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3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37화
이세진은 숨이 가쁘게 뛰었다.
복잡한 계산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내게로 와눈물은 잊고
아픔은 두고]
박자를 쪼개다가 갑자기 슬로우를 걸며 힘을 준다. 그렇게 온몸을 끝까지 쓰는 무브가 목소리를 타고 입체적으로 튀어나온다.
그 어느 연습 때보다도 들어맞는 느낌.
몸에 배도록 반복하고, 훈련하고, 습득한 것들이 원하는 그대로 전신과 사지에서 터져 나올 듯 표현된다.
체험은 구상을 뛰어넘는다.
[The world is yours다 주고 싶어]
머리카락과 재킷까지 안무의 일부인 것처럼 몸을 타고 흔들렸다. 움직임이 조명을 타고 밝게 빛났다.
클라이맥스.
몸이 타오를 듯이 뜨거우면서, 동시에 가볍다.
‘아.’
무대 위 전경은 얼마나 근사한가.
안간힘을 다해서 끝내 원하는 상태에 도달한 그 느낌은,
얼마나 짜릿한가.
땀방울이 맺힌 채, 씩 웃는 이세진의 얼굴이 전광판에 떴다.
[이게 사랑일 거야]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아아아악!!”
귀를 울리는 함성.
트윈 홈마는 문득, 자신이 무의식중에 카메라를 다 드러나도록 얼굴 앞에 부여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는 뭐라도 손에 든 것을 꽉 붙잡게 되기 마련이었다.
‘…아.’
숨을 몰아쉬며 올려다본 무대 위에서는 아이돌의 퍼포먼스가 절정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미소.
열기.
무대 위 전경은 얼마나 근사한가.
혼을 불어넣은 듯 불타오르는 무대를 보는 느낌은, 얼마나 짜릿한가.
[Oh love!]테스타의 공연은 그렇게 열기의 절정에서 끝났다.
* * *
그날 밤.
-찢었다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테스타 와
-이걸 어떻게 이김
나는 손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쓸어내렸다.
방금 끝난 경연의 방청객들이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감상이 쭉쭉 눈에서 지나갔다.
‘설명이고 뭐고 없네.’
감정표현만 난무한다. 날것이 따로 없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대충 상황을 파악한 어그로들이 섞여서 난장판이 되겠지만, 지금은 진짜 관객의 반응이다.
-이걸 1등 못하면 주작임ㅋㅋㅋ
순수한 감탄.
아드레날린이 광기 수준으로 폭발하는 반응이 난무하자 후기를 보고자 붙어 있던 사람들까지 흥분하기 시작했다.
-왜 뭔데 왜
-테스타 뭐했는데ㅋㅋㅋ
-중간 때랑 많이 달라?
그리고 드디어 방청했던 사람들이 키워드 위주로 띄엄띄엄 스포일러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금발’, ‘편곡’, ‘댄브’ 등등….
‘제스처 이야기는 아직 안 나왔군.’
그러나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긴 했다. 물론 어그로와 섞이며 일단은 난장판이 될 테지만.
‘거기까지 이미 각오했다.’
…저 녀석이 말을 꺼냈을 때부터 말이다.
-바꾸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사흘 전에 무대를 통으로 바꾸자는 말을 꺼낸 당사자, 대기실 소파에 뻗은 듯이 드러누워 있는 이세진은 거의 넋이 나간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다 쏟아낸 것 같더니.’
저놈이 무대에서 중후반 댄스 브레이크의 센터를 맡았을 때 보여준 역량은 분명 연습 때 봤던 것 이상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필사적인 몰입.
-……!
정면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무대를 하면서도 직감했다.
오죽하면 지금 흥분한 방청객의 후기에서도 계속 언급되고 있었다.
-큰세진 뭐한 건지 모르겠는데 진짜 후반부에 돌았음
-센터로 오는데 ㅅㅂ 갑자기 후광 같은 게 보이고 그랬다니까
-이세진 댄브 제발 봐
-보라고
└알았어 얘들아 진정해
그리고 나는 아까 무대가 끝나자마자 큰세진에게 이런 특성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정숙하세요(EX)]-추진력 +180%
발동 중, 한계 스탯을 느끼지 않는다.?
