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
마신 1권
서(序)
천하제일고수(天下第一高手).
무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며 한번쯤은 되고 싶은 야망을 가지게 하는 말이다. 그만큼 강해지고 싶은 욕망은 무림을 지배해 왔고, 강함의 비교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호기심이 분명하다.
하지만 기나긴 무림 역사상 누가 가장 강했느냐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함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림 역사상 최고의 기인(奇人)은 누구냐고 묻는다면 어떨까?
놀랍게도 여기에는 답이 있다.
천기자(天氣子).
천기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오성으로 어릴 때부터 이미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게다가 수많은 기관진식에 통달해 그 경지를 추측조차 할 수 없었고, 지닌바 무공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고강했다. 게다가 별호대로 천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통찰력 또한 대단했다.
그는 누구도 예상치 못할 말과 행동을 일삼았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슨 수를 쓰던 이루고야 말았다. 덕분에 전 무림이 혼란에 빠진 적도 부지기수였으니 그 기행(奇行)에 모두가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그런 천기자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공때문이었다. 천기자가 비록 고강한 무공을 익히고 있긴 했지만 천하제일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무공으로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공에 대한 그의 이론 때문이었다.
천기자는 천하에서 가장 많은 무공을 접한 사람이었고, 또 그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훨씬 대단한 무공을 창안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천기자가 말년에 창안한 간단한 무공 하나가 천하를 온통 뒤흔들 정도였으니 그의 능력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천하를 뒤흔들었던 무공은 섬영도(閃影刀)라는 다섯 초식으로 이루어진 도법이었는데, 그 무공을 익힌 낭인은 혼자서 중소문파 수십 개를 박살낼 정도로 강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낭인이 섬영도를 천기자로부터 받아 전수받고 익힌 기간이 고작 삼 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천기자는 기관진식을 이용한 독특한 방법으로 단시간 내에 이름 없는 삼류무사를 절대 고수로 바꿔 놓았다. 물론 그 삼류무사는 나중에 섬영도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고, 결국 무림공적으로 몰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지만.
어쨌든 그 일은 천기자에게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고, 그 이후로 많은 무림 단체에서 천기자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천기자는 더 이상 무림에서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동원해 천기자의 흔적을 찾았지만 그는 마치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진 듯 그냥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천기자의 무공이란 말인가?”
“정확히는 무공이 있는 곳의 장보도입니다. 맹주.”
현 무림맹(武林盟)의 맹주인 파산검(破山劍) 독고운은 번득이는 눈으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봤다.
그는 하남(河南) 조가장의 장주인 조일현이었다. 조가장은 하남 허창(許昌)에 있는 무림세가였다. 아무리 무림맹이라지만 하남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명문세가인 조가장의 장주가 직접 찾아옷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독고운도 그가 찾아왔다고 했을 때 놀라긴 했지만 그가 가져온 소식은 훨씬 더 놀라웠다.
“그것이 천기자의 장보도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하셨소?”
“내 가져왔으니 맹주께서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조일현이 품에서 종잇조각을 하나 꺼냈다. 그것을 보는 독고운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내 서탁 위에 종이가 펼쳐졌고, 독고운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그것을 뚤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보기에는 진품인 듯하오. 일단 이곳을 조사해 보는 것이 좋겠소. 아마 이 장보도에 있는 그림들은 기관진식의 도해 같으니 진법에 밝은 사람도 필요할 것이오.”
독고운의 말에 조일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허면 이 장소에는 가 보았소?”
“아직 가보지 않았습니다.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지요. 이물건은 제가 가지고 있기에는 그 무게가 지나칩니다. 무림맹이라면 아무리 무거운 물건이라도 거뜬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조일현의 말에 독고운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 장주는 참으로 현명한 분이오. 앞으로 조가장이 크게 뻗어 나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허허허헛!”
조일현은 크게 웃으며 말하는 독고운을 바라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원하던 것을 모두 손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조일현의 판단은 옳았다. 천기자의 무공이 담긴 장보도는 무림맹이 아니라면 누구도 소유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렇게 한 장의 장보도가 세상에 나타났다.
