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ders score goals well RAW novel - Chapter 89
FA컵 우승 때처럼 우는 사람은 없었다.
“목소리 낮춰! 첼시 애들이 듣잖아. 이건 나만 알고 있는 특급 비밀이라구.”
알렉산데르는 체코 골키퍼 후배 체흐가 다이빙 방향을 정하기 전 왼발 끝을 먼저 움직인다는 약점을 알려주었다.
비밀을 들은 동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무시해. 그런 거 생각하면 오히려 몸이 굳어서 안 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구석으로 강하게 차는 게 나아.”
구드욘센과 데포는 조언을 무시했다.
반면 캐릭과 마크는 눈을 반짝이며 골대에 있는 체흐의 발을 빤히 보았다.
1번 마크 노블
2번 저메인 데포
3번 마이클 캐릭
4번 구드욘센
5번 나영웅
우리는 페널티킥 성공률이 가장 높은 마크와 내가 1번 5번을 맡았다.
1번 램파드
2번 로번
3번 더프
4번 존 테리
5번 드록바
첼시는 이렇게 순번을 짰다.
승부차기와 악연이 많은 팀이라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밀레니엄 스타디움을 찾은 7만 명의 팬들이 모두 일어나서 승부차기를 지켜봅니다. 시즌 개막 전부터 선수들에게는 가혹한 승부네요.] [그걸 이겨내는 게 프로입니다. 선수들의 발끝에서 우승팀이 결정됩니다.]첼시의 선공으로 승부차기가 시작됐다.
우리 골키퍼 알렉산데르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펄쩍펄쩍 뛰며 박수를 쳤다.
램파드가 굳은 표정으로 킥 위치에 섰다.
삐이이익- !
램파드가 침착하게 오른발을 휘둘렀다.
뻐어어어엉- ! 파아아앙!
[막았어요! 알렉산데르의 선방!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합니다! 기나긴 후보 생활 끝에 마침내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베테랑 알렉산데르의 슈퍼 세이브!]“저 녀석 괜찮을까?”
이번에는 마크 노블이 준비했다.
평소와 다르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알렉스의 조언대로 체흐의 발을 보며 공에 접근했다.
멈칫-
뻐어어어엉- !!
[아! 어이없이 빗나간 볼! 골대를 넘깁니다! 아직 어린 마크 노블에게는 무리였을까요?] [왜 저런 어린 선수를 1번에 놓았는지 모르겠네요.]마크가 실축하고 돌아서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발이 안 움직이잖아!’
웨스트햄 선수 중 훈련할 때 가장 페널티킥 확률이 높은 선수가 마크였다.
마크의 실축은 치명적이었다.
“알렉스의 조언이 독이 되었군.”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머리를 비우고 구석으로 차는 게 최고라니까. 쓸데없는 이야기는 해서… 쯧쯧.”
데포가 알렉산데르를 흘겨보았다.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 키커 로번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골대에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결과는.
뻐어어어엉- ! 파아아앙!
[또 막았어요!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는 알렉산데르 골키퍼! 굉장합니다!] [웨스트햄과 첼시는 승부차기에서도 점수가 나질 않네요. 여전히 0대0! 0의 행진이 계속됩니다.]알렉스를 욕하던 데포가 2번 키커로 나가서 볼을 찼다.
뻐어어어엉- ! 파아앙!
데포가 오른쪽 구석으로 절묘하게 찼는데 체흐가 귀신같이 방향을 잡아냈다.
양 팀 관중들이 토해내는 탄식에 피치가 땅으로 가라앉을 듯했다.
뻐어어어엉- ! 터어어엉!
[이게 웬일입니까!? 더프의 킥이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 나옵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0의 행진!]“으아아아!”
알렉스는 방향을 놓쳐놓고도 뻔뻔하게 괴성을 지르며 본인이 막은 것처럼 환호했다.
[딱 한 골이면 되는데 그게 안 들어가네요. 과연 오늘 누가 첫 골의 주인공이 될까요!?]이번에는 주장 캐릭이 준비했다.
그는 마크처럼 체흐의 발끝을 유심히 보았다.
삐이이익- !
