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and Dragon Slayer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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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5화. 인생은 속박되지 않는다
섬서 지방에 메마른 바람이 불던 날.
황야에는 정사연합의 깃발 아래 많은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서쪽에서 여러 마가(魔家)를 굴복시킨 광마(狂魔) 천태광을 막기 위해서였다.
“놈들의 숫자가 적지 않은 것 같소.”
“머릿수는 그래도 우리가 더 많지만… 저쪽에게 ‘마인(魔人)’들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비슷할 것이오, 맹주.”
언덕 위에서 적진을 살펴보며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
그들은 각각 정파와 사파의 수장이었다.
무림맹주 김사운과 흑사련주 왕천호… 그들은 광마 천태광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정사연합을 결성했다.
“물론… 비슷하다는 건 광마 천태광을 제외했을 때의 얘기지.”
“어떻게 그런 놈이 갑자기 나타났는지, 거참.”
광마는 광천마가(狂天魔家)의 막내아들이다.
그냥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라 알려져 있었는데, 어느 날 기연을 얻어 갑자기 강해졌다고 한다.
그는 형제들을 모조리 죽이고 가주까지 제압하여 광천마가를 장악했고, 다른 마가들과의 싸움에서도 압승을 거두어 마교 계열 세력을 통일했다.
그리고 무림을 장악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
“맹주, 광마는 우리 둘이 힘을 합쳐도 제압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건… 그렇겠지.”
현재 김사운과 왕천호는 정파와 사파를 통틀어 가장 강한 고수라 할 수 있었다.
검마 이서원의 죽음 이후 두 사람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광마를 상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만약 이서원이 살아 있었다면 광마를 막아 줬을 텐데…….”
“어허, 그놈 얘기는 왜 하는 거요!”
김사운의 말에 왕천호가 짜증을 냈다.
“어떻게 무림맹주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소! 흑사련주인 나도 입 다물고 있는데!”
“…….”
하지만 왕천호도 알고 있었다.
검마 이서원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 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흑사련에서 떠난 상태라 하더라도, 무림의 위기를 그냥 못 본 척할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이서원은 선뜻 나서서 광마와 싸워 줬을 테고… 언제나 그랬듯이, 승리했을 것이다.
그런 인물을 제거한 것이 바로 김사운과 왕천호였다.
“이서원은 우리 둘이 죽였소! 잊어버리시오!”
“후우…….”
김사운이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흑사련 소속의 이서원은 원래 김사운과 적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사운은 이서원이라는 무인(武人)의 실력을 존경하고 있었다.
흑사련에서 독립한 이서원을 제거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구보다 안타까워한 게 바로 김사운이었다.
“우리가 사악한 마교 세력에서 무림을 지켜야 하오, 알겠소?”
“나도 알고 있소…….”
“쯧…….”
김사운의 힘없는 대답에 왕천호가 혀를 찼다.
이서원을 함정에 빠뜨려 죽인지도 벌써 꽤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김사운은 그 일을 떨쳐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어쨌든, 방금 말했듯이 우리 힘으로 광마를 막을 수는 없소. 그러니… 협상을 하는 수밖에.”
그렇게 말하며 왕천호는 뒤돌아봤다.
수레 안에… 족쇄로 묶여 있는 흑발의 여성이 있었다.
“저 마후(魔后)를 갖고 협상을 한다면, 분명 광마를 물러서게 할 수 있을 것이오.”
마후(魔后).
천마의 배필이 되기 위해 태어난 여자.
원래는 흉천마가(凶天魔家)의 사람이었지만, 흉천마가가 검마 이서원에 의해 괴멸된 뒤로는 흑사련에 몸을 의탁했다.
그 이후에는 흑사련을 떠난 이서원과 함께 천룡회를 만들었으나… 천룡회의 괴멸 이후 다시 흑사련의 포로가 되었다.
“광마가 소문대로 천마가 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면, 반드시 마후를 탐낼 것이오.”
“그렇겠지…….”
“저 여자를 내주겠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하는 것이지.”
천마는 마교 계열 세력의 염원이다.
광마도 천마가 되기 위해 온갖 비급과 영약을 긁어 모으고 있는 중이다.
천마의 배필인 마후를 넘겨주겠다고 살살 꼬드기면 눈이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일이 쉽게 돌아가겠습니까, 여러분.”