천기자가 죽기 직전에 깨달음을 얻어 만들어 낸 무공을 담고 있는 장소와 그곳의 기관을 파헤치는 법까지 적혀 있는 장보도 덕분에 오랜 기간 조용했던 무림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오악 중 남악에 해당하는 형산(衡山). 그 형산에서도 깊고 깊은 곳. 온통 울창한 나무와 풀로 가득한 가운데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는 절벽이 있었다.
우르르르르!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치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절벽이 흔들렸다. 은은한 우레 소리와 함께 한참이나 흔들리던 절벽은 결국 굉은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콰과과광!
사방이 돌가루로 뒤덮였고, 울창한 나무들이 부서진 바위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이내 돌가루가 가라앉고 다시 나타난 광경은 실로 놀라웠다. 절벽은 앞부분만 무너져 내렸고 뒷부분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마치 원래 있던 절벽을 누군가 잘라낸 듯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절벽의 단면이 매끄러웠다.
그리고 그 절벽에는 커다란 동혈이 뚫려 있었다.
휘이이이!
동혈에서 한 줄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 바람은 절벽 주변을 한 번 훑은 후 사라졌다. 그리고 바람이 사라짐과 동시에 동혈 입구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얇은 가죽으로 만든 듯한 흑의(黑衣)를 입은 사내였다. 허리춤에는 역시 낡아 보이는 검을 매달고 있었는데, 검집조차 없는 맨검이었다. 다만 검에서 흘러나오는 예기만큼은 심상치 않았다.
“결국 나왔나……”
사내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사내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사내는 움직이지도 않고 그러헤 한참 동안을 서서 하늘을 쳐다봤다. 한 시진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하늘만 쳐다보던 사내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
“혼란스럽군.”
사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몇 걸음 걸어갔다. 일단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해내야만 했다.
사내는 최대한 평평한 땅을 찾아 걸음을 멈춘 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자연스레 서서 눈을 감는 것, 이것은 그동안 사내가 취할 수 있었던 가장 편한 자세였다. 그리고 모든 것의 시작이기도 했다.
사내는 눈을 감은 채 기억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갔다.
처음은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열 살 무렵인 듯했다. 처음 이곳으로 게 된 것은.
“난 천기자라고 한단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자신을 천기자라고 밝힌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백 명의 아이들을 둘러봤다. 사내 역시 아이가 되어 그곳에 서 있었다.
“지금은 아무리 얘기해 봐야 이해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겠지만 너희들은 십 년 후에 천하를 구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단다.”
사내는 분명히 당시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먼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어쩌면 고아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오늘은 푹 쉬도록 해라.”
말을 마친 천기자가 사라졌고,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몸을 뉘었다. 동굴 안은 상당히 넓었다. 몇몇 아이들이 도망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동굴 입구에는 인자한 표정의 천기자가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하지만 그날이 아이들이 탈출할 기회가 남아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 날 동굴 입구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동굴 입구는 바위절벽으로 막았다. 혹시라도 누가 침입해 오면 큰일 아니냐. 허허허헛.”
너무도 대단한 일을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천기자 앞에 아이들은 모두 쥐죽은 듯 조용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무공수련이라는 이름이 붙은 고행이 시작되었다.
먹고 자는 것에서 시작해서 모든 것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천기자에게 배운 무공은 숨쉬는 법, 칼 쓰는 법,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법이었다. 처음에는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 무공을 대충이라도 흉내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르자 알아서 알려 주었다.
숨쉬는 법의 이름은 삼재기공(三才奇功), 칼 쓰는 법의 이름은 삼재검법(三才劍法),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법의 이름은 삼재보(三才步)였다.
어쨌든, 그렇게 무공을 익히는데 보낸 시간이 대충 삼년쯤 된 듯했다. 무공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아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죽어라 수련을 했는데도 크게 진전이 없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기자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도 흡족해했다.
그렇게 삼 년째 되는 날, 천기자는 백 명의 아이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 작은 단약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자, 너희들의 무공을 도와줄 약이다. 어서 먹도록 해라.”
