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686
43화. 비행기를 타고 (5)
딸랑.
양춘각 문에 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리며 김지은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언제나 밝은 얼굴로 출근하는 김지은이다.
그런데 오늘은 더 밝아보였다.
“어서 와.”
“어서 오십시오.”
김지은이 가방을 캐비닛에 넣으며 물었다.
“이번에 민하 걸즈 미국 콘서트 티켓이 10분 만에 매진되었다는 거 들으셨어요?”
“네. 뉴스에서 봤습니다.”
강소의 말에 김지은이 말을 이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역시 하영이랑 민아는 대단하다니까요.”
그 말에 유순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번 미국 콘서트 때문에 강소가 미국에 가게 되었거든.”
“아, 그래요?”
김지은의 물음에 강소가 대답했다.
“네. 하영이 경호원으로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 사실 저도 가거든요.”
“지은 씨도요?”
“네. 저는 팬클럽 회장이잖아요. 그래서 그동안 알바를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허만철이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정 바쁘면 동수 부르면 되죠.”
“동수요?”
“네, 동수가 이번 6월부터 여름 방학이라서 학교에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각성자 고등학교의 커리큘럼은 일반 고등학교의 커리큘럼과 좀 달랐다.
각성자 고등학교의 3학년이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고3이 되면 6월부터 방학을 시작하는 거다.
솔직히 진학을 선택한 학생들은 면학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들과 섞여 있는 것보다 그들만 모여서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좋았고, 헌터를 선택한 학생들도 답답하게 수업을 듣기보다는 현장에서 실습을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니까.
그래서 김지은이 쉬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강소 역시 미국에 가야 하기에 그 기간 동안 배달은 가까운 곳 위주로 하기로 했다.
유순태는 양춘각 문을 닫아걸고 함께 미국에 가고 싶었지만, 일주일이나 쉬면 손님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유로 가게를 지키기로 했다.
* * *
은탑의 협회장실.
성진호는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이게 곧 외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 협회장님. 이연곤 과장님 오셨습니다.
비서의 말에 성진호는 책상으로 가,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 네.
문이 열리고 이연곤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1팀장이었을 때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협회장님, 추가 자료입니다.”
그는 서류철을 내밀었고 성진호는 그것을 받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이연곤을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샌드위치랑 커피, 방금 드신 것 같습니다만.”
“맞아요.”
성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탁자 위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샌드위치 포장지와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곧 대한민국 10대 기업 회장님들과 오찬을 하러 가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맞아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는 영감님이 왜 오찬이나 만찬이 잡히면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가는지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협회장이 되어 보니까 알겠더군요.”
성진호는 말을 이었다.
“저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단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으면서도 신경전을 벌어야 하죠.”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못 먹겠군요.”
“하하하.”
성진호는 웃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그럼 다녀오죠.”
“네. 다녀오십시오.”
.
.
.
잠시 후, 성진호는 고급 한정식 식당에 도착했다.
“모시겠습니다.”
마중을 나온 사람은 식당의 주인이다.
한복을 곱게 입은 중년의 여주인은 정중하게 성진호를 한 독채로 안내했다.
이미 그곳에는 열 명의 회장들이 와 있었다.
‘약속 시각 10분 전인데 부지런하기도 하시군. 다들 바쁘실 텐데.’
하지만 예의상 그들에게 사과를 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어서 앉으시죠.”
모두 자리에 앉자 생활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부지런히 음식들을 내놓았다.
비싼 음식들이다.
하지만 음식들에 정신이 팔리면 안 된다. 이곳은 오찬을 가장한 전쟁터니까.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오찬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럼, 방위 분담금은 그렇게 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러죠.”
슬슬 자리를 파할 때가 되었다.
그때 한 회장이 성진호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사귀는 아가씨가 있습니까?”
그 물음에 성진호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묘했다. 성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네. 바쁘신데 가 보셔야죠.”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성진호는 그 독채에서 나왔다. 몇몇 회장들이 함께 나왔다.
그중에 한 명이 성진호 옆을 자연스럽게 지나가며 작게 속삭였다.