볼을 차려고 접근하는데 마지막 순간 정말 체흐의 왼발 끝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멈칫-
뻐어어어엉- !
[캐릭이 왼쪽으로 찹니다! 체흐! 왼쪽으로 다이빙~~~!]촤아아악!
강하게 찬 볼이 체흐의 손에 맞고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캐릭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첼시 0 대 1 웨스트햄]“왼발이랑 아무 상관없잖아! 분명히 체흐의 발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구!”
캐릭이 분통을 터트렸다.
강하게 찬 덕분에 방향을 읽히고도 골을 넣을 수 있었다.
뻐어어어엉- ! 촤아아악!
[첼시도 존 테리가 첫 골을 집어넣습니다! 이제 스코어는 1대1입니다!]4번째 키커 구드욘센 차례.
그가 골을 넣으면 웨스트햄이 완전 유리해진다.
그 생각이 구드욘센의 다리를 굳게 만들었다.
뻐어어엉- ! 파아앙!
[체흐가 또 방향을 읽었어요! 체흐의 선방에 막히는 구드욘센! 이제 마지막 5번째 키커에서 승부가 갈립니다!]5번째 키커 드록바가 준비를 했다.
내 뒤에 대기 중인 키커들의 페널티킥 확률이 별로라 반드시 내 차례에서 끝내야 했다.
페넌트, 안톤, 조지, 스펜서…
다들 페널티킥을 더럽게 못 찼다.
“와봐! 와봐!”
알렉산데르는 술 취한 체코 아재처럼 팔을 넓게 벌리고 체코말로 소리쳤다.
드록바는 특유의 근엄한 표정으로 ‘저 녀석 돌은 거 아니야?’ 쳐다보았다.
탁월한 클러치 능력으로 첼시 영광의 시대를 열었던 남자가 스텝을 밟으며 볼을 찼다.
뻐어어어엉- !!
[아! 가운데에요!]드록바는 놀랍게도 가운데로 볼을 찼다.
왼쪽으로 몸을 던진 알렉스가 필사적으로 다리를 쭉 뻗었다.
티이이익- !
[막았어요! 알렉산데르의 발끝에 걸립니다! 드록바의 실축! 이제 커뮤니티 실드의 행방은 이 남자의 발에 달렸습니다!]“우우우우우!”
첼시 팬들이 야유를 쏟아냈다.
그게 드록바에게 향하는 건지 나에게 향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척-
나는 볼을 내려놓고 정확히 네 발 물러났다.
체흐가 골대 앞에서 거미처럼 양팔을 벌리고 섰다.
“왼발이라…”
지금까지도 반신반의했다.
알렉스의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번에 프리킥할 때는 그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오늘은 틀렸다.
체흐는 캐릭의 킥 방향을 정확하게 읽고 반대로 몸을 날렸다.
‘!’
혹시 체흐가 본인의 습관이 읽힌다는 걸 알고 역으로 이용하는 걸까?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삐이이이익- !!
이 와중에 주심이 호각을 불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텝을 밟았다.
하나, 둘, 셋, 넷
스윽- 멈칫-
네 번째 스텝을 밟는데 체흐의 왼발 끝이 왼쪽으로 살짝 움직였다.
투우우우웅- !
[나영웅! 찼습니다! 체흐! 왼쪽으로 다이빙!]토옹 토오옹-
나는 왼쪽으로 차려다가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꾸어 가운데로 볼을 차올렸다.
일명 파넨카 킥.
왼쪽으로 다이빙한 체흐는 골대로 굴러오는 볼을 허무하게 바라보았다.
나의 킥력에 부담을 느끼고 먼저 방향을 잡은 체흐의 패배였다.
[고오오오오올~! 나영웅의 골이 들어갑니다! 웨스트햄이 첼시를 승부차기에서 2대1로 꺾고 1964년 이후 무려 41년 만에 커뮤니티 실드를 차지합니다! 두 달 사이에 2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7만 관중이 일제히 환호하고 동료들이 나에게 달려드는데 나는 한 가지 의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맞는 거야?”
알렉스의 조언이 맞는 건지 아닌 건지 결국은 알 수 없게 되었다.
“으아아아! 영웅아! 이 복덩어리 자식아!”