눈 비빌 뻔했다.
‘잘못 본 줄 알았지.’
특성이 B에서 EX로 뛴 미친 상황은 처음 봤다.
그리고 거기에 붙은 추가 효과는… 거의 대가리를 후려 맞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한계 스탯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
이건 내가 지금까지 시스템의 표기법에 대해서 가졌던 의문 중에 하나기도 했다.
-한계 스탯은 정말로 돌파할 수 없는가?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어렴풋한 답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무대에서 제한적으로, 특성이 발동되는 중에서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넌 할 수 있다는 거지.’
한계는 깨졌다.
시스템의 분석은 완전무결한 게 아니었다. 분명 예외와 빈틈이 있었다.
그래. ‘상태이상’을 무시하던 선아현의 특성, ‘근성’도 예시였다.
‘어쩌면 시스템은 자체의 오류를 개개인의 ‘특성’으로 메꾸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나는 맑은 머리로 개운하게 추측했다.
그걸 고려해서 추리하자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세진.
녀석의 특성은 아마도 억눌려 있었을 것이다.
테스타에게 지난 몇 년간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보단 일단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논란과 사건이 워낙 자주 일어났지 않은가.
‘그러니까 본인 하고 싶은 대로 못 하고 참았던 거지.’
그게 이번에 ‘이테르 도발’ 사건을 계기를 맞아서 제대로 터진 것이다.
한계 스탯을 무시하는 특성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이 팀에서 저런 특성을 가질 놈이 하나만 있다면… 그게 큰세진이라는 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아무튼.’
뭐 나머지 시스템에 관한 추리는 조금 나중에 분석할까.
당장은 이 경연의 결과를 즐겨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폰 화면을 껐다.
아직 인터넷 판정이 나오진 않았지만, 이미 현장 분위기에서의 결과는 명백했다.
그 함성.
-와아아아악!!
이겼다.
테스타의 올인 도박은… 성공했다.
‘이거지.’
나는 스마트폰을 속 시원히 옆으로 던지며, 머리를 소파 헤드에 놨다.
기분 좋게 힘이 쭉 빠졌다.
“와… 다들 깨어 계시죠?”
이세진은 개운한 듯, 탈진한 듯 몽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저기서 힘은 빠졌어도 기분이 좋은 것은 분명한 호응이 들렸다.
‘나 참.’
재밌는 일이었다.
사흘 전에 하려던 걸 싹 다 뒤집고 미친 도박하기로 결심한 놈들이, 막상 무대 끝나고 나선 다 뻗어서는 평온한 상태라는 게 말이다.
심지어 류청우까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음.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는데,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하는구나 싶지.”
“…어.”
누구보다 큰세진의 태세 전환에 반색하며 사흘간의 미친 강행군을 이 악물고 버틴 배세진이 거의 웅얼거리다시피 하며 대답했다.
“Yep, 저도 좋았어요.”
“유익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신이 나서 반긴 녀석과, 편곡 2안이 채택되자 오히려 좋아한 녀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아현의 말까지.
“이렇게, 하자고 해서… 고마워 세진아. 좋았어….”
진솔한 감사였다.
나는 거기에 편승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에이,”
큰세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꺼내려는 듯했으나, 목이라도 메인 듯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활기찬 목소리로 외쳤다.
“음, 저희 화이팅 한번 할까요?”
“어어….”
“좋습니다….”
타이밍 안 맞는 화이팅이 여기저기서 하는 것이 의의를 두고 튀어나왔다. 스텝들이 피식피식 웃으며 사방에서 지나갔다.
‘분위기 좋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때, 맞은편에 뻗어 있던 놈이 사람을 불렀다.
“문대문대.”
왜.
“이거 하기 정말 잘한 것 같아.”
큰세진이 누워서 중얼거렸다.
