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ders score goals well RAW novel - Chapter 83
뻐킹! 쇼팽!
“폴란드에도 바다가 있었다니! 지금까지 몰랐어!”
푸른 바다를 본 다니엘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시들었던 꽃잎이 다시 피어나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너무 신난다~~ 바다 좋아~”
다니엘은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백사장을 마구 뛰어다녔다.
갈매기들이 놀라서 날아올랐다.
다니엘은 날아가는 갈매기들을 쫓다가 백사장에 넘어졌다.
“푸하하하!”
내가 배꼽을 잡고 웃자 다니엘이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 모래를 뿌렸다.
우리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서로에게 모래를 뿌리며 백사장을 뛰어다녔다.
“거기 서!”
“다니엘! 너 마케렐레보다 더 집요한 녀석이었구나! 아앗!”
우리는 몸싸움을 하다가 함께 백사장에 쓰러졌다.
다니엘의 푸른 눈동자가 신비롭게 반짝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짭짤한 바다 맛이 났다.
쏴아- 쏴아-
나는 가만히 그녀를 안았다.
다니엘이 내 품에 안겼다.
쏴아- 쏴아-
오직 파도 소리만이 들려왔다.
팔을 뻗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다니엘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내 셔츠를 흠뻑 적셨다.
“괜찮아. 다니엘. 이대로 조금 더 있자.”
우리는 그렇게 한 몸이 되어 있었다.
다니엘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어났다.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아~ 후련해~”
다니엘이 기지개를 켜며 웃더니 나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영웅아.”
나는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없이 웃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미안. 이건 받아야 해.”
어제 아리랑 식당 주인장 전화였다.
받아보니 내가 부탁한 것이 준비되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다니엘에게 말했다.
“바르샤바로 돌아가자.”
“으응.”
다니엘은 바르샤바라는 단어만 들어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바닷가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영웅아. 그냥 오늘 하루만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될까? 엄마한테는 내가 잘 말해둘게.”
“안 돼. 오늘 꼭 가야 해.”
“진짜 가기 싫은데…”
다니엘이 입술을 잔뜩 내밀고 애처럼 투정을 부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파도가 밀려오는 곳까지 갔다.
“왜 그래? 영웅아? 바다에 들어가려고?”
“아니. 이걸 하려고.”
나는 바다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쇼팽! 좆까라~~!!”
“풉! 뭐 하는 거야!?”
“너도 따라 해! 다니엘! 쇼팽~~~! 다 좆까라 그래!”
“조용히 해! 폴란드 사람들이 들으면 우릴 죽일지도 몰라!”
“죽여보라고 해! 망할 쇼팽 때문에 우리 다니엘이 힘든 거잖아! 좆까! 쇼팽! 꺼져버려!”
나는 웨스트햄 훌리건들에게 배운 동런던 슬랭을 듬뿍 섞어서 쇼팽을 저주했다.
다니엘도 따라서 소리를 질렀다.
“쇼팽~~~! 좆까~~~!!”
“그거야! 좋았어! 잘한다! 다니엘!”
“푸하하하!”
우리는 해변의 미치광이들처럼 소리를 지르고 웃었다.
그리곤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다니엘은 계속 웃었다.
“불교에 이런 말이 있어. 부처가 되고 싶으면 너 안의 부처를 죽여라.”
“뭐야. 그거. 무서워.”
“사람들이 보고 싶은 건 죽은 쇼팽이 아닐 거야. 너처럼 젊고 예쁘고 살아 숨 쉬는 쇼팽일 거야. 그러니까. 죽은 쇼팽한테 지지마.”
다니엘이 나를 빤히 보았다.
차창 밖으로 황금빛 노을이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응! 잊지 않을게. 영웅아.”
다니엘은 나에게서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팔짱을 끼고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폴란드 사람들이 흘금흘금 훔쳐보았다.
“어디가? 여긴 우리 호텔 방향이 아닌데?”
“일단 따라와. 리즈 씨도 기다리고 있을 거야.”
“엄마가? 언제 연락했어?”
바르샤바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했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최고급 호텔 앞에 택시가 멈추자 다니엘이 당황했다.
“뭐야. 여기는?”
“일단 내려. 설명해줄게.”
택시에서 내리자 아리랑 식당 사장님이 황급히 달려 나왔다.
“왔어요! 영웅 선수.”
“갑작스러운 부탁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장님.”
“내가 고맙지! 뭘!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말해요. 이래 봬도 내가 폴란드 한인회에서 힘 좀 쓰니까. 하하하!”
다니엘은 내가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자 신기하게 보았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전환이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영웅 씨!”
“오셨군요.”
“엄마. 여긴 왜 온 거야? 이 호텔은 뭐야?”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로비에 있던 리즈가 반겼다.
그녀는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벌써 눈물을 글썽거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영웅 씨가 우리에게 새로운 호텔을 찾아주었어.”
“뭐!?”
다니엘이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호텔 키를 받아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둘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사람의 정신력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대요. 그래서 대회 준비하기 알맞은 곳을 찾았어요. 보고 마음에 안 들면 같이 다른 호텔을 찾아보자구요.”
“…”
호텔 최상층에 도착해 스위트룸의 문을 열었다.
“어머…”
바르샤바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에 방 여러 개와 두 개의 응접실이 있는 객실은 고급스럽고 널찍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이. 이건… 피아노.”
응접실 한가운데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콘서트용 빅사이즈는 아니지만 연습용으로 충분한 스타인웨이의 최고급 모델이었다.
