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lord's Martial arts ascension RAW novel - chapter (85)
85 화
해가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지면에 내려앉고, 길가 곳곳에서 전등이 빛을 발했다.
짧은 해.
밤이 빠르게 찾아왔다.
‘어느새 겨울인가.’
전생을 각성한 지 5개월 정도가 지났다.
하루하루를 바삐 보내다 보니, 계 절이 지나가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 다.
나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집 근처 카페를 향해 걸었다.
딸랑-
문을 열자 종소리가 울렸다. 카페 안쪽에는 베르데가 미리 자리를 잡 아둔 채, 나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민철 님. 오래간만에 인사드립니
다.”
“일찍 왔다?”
약속 10분 전.
나도 제법 일찍 나왔는데.
베르데는 그보다 더 부지런히 나왔 다.
“후후. 군주님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맞다.
이 녀석, 심각한 중2병이었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하면서 제발 포즈 좀 잡지 마라.
베르데의 오그라드는 말이 더 길어 질까 두려워서 바로 말을 잘랐다.
“오냐. 커피 좀 시키고 오마.”
“군주…… 아니, 민철 님의 취향은 이미 파악해두었습니다. 아이스 아 메리카노 맞으시지요?”
“어, 어.”
떨떠름한 투로 대꾸했다.
이 녀석.
내 커피 취향도 기억하고 있었나.
“역시. 민철 님에게 어울리는 취향 입니다.”
“웬 취향?”
“언제나 타오르는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가운 음료를 내리시는, 그야 말로 불에 어울리는 성정 아니겠습 니까.”
나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조금 전 헛소리를 들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빠악!
사심을 가득 담아 베르데의 뒤통수 를 후려쳤다.
“커 헉!”
“아주 그냥 이프리트가 여기 있다 고 광고를 하지 그러냐.”
실은 녀석의 중2병 멘트가 오글거 려서 때린 거지만.
솔직히 말할 수 없어서 대충 말을 둘러댔다.
“크, 크윽. 죄송합니다. 제가 민철 님의 대계를 망칠 뻔했습니다.”
아니.
큰 계획 같은 거 없다고요.
제발.
내 앞에서는 평범한 사람처럼 이야 기해주라.
“그 지령이라는 게 뭐지?”
속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꾹꾹 참아
내면서 본론을 던졌다.
“흑사회가 한국에 정착할 수 있게 힘을 보태라는 명입니다.”
“흑사회?”
“모르시는군요. 블랙 네트워크에서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규모 범죄 조직입니다.”
……블랙 네트워크는 뭐고. 흑사회 는 또 뭐야.
하나 같이 처음 들어보는 명칭이 다.
“둘 다 모르겠으니까 설명 좀 해 봐.”
“흠흠. 먼저 블랙 네트워크는 마피 아나 마약 카르텔 같은 범죄 단체들 이 연합해서 만든 국제단체입니다.”
“범죄자들이 국제단체라고? 웃기지 도 않는군.”
“뭐, 그들이 그렇게 부른다는 말이 죠. 민철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규모가 꽤 큰 편입니다.”
블랙 네트워크.
세계 각지에 있는 거대 범죄조직들 이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만든 범 세계적인 조직이다.
온갖 장물과 불법적인 물건을 취급 하는 블랙마켓.
돈만 주면 어떤 의뢰라도 수행하는 해결사, 검은 암살단.
그 외에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법적인 일에 개입했다.
“흑사회는 중국에 있는 대규모 범 죄조직입니다.”
“그 녀석들이 한국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힘을 보태 달라?”
“예. 역시 민철 님의 혜안은 엄청 나시군요.”
아뇨.
네가 설명해준 걸 그대로 읊은 것 뿐인데요.
일일이 반박하는 것도 귀찮아서 대 꾸하기를 포기했다.
“한국에도 블랙 네트워크가 있을 거잖아.”
“블랙 네트워크에 낄 만큼 대규모 범죄조직은 없습니다.”
“오.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살기 좋 은 곳이었구나.”
“치안도 좋은 편이고 판데모니엄과 엘리시움, 두 세력 모두 관심을 가 지고 있는 나라니까요.”
“일단 표면적인 목적은 블랙 네트 워크 한국 지부에 협력하는 건 가……
“그렇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속하 의 능력이 미진하여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블랙 네트워크의 세력 확장.