“결혼하려면 되도록 빠르게 하는 게 좋을 것이오.”
“…….”
성진호는 흘깃 그를 돌아보았다.
방금 자신에게 경고를 해 준 회장은 M그룹의 회장이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른 회장들과 제 갈 길을 갔다.
성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슬쩍 옷소매에 감춰 놓았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아까 몰래 탁자 밑에 도청기를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들킬 염려는 없었다.
이번에 최효성 박사가 개발한 것으로, 투명화 기능이 있는 것은 물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도청기 자체가 기화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도청기가 있다는 건 기밀이었다.
덕분에 요즘 유용하게 잘 써먹고 있었다.
도청은 불법이고 각성자 협회가 이런 더러운 수를 써도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터다.
하지만 더러운 수는 저들이 더 많이 쓰는데 가릴 게 뭐가 있을까?
곧 귀에 별채에 남아 있는 몇몇 회장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애새끼가 협회장이 되었다고 해서 좋다고 했는데, 윤한종 그 영감탱이보다 더하네…….
– 그러니까 우리가 저놈 약점을 잡으려고 미인계를 동원하는 거 아닙니까?
– 그런데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갑니까? 사내 치고 미인계에 넘어가지 않는 사내가 없죠.
– 그럼 내일 미국 노선 재개 기념 파티에서 확 저지르는 겁니까?
– 잘 되면 협회장 사위를 얻는 거고, 일이 잘 안 풀려도 추문 하나 낼 수 있겠죠.
성진호는 눈이 빛났다.
저들은 알까?
성진호가 헌터총회에서 부여받은 이명이 ‘뇌신의 분노’였지만 그의 진면목을 아는 몇몇 이들에게는 ‘똑똑하게 미친놈’이라 불렸다는 것을.
* * *
밤이었다.
양춘각의 모든 직원이 퇴근하고, 강소가 중얼거렸다.
“출출하네.”
그 말에 유순태가 물었다.
“오늘 야식으로 족발 어때?”
“좋지.”
유순태는 허만철에게 물었다.
“만철 씨는? 어때?”
“저도 좋죠.”
유순태는 전화기를 들어 족발을 주문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수신인은 2층에 있는 임소영이다.
“족발 시켰으니까 조금 있다가 내려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서둘러 테이블을 세팅했다.
“아, 아까 형님한테 전화가 왔어.”
“형님?”
“하영이 외삼촌 말이야. 이번에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가신다고 하더라.”
“그렇구나.”
“잘하신 거지. 안 그래도 마음에 걸렸거든.”
“너랑 같이 못 가서 서운하네.”
강소의 말에 유순태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건 아니야.”
유순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부모님이 좀 걸리네.”
“네 부모님?”
“응. 전에 아버지가 그러셨거든. 죽기 전에 비행기를 타 보고 싶다고…….”
“…….”
“그래서 비행기표가 얼마인지 봤는데, 비싸더라.”
유순태의 말대로 이번 미국행 항공권은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공중의 마수에게서 항공기를 보호하기 위한 이런저런 것들이 추가되는 데다가, 첫 민간 항공기다 보니 더더욱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법 잘나가는 중국집 사장인 유순태가 망설일 만큼 가격이 나가는 거다.
유하영과 함께 가는 임소영의 항공권은 RD엔터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만약 유순태도 함께 간다고 하면 그의 항공권도 RD엔터에서 제공할 터.
하지만 유순태의 부모까지는 아니었다.
“효도는 돈이 한다는 말, 요즘 들어서 점점 깊게 와 닿고 있어.”
그 말에 강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 알 것 같다.”
그리고 품에서 항공권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지금이 이 항공권을 써야 할 때다.
“이거 뭐야?”
“항공권.”
“응?”
“전에 말했잖아. 백화점에 갔다가 경품으로 탔다고. 이걸로 부모님께 효도 좀 하라고.”
강소의 말에 순식간에 유순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양 안 할 거다.”
“사양은 사양한다.”
그때 족발 배달이 도착했다. 족발을 놓으며 강소가 유순태에게 물었다.
