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ders score goals well RAW novel - Chapter 94
세르히오 라모스
“원정 가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도 뛰어볼 수 있겠네. 와~ 신난다.”
“난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뛰어보는 게 꿈이었어. 티비로 보니까 진짜 멋있더라.”
선수들은 소풍을 앞둔 아이들처럼 설렜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반드시 이기겠다는 라이벌 의식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는 이런 유럽 최고의 명문 팀과 붙어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웨스트햄의 라이벌은 기껏해야 런던을 넘지 못했다.
내가 입단하기 전까지는 밀월FC 같은 팀과 동런던에서 허구한 날 복작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내가 들어오고 지난 2년간 첼시, 아스널과 런던 라이벌 구도가 생겼고 맨유와도 약간의 라이벌 정서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유럽의 왕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이라니.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뭔가 강력한 대책이 필요해.”
선수들의 반응을 보니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일류 구단이 되려면 먼저 일류 구단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챔피언스리그는 말 그대로 유럽 챔피언 팀들이 한판 대결을 벌이는 전쟁이다.
어설픈 마음으로 덤볐다가는 전 유럽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거다.
[05-06시즌 챔피언스리그 C조 1R 웨스트햄 대 레알 마드리드]충격과 공포의 조추첨이 끝나고 15일 후.
웨스트햄의 챔스 조별 리그 첫 경기가 동런던에서 벌어졌다.
우리는 그동안 2번의 리그 경기를 치렀고 2연승을 거두며 상승세였다.
주전 선수들의 컨디션도 좋았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데려온 요시 베나윤이 팀에 금방 녹아들며 큰 보탬이 되었다.
우리는 리그 경기를 치르면서 동시에 레알 마드리드전 대책을 세웠다.
하지만 누구도 오늘 경기의 결과를 확신하지 못했다.
상대는 유럽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우와~~ 진짜 우리 업튼파크로 베컴, 호나우두, 카를로스, 라울, 지단이 찾아오는 거야?”
“바보야. 호나우두와 지단은 부상으로 빠졌잖아.”
“그래? 그럼 우리가 이길 수 있겠네?”
“멍청아!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야. 슈퍼스타들의 팀이라구. 지단과 호나우두가 빠져도 호비뉴, 밥티스타, 구티… 대신 뛸 선수들이 넘쳐난다구.”
“그럼. 우리가 지는 거야?”
“모르지. 축구공은 둥그니까.”
동런던 펍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대결을 앞두고 온갖 예상이 쏟아졌다.
지난 FA컵 결승전만큼 뜨거웠지만 상대가 외국팀이라 분위기가 좀 달랐다.
웨스트햄 팬 대부분은 프리미어리그 외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몇몇 축잘알들이 침을 튀기며 레알 마드리드가 얼마나 명문 팀인지 설명해야 했다.
“흠…”
팬들은 물론이고 선수들도 레알 마드리드의 화려한 공격진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직 단 한 명의 수비수만을 생각했다.
“세르히오 라모스.”
훗날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추앙받는 스페인 수비수 라모스가 오늘 레알의 주전 센터백으로 출전한다.
라모스는 지난 시즌까지 세비아에서 활약하다가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아직은 레알 팬들도 라모스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는데 나는 그가 얼마나 무서운 선수인지 잘 알았다.
경기 전 나는 우리 팀 공격수들을 모아 놓고 경고했다.
“레알의 4번 라모스를 조심하세요.”
“라모스? 그 새파랗게 어린 장발 녀석? 덩치만 컸지 아직 어설프더만. 쓸데없이 겁주지 마.”
데포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킬러답게 항상 상대 팀 수비수들의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조사해서 알고 있었다.
“겁주는 거 아니에요. 라모스는 곧 세계 최고의 수비수가 될 거예요. 내 눈을 믿어요. 이번 경기의 승패는 라모스를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90분 동안 녀석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마세요. 필요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악랄한 짓도 하는 놈이니까.”