고작 그걸 위해 ‘검은 세례’라는 것을 내려주고 악마들을 투입했을 리 없다.
‘다음 단계를 위한 포석인가.’
판데모니엄의 다음 계획.
다크 엘프 무리의 배후와 같은 존 재일까.
아니면 다른 녀석, 이를테면 아스
모데우스의 짓일까.
“다크 엘프와 블랙 네트워크의 관 계는?”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다크 엘프들이 지구에 밀 입국했다면, 블랙 네트워크의 도움 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관이 없어도 상관없어.”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다크 엘프와 관련이 있든 없든.
현생의 나에게 있어, 판데모니엄은 방해물이 었다.
“이프리트 님. 지시를 내려주십시 오.”
“여태까지 그랬듯, 지금은 지령에 충실해라.”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 다.
“이프리트 님께서 품고 계시는 원 대한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는지요.”
“지금 잡아봐야 꼬리치기. 몸통이 나올 때까지는 기다려야지.”
흑사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판데모 니엄과 줄을 대고 있다는 것을 알아 냈다.
지금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몸통을 드러냈을 때 일망타진한 다.’
나는 느긋하게 열매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 * *
[동인천역 게이트]를 공략하고 1주 가 지났다.
엘리가 저번에 넌지시 언급했던 대 로, 게이트 수급에 난항을 겪기 시 작했다.
대형 길드들의 적극적인 게이트 섭 외.
특히 A급 게이트는 경쟁이 심해서 수주받기가 어려웠다.
공략이 없는 날.
나는 오래간만에 성간 연합 용산지 부를 방문했다.
“웬일로 오셨어요?”
“할 일이 없어서.”
무한 고리 별자리 덕분에 숨만 쉬 어도 성천조계공의 숙련도가 꾸준히 올라갔다.
에인헤야르는 가만히 둬도 알아서
수련을 잘했다.
엘리는 무턱대고 찾아온 나를 5층 에 있는 카페로 안내했다.
“넌 안 바쁘냐?”
“바쁘죠. 근데 민철 헌터님을 지원 하는 게 최우선 업무거든요.”
“아무리 봐도 업무로 보이지는 않 는다만.”
“이럴 때 안 쉬면 언제 쉬겠어요?”
엘리는 눈웃음을 치고는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커피를 마셨다.
잔을 드는 손짓이 굉장히 우아했 다.
“지부장은?”
“최근 바쁘셔서 자리를 비우는 일 이 많으세요.”
“부탁할 게 있었는데.”
“말씀하시면 전해드릴게요.”
“전에 망토 이야기했었잖아. 각인 을 해야 하거든.”
요르문간드 망토.
탑 2층에서 요르문간드한테 선물 받은 아이템이다.
‘빨리 각인을 해야 착용할 수 있는 데.’
요르문간드가 직접 자신의 가죽을
잘라내서 마법적인 가공을 거친 망 토.
주인이 각인을 해야 완성되게끔 마 법적인 장치를 해둔 탓에, 진실의 눈으로 살펴봐도 아이템의 성능을 확인할 수 없었다.
최소 유니크 등급 이상은 되지 않 을까.
마음속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지부장님이 알아보는 중인데 쉽지 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
“그만한 실력을 지닌 장인을 구하 기도 어렵고, 지구에 모셔오기는 더
힘드니까요.”
지구는 차원의 억제력이 꽤 강력한 세계다.
다른 세계에서 물건이나 강한 힘을 지닌 존재가 넘어오려면 오랜 시간 과 마력을 소모해야 한다.
특히 고위 영격을 지닌 존재들은 억제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서 상당 부분 제약이 걸렸다.
쳇.
나는 혀를 찼다.
“네 말대로 쉽지는 않겠군.”
“지부장님이 노력하고 계시니, 그
래도 금방 구해질 거예요.”
“그나저나 요즘 왜 이렇게 게이트 섭외가 어려운 거야?”
“호호, 성간 연합은 꽤 미움받으니 까요.”
“왜?”
“외국에서 재화를 빼가는 거랑 비 슷한 느낌인 거죠.”
엘리는 가볍게 웃었다.
나는 웃을 기분이 안 나는데.
매일 진행했던 공략은 이틀에 한 번꼴로 줄어들었다.
B급 2번에 A급 1번.
평균적인 수치다.
