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45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45화
* * *
사람에게 있어서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안식처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잡지 못할 추억만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
현관 앞에 선 안정민은 도어락 캡을 열지 못했다.
아내와 딸을 떠나 보낸 후 생긴 버릇이었다.
그는 멀뚱멀뚱 서 있다가 용기 내서 캡을 열었다.
다른 숫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숫자는…….
0325.
딱 네 개였다.
3월 25일.
딸아이의 생일날이었다.
늘 바꿔야지, 바꿔야지…… 하면서도 바꾸지 못했다.
-내가! 내가!
까치발 들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던 딸이 생각나서…….
“후.”
한숨을 내쉰 안정민은 조심스럽게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띠링!
문이 열렸다. 그러나 안정민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저 냉기가 느껴지는 문고리만 손으로 쥔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
한참 동안 서 있던 안정민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연 정민은 눈을 부릅떴다.
“……!”
우다다다!
“아빠! 아빠! 나 목말! 목말 태워 줘요!”
“다선이?”
“네?”
“정말 다선이니?”
“응. 다선이 목말 태워 줘요!”
“…….”
안정민은 믿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다선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정말, 정말…… 다선이 맞구나.”
“그럼 다선이지, 나겠어?”
꿈에서라도 잊지 못할 목소리.
홱!
고개를 돌리자 앞치마 차림의 아내가 주방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여보?”
“귀신이라도 봤어요? 왜 그래?”
“아니, 아냐.”
“아빠! 아빠! 다선이 목말 태워 줘요! 헤헤헤!”
딸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안방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덕구다! 덕구 일어났어?”
왈왈왈!
덕구가 꼬리를 마구 흔들며 반갑다는 듯 머리를 비볐다.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거예요? 당신 좋아하는 참치김치찌개 했어. 얼른 와서 먹어요.”
식탁으로 가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가 보였다. 그 주변으로는 정갈한 반찬들과 정민이 좋아하는 흑미밥이 놓여 있었다.
“다선이도 덕구랑 그만 놀고 여기 와서 앉아야죠?”
“네!”
세 사람이 나란히 식탁에 앉았다.
정민은 조심히, 아주 조심히 수저를 들었다. 수저를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지금 보는 이 모든 게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참치김치찌개를 들어 입에 넣었다.
정민이 활짝 웃었다.
“물을 좀 적게 넣어서 짜던데 괜찮아요?”
“괜찮아. 맛있어. 너무 맛있어.”
“계란말이도 먹어 봐요. 특별히 큰마음 먹고 한 거니까.”
“이것도 맛있어.”
“채지는 어때요? 맵지 않나? 조절 잘 못해서 고춧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갔는데.”
“딱 좋아. 근데…….”
“응?”
“왜 당신이랑 다선이는 안 먹어?”
아내는 정민을 애처롭게 바라보기만 했다. 대답은 다선이가 대신 했다.
“우린 아까 아빠가 밥 줬잖아요! 콜라도 마음껏 먹었는데. 헤헤.”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딸아이에 정민의 눈에서 주룩주룩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보.”
“…….”
“끼니는 제때 제때 챙겨 먹어요. 술만 마시지 말고…… 반찬 같은 거 해 먹기 귀찮으면 사서라도 먹고. 알았어요?”
“크흑흑흑. 알겠어, 알겠어, 여보…….”
“아빠!”
“응?”
“아빠는 다선이 사랑하죠?”
정민이 미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사랑해. 아빠는 다선이 진짜 진짜 사랑해. 너무너무…… 흑흑흑.”
* * *
“허.”
냉장고를 연 서준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먹는다는 안정민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냉장고가 정말로 텅텅 비어 있었다.
기껏 칸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라고는 술이 전부.
플라스틱으로 된 고추장 통이나 된장 통이 있긴 했지만 모두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서준은 고추장과 된장 통을 아공간에 날려 버리고 클린 마법을 시전했다.
냉장고에서 나던 군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군내가 사라진 냉장고에는 가지고 온 반찬 통들을 차곡차곡 쟁여 넣었다.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아루트스 알로 만든 계란말이, 채지, 어묵 볶음, 고사리 나물, 멸치 볶음, 오이소박이, 가지 볶음 정도였다.
“우렁 각시도 아니고.”
