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00
“더 정확히 말해라. 손님이 데리고 온 하인이라고.”
팽가 무사 하나가 그렇게 말하자 종칠이 흠칫 놀랐다. 그 말 하나로 그들이 얼마나 자신을 심하게 다룰 예정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위기가 닥쳐오니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종칠이 여기저기 눈을 굴리다 단형우를 발견했다.
“다, 단대협.”
종칠의 부름에 단형우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헉, 불길하다.’
단형우는 나서지 않을 모양이었다. 종칠은 암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려 영사를 쳐다봤다.
영사는 막 나서려다가 단형우의 행동을 보고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종칠의 머릿속으로 먹구름이 몰려왔다.
“그, 그러니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종칠이 다시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팽가 무사는 섬뜩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자기가 한 말도 모른단 말이냐?”
“에헤헤헤, 제, 제가 무슨 말을……”
팽가 무사는 종칠의 비굴한 웃음을 보며 코웃음 쳤다.
“흥, 기억이 안 나도 상관없다.”
팽가 무사의 눈에 종칠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이 보였다. 그의 눈에 호기심이 일었다.
“호오, 검이로구나. 그럼 쟁자수가 아니라 표사쯤 되는 건가?”
쟁자수나 표사나 팽가 무사의 입장에서는 다 똑같았다.
“좋아, 기회를 주지.”
종칠은 기회라는 말에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말에 정말해야 했다.
“나와 대련을 해서 이기면 용서해 주지.”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상대는 오대세가의 정예 무사, 자신은 아직 표사도 되지 못한 쟁자주. 결과는 뻔히 보이는 싸움이었다. 절망감에 절로 고개가 떨어졌다.
팽가 무사는 고개 숙인 종칠을 보며 도를 뽑았다.
스릉.
“넌 뽑지 않을 테냐? 흥, 그래도 분수는 아는 놈이로군. 팔 하나로 용서해 주마.”
팽가 무사의 말에 종칠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팽가 무사의 도는 움직이고 있었다.
쐐애액!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섬뜩한 경기가 어깨어림에 느껴졌다. 종칠은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뒤로 물러섰다.
팽가 무사의 도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피할 수 있는 도가 아니었다.
“호오, 한 수가 있었다는 건가?”
종칠은 위기감을 느끼며 검을 뽑았다.
챙!
날카로운 검영이 울렸다.
종칠은 검을 들어 팽가 무사를 겨눴다. 신기하게도 일단 검을 쥐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리고 검왕이 그동안 자신에게 가했던 무수한 구타가 떠올랐다.
부르르.
절로 몸이 떨렸다.
쉬이익!
팽가 무사의 도가 공간을 가르고 달려들었다.
챙!
종칠의 검이 그것을 쳐냈다. 조금 힘에서 밀리긴 했지만 놀랍게도 완벽히 막아냈다. 종칠은 완벽하게 공격을 막아낸 스스로에게 상당히 놀랐다. 팽가의 정예 무사가 내리친 일격을 막아내다니!
놀란 것은 종칠만이 아니었다. 팽가 무사는 종칠보다 훨씬 더 많이 놀랐다. 설마 마음먹고 날린 일격이 막힐 줄은 몰랐던 것이다.
놀란 것은 동시였지만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종칠이었다. 그동안 검왕의 정신적 육체적 괴롭힘 덕분에 여러 가지 상황에 상당히 단련되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받게되니 어쩔 수 없이 몸이 알아서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놀람은 필연적으로 빈틈을 만든다. 그리고 종칠은 그 빈틈을 찾아 찌를 능력이 있었다. 역시 검왕의 괴롭힘 덕분에 익히게 된 능력이었다.
쉬익!
픽!
종칠의 검이 팽가 무사의 어깨를 꿰뚤었다. 죽기 살기로 찔러 넣었기 문에 엄청난 힘을 담고 있었다. 덕분에 팽가 무사의 어깨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다.
“커억!”
어깨에서 쏟아지는 피를 지혈할 생각도 못하고 경악에 찬 눈으로 종칠을 바라보는 팽가 무사의 눈이 점점 죽어 갔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팽가 무사들이 달려들었다. 동료의 상처를 보고 눈이 뒤집힌 것이다. 일부는 동료에게 다가가 상처를 지혈하고 일부는 종칠에게 달려들었다.
촤촤촤촤악!
십여 명이 휘두른 도에 촘촘한 도기가 뻗어 나왔다. 종칠은 그것을 보며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몸은 반사적으로 빈틈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쩌저정!