“…”
웨스트햄 선수들은 황당하게 나를 보았다.
다들 호비뉴, 베컴, 라울, 카를로스를 어떻게 막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생뚱맞은 10대 수비수를 조심하라니.
“뭐. 영웅이 말이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맞아. 레알도 괜히 10대 수비수에게 챔스 첫 경기를 맡기진 않았을 거야.”
웨스트햄 동료들은 대충 나의 말을 들어주는 척했다.
그리고.
나의 예언은 곧 현실이 되었다.
[전 세계 챔피언스리그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조별 리그 1R가 벌어지는 런던의 불린 그라운드입니다! 웨스트햄과 유럽 최고의 명문 팀 레알 마드리드와의 대결에 동런던 일대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 이런 경기가 벌어질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경기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오늘은 동런던 축구팬들을 위한 축제입니다.]경기장을 가득 채운 웨스트햄 팬 중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도 보였다.
특히 노인들은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는 표정으로 한 많은 불린 그라운드의 피치를 바라보았다.
저 노인들이 젊은이였을 때도 웨스트햄은 여전히 약팀이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을 대표하는 명문 팀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념했던 꿈이 불린 그라운드의 피치에서 펼쳐졌다.
“와… 저거 봐. 호비뉴 진짜 볼 잘 다룬다. 공이 몸에 붙어 있네.”
“야! 끝나면 내가 베컴이랑 유니폼 교환할 거니까 건들지 마라.”
경기 전 워밍업 시간.
웨스트햄 선수들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호비뉴가 생글생글 웃으며 온몸으로 공을 튕겼고 베컴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몸을 풀었다.
선수들의 몸에서 빛이 났다.
이번 시즌은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암흑기에 해당된다.
갈락티코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던 침체기.
그런데도 레알 선수단이 내뿜는 화려함은 대단했다.
“오늘 각오해야 할 거다.”
나는 호비뉴고 라울이고 무시하고 오직 라모스에만 집중했다.
내가 지금처럼 성공적으로 수비수 경력을 쌓아가다 보면 결국 라모스와 꼭대기에서 만나게 될 거다.
그 꼭대기에서는 반드시 누구 하나를 밀어서 떨어트려야 한다.
유럽 최고의 수비수 자리는 단 하나뿐이니까.
미래를 위해 초장에 저 거만한 녀석의 콧대를 꺾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삐이이이이익- !!
[경기 시작됐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라울과 호비뉴의 투톱으로 공격을 전개합니다. 반면 웨스트햄은 특유의 변형 파이브백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레알의 화려한 투톱을 막으려면 아무래도 수비가 두터워야겠죠.]레알의 선공으로 전반전이 시작되었다.
호비뉴와 라울이 우리 진영으로 넘어오는데 꼴이 가관이었다.
호비뉴는 연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생글거렸고 라울은 세상 심각하게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안톤! 토마시! 앞 공간 주지 마!”
“오케이!”
호비뉴와 라울 뒤에는 밥티스타가 버티고 있었다.
훗날 세리에A에서 먹튀의 대명사가 되는 악명 높은 그 밥티스타가 맞다.
“우우우우우!”
파밧! 파바밧!!
[호비뉴! 시작부터 특유의 개인기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합니다! 저 발재간 보세요!]호비뉴는 시작부터 스텝 오버를 쓰며 안톤을 약 올렸다.
스텝 오버는 흔히 헛다리짚기라 부르는 개인기인데 호비뉴의 장기였다.
특유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양발을 엇갈리며 수비수의 중심을 흔들었다.
파밧! 콰아아아앙!!
[아! 안톤이 어깨로 호비뉴를 쓰러트립니다! 파울 아니에요!]“까불지 마! 망할 자식아!”
안톤은 침착하게 버티다가 호비뉴가 치고 나오는 순간을 노려 피지컬로 눌러버렸다.
