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0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05화
당일 회의장에서도 김래빈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아 래빈아, 지금까지 잘했잖아.
-그럼요~ 혹시 안 돼도 우리가 듣는 귀가 없는 거지! 근데 안 될 리가 없다?
-맞아, 김래빈 노래 좋아요!
-…감사합니다.
그나마 다른 놈들의 격려를 듣고 나서야 안색이 좀 좋아졌었지.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럼 이렇게 2, 4, 5번으로 가는 거죠? 오케이. 그럼 우리 래빈이 번호가….
-……3번, 이었습니다.
-…!
놈의 편곡은 순위에도 못 들고 끝난 것이다.
말 그대로, 탈락이다.
이렇게 안일하게 설명하자니 우습다만,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일이다.
‘김래빈의 편곡이 최종 탈락…….’
지금까지 이놈의 편곡은 ‘반드시’라고 불러도 괜찮을 수준으로 최종안에 들어갔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면 채택되지 않은 적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시안의 결정적인 일부는 반영되었으며 최종 작업에도 꼬박꼬박 참여했었다.
그러니까 멤버들도 버릇처럼 다음 작업 이야기를 했지.
-이제 콘서트용 음원 편곡도 우리 래빈이가 멋지게 해주겠네~
그런데 이번에 데뷔 이래 최초로 실패한 것이다.
‘그것도 저놈이 며칠간 잠도 못 자고 매달린 게.’
“…….”
나는 메일로도 도착한 ‘콘서트 편곡안 블라인드 투표 결과’ 자료를 한번 쓸어넘기고 화면을 껐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몸을 젖혔다.
‘여러 연유가 있겠지.’
방향성이 달랐다든가, AR 팀이 취향에 맞아서 좋은 시안을 쏟았다든가, 그쪽 작업 시간이 넉넉했다든가.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냔 말이다.
‘김래빈한텐 X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슬럼프로 등 떠민 거나 다름없는데.’
그렇다고 당장 투표로 나온 결과를 뒤집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놈 성격상 기분 좋아할 리도 없고, 마음 챙기겠다고 퀄리티를 떨어뜨릴 순 없으니까.
‘아무 효용 없이 상황만 악화하는 거지.’
하지만 이대로 두는 것도 멍청한 짓이었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전의 콘서트 회의 이후, 조용히 방에 들어가 박힌 놈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김래빈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제법 단호한 차유진과 걱정 어린 표정의 선아현과 난감하다는 얼굴의 큰세진이 붙어 있었다.
차유진이 김래빈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김래빈, 이거 먹어.”
김래빈은 외투와 양말을 걸친 채였다. 누가 봐도 나가려는 놈을 붙잡아둔 모양이다.
“안 먹어. 나 잠깐 작업실에….”
“작업실에는 왜.”
“…!”
대화하던 놈들이 나를 돌아본다. 김래빈은 침을 삼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단점을 수정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다음 시도에도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 수 없으니까….”
“김래빈 다음에 잘해! 한 번 안 될 수 있어. No problem, 괜찮아!”
그러나 김래빈은 차유진의 말에 짜증도 동조도 하지 않았다.
“괜찮을지 안 괜찮을지는 확정되지 않았어.”
단지 조용히 읊조렸다.
“하지만 이번에 실패했으니, 안 괜찮을 확률이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어. 그러니까 확률이 감소하려면 더 준비해야…….”
“…….”
“…….”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래빈아, 좀 쉬는 게 어때?”
“마, 맞아. 지금 콘서트까지 시간도 많이 남았고… 체력을 비축해 둬야 해…!”
순식간에 말이 쏟아졌다.
저거 그대로 작업실에 보냈다간 무슨 일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내가 보기에도 그래.’
차라리 화내거나 분하게 여기면 모르겠는데, 저건 강박 증상 같다.
큰세진은 아예 놈의 옆에 앉아서 어깨를 두드렸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거 아니겠어? 우리 무대만 생각하면서 좀 쉬자~ 휴식도 중요하다니까?”
“…….”
이건… 거들어줘야겠군.
나는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안 쉬고 달렸으니, 머리를 좀 쉬게 해줘라. 근육도 휴식할 때 붙는데, 넌 너무 안 쉬었어.”
“…….”
“쉬어라.”
결국 김래빈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 * *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김래빈은 약속대로 작업실에 가진 않았지만,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아직 첫 실패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투어 홍보 영상을 촬영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낸 뒤, 아직 시안이 나오지 않은 몇몇 무대들 때문에 다시 느긋해졌을 때 즈음.
‘조용하군.’
바뀐 스케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건지, 내 몸이 새벽에 깼다.
‘물이라도 마실까.’