냉장고 문을 닫은 서준이 픽 하고 웃었다. 하는 짓이 영락없는 우렁 각시다.
사실 반찬까지 손수 가져다줄 생각은 없었던 서준이었다.
귀환한 후, 서준은 서서히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되찾아가는 중이었다.
연준을 만나 기뻤다. 서우는 사랑스러웠고 성실한 이들이 피해를 입을 때는 화가 났다.
이진순의 부고를 전해 들었을 때는 슬퍼졌다. 남해로 놀러 가기 전날에는 들뜬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
서준은 가여운 감정을 느꼈다.
원망할 대상조차 갖지 못한 안정민에게서.
그래서다. 그래서 반찬을 가져다준 거고, 그래서 찾아볼 생각을 했다.
안정민이 원망할 대상을…….
* * *
로포칼레(Rofocale) 길드의 대표인 채상민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하긴…… 돈 주고 합의 봤지.”
“얼마나 줬어?”
“오억.”
“뭐, 오억?”
“아니, 그 시발년 애비가 그 이하로는 절대 합의 안 해 주겠다잖아. 어떡하냐? 돈 주고 합의 봐야지.”
“우리 진한이 호구 제대로 썼네.”
“아니면 대표님이 좀 해결을 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에?”
진한이라는 사내의 말에 채상민이 낄낄 웃었다.
“미쳤냐. 내가 재미 본 것도 아닌데.”
“하, 오억은 안 아까운데 그 오억이 고스란히 그년이랑 그년 애비한테 간 게 아깝다.”
“다시 뺏어 오든가.”
“주자마자 훔쳐 오면 경찰이 존나 나 말고 다른 사람 의심하겠다.”
“큭큭. 맛은 어땠는데?”
담배를 비벼 끄며 묻는 채상민에 진한이 활짝 웃었다.
“와…… 그거 생각하니까 오억 안 아깝다.”
“하, 시발 나도 낄걸!”
“그러게 오지 그랬냐.”
“알잖아. 우리 노친네.”
“회장님?”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이던 채상민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그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네 아버지인데 노친네가 뭐냐, 노친네가.”
“다 늙은 노친네더러 노친네라 하지 뭐라 하냐?”
“천하에 불효막심한 새끼.”
“내가 더 천하에 불효막심한 거 보여 줄까?”
“뭔데?”
낮게 웃은 채상민이 아공간 아티팩트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웬 위스키 보틀을 꺼냈다.
“어? 이거?”
포장지에 새겨진 글렌피딕(Glenfiddich) 55라는 문구에 진한이 입을 떡 벌렸다.
“맞지?”
“보고도 안 믿기냐?”
“와…… 글렌피딕 55. 이거 존나 귀한 거잖아?”
진한은 금방 위스키의 진가를 알아봤다.
하이퍼카의 대명사로 불리는 라페라리(LaFerrari)처럼 돈이 있다고 해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급 위스키가 바로 이 글렌피딕 55였다.
“이걸 어떻게 구했냐? 아니…… 구하셨습니까, 대표님?”
“아버지 서재에 있는 거 슬쩍했지.”
“그러다 걸리면 초상 치르는 거 아니냐?”
“어차피 남들 보여 주기용으로 사 둔 거라 한두 개 사라져도 노친네 몰라. 너도 마시지?”
“당연하죠, 대표님. 헤헤.”
진한의 아부에 피식 웃은 상민은 언더락 잔을 꺼내 왔다. 그러고는 잔에 위스키를 따라 한 잔은 채상민에게 권했다.
“얼음은 안 넣어도 돼?”
“하…… 이 새끼 또 없이 자란 거 티 내네. 이런 고급 위스키는요, 얼음 타면 오히려 맛이 없어져요. 알았어요?”
“그런 거였냐.”
상민은 자신의 것도 따라서 조심스럽게 시음을 했다.
“으음.”
신음이 절로 나오는 맛이다.
진하게 풍겨 나오는 과일 향과 은근하게 전해지는 카카오 향…….
“와, 씨! 대박!”
“죽이지?”
진한이 미친 듯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그 말에 오피스 룩 차림의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상민의 비서였다.
“회장님한테 전화 왔어요?”