“……!”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에 취해 잠들어 있던 마후가 깨어나서 입을 열고 있었다.
“광마는 광오(狂傲)한 인물… 여러분 마음대로 다루기 어려울 겁니다.”
“아니, 어떻게 벌써 정신을…….”
“자칫하면 더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알아 두시죠.”
마후가 말하는 걸 듣고, 왕천호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마후의 얼굴을 후려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요망한 계집!”
“…….”
마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상처가 아물면서 백옥 같은 피부로 돌아왔다.
“쯧, 언제 봐도 기분 나쁘군.”
“제 탓이 아닙니다.”
“요물 같은 년…….”
“그렇게 얄미우시다면 그냥 죽이시지요…….”
“웃기지 마라.”
왕천호가 인상을 찡그렸다.
“애초에 너를 살려 둔 것도 이런 상황에서 써먹기 위한 것이었다.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정사연합이 이서원의 천룡회를 괴멸시킬 때, 마후도 척살 대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마후는 생포했다. 천마의 배필로서 특이체질을 지닌 그녀의 가치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마후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얻는다고 광마가 천마로 각성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광마가 천마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막지 못할 겁니다.”
“흥, 쓸데없는 소리!”
왕천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천마? 그딴 건 허황된 소리다!”
“허황된 소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그래, 허황된 소리가 아니지.”
갑자기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천호는 김사운과 함께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근처에 있던 호위병의 목을 꺾으면서, 요란한 복장의 남자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과, 광마!”
“그래, 내가 광마 천태광이다.”
대체 언제 접근한 걸까.
기척도 없이 나타난 광마가 김사운과 왕천호를 보며 웃었다.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무림맹주와 흑사련주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군.”
“……!”
김사운과 왕천호는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러자 광마는 웃으면서 맨손으로 자세를 잡았다.
“조금 전까지 나하고 협상을 하자고 얘기하고 있던 것 아니었나? 그런데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검을 뽑아?”
“과, 광마, 우리는…….”
이미 다들 느끼고 있었다.
광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사악하면서도 막강한 투기(鬪氣)를.
그는 화경에 도달한 김사운과 왕천호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있었다.
“좋다. 안 그래도 너희를 먼저 죽이는 편이 좋다고 우리 쪽 마군사(魔軍師)도 조언했었으니까.”
“광마……!”
“너희를 죽이고 마후를 데려가도록 하마.”
김사운은 이를 악물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광마는 협상이 통하지 않을 상대다.
여기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우측에서 가겠소! 좌측에서 협공하시오!”
“알겠소!”
김사운이 우측, 왕천호가 좌측에서 움직였다.
날카로운 검강이 양쪽에서 날아오는 데도 광마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하찮구나.”
“윽!”
“커헉……!”
광마는 놀라운 움직임을 보였다.
내공이 실린 주먹질 한 번으로 왕천호의 검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수도(手刀)로 김사운의 복부를 찔렀다.
“윽…….”
“매, 맹주!”
일격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는 김사운을 보면서 왕천호가 뒷걸음쳤다.
왕천호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흥, 무림맹주와 흑사련주… 양대 고수가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너무 실망스럽다.”
“크윽…….”
“검마 이서원이 죽고 나서 중원의 수준이 낮아졌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광마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말없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마후에게 다가갔다.
“네가 마후인가.”
“네, 맞습니다.”
“미모가 상당하군. 마음에 들었다.”
광마의 손짓 한 번에 족쇄가 부서졌다.
“따라와라. 내 첩으로 삼아 주마.”
“자발적으로 따라갈 일은 없으니, 억지로 끌고 가시죠.”
“흐음?”
마후의 도발적인 말에 광마가 눈썹을 찌푸렸다.
“나는 천마가 될 남자다. 네가 자진해서 따라와야지.”
“글쎄요. 당신이 천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뭐라고? 지금 벌어진 광경을 보고도 하는 소리인가?”
“네, 당신의 무공에는 신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웃기는군!”
광마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마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너를 굴복시켜 주마.”
“…….”
“크크, 이렇게 머리채를 잡아당겨도 비명 하나 지르지 않다니, 역시 마후는 마후인가.”
광마는 흡족한 듯이 웃었다.
