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97
96화. 다곤 (1)
대한민국의 가장 넓은 민물이 어디냐고 물으면 저수지나 호수를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가장 넓은 민물은 한강이다.
한강 물은 바다로 흘러가기는 해도, 바닷물은 아니니까.
그 한강 속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동굴이 제법 많은데, 그건 격변의 시대 때 쏟아져 나온 마수들 중 수생마수들이 자신들이 살기 위해 파 놓은 굴이었다.
전에 강소가 이해용의 반지를 찾기 위해 방문해서 엎어 버렸던 부니입의 동굴도 그런 곳이었다.
그 동굴 중 제법 넓은 곳을 혼자 차지하고 있던 한 존재가 눈을 떴다.
그러고는 자신 앞의 검은색 상자를 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군. 구슬이 모이는 속도가 느려. 작년보다 더 느린 것 같군.’
찰랑.
그때 물속에 있는 그의 앞에 잔물결이 일기 시작했고, 누군가 나타났다.
연미복을 입고 중절모까지 쓴 자를 본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뮐렝…….”
“안녕하십니까? 다곤 님.”
그의 인사에 다곤이라 불린 자는 대충 인사를 했다.
“반갑군. 그런데 어쩐 일이지?”
“주군께서 보내셨습니다. 구슬을 얼마나 모았는지 확인해 보고 오라 하셨습니다.”
“그, 그런가…….”
다곤은 당황했다.
예상보다 한참 밑도는 구슬의 개수를 뮐렝은 분명 주군에게 보고할 테니까.
왜냐하면 뮐렝은 주군의 시종장이기 때문이다.
“구슬을 보여 주시지요.”
그 말에 다곤은 어찌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뮐렝은 주군의 권능이 닿은 자.
서열이 자신의 아래여도 죽일 수가 없었다.
“젠장.”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으며 다곤은 상자를 열었다. 예상대로 상자 안을 본 뮐렝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구슬이 적군요.”
“역시라니?”
“저런! 모르고 계셨습니까? 요즘 두 번째 중간계의 각성자들이 참 열심히 일을 하더군요. 그래서 상당히 많은, 다곤 님의 종들이 죽임을 당했고 또 당하고 있죠.”
“뭐라?”
그 말에 다곤은 화를 내었다.
“내 종들을 죽이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뮐렝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주군께서 저를 보내신 겁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는지 궁금해하십니다.”
“…….”
다곤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다곤은 잠이 많았다. 그래서 다른 콜렉터와 달리 수생마수를 종으로 부려서 구슬을 모으는 것이었다.
잠을 좀 더 자고 싶어서.
그럼에도 주군이 흡족할 만큼의 구슬을 모으곤 했기에 다곤은 이 방법을 선호했다.
“다곤 님께서는 첫 번째 중간계에 계셨을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게으름을 피워 구슬을 터무니없이 적게 모았던 그때 말입니다.”
“큭!”
뮐렝의 말에 다곤은 신음을 흘렸다.
기억하냐고?
당연히 기억했다. 아니,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구슬을 적게 모은 죄로 주군에 의해 화염지옥에 던져졌던 그때가!
다곤은 물이 있으면 강하지만, 물이 없으면 한없이 약해졌다.
그런 다곤에게 화염지옥은 더없이 끔찍한 형벌이었다.
어둠의 종족이라는 특성 덕분에 인간들이 말하는 물리적인 죽음을 겪지 않았다.
그건 바꾸어 말하면, 고통이 계속된다는 뜻이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땅에 서 있는 건, 달구어진 철판 위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불길이 탐욕스러운 혀처럼 날름거리는 그곳에서 물도 식량도 없이 삼 년 동안 고통을 받았다.
물이 있어야 강해지는 다곤의 본체는 어류.
비쩍 마른 상태로 물을 갈구하는 비참했던 그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악몽으로 나오곤 했다.
그 후, 다곤은 열심히 구슬을 모았고 결국 이렇게 두 번째 중간계에서도 콜렉터의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된 것.
