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95
94화. 장마와 짬뽕 (2)
그걸 본 유하영이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른 그 열매를 집어 입에 쏙 넣었다.
그 열매에 대해서는 이미 강소가 유순태와 임소영에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강소를 믿고 있었기에 유하영이 그 처음 보는 열매를 먹는 것을 허락한 상태였다.
“맛있어!”
“이제 안 매워?”
“응!”
유하영은 대답하며 다시 명정황밀실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걸 강소가 막았다.
“이제 밥 먹어야지.”
“밥?”
“방금은 맵다고 해서 준 거였고, 나머지는 저녁을 먹고 먹자.”
강소의 말에 임소영이 동의했다.
“맞아. 강소 삼촌의 말대로, 이 열매를 먹고 밥을 먹으면 입맛이 없어지니까.”
잠시 고민을 하던 유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밥 먹을 테니까 노란 열매 열 개 줘야 해요.”
“그래, 강소 삼촌에게 열 개 달라고 할게.”
그리고 유하영은 작은 숟가락을 들어 볶음밥을 퍼서 야무지게 먹기 시작했다.
“음,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하영이는 밥을 혼자서도 잘 먹는구나.”
강소의 말에 유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예쁘지. 하영이는 네 살 때부터 자기가 스스로 먹겠다고 했거든.”
“그래?”
“지금도 밥 먹여 주는 것을 싫어한다. 밥 먹여 주는 건 아기이고, 자기는 아이가 아니라나…….”
“큭큭.”
그들은 유하영이 밥을 먹는 것을 보며, 적당히 식은 짬뽕을 먹기 시작했다.
볶은 야채를 끓여 만든 야채육수에 해산물을 넣어 국물에 풍미를 더하고 매콤함까지 더한 짬뽕은 국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얼큰하면서도 속이 풀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으! 시원하다!”
이제 강소는 맵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는 말을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런 강소를 보며 유순태가 웃었다.
“한국 사람 다 됐네.”
“하하하.”
“가끔씩 아쉬울 때가 있어. 옛날에는 그릇 수북하게 각종 해산물이 올라갔는데, 요즘은 해산물이 비싸져서 몇 개 밖에 넣을 수 없으니까.”
“몇 개 밖에 안 넣는데도 이런 맛이라니! 해산물이 수북하게 올라간다면 정말 맛있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 해.”
어느덧 시간은 6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후두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따르르릉-!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임소영은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곧 전화를 끊은 임소영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문 전화예요. 고지 재수학원에 짬뽕 세 그릇이네요. 이렇게 위험할 때 배달을 하게 해서 미안해서 어쩌죠?”
임소영의 말에 강소는 씩 웃었다.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정말이었다.
강소에게는 비가 오는 것도, 마수가 나타나는 것도 상관없었다.
* * *
감찰 2과장 김명희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의 족속. 콜렉터. 절망의 구슬…….’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 세 단어가 맴돌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답답하네.’
그리고 또 하나, 그녀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코발이라는 이름의 콜렉터가 보여 주었던 가공할 만한 힘이었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건가?’
김명희는 자신의 인벤토리를 열었고, 그 안에서 길쭉한 상자를 꺼냈다.
딸깍.
상자 안에는 단검 두 자루가 들어 있었다.
그때, 감찰 2과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성진호는 그녀가 꺼낸 단검을 보고 움찔했다.
“너…… 이제 그 단검을 쓸 생각이 든 거냐?”
성진호의 물음에 김명희는 한 쌍의 단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책상 옆의 스위치를 눌렀다.
지잉-.
약한 진동과 함께 김명희의 책상을 중심으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건 자신의 책상 주변에서 나누는 대화가 다른 이들에게 들리는 것을 막는 일종의 보안장치였다.
보통 다른 과의 과장들과 대화를 나눌 때 사용했다.
“저번에 말이지, 나 진짜 죽을 뻔했어.”
김명희의 말에 성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닌스 모델 아카데미의 옥상에서 말이지?”
“어.”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아직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서 김명희는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성진호는 그녀의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뭐 때가 되면 알려 주겠지.’
그는 모든 정보를 알고 싶어 했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야,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몰아붙여서라도 정보를 토해 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명희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다. 나중에 마음 내키면 말해라.”
그 말에 성진호가 자신이 뭔가 숨긴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물어보지 않아서 고마웠다.
“고마워.”
그 말에 왜인지 성진호의 얼굴이 붉어진 것 같았다. 김명희는 피식 웃었다.
“아무튼, 그때 간신히 살아나서 든 생각이 뭔지 알아? 처음부터 이 단검을 쓰지 않은 내가 참 멍청하게 느껴지더라고. 이걸 보면 해인 선배가 생각나니까 꺼내지 않았는데, 그러다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
“그래, 잘 생각했어.”
김명희는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단검을 꺼냈다.
서늘한 쇠의 감촉이 아닌, 불처럼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성진호는 그들보다 3년 먼저 각성자 협회에 입사한 선배 우해인을 떠올렸다.
우해인 역시 단검을 사용하는 A급 각성자이자 헌터였다.
그는 참 잘난 선배였다.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사교성, 성격, 그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는 그야말로 엄친아였다.
그리고 성진호는 알고 있었다.
김명희가 우해인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는 것을.
성진호는 그런 김명희의 마음을 알기에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해인이 말했다.
“솔직히, 명희 정도면 괜찮은 여자지. 안 그러냐?”
“그렇죠.”
“그러니까 얼른 잡아. 누가 확 채가기 전에.”