들어가는 게이트가 모두 A급이면 모르겠지만, B급 게이트를 공략해서 는 성에 안 찼다.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려면 레벨을 올리는 게 가장 빠른데.’
이제는 몸을 단련해도 신체 능력의 향상을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성천조계공을 운용하면서 혼돈기로 육신을 개변했지만, 한계는 명확했 다.
‘현생의 몸은 재능이 없다.’
전민철이라는 사람의 잠재능력은
정해져 있다.
평범한 인간.
재능이 뛰어난 무인과 비교하면 민 망할 정도였고, 투마의 강건한 육체 는 언급하는 것조차 실례였다.
‘그릇을 넓히면 되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전민철]이라는 형태의 그릇.
더 많은 물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개선을 거쳐야 한다.
무 대륙에서는 그 과정을 ‘환골탈 태’라고 불렀다.
더 강한 내력을 받아들이고 무공을
펼칠 수 있는 몸뚱이로 변화하는 것.
당장은 시도할 수 없다.
‘최소 절정 수준으로 몸뚱이의 수 준을 올려야 한다.’
내력은 초절정에서 화경 사이.
신체 능력은 일류를 조금 넘어선 정도.
무 대륙의 기준으로 진단한 내 수 준이다.
신체와 내력의 언밸런스.
최소 절정, 지구 기준으로는 모든 능력치를 A급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환골탈태를 시도할 수 있다.
‘근데 게이트 섭외가 안 된단 말이 야.’
막힘 없이 도로를 질주하다가 교통 체증에 걸린 느낌이다.
“엘리야. 게이트 섭외가 언제쯤이 면 잘 잡힐 것 같아?”
“지금은 여러 길드가 경쟁적으로 게이트를 수주하고 있어서요. 확답 은 못 드리겠어요.”
엘리는 미안한 안색을 띠면서도 단 호하게 말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참 확실한 성 격이다.
쩝.
나는 입맛을 다셨다.
‘다시 탑을 올라야겠어.’
시련의 탑.
탑이 부여하는 시험을 극복하고 보 상을 얻는 것.
어떤 보상이 주어질지는 알 수 없 지만, 지금처럼 간간이 쉬어가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천족의 의식이 시작되려면 한 달 정도 남았나.’
경매 때 마주쳤던 천사.
타니엘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
다.
‘여유를 두고 돌아오는 게 좋겠다.’ 마침내 다시 탑을 등반하기로 결심
을 내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당분간 게이트 섭외는 취소해줘.”
“탑에 오르시게요?”
눈치 빠른 엘리.
금세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고 질
문을 날렸다.
내가 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을 싫
어할 수가 없어요.
“그런 셈이지.”
“헤에. 한 가지 잊으신 게 있는 것 같은데.”
엘리의 눈이 반달로 휘었다.
장난기가 가득한 눈빛.
뭐지?
내가 잊어버린 게 있던가.
“게이트 공략하기로 하고 빼놓은 게 있나.”
“땡.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봐요.”
“경매 대금 지불을 마무리하지 않 았다든지.”
“방향이 다르다고 했잖아요.”
말이 이어질수록 굳어지는 엘리의 표정.
머리를 굴리며 아무리 생각해도 답 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모르겠다.”
“와. 진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잊어버리신 건가요?”
엘리는 얼굴을 붉히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음성 가운데 섞인 노기와 황당함.
엘리한테서 도통 보기 어려운 모습 이었다.
‘내가 실수한 게 있나?’
화가 났다.
분명 화가 났는데, 그 원인이 나인 것 같다.
“어. 뭔지 모르겠어.”
” 식사.”
“식사 ?”
“탑에 들어가기 전에, 저한테 밥 사준다고 했잖아요!”
-나오면 밥이나 한번 먹자.
-밥…… 이요?
-어. 공적인 거 말고 사적으로.
와.
완전히 잊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이 가득한 엘리에게 남 겼던 인사.
그녀는 그때의 말을 지금까지 기억 하고 있었다.
‘내가 죽일 놈 맞네.’
먼저 약속해놓고 다시 탑에 들어갈 때까지 완전히 잊고 살았다.
이마에 뿔이라도 난 듯, 화가 잔뜩 난 엘리.
꿀꺽.
나는 노기가 감도는 엘리의 눈동자 를 마주하면서 천천히 입술을 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