시 며칠 전에 관련 대화했던 거 기억나시나요.”
-아~ 예! 그럼요!
나는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을 주고,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못된 참가자들을 봤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중에 지금 인기 있는 참가자도 있었나요?”
-헐, 네!
좋아. 여기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