아이들은 별 의심 없이 그 약을 삼켰다. 그것은 사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모두 약을 먹은 것을 확인한 천기자가 빙긋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오늘이 딱 삼 년째 되는 날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무공도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이제는 그것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만 남았구나. 내가 가르쳐 준 그 무공은 정말로 훌륭한 것이다. 제대로만 익히면 그야말로 무신(武神)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무공이다.”
천기자는 아이들을 죽 훑어봤다. 아이들은 그동안 꽉 자인 틀에서만 살아서 자유로움이 전혀 없었다. 어찌 보면 인형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제 남은 칠 년 동안 너희들은 각자 무공을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후, 세상에 나서서 천하의 겁난을 해결해야만 한단다.”
천기자는 그렇게 말한 후 아이들을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동굴의 더욱 깊숙한 부분인데, 그곳에는 기이하게 생긴 문이 있었다.
“이제부터 모두 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그곳에서 무공을 수련해라. 자유롭게.”
천기자의 말에 아이들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안개로 꽉 차 있었다.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천기자는 문을 닫았다.
쿵!
문이 닫히자 천기자가 바닥에 조용히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후우, 모든 안배가 끝났군. 이제 남은 것은 저 아이들을 나중에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지. 혈마자(血魔子)여, 어쩌자고 그런 일을 벌이려 한단 말인가. 십 년 후 저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자네의 야욕을 산산히 부숴 버릴 걸세.”
천기자는 숨을 고른 후 조용히 일어섰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적당한 시기에 저들을 부릴 수 있는 힘을 세상에 흘려야만 했다. 문제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이었다.
“이제 열흘쯤 남았는가? 저 아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천하의 내가 고(蠱)를 이용하게 되다니.”
천기자가 아이들에게 먹인 단약은 사실 고였다. 그것도 상당히 특수한 고였다. 천기자가 직접 개발해낸 것으로써 음양고(陰陽蠱)라는 이름을 가졌다.
아이들에게 먹인 고는 음(陰)의 성질을 가진 고였고, 만일 양(陽)의 성질을 가진 고를 흡수한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은 그의 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천기자는 작은 목함을 하나 꺼냈다. 그 안에는 양의 성질을 가진 음양고가 들어 있었다.
“이젠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겠군.”
천기자의 신형이 순식간에 동굴 안에서 사라졌다. 동굴에는 그만이 알 수 있는 비밀통로까지 있었다.
물론 십 년 후 사람들은 그 통로를 통해서 이 안으로 들어와야 할 것이다.
천기자까지 사라진 동굴 안에는 기괴한 모양의 문만이 기이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내가 눈을 떴다.
“그렇군. 천기자…… 이제 생각이 났다. 우리가 왜 그 지옥에 들어가야 했는지.”
사내의 몸에는 서리가 어려 있었다. 사내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기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안개 속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저 무공을 수련하는 것뿐.
처음에는 그저 안개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높은 기의 결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무공 수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높아져 갔다.
그렇게 수련에 매진하던 어느 날 이변이 일어났다. 그것은 천기자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천기자가 아이들을 몰아놓은 곳은 각종 진법으로 주변의 기운을 밀집시켜 놓은 장소였다. 형산의 기운을 비롯해서 세상에 퍼진 기운을 한 곳으로 몰아넣었으니 당연히 안에는 높은 밀도의 기(氣)가 차 있었고, 그곳에서 무공을 수련하면 높은 성취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섬영도 역시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단숨에 고수를 만들 수 있었으니 이곳에서 수련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갖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과해서 문제가 되었다. 아이들이 있는 동공 안의 기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아이들을 모으기 전부터 세상의 기운을 끌어당겼으니 얼마나 많은 기운이 모였을 것인가. 기의 결정이 안개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뭔가가 틀어져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천기자는 그것이 적어도 십 년은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재능이 문제였다.
아이들 몸속에까지 기가 쌓이고 매일 그 기를 강렬하게 분출해대니 동공 내부의 기는 포화상태를 넘어 주변을 왜곡시킬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시커먼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은 동공 내부에 있던 모든 기운을 깨긋이 잡아먹었다. 더불어, 함께 있던 아이들마저 말끔히 잡아먹었다.