“내 인벤토리에 괜찮은 와인이 있는데, 가져올까?”
“그건 묻는 게 아니야.”
“하하하.”
강소가 말한 와인은 호족들이 강소의 인벤토리에서 포도를 길러서 직접 담은 와인이다.
숙성과정은 강소가 해결했다.
그가 와인을 가지고 인벤토리에서 나오니, 이미 허만철과 임소영 그리고 유하영과 유채영이 족발을 놓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나두! 나두!”
유채영이 족발을 가리키며 말했고, 임소영이 족발의 가장 큰 뼈를 들어서 유채영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자, 여기 채영이 거.”
“까하아!”
유채영은 커다란 족발 뼈를 들고 무척 좋아했다.
유하영도 족발을 욤욤 먹었고, 그걸 보며 허만철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하영이가 족발을 무척 잘 먹네요.”
“아, 쫄깃하다고 좋아해.”
“족발 맛을 아네요.”
그렇게 족발로 어느 정도 배를 채웠을 때 유순태가 유하영에게 물었다.
“콘서트 준비는 잘 하고 있어?”
그 물음에 유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민아 언니랑 노래랑 춤이랑 연습하고 있어요. 미국의 초코빵 언니 오빠들 보여 주려고요.”
“그렇구나.”
“그런데 좀 속상해요.”
유하영의 속상하다는 말에 모두 멈칫했다. 강소가 물었다.
“속상하다니! 뭐가 말이냐?”
“이번에 첫 번째 콘서트가 미국이잖아.”
“투표를 통해서 그렇게 결정되었으니까.”
“선생님이 그랬어.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가 미국이고 그다음이 중국이라고. 그럼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잖아.”
“…….”
“그래서 속상해. 다른 나라 초코빵 언니 오빠들도 열심히 투표했는데.”
이번 월드 투어의 행선지는 총 7곳.
그 말은 나머지 국가들을 방문할 계획은 아직 없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수익성 때문이다. RD엔터는 땅 파서 돈 버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또 그렇다고 표 수가 적은 곳으로 가면, 그건 역차별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었다.
강소는 유하영을 보았다.
그는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려다가 피식 웃었다.
솔직히, 강소도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영이가 속상하면 안 되지.”
그러니까, 강소는 국제배송을 하기로 했다.
* * *
다음 날,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딸랑.
문이 열리고 철가방을 든 강소가 들어왔다.
“동수야, 다음 배달은?”
“블루 하우스예요.”
강소는 짜장면과 볶음밥을 랩으로 싸서 철가방 안에 넣었다.
그때 켜 놓았던 TV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속보입니다. 오늘 미국 노선 재개를 기념하는 파티에 참석한 성진호 각성자 협회장이 결혼을 했습니다.]“엥?”
“어?”
그 말에 TV를 보던 손님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무슨 소리야? 결혼?”
보통은 결혼 예정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혹시나 아나운서가 실수를 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늘 저녁 5시에 시작된 파티에서, 성진호 협회장은 파트너로 참석한 김명희 과장에게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김명희 과장이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자마자 그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혼인신고서를 작성해서…….]그 뉴스에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고 한 거구나.”
“참 실행력이 빠른 양반이네.”
.
.
.
한편, 그 뉴스를 본 윤한종은 피식 웃었다.
‘기습 결혼이라니! 성진호 저 똑똑한 미친놈이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지. 그러니까 저놈은 건드리면 안 된다니까.’
* * *
6월 7일.
드디어 유하영이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임소영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잘 다녀와.”
“다녀올게요.”
“하영이도 잘 다녀오고.”
“네.”
그리고 유순태는 강소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우리 부모님이랑 안사람이랑 하영이랑 채영이,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라.”
차현태가 차를 끌고 양춘각에 도착했고, 그들은 그 차에 올랐다.
그리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와!”
창밖을 보던 유하영이 소리쳤다.
“엄청나게 커요! 서울 공항보다 더 커요!”
“어머, 정말이네?”
그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외전 2부 – 2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