뮐렝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찰랑거리는 물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 일을 주군께서 아신다면, 다곤 님께서 계속 콜렉터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이 몸은 심히 걱정이 됩니다.”
“…….”
당연히 유지할 수 없을 터였다.
그뿐인가!
빌어먹을 주군은 자신을 그 지옥에 다시 던져 넣을 터였다.
그러고도 남았다.
“그러니, 일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을 때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이제 곧 장마는 끝나고, 그러면 기회는 없을 테니까요.”
“……왜 내게 이런 말을 해 주는 거지?”
다곤의 물음에 뮐렝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비로운 주군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
“그럼 저는 이만.”
뮐렝이 지팡이로 바닥을 치자, 순간 그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바위 밑에서 움츠리고 있던 다곤이 일어났다.
거대한 물고기 형태의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코웃음 쳤다.
“자비로운 주군? 웃기고 있네.”
자신이 구슬을 적게 모은다면 주군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자신을 협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빌어먹게도 그 협박은 다곤에게 더할 것 없이 위협적이었다.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건가? 아, 귀찮게.”
.
.
.
잠시 후.
철벅, 철벅, 철벅.
한강의 한쪽 구석에서 무언가 물속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한 젊은 남자였다.
제법 잘생긴 얼굴에, 캐주얼한 복장을 입은 그 남자는 물속에서 나왔음에도 몸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 없었다.
게다가 비가 오는데도 그 몸에 닿은 비는 흔적도 없이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
그는 바로, 다곤이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움직일 때는 인간의 모습을 해야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으니까.
그래서 저번에 물에 빠져 죽은 한 남자의 거죽을 뒤집어쓴 것뿐이었다.
그는 스윽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후후, 그럼 어떤 자식이 내 휴식을 방해하는지 조사하러 가 볼까?”
턱.
하지만 곧 그의 몸은 실드에 막혔다. 한강에서 올라오는 수생마수를 막기 위한 실드였다.
“감히 이딴 게 날 막는다고?”
다곤은 비릿하게 웃으며 발로 실드를 툭 찼다.
퍼석-!
순간 그의 앞에는 그가 충분히 지나갈 만한 구멍이 뚫렸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곧 도착한 곳은 한강의 지류가 흐르는 하천의 산책로였다.
“키에엑!”
“끼이익!”
그때 어디선가 마수의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를 갈았다.
“뮐렝의 말대로군! 감히 내 종들을 해치다니!”
타앗-!
그는 비명이 들린 그곳으로 향했다.
자신이 주군에게 받은 명을 이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는 그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절대 화염지옥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을 거다!’
그리 되뇌며 다곤이 도착한 곳은 한 무리의 헌터들이 부니입의 몸에서 마정석을 꺼내는 현장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각성자였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손을 대어도 괜찮은 존재라는 뜻이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권능을 사용했다.
쏴아아아아-!
세상의 모든 물을 지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다곤의 권능이었다.
곧 그 헌터들을 둘러싼 물은 무기가 되었고, 헌터들을 향해 쏘아졌다.
* * *
구상준은 지원7과의 2팀장이었다.
그의 능력은 B급 식물의 마법.
주변의 식물을 자유자재로 성장시켜서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식물의 마법은 수생마수들을 처리하는 데 제법 괜찮은 상성을 보였다.
구상준은 장마철이 제일 지긋지긋하고 싫었다.
그건 장마철이 되면 그가 있는 지원7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원7과 중 2팀은 수생마수를 전담으로 처리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이번에는 신고가 많이 없었다.
‘왜지? 뭔가 이유가 있나?’
그 이유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선 몸이 편하니 좋았다.
오늘 그들은 개울둑의 공터에 부니입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개울가에는 실드가 있으니, 굴을 파서 이동한 모양이었다. 부니입은 굴 파는 데는 선수였으니까.
그들은 곧 그곳으로 출동했고, 전투를 벌였다.