나는 룸메이트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했다. 거실 베란다 밖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
창 너머에서 왔다기엔 지나치게 광원이 가깝다. 전자기기의 불빛 같은데…….
‘침입?’
설마 옥상에서 밧줄 타고 내려오는 미친 짓을 하는 새끼가… 음, 있을 법도 하군.
나는 사고의 폭을 굳이 제한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여차하면 신고할 수 있도록 긴급 연락망을 띄워놓고.
하지만 밖에 있던 것은… 사람은 맞았으나, 낯선 사람은 아니었다.
“김래빈.”
“…!”
타일 위에 앉아있던 김래빈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아보았다.
“혀, 형님.”
헤드폰을 낀 모양새나 화면에 뜬 프로그램은… 누가 봐도 작업 중이었다.
이 새끼 새벽에 몰래 베란다에 나와서 쭈그리고 앉아서 작업하고 있던 것이다.
“너 뭐 하냐.”
“그게….”
“곡 만지고 있지.”
이래서 낮에 피곤해 보였던 거였나.
안색이 회복 안 될 만도 했다. 이 멍청한 놈이….
나는 배란다 문을 닫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서 놈의 앞에 섰다.
“저는….”
김래빈은 황급히 자리를 치우려다가, 키보드를 마구잡이로 누르게 되었다.
그리고 노트북 창이 바뀌었다.
“…!!”
김래빈은… 작업과 동시에 모니터링 중이었다.
[콘서트 편곡안 블라인드 투표 결과]내가 며칠 전에 본 메일과 동일한 제목의 단체 메일을.
‘이건….’
김래빈의 최근 꼴을 보면, 저걸 다시 보면서 자극을 받고 의욕을 챙기자는 생산적인 생각을 했던 건 아닐 것이다.
안 그래도 충분히 충격을 받았을 테니까.
그리고… 저 메일에는 단순히 투표 결과만 나와 있는 게 아니었다.
합리적인 조합 방향을 잡기 위해, 각 번호를 왜 골랐으며 왜 고르지 않았는지 익명으로 적었다.
하지만 말투를 보면 대충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4번 제일 재밌어요
-2, 5번 매끄럽고 듣기 좋아용~ 화이팅!^^
-다 좋았지만 5번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1, 3번은 취향을 탈 것 같아 고르지 않았습니다.
“…….”
우리가 네 곡이 제일 괜찮았는데 운이 나빴다 같은 가식적인 소리도 못 하게 된 이유다.
멤버들도 저 투표 다 같이 했거든.
…그리고, 나도 거기에 코멘트를 번호마다 하나씩 달아놨었다. 하필 김래빈의 후보곡 아래에도.
-사운드가 과하다
“…….”
김래빈은 이 며칠간 그 동료평가를 옆에 띄워놓고 묵묵히 반복해 읽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말 중에 김래빈의 곡이 좋단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X발… 진짜.’
설마 이걸 반영해서 작업하려고 있던 거였나, 이 새벽에.
“들어.”
나는 놈의 앞에 앉아 눈을 마주쳤다.
“다수결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실제론 네 편곡을 대중들은 더 좋아할 수도 있는 거야.”
“…….”
“이번 결과에 그렇게까지 신경 쓸 것 없어. 그냥 콘서트 편곡 하나일 뿐이니까.”
김래빈이 불쑥 대답했다.
“그렇지만, 형도 제 편곡의 질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셨습니다.”
“…….”
“과하다는 피드백을… 문대 형께서 주셨지 않습니까.”
“내가 작곡가도 아니고, 내 말을 무조건 믿을 필요 없어. 다른 놈 말보다 네 감각이나…….”
“아뇨!”
김래빈은 고개를 푹 숙였다.
“곡에 대한 형의 판단은 언제나 객관적이고 훌륭했습니다. 빗나간 적이 없었는데, 제가 편곡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겁니다….”
“…….”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이놈이 이것 때문에 더 충격을 받았구나.
‘곡에 대한 내 판단력이 유독 좋은 걸 눈치채고 있었어.’
특성, ‘잡아채는 귀(A)’ 덕이었다.
설마 스킬 같은 비정상적인 일을 깨달은 건 아니겠지만, 음악 관련 감각이 좋은 놈이라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문대 형의 선택은 언제나 훌륭하십니다.
본인이 제일 객관성을 신뢰하던 평가자에게 혹평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
입맛이 씁쓸했다.
거짓말하지 않겠다. 사실 지금도 이번 김래빈의 편곡이 썩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김래빈치곤 너무 전형적이었어.’
그냥 AR 팀이 내놓은 건 줄 알 정도였다.