꿈에 취한 듯이 만족감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냥… 행복한데?”
“…….”
오냐.
나는 녀석을 발로 툭 쳤다.
“평생 해라.”
“…! 당연하지~ 아, 테스타 포에버 몰라?”
녀석이 누운 채로 씩 웃으면서 주먹을 들었다.
“아~ 테스타 오늘도 뭔가 보여줬다!”
“Ohhhh!”
만족스러운 공연.
어느새 뜨거운 감자였던 이테르는 이 녀석들 머릿속에서도 순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그리고 이번 경연이 본방송에서 방영된 순간.
-헐
인터넷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 * *
-미친ㅋㅋㅋㅋㅋㅋ
-돌았다 ㅅㅂ
이테르의 대기실.
경연 무대 본방송 이후 드디어 순위 발표를 위해 모인 촬영 현장이었다.
테스타의 대기실과 구조는 거의 다를 게 없었으나,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묘한 초조함과 당혹스러움이 공기를 우울히 눌렀다.
그리고 작은 웅성거림까지.
“이거 또 고의지?”
“진짜 뭐 그런….”
지난 유출 사태 때문에 대놓고 떠들지는 못했으나, 스텝들이 말하는 대상이 누군지는 다 알았다.
테스타!
중간 평가를 보고 무대를 뒤엎어온 그 팀은 경연 당시, 관계자들에게 누가 봐도 이테르를 견제한 게 분명하다는 수군거림을 듣긴 했었다.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와 ㅅㅂ이게 경연이지
너무 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더 잘하려고 필사적으로 달려든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느 정도냐면, 방영 당시 인터넷에서는 이테르랑 비교하는 화제가 거의 나오지도 않았다.
심지어 방청객의 스포일러 때문에 ‘이테르를 의식해서 바꾼 것이다’라는 논란이 이미 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냥 테스타가 잘했다는 소리만 실시간으로 터져 나오다가, 겨우 ‘이테르를 견제해서 무대를 바꿨다’라는 화제가 나왔을 때.
-흠 견제했다고 하기엔 무대 퀄 차이가…
-혹시 이테르가 중간 평가 때 테스타 누구 죽빵 갈겼냐 와 양민학살하네ㅋㅋ
-경연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게 가오임ㅇㅇ
-그냥 졌잘싸 시전해라 괜히 개소리하다가 털리지 말고
-혹시 짤린 원더홀 직원임?
이렇게 됐기 때문이다.
아무도 꺼림칙해하지 않았다. 결과물이 압도적이면 중간 과정은 미화되기 마련이었고, 심지어 이 스토리가 결과물의 속성에 한몫했다.
-데뷔한지 몇 년 차인데 독기 지렸고
-아 진짜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 1군 하려면 이래야지
-ㅠㅠㅠㅠ아주사 때랑 비교해도 독기 하나도 안 변했어 진짜 이거 봐 (눈빛 비교 동영상)
-이거 망하면 X되는 거였는데 바꿔서 이겼잖아 아 이긴 건 인정해야지ㅋㅋㅋㅋ
앨범을 백만 장 넘게 팔아도 생생히 살아 있는 필사적인 태도!
무대 퀄리티에 대한 집착, 그리고 절실한 노력!
오히려 무대 준비 과정이 공개되면서 셀링 포인트가 된 것이다.
-남돌 세대교체 힘들 듯
-ㅅㅂ 너무 좋앜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여론을 돌려보려고 원더홀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단 정황상 이테르가 저격을 당한 것은 확실했기에, 그들은 테스타에게 이를 가는 어그로 계정들의 말을 열심히 부추겼다.
-테스타 말인데 이테르가 중간 평가 때 보여준 제스처 다 따라함 이건 좀 그런데
-무대 잘해도 쎄한 거 나뿐?
-솔직히 진짜 아주사 때 이랬으면 논란감이었는데 팬빨로 여론 밀었네… 휴
물론 ‘애초에 테스타가 썼던 것이다’라는 해명글이 나오겠지만, 일단 선동만 해놓으면 해명은 절반이나 먹히면 다행인 게 보통이었다.
