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6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66화
나는 선언했다.
“…그래서, 빠르게 테스타를 소집해 봤습니다.”
짝짝짝, 짝….
김래빈이 홀로 박수를 치다가 눈치를 보고 멈췄다.
다른 멤버들은 모두 ‘??’라고 얼굴에 적어놓은 것 같은 표정으로 주방 식탁에 앉아 있다.
“갑자기…?”
“음. 혹시 여행이라도 가고 싶니?”
아니다.
“앨범 이야기인데요.”
그 순간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얼굴에 ‘그럼 그렇지’라는 기색이 지나갔다.
그래도 화는 안 낸다는 점에서 참 워커홀릭만 모아 놓은 그룹답다. 나는 내심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멤버들이 이 척수 반사 다음으로 머리를 쓴 후의 반응은 이렇다.
“…잠깐만. 우리 이미 앨범 계획 다 잡혔잖아.”
“그러게. 일정도 내년 초일 텐데.”
그렇다. 사실 테스타의 다음 앨범 작업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직전 타이틀, ‘사냥’이 정규가 아니라 미니 앨범이었으니, 슬슬 정규를 뽑을 때가 됐기 때문이다.
그걸 내년 초중순으로 낙점한 거고.
‘물론 이렇게까지 빡빡하게 안 가는 게 정상이긴 하지.’
슬슬 이 연차쯤 되면 이미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컴백할까 말까 싶은 경우가 다수거든.
뭐…… 사실 이미지 소비의 문제만 있는 건 아니다.
‘회사가 투자를 안 해.’
더는 그룹을 키워야 할 때만큼 공격적으로 굴 필요가 없다. 성공한 그룹이라면 느긋하게 이미 쌓아둔 인지도와 팬층을 뜯어먹으며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획력이 검증된 프로듀싱 인력들은 신인 개발을 위해 다 빼가고, 뭐 그런 거지.
실제로 우리도 T1 소속일 때 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물론 지금은 이 회사 지분을 우리가 나눠 먹어서 그럴 일은 없다만.’
역시 돈이 최고다. 국밥처럼 든든하군.
어쨌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앨범은 내년에 나온다. 하지만.
“그런데 그전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요.”
그러자 갑자기 멤버 몇몇이 침을 삼켰다.
‘…?’
뭐냐.
“…무슨 논란 생길 것 같아서 그래!?”
“Gosh…… 설마 우리 대상 못 받아요?”
“…….”
선아현마저도 진지한 얼굴로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문대야. 문제가 생겼다면… 먼저 충분히 다 함께 이야기한 후에, 대응하면 좋겠어.”
“…….”
이게 업보인가 하는 그거냐.
그간 내가 무슨 의견만 냈다 하면 위기탈출 정치질로 연결됐다 이거군. 이해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나는 볼을 문질렀다.
“사실 이건… 이전처럼 성적이나 노림수가 때문에 내는 의견은 아닙니다.”
“……?”
“지금까지 매번 그래왔으니까,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해보고 싶어서요.”
조용히 듣고 있던 큰세진이 입을 열었다.
“다른 거라면?”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해보면 어떨까 해서.”
“…!”
“다른 계산 없이요.”
최근 사건을 겪으며 깨달은 게 있기 때문이다.
‘이 그룹 멤버들이 말도 안 되게 잘 모인 건 사실이다.’
전원이 그룹 활동에 열정이 있고, 선 안 넘는 수준으로 개성적인 녀석들이 매일 붙어 있으면서도 잘 지내는 팀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녀석들이라도 이쯤 활동하면 한 번쯤은 번아웃 와서 ‘응 안 할 거야’ 이러기 십상이지 않은가.
‘아무리 착한 놈이라도 같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순간 회의감이 안 들 수 없다.’
같은 직장에서 7년을 다녔는데 항상 일에 열정이 불타오르고 항상심이 든다? 그건 약 빨았나 의심해 봐야 한다.
‘근데 테스타는 지금 그러고 있지.’
……그리고 내 생각에, 한순간이라도 일에 대한 회의감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녀석이 없는 건…… 다른 자극이 있어서다.
간단하다.
‘자꾸 뒈질 뻔해서 그래.’
교통사고부터 시간 이동, 가상 세계, 심지어 무너지는 건물에 갇히기까지.
이쯤 되면 연예계 활동이 달달한 음료수 같지 않겠냐. 나도 죽다 살아난 지금은 그렇게 착각할 판이라고.
이딴 괴상한 경험에 좋은 점이 있다는 것도 웃기긴 하다만…….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지.’
시스템이 사라졌으니, 이제 우리가 겪을 가장 빡치고 진땀 나는 상황은 활동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그 전에 한번, 마음을 정비할 시간을 가지는 게 좋지 않나 싶었다.
