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94
93화. 장마와 짬뽕 (1)
쿠구구구궁-!
하늘이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물속에서 사는 수생 마수들은 난리가 났다.
키히이잉-!
끼익!
끽-!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환희와 기다림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때까지 1년을 기다렸다.
작년 이 시기를 경험했던 마수들은 벌게진 눈으로 군침을 흘렸다.
그리고,
마수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한 존재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드디어 내가 움직일 때가 왔군.”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지상으로 올라가라! 가서 마음껏 먹이를 탐해라! 내가 그분의 위대한 명을 이룰 수 있도록!”
그자의 명에 물 밑바닥에 움츠리고 있던 마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자의 비릿한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 * *
[오늘 오후부터 가방에 작은 우산 하나쯤은 챙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오늘 오후부터 장마가 시작됩니다. 습한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수생 마수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예전에는 장마가 요즘보다 더 일렀던 것 같았지만, 격변의 시대가 오면서 기후도 좀 바뀌었다.
그래서 요즘 장마는 거의 8월 초에 찾아왔다. 그리고 10월 초까지 늦더위가 지속되었다.
기상 캐스터의 날씨 방송에 지원 1과장 성진호는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놓으며 양 미간을 눌렀다.
“피곤하시죠?”
1팀장 이연곤이 그의 책상 위에 피로회복 포션 한 병을 놓았다.
“드십시오. 협회장님께서 전 직원에 한 병씩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협회장님이 사람 부려 먹을 줄 아네.”
성진호는 포션 병을 따서 한 번에 들이켰다. 그러자 조금 피곤이 가시는 것 같았다.
옛날에 있던 피로회복 음료들은 연금술 능력 각성자들과 힐러들이 합작하여 만든 피로회복 포션들로 대체 된 지 오래였다.
힐러의 능력을 담은 피로회복 포션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으니까.
“오늘 오후부터 장마라는데, 지원 7과가 바쁘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지원과는 각성자 협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과로서, 9과까지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맡고 있었다.
그중 7과는 여름과 겨울이 가장 바빴지만 두 계절 중 여름이 더 격하게 바빴다.
장마철이 되면 수생 마수인 켈피나 부니입들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D급으로 그리 강한 마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켈피와 부니입의 번식기인 장마철이 되면 C급으로 격상할 뿐 더러, 번식도 무척 빨랐다.
그래서 장마철만 되면 지원 7과는 헌터 길드의 지원을 받아 켈피와 부니입을 처리하느라 비상이었다.
그때 그곳으로 한 늘씬한 미녀가 들어왔다.
“오늘은 멀쩡해 보이네.”
그녀는 감찰 2과장 김명희였다.
그녀를 본 이연곤과 다른 직원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어! 웬일이냐?”
성진호가 손을 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내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오는…… 구나. 호호. 이거 전에 말한 이상한 사건들 조사한 거.”
그건, 전에 강소가 해결했던 절망의 구슬을 모으는 콜렉터와 관련하여 의문의 죽음이 많은 곳을 조사한 것을 뜻했다.
“아아, 고맙다.”
사실 각성자 협회 내부에서 자료를 주고받고 결재할 때 사용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각성자 협회 웹 서비스 행정망 시스템 어쩌고 하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 그대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행정망이라고 불렀다.
아무튼 그런 행정망이 있음에도 굳이 종이로 된 문서로 전해 주는 건 보안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웹을 기반으로 한 정보는 해킹이라든지 하는 범죄의 표적이 되었을 때의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반면 종이로 된 문서는 태우면 끝이었으니까.
그 작성도 컴퓨터가 아닌 수기로 작성했는데, 재밌는 건 타자를 치는 것만큼이나 빠르고 깔끔하게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각성자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김명희가 전해 주는 문서 역시 보안상 중요한 문서였기에 종이에 수기로 작성한 것이었다.
성진호는 그 문서를 받았다.
“그리고 이건.”
김명희는 다른 문서를 내밀었다.
“전에 자백한 유괴범 있지? 그 유괴범이 말한 곳에 잠복해서 알아낸 것들.”
전에 유하영이 살던 동네에서 미연이라는 아이가 유괴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그때 잡힌 유괴범의 자백은 은탑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건 바로 유괴를 지시한 자들이 블랙맨들 중에서도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기에 찝찝할 따름이었다.
그 순간.
쾅-!
김명희는 성진호의 책상을 두 손으로 내리쳤다.
“뭐, 뭐야? 왜 그래?”
그런 김명희의 행동에 성진호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성진호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너! 이번에도 휴가 반납했다면서?”
“그, 그게 왜?”
“작년에도 반납! 재작년도 반납! 그 전에도 반납! 너 그러다 휴가라는 단어 까먹겠다?”
“어쩔 수 없잖아.”
성진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은걸.”
“너 그러다 진짜 쉬고 싶지 않아도 쉬게 된다고.”
김명희의 말에 성진호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 젊잖아.”
“젊다고 방심하다가 한 방에 훅 가는 거 몰라? 아무튼 협회장님이 이번에는 너를 꼭 쉬게 만들겠다고 벼르고 계시니까 알아서 해.”
“그래. 알았어.”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김명희의 핸드폰이었다.
“여보세요. 아, 그래. 알았어.”
그녀는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아무튼 잘 생각해라. 그럼 나는 바빠서 가 볼게.”
“어. 얼른 가라.”
김명희는 지원 1과에서 나갔고, 성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가라…….”
그의 말에 이연곤이 말했다.
“감찰 2과장님의 말대로, 휴가는 제때 다녀오시는 편이 좋습니다.”
“노력해 보지요.”