“팀장님! 속박술을 부탁드립니다!”
협력 관계에 있는 헌터의 말에 구상준은 즉시 식물을 급속 성장시켜 부니입을 결박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술 능력자가 부니입의 목을 쳤다.
“끼에엑!”
“끼이익!”
비명 소리와 함께 부니입은 절명했다.
“후! 상황 종료!”
“상황 종료!”
“마정석은 채취하고, 나머지는 도축장으로 보내.”
“네!”
그때였다.
펑-! 펑펑펑-!
뭔가가 쏘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구상준은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물대포가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호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윽! 이런!”
구상준은 얼른 식물의 마법을 펼쳤다. 순식간에 급성장한 식물들로 베리어를 만들었다.
퍽-! 퍽퍽-!
덕분에 부하 직원들과 헌터들을 보호했고, 대응할 틈을 만들 수 있었다.
“커헉!”
하지만 물대포의 위력이 너무 강했다.
오러가 역류하며 구상준은 피를 토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한 남자를 보았다.
“블랙맨!”
“블랙맨이다!”
그들은 즉시 경계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피식 웃었다.
“블랙맨이 뭔지 모르겠고. 감히 내 종들을 죽인 너희에게 대가를 받으러 왔다.”
구상준은 그가 블랙맨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인간의 눈동자가 아니었으니까!
인간이라면 눈동자에 응당 감정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그 눈동자에 담긴 건 그저 벌레를 보는 것 같은 짜증뿐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죽음뿐.”
구상준은 자신이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 옆의 작은 단추를 눌렀다. 지원을 요청하는 신호였다.
그자의 기세에서 이미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가까이에 누군가 있기를!’
* * *
그 시각.
성진호와 김명희는 우비를 입은 채 거리를 걷고 있었다. 김명희가 준 자료를 검토한 결과, 시찰이 필요한 몇몇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명희의 안내를 받아 그 둘은 직접 시찰 중이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과장급인 그 둘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었다.
“비는 대체 언제까지 오는 건지…….”
김명희가 중얼거렸다.
성진호는 비 오는 거리를 김명희와 함께 걷고 있으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음?”
그때 그들 앞으로 은색 헬멧을 쓴 한 남자가 지나갔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철가방이었다.
그걸 본 김명희가 피식 웃었다.
“양춘각 배달부는 오늘도 열일하네.”
“그러네.”
그러다 성진호는 문득 김명희가 양춘각 단골이고, 또 양춘각의 배달부가 상당히 잘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성진호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희야…… 양춘각 배달부 청년 말이야.”
그 말에 김명희는 움찔했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왜?”
그녀는 긴장했다.
‘설마 그가 미지의 제로급 각성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나? 이 녀석, 똑똑하니까 알아차렸을 수도 있어.’
대체 무슨 소리가 나올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혹시, 그런 남자가 이상형이야?”
“응?”
김명희는 순간 멍청한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이내 성진호의 말뜻을 알아차린 김명희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 난 또 뭐라고!”
곧 그 헛웃음은 커다란 웃음이 되었다.
“하하하하! 야! 이 바보야! 아니야.”
“아니…… 라고?”
“뭐, 잘생기기는 했지. 그리고 젠틀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좋은 남자지만…….”
“……?”
김명희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내가 그 남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뜻이야?”
하지만 그녀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강소라는 확실히 평범한 남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여자였다.
그와 함께 있으면 하루에 열 번도 더 놀라는데, 자신의 심장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말이야 결혼만큼은 평범한 남자랑 하고 싶어.”
“…….”
“평범한 남자랑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만들고, 아들 둘에 딸 둘 낳고 화목하게 알콩달콩 사는 것. 그게 내 희망 사항이야.”
그녀는 쓰게 웃었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 말에 성진호 역시 쓰게 웃었다.
“살아남으면.”
“…….”
“살아남으면 가능하겠지.”
무림에서 온 배달부 9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