“그러는 선배는, 왜 명희의 마음을 안 받아 주는 겁니까? 고백도 받았다면서요?”
“명희같이 좋은 여자는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하지 않겠냐.”
“네?”
“너처럼 똑똑한 녀석이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내가 어떤 인간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잖아.”
그랬다.
성진호는 우해인의 본질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보이는 건 멀쩡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피와 싸움을 갈구하는 뒤틀린 인간이라는 것을.
우해인은 그저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왜인지 성진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놈에게 명희를 보내도 너는 괜찮겠어?”
“……안 괜찮습니다.”
“어라? 이 녀석 보게?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대놓고 말하냐? 나 상처 받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반창고 붙여 드리겠습니다.”
“됐다. 이 녀석아.”
그날, 죽음의 땅에서 발생한 S급 게이트에서 게이트 웨이브가 일어났고, 역류해 버렸다.
그 현장에 투입된 우해인은 큰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A급 힐러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다.
피에 젖은 손을 덜덜 떨며 우해인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꺼낸 것이 바로 그의 성명무기인 ‘우리엘의 단검’이었다.
그는 울고 있는 김명희에게 그 단검을 건네었다.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예요? 선배?”
“이제…… 심판자 우리엘의 이름을 잇는 건…… 너야.”
“…….”
“그리고…… 크윽! 성진호.”
“네. 선배.”
“내 인벤토리는…… 허억, 너에게…… 으윽. 양도한다.”
성진호의 손에 우해인의 인벤토리 석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러니까 …….”
그가 성진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았다.
‘이 나라를 지켜. 그리고 명희를 잘 돌봐 줘.’
그리고 우해인은 죽었다.
‘우리엘의 단검’은 S급 아티펙트였다.
우해인이 프리랜서 헌터로 활동하던 시절에 게이트에서 얻은 물건으로 모든 부정한 것에 데미지를 50퍼센트이상 더해서 줄 수 있고, 사용자의 속도와 체력을 30퍼센트 더하며 20퍼센트의 화염 내성까지 더하는 진짜 사기 템이었다.
원래 우해인의 재능에 우리엘의 단검까지 더해져 그는 적수가 없었다. 헌터총회에서는 그에게 ‘심판자 우리엘’이라는 이명을 부여했을 정도였다.
그런 아티펙트를 받았음에도 김명희는 그것을 꺼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너무나도 괴로웠으니까.
하지만 저번 사건으로 그녀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계속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B급 무기를 사용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녀의 앞에 강한 적이 나타나고 있었다.
만약 저번에 그녀가 우리엘의 단검을 들고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그녀는 각성자 협회 감찰 2과의 과장이었다. 최소한 자신의 부하 직원들은 보호해야 했다.
그게 템빨로 인해 능력이 뻥튀기 되는 거라 해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단검을 허리에 차며 성진호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왜 온 거야? 항상 사무실에 처박혀 있는 너답지 않게? 휴가 쓴다는 말 하러 온 거야?”
“응. 생각해 보니까 내가 휴가를 써야 다른 직원들도 편하게 휴가를 다녀올 것 같아서.”
“잘 생각했어.”
* * *
격변의 시대가 오면서 가장 먼저 붕괴한 건 교육 시스템이었다.
마수를 피해 도망 다니면서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드니 정규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각성자가 등장하고 협회와 길드가 등장하면서 점차 대한민국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정비된 것도 교육 시스템이었다.
교육 시스템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각성자 교육과 일반인 교육.
모든 국민들은 13세 이상이 되면 의무적으로 각성자 검사를 받았다.
각성자로 분류되면 각성자 학교로 진학했고 일반인은 일반 학교로 진학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오동수가 다니는 중학교는 각성자들이 다니는 중학교였다.
각성자도 각성자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난세에는 아무 능력 없는 일반인이 더 힘든 법이었다.
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학생들은 미래의 불안감을 안고 학업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해 대학들이 난리였던 시절은 그야말로 옛날이었다.
대학의 수는 무척 적었고, 대학생이 되는 건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입학 정원의 반은 각성자 특기생의 자리였다.
그 말은 나머지 반이 일반인 수험생의 몫이라는 뜻이었다.
각성자와 일반인의 비율을 따져 보면 불공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회는 각성자들의 능력을 더 필요로 했으니까.
확실한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을 얻기 위해 일반인 학생들은 머리를 싸매고 대학 수학 능력시험을 치렀고, 낙방한 학생들은 재수 삼수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버는 건 재수학원이었다.
현재 한국에는 여러 유명한 재수학원이 있었고, 그 중에 하나가 서울에 위치한 ‘고지 재수학원’이었다.
쏴아아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혜수는 재수학원의 기숙사 창문을 통해 그 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20살의, 재수생이었다.
“음?”
그때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건물 밖을 걷고 있는 그녀는 이혜수의 친구였다.
우산만 봐도 알았다. 그 우산은 그녀가 선물로 준 우산이었으니까.
“이 계집애가! 위험하게 뭐 하는 짓이야!”
장마철, 특히 해가 진 후에는 무척 위험했다. 마수에게 잡아먹힐 수 있으니까.
이헤수는 서둘러 학원을 나와 문 앞에 섰고, 크게 소리쳤다.
“위험해! 얼른 들어와! 야! 이 기지배야!”
“미안! 꼭 필요한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괜찮아. 괜찮아. 아직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잖아. 그러니까 괜찮…… 어?”
그때 그녀 앞의 하수구 맨홀 뚜껑이 열리고, 켈피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아아악-!”
무림에서 온 배달부 9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