“그리고 제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이번 김명희 과장님은 이번 휴가 때 한강변의 시민 야외 수영장에서 봉사활동을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명희답네요.”
그때 이연곤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그 물음에 이연곤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시잖습니까? 김명희 과장님이 협회뿐만 아니라 헌터길드에서도 엄청나게 인기가 많다는 거 말입니다.”
“알죠…….”
그래서 더 불만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김명희 과장님께 데이트 수락을 받아 내고야 말겠다고 전의를 불태우던데 말입니다.”
“…….”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연곤은 재차 물었고, 성진호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시민 야외 수영장에 마수가 나타나지 않을까 감시하던 그때, 수생마수가 나타난다.
위험에 빠진 김명희를 구해 주는 잘생긴 헌터.
그는 김명희에게 손을 내밀며 일으켜 준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봤던 그 어떤 여자들보다 더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오늘 저녁 저와 함께 식사와 와인 어떠십니까?”
“어머! 좋아요!”
그리고 그 둘은 레스토랑에 가서 다정하게 식사를 하고 와인 한 잔을 나눈다. 그리고 그대로 호텔로…….
쾅-!
거기까지 상상하던 성진호가 탁자를 내리쳤다. 그리고 이연곤에게 물었다.
“김명희 과장의 휴가가 언제입니까?”
“아, 8월 중순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나서겠군요.”
“그럼 그때, 나도 휴가를 가는 것으로 하죠.”
그 말에 이연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몰래 다른 직원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작전 성공이었다.
* * *
치이이익-!
기름을 두른 웍에서 채소들이 볶아지고 있었다.
강소는 그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졌다. 역시 기름 냄새는 군침을 돌게 했다.
“오늘 저녁은 짬뽕이냐?”
강소의 물음에 유순태가 뒤 돌아보며 대답했다.
“맞다! 날씨가 우중충 할 땐 짬뽕이 최고지!”
오늘은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장마의 시작인 것.
임소영은 일찌감치 유하영을 하원시켰는데 유하영은 오늘 발레 교습소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촬영 역시 중단되었다.
수생마수 주의보가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2층에서 꼬롱이와 뽀뽀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유하영의 동화책 지옥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성공할 순 없었다.
강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짬뽕을 먹어도 되는 거냐? 비가 오면 짬뽕을 찾는 사람들이 많잖아? 재료가 모자라지 않을까?”
“아아, 오늘부터 홀 손님은 거의 없을 거다.”
“어째서?”
“장마철이잖아.”
강소는 재차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래 비가 오면 짬뽕을 찾는 손님들이 많잖아. 그런데 장마철은 아니라고?”
“장마철에는 짬뽕을 먹고 싶어도 켈피와 부니입 때문에 외출을 하지 못하니까.”
“아, 그래서 동수가 오지 못한다고 했었지.”
오동수는 각성자이기에 켈피나 부니입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었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만 18세 이하는 장마철이 되면 단축수업을 하고 강제 귀가 조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오후 4시부터 아침 7시까지밖에 출입할 수 없다는 뜻과 같았다.
그래서 새벽 신문 돌리는 알바 역시 할 수 없게 되었기에 오동수나 신문 지소 소장님도 곤란해 하던 차였다.
장마철의 어두컴컴한 새벽에 위험을 무릅쓰고 신문을 돌리려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곤란해 하는 오동수의 사정을 듣게 된 강소는 그 기간 동안 대신 신문을 배달해 주기로 했다.
물론, 그에 관련된 상황은 몰랐다.
몰라도 상관은 없었지만.
유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웃긴 게 켈피와 부니입은 수생 마수라서 그런지 변온동물의 특징이 있어서 말이야. 날씨가 추워지면 잘 활동하지 않거든. 그래서 장마철이 번식철이자 활동이 활발한 시기라는 거지. 그리고 번식을 위해 의욕적으로 인간을 사냥하고.”
“그렇군.”
순간 유순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달도 없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내가 위험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위험하든 말든 상관없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유순태의 말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배달부 월급이 꽤 비싼 것이었군.”
“맞아.”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내 한 몸 지킬 능력이 있으니까.”
물론 그건 유순태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해라. 그리고…… 만약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있으면 살짝이라도 도와주고.”
“도와주라고?”
“그래.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능력이 되는데도 못 본 척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사람이 아니라…….”
강소는 그 말을 중얼거렸다.
“알겠다. 유념하지.”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짬뽕이 완성되었고, 그 냄새가 신호가 되었는지 임소영이 유하영을 데리고 1층의 홀로 내려왔다.
“짬뽕이다!”
유하영의 말에 유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오늘 저녁은 짬뽕이야. 하지만 하영이는 볶음밥을 먹어야 해.”
“나도 짬뽕 먹어 보고 싶어요.”
“매울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임소영은 자신의 그릇에서 짬뽕 면발 한 가닥을 건져 유하영에게 먹여 주었다.
“읏!”
면발 한 가닥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유하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매워!”
“그러니까 엄마가 말했잖아. 맵다고.”
“오빠! 나 매워! 그거 먹어야 해! 노란 거!”
그 말에 강소는 피식 웃었다.
유하영이 말한 열매는 그의 인벤토리에서 자라고 있는 영초인 명정황밀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 유하영은 그 열매에 푹 빠져 있었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보다 더 좋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초콜릿보다 더 달기는 하지.’
강소는 인벤토리를 열어 명정황밀실을 꺼냈다.
자신의 인벤토리에 존재한다는 것만 사용자가 인식하고 있으면 인벤토리 입구를 작게 열어 손을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안에 있는 것을 꺼낼 수 있었다.
“자, 여기 있다.”
강소는 손바닥 위에 있는 열매를 내밀었다.
“노란 꿀 열매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9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