일단 논란이라도 불러일으켜서 이테르를 화제성 판 위에 올리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러나.
-별로 같은 동작 같지 않은데
-그냥 무대에 어울리게 한 거 아님? 컨셉 맞춰서 제스처 과하게 쓴 거더구만ㅋㅋ
-오만가지 동작 표정 다 썼는데 끼워 맞추기는
-오 테스타 독기 오졌고~
-제스처까지ㄷㄷ;; 디스 꿀잼
대중들은 당장 첫인상에 좋아하게 된 것에는 일순 너그러워지는 법이었다.
한참 재밌게 무대 보는데 초 치지 말라며 비교 글은 무시당하거나, 오히려 이런 스토리가 더 재밌다면서 좋아하는 사람까지 붙었다.
너무 급하게 여론을 몰아 역효과가 난 것이다.
-요즘 진성 승부 개재밌네ㅋㅋㅋ
완전한 패배였다.
그래서 이 사정을 알음알음 사내에서 다 들은 스텝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물론 인터넷 모니터링을 ‘자율적인 자제’라는 명목하에 거의 금지당한 이테르 당사자들은 이런 소식을 모르긴 했다.
그러나 스탭들의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다들 피부로 느꼈다.
졌다는 것을.
“아냐, 너희 잘했어. 거기가 그럴 거리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진짜….”
“순서도 일부러 자기들이 뒤에 했을 거….”
쉿.
다른 스텝의 눈치를 받으며, 추측성 악담을 늘어놓으려던 매니저 한 사람이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테르의 리더는 이미 그 모든 말을 귀에 넣은 상태였다.
‘…….’
그는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으나, 주먹 쥔 손이 떨렸다.
‘이게 뭐야.’
억울했다.
이번에야말로 치고 올라갈 시기였다.
이번에야말로 역경을 딛고 올라가서 마침내 결과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이 그룹 멤버들과 스텝이 모두 힘을 낼 기회였는데.
“하….”
“야, 괜찮아, 괜찮아.”
서로 도닥이는 멤버들은 이미 결과를 본 듯이 얼굴에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이게 아닌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시원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촬영장을 나가던 테스타의 모습을 떠올리자 더욱 그랬다.
어떻게 자신들을 꼭 집어서 견제하듯이 무대를 만들고, 안색 하나 안 변할 수 있는 걸까.
그때부터 정신적인 후유증까지 시달리는 것 같을 정도였다.
“…잠시만요.”
리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에 물을 끼얹을 수는 없으니, 서늘한 비상구 계단에서 이 심정을 식히고 오고라도 싶었다.
그리고 대기실 문 앞을 나섰을 때였다.
바로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 훤칠한 인영이 보였다.
곧은 자세로 몸을 일으키는, 슬랙스 차림의 남자.
“…아.”
테스타 선아현이었다.
그리고 이테르 리더는 몇 초 후에야 자신이 인사도 없이 상대의 얼굴을 망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생각을 하느라…. 선배님, 저, 지나가 보겠습니다.”
이테르 리더는 이를 악문 채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한 후, 뒤돌아서 다시 걸어가려고 했다.
풀 죽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다짐을 한 채였다.
그러나, 곧 부드러운 손길이 등을 쳤다.
“저, 잠시만요.”
“…….”
아무리 그래도 선배였기에, 이테르 리더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결국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
선아현의 한 손에 들린 것은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였다.
그러나 다른 손에 들린 것은… 작은 노트였다.
남색 표지에 적힌 단어가 보였다.
…자신의 글씨체였다.
바로 본인이… 테스타의 뮤직비디오와 노트를 보며 적었던, 감상과 분석, 그리고 응용법에 대한 구상들.
자신의 노트였다.
“…….”
언제 떨어트린 거지?
“이거… 이테르 멤버 분이 지난번에, 촬영장에 두고 가셨던 거… 맞죠?”
이테르 리더는 심장이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