경기 날 아침까지 비디오를 수백 번 돌려보며 타이밍을 익힌 보람이 있었다.
안톤은 지난 비야레알 전을 기점으로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
리켈메 같은 월드클래스를 상대해본 경험이 꾸준한 노력과 만나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영웅아!”
뻐어어어엉- ! 투우웅-
[안톤의 패스를 나영웅이 받습니다! 아! 이건!?]흥분한 안톤이 너무 강하게 볼을 찼다.
나는 침착하게 왼발로 볼의 방향만 돌려놓으며 달려드는 밥티스타를 제쳤다.
“가볼까~”
[나영웅이 직접 드리블을 치며 전진합니다!]내가 왼발로 각도를 열어놓은 덕분에 레알의 중원이 텅 비었다.
사방으로 침투하는 동료들을 보며 드리블을 치는데 왼쪽에서 뭔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삐이이이익!
[베컴의 거친 슬라이딩 태클! 파울! 나영웅! 쓰러집니다! 위험한 태클이었어요!]“이봐. 신참 괜찮냐?”
베컴이 특유의 가느다란 목소리로 떠들며 쓰러진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척-
“물론 괜찮죠.”
다른 선수였으면 쳐 버렸을 텐데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원래는 베컴을 약 올려서 흥분하게 만들 셈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고분고분해졌다.
“오늘 좋은 경기 하자~”
“예.”
목소리는 좀 깼지만 가까이서 본 베컴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있었다.
동경하던 슈퍼스타를 만난 초딩처럼 나는 공손해졌다.
전생에서 베컴의 닭벼슬 머리가 너무 멋있어서 따라하고 다녔다는 건 비밀이다.
“정신 차려. 나영웅. 이건 승부야.”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경기에 집중했다.
센터 서클에서 프리킥.
캐릭에게 맡기고 나는 레알 진영으로 올라갔다.
“우와아아아아!”
[웨스트햄 팬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만큼 골 넣는 수비수 나영웅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뜻이죠.] [나영웅은 지난 시즌 팀 내 득점 2위, 공격포인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내가 엄청난 응원을 받으며 레알의 박스로 들어오자 라모스가 특유의 차가운 눈빛으로 빤히 보았다.
“저 녀석.”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누구든 죽여버릴 수 있는 사자의 눈빛이었다.
괜히 머리를 길러서 좀 어벙해보였지만 차가운 눈빛은 살아있었다.
“저리 가! 이 자식아!”
“꺼져! 혼 좀 나볼래!? 남미 촌놈아!”
프리킥을 기다리며 레알 골대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영어와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쌍욕이 오고 갔다.
몸을 비비고 부딪치고 팔로 밀고 잡고 땡기며 어떻게든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으려 했다.
삐이이이익- !
[캐릭이 프리킥을 찼습니다! 골대로 바짝 붙였어요!]파바밧- !!
나는 라모스와 눈을 맞추며 골대 왼쪽으로 돌아 뛰었다.
‘!’
라모스가 나를 쫓아오다가 휙 돌아서 오른쪽으로 달려갔다.
유인 작전 실패.
“젠장!”
[구드욘센! 골대 오른쪽에서 점프합니다! 헤딩슛! 아!]콰아아아앙!!
뒤늦게 뛴 라모스가 교묘하게 구드욘센의 유니폼을 잡아당기며 몸을 부딪쳤다.
공중에서 중심을 잃은 구드욘센이 거꾸로 떨어졌는데도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반칙 아닙니다! 아! 쓰러진 구드욘센이 일어나지 못하네요! 라모스와 공중 경합 도중에 충돌하며 위험하게 떨어졌는데요.]“야! 너 미쳤어!? 사람 죽이려고 그래!?”
나는 즉각 달려가서 라모스를 밀쳤다.
하마터면 구드욘센이 머리로 떨어져서 큰 사고가 날 뻔했다.
라모스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