“우승했어! 우리가 또 우승했다구! 얄미운 첼시 놈들을 꺾고! 신난다!”
“으아아아! 해머스!”
FA컵 우승 때처럼 우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승자의 기분을 마음껏 즐겼다.
해머스 4만 명이 부르는 [나는 영원히 비눗방울을 불 거야.]가 웨일스 하늘에 울려 퍼졌다.
“나는 영원히 비눗방울을 불 거야~ 예쁜 방울들이 높이 날아가 하늘에 닿겠지~”
[05-06 시즌 커뮤니티 실드 우승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입니다!]펑! 펑! 펑! 펑!
우리는 은빛 방패를 들어 올리며 우승 세리머니를 했다.
사방에서 폭죽과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은빛 꽃가루가 쏟아졌다.
“우와아아아아!”
나의 웨스트햄 유니폼에는 자랑스러운 한국기업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오성 모바일]이번 여름.
한국에서 제임스와 내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오성기획 영국지부 최종건 팀장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P&J 에이전시]는 웨스트햄 구단과 오성전자 사이에서 첫 번째 스폰서 계약을 만들어냈다.오성전자는 매년 웨스트햄 구단에 1800만 파운드(약 275억 원)를 지급하기로 스폰서 계약을 했다.
여기서 우리 회사는 3%의 수수료를 챙겼다.
오성전자로서는 행운이었다.
스폰서 계약하고 첫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니 벌써 본전을 뽑은 셈이다.
내일 모든 영국 신문 1면에는 오성전자 로고가 달린 유니폼을 입은 우리가 등장할 테니까.
“우와아아아! 신난다!”
웨스트햄 선수들은 은빛 방패를 들고 경기장을 몇 바퀴씩 돌며 팬들과 기쁨을 나누었다.
라커룸에 돌아와서는 샴페인을 뿌리며 광란의 파티를 즐겼다.
다들 팬티 차림으로 샴페인을 물총처럼 쏘며 뛰어다니고 있는데 캐릭이 혼자 심각해져 있었다.
“왜 그래요? 주장?”
“뭔가 불길해…”
“1시간 전에 우승컵 들어놓고 갑자기 뭔 소리에요?”
“모두 지나치게 들떠 있어. 커뮤니티 실드 따위에 이렇게 기뻐해도 되는 걸까? 우린 4일 후에 챔스 예선 첫 경기가 있잖아.”
“그러니까요. 그깟 하찮은 커뮤니티 실드 따위를 무려 41년 만에 따놓고 저렇게들 좋아하네요~ 별것도 아닌데~”
“야! 나영웅! 비꼬지 마! 난 진지하다구.”
척-
나는 캐릭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주장! 걍 즐겨요! 어차피 이걸로 카퍼레이드까지는 하지 않잖아요. 그냥 라커룸 나가면 끝이라구요.”
“그래… 그래야겠지.”
나는 캐릭과 샴페인을 병째 들고 건배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커뮤니티 실드 우승 축하 파티를 마음껏 즐기고 다음 날 아침에 동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일 후.
스페인의 노란 잠수함 비야레알과 내 인생 첫 번째 챔스 경기를 치렀다.
[05-06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 1차전 웨스트햄 대 비야레알]첫 번째 챔스 경기를 앞두고 업튼 파크 인근은 축제 분위기였다.
“불린 그라운드에서 챔스 경기를 보게 될 줄이야. 하하하. 이게 얼마만이지?”
“너무 들뜨지 마. 챔스 경기라고는 하지만 본선도 아니니까.”
“쳇. 분위기 깨는데 재주 있다니까. 예선이면 어떻고 본선이면 어때? 불린 그라운드에서 챔스 경기를 할 정도로 우리 팀이 좋아졌다는 게 중요한 거야.”
“좋아져? 그것도 문제야. 웨스트햄은 지금까지 어떤 선수 보강도 하지 않았어. 이번 시즌 챔스, 리그, FA컵까지 소화해야 하는데 알프레드 단장 녀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 이대로 가면 시즌 중반도 못가서 팀이 와르르 무너질 거야.”
업튼 파크 인근 펍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낙관론자들과 비관론자들이 언제나처럼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다.
그리고 그날 밤.
비극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