그때부터가 지옥의 시작이었다.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떴다. 그곳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해맸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함께 있던 아이들도 요괴들에 먹혀 하나둘 죽어 나갔다.
다행히 그때까지 꽤 대단한 실력을 쌓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대항할 수 있긴 했찌만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그날부터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지독한 생존의 투쟁이었다. 마치 인형 같던 아이들의 천진한 눈에는 독기가 어렸고, 몸의 예기는 깊이 안으로 갈무리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익히게 된 것들이었다.
삼재기공과 삼재검법, 그리고 삼재보는 너무나 대단한 무공이었다. 안개 동굴에서 수련할 때보다 훨씬 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무동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사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함께 있던 아이들은 모두 죽었고, 사내는 세 무공의 끝을 보았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아니, 그동안 헤아릴 틈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십 년은 훨씬 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 지옥에 떨어지고 십 년 동안은 아이들 중 누군가가 매일 날짜를 헤아렸다. 그 아이가 죽고 난 후에는 더 이상 헤아리는 사람이 없어 기억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만큼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사내가 홀로된 후에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지났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이름까지 잊을 정도였으니…..
사내는 다시 기억을 조금씩 되짚어갔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동료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이 그동안 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떠올랐다. 그들이 자신을 부르던 이름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형우…… 그래, 날 형우라 불렀지.”
사내가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단형우. 내 이름은 단형우였어.”
사내의 눈가와 입가에 미미하게 움직여다. 오랜만에 이름을 되찾아 기분이 좋아졌다.
“일단 그들을 찾아가 봐야겠군.”
단형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혼잣말은 단형우가 혼자 살아남으며 가지게 된 버릇 중 하나였다. 단형우는 속으로 이 버릇을 빨리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날렸다.
단형우의 몸이 꺼지듯 사라졌다. 마치 원래 그곳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바람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림맹(武林盟).
삼백 년 전, 혈교의 발호로 결성된 정파 무림의 구심점이다. 당시 천하제일검이라 칭송받던 구룡신검(九龍神劍) 벽운학을 중심으로 정(正)을 추구하는 모든 무인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자연스러게 맹(盟)을 결성했다.
벽운학은 무림맹 초대 맹주가 되어 혈교를 혈겁을 막아냈다. 혈교의 마지막 공세를 막아내다가 장렬하게 산화하긴 했지만 그의 신념과 정의는 아직까지 무림인들의 입에 회자될 정도로 대단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삼백 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도 사람도 많이 변했다. 무림맹도 당연히 변해 한때는 그 영향력이 아예 없었떤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천하에 두루 힘을 미쳤다.
현 무림맹주 파산검(破山劍) 독고운은 별 볼일 없던 삼류문파인 백검문(百劍門) 출신이었다.
그는 일신의 능력으로 백검문의 영향력을 높였고, 결국 무림맹주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평화로운 시기의 무림에서 그가 맹주로 추대되기까지 겪고 행한 일은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독고운은 무림맹 장로들을 모았다. 무림맹에는 총 아홉장로가 있었다. 구대문파에서 각각 한 명씩 장로가 되는 것이 관례였다. 걱분에 구대문파 중에서 힘이 있는 문파의 장로와 그렇지 않은 문파의 장도들 간에는 발언권의 차이도 존재했다.
아홉 장로를 모은 독고운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 서탁 위에 놓았다.
“맹주, 그게 무엇이오?”
장로 중 한 명이 종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그는 화산파 장로 출신의 매화검(梅花劍) 정천이었다. 독고운은 정천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였다. 장로들의 시선이 독고운의 입에 집중되었다.
“장보도요.”
독고운의 말에 장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밑도 끝도 없이 장보도라고 하면 누가 알아듣는단 말인가.
“장보도라니, 무슨 천하제일 무공이라도 나왔소? 아니면 무영신투의 무덤이라도 발견했소?”
정천이 다시 물었다. 독고운은 그런 정천을 보며 슬쩍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천기자의 마지막 무공이 담긴 곳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