도기 몇 가닥이 종칠의 검에 소멸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종칠이 과감히 몸을 날렸다.
치지직!
도기에 온자락이 조금 잘려 나갔지만 놀랍게도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으허헉! 자, 잠깐! 잠깐만요!”
종칠이 그렇게 소리치며 도망쳤다. 종칠은 그 와중에도 단형우의 위치를 찾아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판단은 너무나 정확했다.
번쩍!
강렬한 벼락이 공간을 갈랐다. 그리고 그물처럼 엮어 종칠을 따라가던 도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팽가 무사들의 얼굴에 경악을 남기고.
팽만호는 일행을 가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굳이 그가 함께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한 맹호대에게 새로운 명을 내려야 했다.
전각에서 나간 팽만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과 달리 맹호대가 없었던 것이다. 고작 셋이 남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어디에 갔느냐?”
“연무장에 갔습니다.”
팽만호는 맹호대원의 말을 들으며 나직이 감탄했다.
“호오, 네노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게로구나. 임무가 끝나자마자 연무장에서 수련이라니. 이런 날에 내가 빠질 수 없지. 가자.”
팽만호의 말에 맹호대원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대주인 팽만호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연무장은 전각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팽만호는 마치 신법이라도 발휘하는 듯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무장에 들어선 팽만호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팽만호의 눈이 빛났다. 부상을 입은 대원을 발견한 것이다. 그 순간 부상자와 팽만호 사이의 거리가 지워져 버렸다.
“무슨 일이냐?”
팽만호는 놀란 대원들을 뒤로 하고 부상자를 살펴다. 어깨 주변이 흥건히 피로 젖어 있었다.
“이건 도로 낼 수 없는 상처로군.”
팽만호의 눈이 빛났다. 맹호대원들은 모우 도를 무기로 쓴다. 검을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즉, 맹호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부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팽만호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검을 들고 있는 종칠을 발견했다.
“너냐?”
팽만호는 그렇게 말하며 종칠 앞으로 몸을 날렸다. 처음 부상자에게 다가갈 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거리가 지워졌다. 실로 놀랄만한 신법이었다.
팽만호의 손이 막 종칠의 목을 움켜쥐려는 순간, 종칠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팽만호의 손이 허공을 휘어잡았다.
팽만호는 놀란 눈으로 종칠을 쳐다봤다.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로 대단치 않아 보였다. 맹호대원과 싸워 이겼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비겁한 수를 썼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 맹호대 무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신의 손을 피해냈다. 물론 거리가 멀긴 했지만 팽만호의 금나수(擒拿手)는 거리가 멀다고 해서 손쉽게 피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팽만호는 끓어오르는 마음을 잠시 다스렸다. 상대는 어쨌든 팽가의 손님이다. 이렇게 급하게 일을 처리해선 안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해라.”
팽만호가 뒤돌아 맹호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맹호대원들은 더듬더듬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 그러니까 상호가 저자와 대, 대련을……”
“대련? 상호가 대련을 해서 졌단 말이냐?”
팽만호는 인사을 한 번 찌푸렸다. 그리고 종칠을 노려봤다.
“대련인데 그리 삼하게 손을 쓸 필요가 있었나?”
팽만호의 고압적인 말에 종칠이 움찔 몸을 떨었다. 당시에 는 너무 절박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팽만호의 기세에 완전히 눌린 것이다.
맹호대원들은 그 이후의 일은 이야기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종칠을 협공했다는 것을 팽만호가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벼락과 함께 도기가 사라졌다고 말하면 맞아 죽을지도 몰랐다.
맹호대워들은 아무도 단형우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벼락만 봤을 뿐이었다. 설마 그 벼락이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거라고는 절대 믿을 수 없었다.
“어디, 나하고도 대련을 할 용기가 있나?”
팽만호는 당한 만큼은 갚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상호가 어깨를 뚫렸으니 팔 하나는 잘라야 했다. 팽만호의 눈이 종칠을 태워버릴 듯 이글거렸다.
종칠은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등에 와 닿는 손바닥을 느낄 수 있었다.
“어어?”
그 손바닥은 가볍게 종칠을 밀어냈다. 종칠은 그 힘에 밀려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호오, 용기가 대단하군.”
종칠의 눈에 팽만호의 입가가 섬뜩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얼굴에 핏기가 가겼다.
‘뭐, 뭐야?’