“침소에서 네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싶구나. 따라와라!”
그렇게 머리채를 잡고 마후를 끌고 가려고 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너 같은 놈이 울릴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광마가 흠칫하면서 고개를 치켜든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무형검이 광마를 일도양단했다.
“아……?”
털썩.
광마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좌반신과 우반신이 나눠진 채,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런데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군.”
“……!”
광마가 서 있던 자리 위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나이는 이십 대 중반쯤일까. 이국적인 옷을 입은, 검은 머리의 청년이었다.
“누구십니까……?”
마후의 질문에 남자가 흠칫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그렇군. 얼굴이 다르지.”
“네?”
“총관, 나다.”
“…….”
마후는 잠시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십니까?”
“나라니까.”
“……?”
“이것 참.”
남자가 머리를 긁었다.
“정말로… 모르겠나?”
“…….”
마후가 잠시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회주님?”
“그래, 맞다.”
“살아 계셨습니까? 아니, 제가 분명 시체를…….”
영문을 알 수 없어 마후가 눈만 깜박이고 있었을 때.
광마에게 위압당해 주춤하고 있던 왕천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네놈… 검마 이서원이냐?!”
“그렇다, 흑사련주.”
“말도 안 돼! 네놈은 분명 죽었다!”
“그래, 당신과 무림맹주, 두 사람의 함정에 빠져서 죽었지.”
“귀, 귀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혼란에 빠진 왕천호가 다짜고짜 검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저승으로 돌아가라!”
왕천호가 자신의 성명절기인 흑사무상검(黑邪無常劍)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그 직후.
“나를 두 번 죽일 셈인가, 흑사련주.”
“커헉!”
왕천호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대체 언제 공격이 펼쳐졌는지,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설마…….”
마후가 눈을 깜빡였다.
“심즉살(心卽殺)?”
“맞다, 총관.”
“심즉살을 터득하셨단 말입니까?”
목을 움켜쥐며 죽어 가는 왕천호도, 땅에 무릎을 꿇고 있는 김사운도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회주님, 어느새 천마의 경지에……?”
“천마는 아니다. 그런 존재가 될 생각은 없어.”
그렇게 말하며, 그가 하늘을 쳐다봤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천룡이니까 말이다.”
“또 그렇게 허황된 소리를…….”
“허황된 소리가 아니다, 총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왕천호가 숨이 끊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 이서원…….”
한편 아직 숨이 붙어 있던 김사운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우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저승에서 돌아온 건가?”
“복수는 아니다, 김사운.”
“그러면……?”
“무림맹과 흑사련의 지배 체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돌아왔을 뿐이지.”
“……!”
“천룡회가 무너진 이후, 무림맹과 흑사련은 무림을 더욱 강압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겠지.”
그 말이 맞다.
다시는 천룡회 같은 세력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무림맹과 흑사련은 서로 연계하면서 무림을 더 철저히 통제했다.
“그걸 바로잡고 갈 거다. 단지 그것뿐이다.”
“…….”
“그러니… 이제 그만 눈을 감아라, 김사운.”
그 말을 들으며, 김사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검마 이서원과 화합하지 못했던 나날들을 후회하면서.
“어쩌다 보니 오자마자 무림맹주와 흑사련주를 한꺼번에 죽여 버렸군. 아니, 무림맹주는 내가 죽인 게 아니지만.”
“회주님, 대체 지금까지 무슨…….”
“질문은 나중에 해 줬으면 좋겠군, 총관.”
어느새 주위에 무인들이 몰려와 있었다.
한쪽에서는 정사연합의 무인들, 한쪽에서는 마교의 무인들.
다들 우두머리의 시체를 보고 눈이 뒤집혀 있는 상태였다.
“일단 이놈들을 정리하고 나서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으니까.”
“회주님……!”
“설명은 그 다음에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수많은 병력에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그는 여유로웠다.
“내가 어떤 세상에 가서 어떤 싸움을 했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다 말해 줄 테니까.”
“……!”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 건지도 말해 줄 테니… 따라올 테면 따라와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 마후 앞에서… 검마가 미소 지었다.
“총관, 선택은 자유다. 네 인생은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으니까.”
기합 소리와 함께 양측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그에 맞서 검마가 무형검을 양손에 들었다.
수라의 길을 걷는 검마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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