“너무 분석적으로 가지 말고, 오로지 ‘자기 마음에 들 만한’ 활동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
“그게 다예요. 물론 반대하시면 승복할 거고요.”
설마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는지, 이 녀석 저 녀석 할 것 없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래. 내가 하기에 별로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는 건 알았다. 준비해 온 말 다 꺼내서 진짜 설득이라도 해야지…….
“그렇군요.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취소하겠다. 한 놈이 바로 손을 들고 튀어나왔다. 김래빈이었다.
역시 눈치 없는 녀석다운…….
‘잠깐.’
나는 녀석의 표정을 다시 보았다.
김래빈은 약간 귀를 붉힌 채로 부리부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소의 민망함을 무릅썼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제스처였다.
“…….”
그래. 다 입 다물고 있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냥, 내 의견을 지지해 주겠다고 먼저 얼른 대답한 거다.
‘…순박한 녀석.’
다만 예상하지 못한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Oh, 김래빈 빨라! 저도 좋아요. 우리 이상한 취향 가진 사람 없어요. 괜찮아요.”
“…그건 그렇긴 하지. 못 써먹을 게 나오진 않을 거야.”
차유진에 이어 배세진도 찬찬히 생각해 보니 솔깃하다는 식으로 반응하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녀석들까지.
“저도, 한 번쯤은 오로지 마음만 따라서… 해보고 싶어요, 다 같이…! 이런, 이야기를 할 줄 몰라서, 대답이 조금 늦었어. 문대야.”
“그러게. 좀 낯설긴 한데… 네가 이런 시도를 하자고 말하게 됐다는 게 오히려 참 좋은 것 같다.”
“……감사합니다.”
한 번 대답이 나오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의견이 모였다.
나는 약간 당황했다.
‘……설득해야 할 줄 알았는데.’
내가 혼자 X될 뻔한 게 바로 얼마 전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평소 같지 않은 돌출 행동을 하면, 당연히 더 의심하는 녀석들을 여러 논리를 통해 설득해야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큰세진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그래요~ 솔직히 천하의 박문대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야.
‘너는 뉘앙스가 다르잖냐.’
그러나 큰세진도 어깨를 으쓱하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음, 그래도 문대가 그룹에 해가 될 일을 하진 않을 거라고 믿긴 하거든요.”
“…!”
“그렇죠?”
문득 나는 주변을 보았다.
하나 같이 큰세진의 말에 전혀 반박할 거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심드렁한 얼굴로 ‘Yes’를 외치는 차유진을 보니 확신할 수 있다.
‘아.’
그렇군.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다른 걸 몰라도, 내가 이 그룹에 악영향을 줄 선택은 안 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는… 지금까지 확실히 잘 쌓아온 모양이다.
“그렇지 문대문대?”
“……당연하지.”
…고맙긴, 고마웠다.
내가 그렇게 약간 감흥에 잠겨 있을 때, 큰세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후회 없이 한번 해보는 거죠.”
“그래.”
“뭐. 어차피 문화훈장 못 받으면 내년에 세진 형님부터 군대 가시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
“…….”
“그러니까 그전에 후회 없이~ 해보자구요.”
배세진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반대하고 싶긴 했나 보군.’
‘일단 다들 반응이 좋고 네가 일을 잘하니 해보긴 하는데, 이 시점에 성적 안 나오는 활동은 의미 없는 거 알지’를 참 잘 돌려 말한 큰세진은 서글서글 웃었다.
그래도 놀라운 점은, 녀석도 끝까지 실제로 반대는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게 여러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좋아. 그럼 회사가 여력이 된다고 하시면 그렇게 하자.”
“넵!”
류청우의 말이 결론을 지었다.
나는 주위를 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우호적인 시선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놈들은… 쓸데없이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예상보다도 유쾌하게 선언했다.
“하고 싶은 거 다 때려 넣어 봅시다.”
* * *
모두가 바쁜 연말 연초.
당연하지만 테스타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가요 프로그램과 시상식에 참석하기 바빴다.
-김래빈 인트로 찢었음 (래빗홀 공연 영상)
-레몬 뮤직 어워드 박문대(1) (사진)
-티원 놈들 기어코 테스타 아득바득 안 부르는 것 좀 봐 졸렬 그 자체ㅋㅋ
└SBC에서 테스타가 엔딩 무대하는 거 보고 이 갈고 있을 듯
주마다 컨텐츠가 쏟아졌다. 새로운 리믹스 무대와 신선한 솔로 인트로에 퍼포먼스까지!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테스타는 여느 때처럼 이를 갈고 특별 무대들을 준비한 것 같았으며, 그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새해 좋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1월~
-아 이번 AAB 테스타 안 나옴? 오케이 바이…
누가 봐도 이 상황에 새 컨텐츠 제작까지 병행하는 건 무리였다. 그리고 아무도 컨텐츠가 갈급해서 목마르지 않은 상태.