종칠은 믿을 수 없었다. 단형우가 자신을 팽만호라는 죽음 앞으로 밀어 넣었다. 그 손바닥의 정체는 단형우였던 것이다.
종칠이 고개를 돌려 단형우를 쳐다봤다.
“다, 단대협, 제,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단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종칠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별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종칠은 신기하게도 마음이 안정되었다. 왠지 단형우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종칠의 고개가 다시 팽만호에게로 돌아갔다.
지금은 처음처럼 팽만호가 두렵지 않았다. 종칠의 기세가 서서히 커졌다. 그리고 종칠의 몸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던 팽만호의 기세를 조금씩 밀어냈다.
팽만호는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럼 시작하지.”
팽만호는 상대의 기세가 더 커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더 시간을 끌며 위험할 것만 같았다. 팽만호의 허리춤에서 도가 솟구쳤다.
빠르고 날카로운 도기 한 가닥이 종칠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펑!
종칠은 그 도기를 간신히 막아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런 공격이라 뒤로 계속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팽만호의 도가 파도처럼 몰아쳤다.
채채채챙!
콰앙!
팽만호는 이를 악물고 공격했다. 도에 어린 도기가 점점 짙어졌다. 하지만 그 도기마저도 종칠을 위협하지 못했다. 종칠의 방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안정되어 갔다.
종칠은 오로지 방어에만 집중했다. 자신의 실력으로 팽만호를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어만 한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동안 검왕에게 당한 것이 너무 많았다.
종칠은 꽤 오랜 시간 검왕이 괴롭힘을 견뎌왔다. 그 괴롭힘이라는 것이 상당히 과격해 때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락가락할 정도였다.
검왕과 팽만호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종칠이 팽만호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팽만호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조금 흥분해서 성급한 감이 있긴 하지만 온 힘을 다해 공격하고 있다. 그것을 빈틈없이 막아내니 점점 힘이 빠졌다.
‘힘을 감춘 고수였다 이거로군.’
팽만호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대단한 고수가 맹호대원에게 큰 상처를 입히다니.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며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아니면 가볍게 손을 써서 제압해도 충분하다.
“하아압!”
팽만호의 분노가 그대로 공격에 녹아 들어갔다. 그의 도에 서린 도기가 점점 응축되더니 이내 눈부신 빛을 발하기 사작했다. 도강(刀剛, 강자는 한자가 없어 대체 했습니다.)이었다.
도강을 본 종칠은 화들짝 놀랐다. 도기라면 어찌어찌 막을 수 있겠지만 도강이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팽만호의 공격이 상당히 거칠어서 막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분명히 자신의 검이 박살나고 도강에 몸이 두 쪽 날 것이다.
“으허헉!”
종칠이 급히 뒤로 물러섰다. 팽만호는 그렇게 드러난 빈틈에 도강을 찔러 넣었다. 종칠의 눈앞에 눈부신 빛이 쇄도해 들어갔다.
콰앙!
종칠은 눈앞에서 빛 가루가 날리는 광경을 보며 입을 벌렸다.
“쿨럭!”
팽만호가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도는 절반이 보이지 않았다. 부러진 것이다. 팽만호와 종칠 사이에 한 사람이 가만히 검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검왕이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검왕의 나직한 말이 연무장에 울렸다. 검왕의 뒤로 검마가 조용히 다가갔다. 어느새 두 사람이 연무장에 나타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아직 볼일이 끝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검왕은 팽만호를 노려봤다. 팽만호는 검왕의 시선에 온몸이 옥죄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 충격으로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 그런데다 검왕의 기세가 압박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쿨럭!”
팽만호의 입세어 다시 피가 터져 나왔다.
“쯧쯧, 그렇게 다그치기만 하면 되나.”
검마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팽만호에게 다가갔다. 검마의 손바닥이 팽만호의 등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컥!”
팽만호는 거칠게 피를 토했다. 시꺼멓게 죽은피였다. 그렇게 피를 토하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검마의 손이 다시 팽만호의 등에 닿았다 떨어졌다. 팽만호는 엄청난 기운이 등을 통해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잃었다.
“오랜만에 하니까 잘 안 되는군.”‘
너무도 여유로운 검마의 말에 맹호대 무사들이 멍한 표정을 짓고 검마를 쳐다봤다. 맹호대원 몇몇이 서둘러 움직였다. 팽만호를 들쳐 메고 연무장에서 나가 버렸다.