그리고 이 특성은 내가 상태창으로 얻은 것이니, 확실히 보장된…….
‘잠깐, 상태창?’
그 순간 문득, 내가 경험한 몇 가지 사례가 머릿속을 지나간다.
‘…….’
나는 다짜고짜 김래빈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아니길 바랐지만, 거기엔 못 보던 단어가 맨 마지막에 추가되어 있었다.
!상태이상 : 도돌이표
망할.
[도돌이표]: 길 잃은 제자리걸음
‘특성 : 마에스트로(S)’의 반작용. 감각 저하.
“그, 그런데… 과하다는 말씀은 곡에 구성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까? 그럼 여기서 조금 덜면… 이건 혹시 어떻게 들리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전보다 괜찮습니까? 나아졌을까요?”
“…….”
이건… 이건 안 되겠다.
이놈 완전히 멘탈이 나간 게 분명했다.
이젠 알겠다. 김래빈이 그동안 비판에 견고해 보였던 건 대안을 바로 떠올리고 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그 체계가 붕괴한 것처럼 보였다. 의존적이다.
‘X발…….’
나는 놈이 내미는 헤드폰을 받았지만 쓰지 않았다. 대신 되물었다.
“…너한테는 어떻게 들리는데.”
김래빈이 낮은 목소리로 훌쩍이는 게 들렸다.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했던 점을 최대한 많이 반영해서 기대하실 만한 결과물을 내놓으려고 했는데…… 제대로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제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구체적으로 구현되지 않습니다….”
이것도 무슨 소린지 알겠다.
‘균형이 깨졌어.’
이놈에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성실히 수용하려고 하는 겸손한 면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자기가 좋으면 좋은 거고 별로면 별로라는 본능적인 레벨의 확신.
그래서 피드백을 줘도 알아서 걸러 받아먹든 자체적으로 해석을 하든, 본인의 판단을 토대로 흡수해온 것이다.
자기가 이해한 대로, 영감받은 대로 쭉 달리는 스타일.
‘기본 성격이야.’
티홀릭의 발언도 자체적으로 가족으로 해석했던 것을 봐라.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상상 이상으로 좋은 평이 불특정다수로부터 미친 듯이 쏟아지자, 그 직접적인 포화에 압도당한 것이다.
‘오히려 확신을 잃었어.’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 완벽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즐거움을 박살 냈다.
거기서 마이페이스적 성격을 잃어버리니 곡에 개성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혹평을 받으니, 완전히 당황하며 또 그 평가를 지나치게 신경 쓰게 된다. 이놈 인생에 처음 있던 ‘능력의 실패’니까.
‘악순환이군.’
나는 욕을 참았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놈을 진정시킨 뒤 노트북을 압수했다.
“일단 이건 그만해라. 이게 아니어도 할 일이 많고 넌 능력 있는 놈이니까. 일단 놔.”
“…….”
“못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너 이러다 불면증 오면 더 큰 일 난다.”
“하나만 완성하고 나면….”
“안 돼.”
나는 노트북을 압수했다. 그리고 갈등하다가 말했다.
“…재밌어서 하는 거면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다만, 지금은 이게 네 컨디션을 망치고 있어. 너 잠도 못 자잖아.”
“…….”
김래빈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놈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내가 이런 일에 더럽게 재능이 없다는 것만 깨달았다.
‘X발.’
대책이 필요했다.
* * *
김래빈은 그 새벽 후로도 스케줄에 성실히 참여하긴 했다.
하지만 전의 재기발랄한 느낌은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걸 눈치챈 놈 중 하나는 내 방에서 이유를 찾아냈다.
“박문대, 그거 쟤 노트북이지?”
큰세진이 진지하게 말했다.
“차라리 그냥 하게 내버려 둬. 저러다 애 잡는다.”
“…….”
나는 거칠게 머리를 휘저은 뒤,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며칠 동안 쳐내고 다듬은 해결책을.
“그럼 산장 좀 섭외해 봐라.”
“…? 뭐?”
농담이 아니었다.
난 김래빈의 ‘상태이상’ 내용을 떠올렸다.
거의 산업용으로 봐도 좋을 법한, 곡의 제작 속도를 늘려주는 마에스트로 특성의 반작용.
김래빈이 가진 특출난 감각의 저하.
‘결국 성과와 능률에 집착해서 반작용이 난 거지.’
그럼 간단하다.
테스타 성과랑 아무 상관 없는, 생산성 없는 창작만 좀 해보자고.
그래서 나는 내 평생 고려도 해본 적 없는 쓰레기 같은 효용의 힐링 코스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바로 자기 계발용 합숙이다.
“그냥… 아예 산으로 한번 가보자고.”
목적지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