‘컴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뭐!’
팬들에겐 수요도 기대도 없었다.
그 상황이었다.
시상식의 테스타를 보고 한창 떠들고 있던 어느 날, 웬 뮤직비디오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툭 튀어나온 것은.
-엥 뭐가 떴당!!
대학원생 친구의 연락에 보정하던 사진도 놓고 급하게 스마트폰을 본 박문대의 첫 홈마는 눈을 끔벅였다.
정말로, 알림에 뭔가 떠 있었다.
[테스타(TeSTAR) ‘Epic’ Official MV]“…에픽?”
어디 힙합 서바이벌이나 모바일 게임 아이템에 붙어 있을 듯한 용어였다.
전자는 보통 강하고 유니크한 자신을 표현하는 용도로 쓰고, 후자는 ‘귀중한 아이템’이라는 컨셉을 강화하는 데에 쓴다는 것을 생각하면…….
‘음. 테스타답네.’
테스타답게 강하고 컨셉추얼한 뭔가가 또 나온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나오는 것도 테스타다운걸.’
이제 아주 전통이 됐다.
홈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눈을 잠깐 질끈 감았다.
‘문대야, 컨텐츠 많으면 나야 좋지만… 좋은 건 아껴둬도 되는데.’
떡밥 비수기를 위해서 말이다.
‘분배 잘못하면 화제성만 떨어질 수도 있고…….’
하지만 이미 나온 것에 대한 호기심을 참을 수는 없었기에, 당연하지만 그녀는 플레이를 이미 누른 상태였다.
‘정규 앨범은 아니고, 선공개나 뭐 콜라보 같은 거겠지.’
꼭 지금 공개해야 했던 거구나, 그렇게 예상하면서.
톡.
화면은 맑은 물소리로 시작했다.
레트로한 4:3 화면비의 감성 넘치는 영상은 의자에 기대어 잠든 듯한 류청우의 상반신 컷으로 시작했다.
뒷배경의 얇은 햇살이 비추는 것은… 갈색 천막이다.
‘음?’
그렇다. 현대의 캠핑이라기보다는 근대에 썼을 법한 거대한 가죽 천막 속에 류청우는 의자를 두고 누워 있었다.
“어…….”
홈마는 인정했다. 컨셉추얼은 맞은 것 같다.
‘이제 강렬한 노래만 나오면….’
그러나 깔리기 시작한 반주는 듣기 좋은, 밝고 경쾌한 소리였다.
클래식 기타 소리.
“…!!”
부드럽다기보다는 박동하는 것처럼 퉁퉁 튀는 컨트리풍 소리가 음을 찾는다.
그 가운데, 드럼이 벅차듯 들어온다.
류청우의 말하는 듯한 보컬과 함께.
[무거운 어제는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완벽한 오늘은
끝내 오지 않았지]
그리고 화면 속에서는 본인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책상을 들여다본다.
지도와 망원경, 잉크병, 책과 램프가 흩어진 그 위에는 하나의 종이가 보드에 고정되어 있다.
-시민증명서
그리고 리듬에 맞춰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회상 컷들.
쏘아 나가는 화살, 요괴를 기록한 서책, 달리는 증기기관차, 기차에 매달린 빨간 머리의 인영, 신문, 수배지…….
그냥 ‘회상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주는 듯한 흐름이었으나, 첫 홈마는 알아차렸다.
이미 익숙한 이미지들이라는 것을.
“……!”
바로 레트로하게 편집된 와 의 MV 컷들이다.
차유진이 내민 손을 마지막 회상으로, 화면은 다시 고요히 웃고 있는 류청우를 비춘다.
[그래완벽은 없어도 이제
어제의 끝 오늘의 시작]
“…!!”
그 순간, 홈마는 깨달았다.
‘이거… 류청우구나!’
그렇다.
화면 속의 류청우는 의 스토리 라인을 통해 자신이 요괴인 것을 깨달은, 의 고액 수배지 속의 남자였다.
-내가 맡은 이… 요괴 친구 말이야.
-이 친구가 이후로 무슨 선택을 했을지 조금 알고 싶긴 해.
류청우의 ‘하고 싶은 것’이 반영된 선택지가 화면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새로운 땅 위로 발을 디뎌핑계도 망설임도 없어]
천막, 망원경, 지도.
류청우가 천막을 걷고 걸어 나간다.
의 마지막에서 차유진에 의해 개심하고 시민권자가 된 요괴는, 미지의 새 땅으로 개척을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