“바르샤바 시내에서 피아노를 쳐도 되는 객실을 찾느라 우리 사장님이 고생하셨어. 호텔 측에 문의했는데 24시간 마음껏 쳐도 된대. 원래 여기 공연 오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자주 묵는 객실이라 방음장치도 완벽하대.”
“안 돼. 이런 건 부담스러워서 받을 수 없어. 이건 친구로서의 호의를 한참 넘어선 거야. 엄마. 여기서 당장 나가요.”
“다니엘. 착각하지 마.”
다니엘이 리즈를 데리고 나가려고 해서 막았다.
“난 너를 동정하는 게 아니야. 너에게 투자를 하는 거야.”
“투자?”
“네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면 그때 내 몫을 요구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계약서도 만들 거야.”
“…”
“그리고 난 너의 친구가 아니야. 다니엘. 나는 너의 가족이야. 엠마는 나의 할머니고 폴은 내 형이야. 너는 내 여동생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넌 아닌가 보구나?”
“… 영웅아.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
“내가 영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너의 가족 덕분이야. 나는 너희 가족에게 받은 환대를 보답하고 싶어. 그리고 너의 오빠 폴은 나의 동업자이기도 해. 이 정도면 설명이 되지 않을까?”
“…”
“이리 와. 다니엘. 이럴 때는 [고마워. 나 열심히 할게.]라고 하는 거야.”
“… 고마워. 영웅아. 나 열심히 할게.”
다니엘이 다가와서 나의 품에 안겼다.
나는 리즈도 불러서 셋이 서로를 안고 한참 동안 있었다.
이 도시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어지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바르샤바 트러블]을 해결했다.
***
나는 쇼팽 콩쿠르가 끝날 때까지로 장기 객실 예약을 마쳤다.
투숙 기간 동안 호텔의 레스토랑과 바, 카페, 마사지숍, 미용실, 수영장, 헬스장 등 모든 부대시설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옵션도 추가했다.
한화로 대략 1억 원 정도 들었는데 현재 내 자산규모를 생각하면 껌값이었다.
“결승전이 10월이니까. 그때 또 올게. 반드시 살아남아라.”
“으응.”
“왜 자신 없어?”
“아니! 자신 있어!”
“후훗. 그래 그 자신감이야. 이거 받아 마지막 선물이야.”
“이건…”
나는 다니엘에게 내 이름과 등 번호 5번이 마킹된 웨스트햄 유니폼을 건네주었다.
“이건 행운의 셔츠야. 웨스트햄의 히어로님이 모든 악귀로부터 너를 보호해줄 거야. 연습할 때 힘들면 이거 입고해. 알겠지?”
“고마워.”
다니엘이 나의 볼에 키스해주었다.
공항 출국장으로 들어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다니엘! 내가 바닷가에서 뭐라고 했지!?”
‘쇼팽~! 조까~~!’
우리는 입 모양으로 ‘뻐킹! 쇼팽!’을 외치며 깔깔 웃었다.
진짜 큰소리로 했으면 폴란드 경찰들에게 체포됐을 거다.
이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
바르샤바에서 일등석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한국인 스튜어디스들이 나를 알아보았다.
그녀들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이름이 뭐에요?”
“어머~”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들의 표정을 보니 한국에서 나의 유명도가 지난 1년 사이에 크게 높아진 모양이다.
작년에도 나름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수준을 넘어 마치 내가 마이클 잭슨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사실로 밝혀졌다.
“꺄아아아아악~~! 나영웅이다!”
“오빠~~~! 잘생겼어요~~!!”
“여기! 여기!”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장으로 나오는데 입국 시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명을 질러댔다.
천 명도 넘어 보였다.
팟! 팟! 팟! 팟!
기자들도 몰려와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바람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공항 안전요원들이 몰려와서 긴급 통행로를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나는 압사 사고라도 날까 봐 마음을 졸이며 출구로 뛰어갔다.
“나영웅 선수! FA컵 우승 축하드립니다! 한국 팬들에게 한 말씀만 해주세요!”
“웨스트햄 구단을 이용해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승선을 거부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잉글랜드로 귀화한다는 설을 인정하시나요?”
그럼 그렇지.
호의적인 질문은 몇 개 없었고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하게 만들어서 논란을 팔아먹으려는 기레기들이 다수였다.
물론 이런 도발에 넘어갈 내가 아니라 입을 꾹 다물고 빠져나갔다.
그런데.
한 기자의 질문이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지금 영국 언론에서 실시간으로 열애 기사가 떴던데요. 그 폴란드 모델과는 어떤 관계죠? 결혼할 사이인가요? 바르샤바에 머문 이유가 뭔가요?”
“예!? 지금 뭐라고 했어요!?”
“지금 영국 언론에 보도되고 있어요. 본인은 몰랐어요?”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사방에서 마이크와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보안 요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나영웅 선수죠? 허허허. 오늘 로또를 사야 하나? 내가 이런 유명인을 다 태워보네요~ 허허허.”
이젠 나이가 지긋한 택시기사도 나를 알아보았다.
어쩐지 이번 한국 방문이 험난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게 뭐야!? 망할 파파라치 놈들!”
나쁜 예감은 적중했다.
거실에서 한강이 보이는 서울 잠실 부모님 집에 도착해서 바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접속했다.
망할 [더 선]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메인 화면에 떡하니 나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악의적인 왜곡 보도는 기본이고 파파라치들을 이용해서 유명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웨스트햄 히어로의 황홀한 휴가? 폴란드 모델과 뜨거운 오후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