따로 일정이 없는 시간에 그의 비서가 그를 방해할 일은 많지 않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아버지한테 전화가 오거나.
그리고 주로 후자가 많았다.
“아뇨. 그때 오신 분이 자꾸 대표님을 찾으셔서요.”
“그런 걸 뭐하러 일일이 보고합니까? 경비들 불러서 내쫓으세요.”
“그게…….”
“왜요?”
“몸에 기름을 끼얹으셨어요. 안 만나 주시면 불 붙이시겠다고…….”
“하, 가지가지 하네. 뭐 낌새 맡고 취재 온 기자는 없죠?”
“네.”
“후, 올려 보내요.”
“알겠습니다.”
비서가 물러가자 진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자식새끼 목숨 담보로 돈 뜯으려는 미친놈 하나 있어. 마침 저기 오네.”
진한이 고개를 돌렸다. 남루한 차림의 중년인이 울먹거리며 상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라이터를 든 채였다.
“또 오셨네요?”
“내 아들…… 내 아들 살려 내.”
“그거 이미 관리국에서 조사 끝난 거잖아요. 근데 자꾸 찾아와서 살려 내래. 내가 무슨 신이에요?”
“살려 내! 살려 내라고, 이 자식아! 너희가 죽였잖아! 다 알아…… 너희가, 너희가 던전에서…… 크흑!”
“이 아저씨 말씀 살벌하게 하신다. 누가 들으면 진짜 내가 누구 죽인 줄 알겠어. 아저씨. 저 개미 한 마리 못 죽이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제가 뭐 아쉬울 게 있어서 사람을 죽입니까?”
“죽였잖아! 재미로! 이 미친 사이코 새끼야!”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 누가 들을까 봐 무섭네요.”
이를 바드득 갈던 중년인이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기세를 보면 진짜 자기 몸에 불이라도 붙일 기세였다.
한숨을 내쉰 상민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손이 치즈처럼 쭉 늘어나더니 중년인이 들고 있는 라이터를 빼앗았다.
그가 가진 스킬 중 하나였다.
“장 비서님.”
“예?”
“장 비서님은 나가 계시겠어요? 이분하고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좀 풀어야겠네요.”
“아, 네. 알겠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불러 주세요.”
여비서가 나가자마자 상민의 태도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야 이 시발아. 증거 있어?”
“네가 죽였잖아…… 네놈이 내 아들 죽였잖아!”
“그러니까 시발 증거 있냐고요, 증거.”
“크흑! 네가 없앴잖아. 증거도…… 증인도. 이 천벌 받을 놈아!”
“남이사 천벌을 받든 말든. 시발 사람 X게 하네. 아저씨.”
퍽!
힘을 실지는 않았지만 채상민은 S급의 각성자였다. 그 발길질에 중년인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컥!”
상민은 나자빠진 중년인의 머리채를 쥐고 일으켜 세웠다.
“아저씨.”
찰싹!
“아저씨!”
찰싹!
“아저씨 딸내미 있다며.”
“……!”
“딸내미 애비 없이 자라게 할 거예요? 아니잖아, 어?”
“…….”
“왜 못할 것 같애? 5억만 쥐여 주면 아저씨 죽여 주겠다는 애들 줄을 설걸?”
그 말에 낄낄거리고 있던 진한이 반응했다.
“난 무료 봉사 가능.”
“봤지? 그러니까 참아 줄 때 주제 파악하세요. 알겠어요?”
“…….”
탈력감이라도 든 걸까.
중년인의 표정에는 더 이상의 감정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에 상민은 중년인의 뺨을 두어 차례 두들긴 후, 금고로 다가갔다.
거기서 그가 꺼낸 건 골드바였다.
“아드님이 어쩌다가 죽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심심한 위로를 존나 표하고요. 이건 조의금. 장물아비들한테 갖다 팔아도 10억은 너끈히 받을 겁니다.”
“…….”
“딸 생각하셔야지. 그거 갖고 딸 학비에 보태실래요, 아니면 그거 없이 계속 죽은 아들 불알만 붙잡고 있을래요?”
힘없이 일어난 중년인이 고개를 떨군 채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중년인을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던 상민에게 진한이 물었다.
“근데 저 아저씨 아들 진짜 안 죽였냐?”
상민이 히죽 웃었다.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